116화
악랄한 꼬맹이
[!!돌발 퀘스트!! ‘피로에 지친 베카(EX)’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거절 시 베카의 호감도 하락, 퀘스트 성공 시 보상 : 온천의 배달원들]
이 와중에 돌발 퀘스트라고?
난 망설임 없이 수락을 누르고 베카를 부축해 일으켰다.
고민할 것도 없이 베카를 돌보는 게 맞았다.
“베카,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괜찮다. 조금 피곤한 것뿐이니까.”
괜찮다고 말을 하면서도 베카는 몸을 일으켜 세울 힘이 없는지 내게 기댔다.
그의 흰 피부가 평소보다 창백해 보였다.
베카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기에 덜컥 겁이 났다.
“조금 피곤한 정도가 아니잖아. 너 지금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으면서!”
혹시 헌터들에게 공격을 당한 건가 해서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혼란스러운 순간.
[!!돌발 퀘스트!! ‘피로에 지친 베카(EX)’]
[베카와 함께 탕에서 족욕하기 (0/1)]
[※조건 : 베카의 피로가 풀리면 성공.]
퀘스트창이 답을 알려줬다.
‘온천에서 족욕을 하면 베카의 피로가 회복된다는 거지?’
“마탑의 주인이나 되는 녀석이 고작 피로하다는 이유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골골댄다고?”
해령은 내 품에 얌전히 기대어 있는 베카를 향해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베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의 상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해 보였다.
“베카,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족욕을 해보지 않을래? 온천을 하면 몸이 조금 나아질지도 몰라.”
입을 열 힘도 없는지 베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 내가 부축해줄 테니까 탕으로 가자. 영계야, 가운 좀 챙겨줄래?”
“알겠다!”
내 부탁에 걱정스러운 눈길로 베카를 보고 있던 영계가 부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안고 가는 게 낫겠지?”
“아니다, 네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직접 걸어가겠다.”
아플 때는 조금 기대어도 좋을 텐데 베카는 내게 짐을 지운다고 생각했는지 비틀대면서도 몸을 일으켜 세워 걸었다.
“그럼 우리 손잡고 가자. 그 정도는 괜찮지?”
베카의 움직임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베카가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어린 풀꽃처럼 작은 손으로 나를 잡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맞잡은 베카의 손이 뜨거웠다.
“자,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나는 찜찜함을 감추지 못하는 해령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채 베카의 상태를 살피며 탕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해령, 넌 유독 저 꼬맹이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군.”
샤레니안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잔뜩 뿔이 나 있는 해령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거 혹시…… 질투인가?”
“질투?”
샤레니안의 돌직구에 해령의 바른 눈썹이 불만스럽게 일그러졌다.
“주인이 너보다 꼬맹이한테 관심을 더 많이 주니까 짜증이 치미는 거 아니야?”
“누가 짜증이 치밀었다고! 나는 정당한 의심을 했을 뿐이다. 마탑의 주인이 피로가 좀 쌓였다고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품에 안긴 꼴이라니…….”
“흐응~ 그렇구나. 우리 온천의 지배자님께서는 그 꼬맹이가 주인의 품에 안겨 있는 게 못마땅하셨던 거구나?”
“그게 아니라ㄴ……”
해령이 격하게 부정할수록 샤레니안의 얼굴에는 재밌어 죽겠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띠링―
그때 마침 온천의 손님들이 모여 있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 ‘온천 손님 단체방’의 알림음이 울렸다.
“이 악랄한 꼬맹이가…….”
메시지를 확인한 해령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흑화한 몬스터처럼 전신에서 검은 오라를 뿜어냈다.
[‘탑의 주인’이 성좌 ‘온천의 지배자’를 향해 승자의 미소를 짓습니다.]
* * *
나는 탕에 들어와 베카와 나란히 가운을 입고 앉아 족욕을 하고 있었다.
“베카, 갑자기 어지럽거나 하면 나한테 바로 말해야 해.”
“알겠다.”
다행히 온천에 들어온 베카의 혈색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쓰러질 정도로 무리한 거야?”
“치유 마법을 배우려고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마법서를 읽었다.”
“마탑의 주인도 모르는 마법이 있어?”
“치유 마법은 쓸 일이 없으니까. 보통 한 방이면 죽거든.”
베카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별것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베카는 탑의 최종 보스였지.
베카의 압도적인 힘은 지옥귀와 싸울 때도 몸소 확인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쓸 곳도 없으면서 무리하면서까지 치유 마법을 배운 거야?”
“생겼다. 쓸 곳이.”
온천에 담근 발을 바라보고 있던 베카가 나를 돌아봤다.
“지난번 탑에서 널 치료해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순간 베카가 그날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성좌였다면 가호로 너를 치료해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러지 못하는군.”
베카에게는 그때의 아쉬움이 기억에 크게 남은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다쳤을 때를 대비해서 치유 마법을 배웠다는 건가? 날 낫게 해주려고?’
“어쩜 베카는 마음도 이렇게 천사 같을까?”
지금 내 눈에 베카보다 더 사랑스러운 천사는 없었다.
“날 생각해줘서 고마워, 베카. 감동이야.”
[!!돌발 퀘스트!! ‘피로에 지친 베카(EX)’]
[베카와 함께 탕에서 족욕하기 (1/1)]
감격하는 그때.
[!!돌발 퀘스트!! ‘피로에 지친 베카(EX)’를 클리어 합니다.]
베카의 돌발 퀘스트가 완료됐다.
다행히도 베카의 몸이 회복된 모양이었다.
안도하는 내게 베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고마울 것 없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고 말았으니까. 바쁜 것처럼 보이던데 괜히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베카는 조그마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풀이 죽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것 없어. 나도 고민이 많아서 머리가 아팠는데 이렇게 족욕하면서 한숨 돌리니까 조금 나아진 기분이야.”
“고민이 있었나?”
베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응, 이제 온천의 요리를 잘 만들 수 있게 되어서 헌터를 대상으로 온천 돈가스 도시락을 판매해보려고 하는데 마땅한 배달원이 없거든. 내가 직접 하면 정체를 들킬 수도 있고 고용을 하자니 온천의 비밀이 새어 나갈 것 같아서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말이야. 믿을 만한 사람 찾기가 쉽지도 않고.”
“너와 온천의 비밀을 지킬 수 있고 배달도 가능하면 되는 건가?”
“이왕이면 길눈이 밝으면 좋고! 신속 정확하게 배달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그 조건을 충족하면서 발이 빠른 녀석들을 알고 있다.”
듣던 중 매우 반가운 소리였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온천 전용 배달원을 구할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사람은 몇이나 필요하지?”
“많을수록 좋지!”
얼마나 많이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조건에 맞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구할 수 있을 때 되도록 많이 구해두는 게 좋았다.
“좋다. 내가 연락을 해보도록 하겠다.”
베카가 입으로 바람을 불자 허공에 장미 모양 물체가 떠올랐다.
그게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베카의 작은 입술이 열렸다.
“오랜만이다. 온천에서 음식을 바깥으로 전해줄 배달원이 필요한데 혹시 같이 일할 의향이 있나?”
혹시 저거 전화기 같은 건가?
역시 베카는 전화기 하나도 평범한 건 안 쓰는 것 같다.
전화 상대가 뭔가를 말하는 건지 베카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귀를 기울여봐도 상대편 말은 내게 들리지 않아서, 나는 베카의 말만으로 통화 내용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온천 사장은 너희들이 아는 얼굴이 맞다. 따로 원하는 조건이 있나?”
조건은 급여와도 관련되기에 중요한 문제였다.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데 베카가 통화를 하다 말고 나를 돌아봤다.
“배달에 대한 보수로 일한 뒤에는 온천을 하고 싶다는데, 가능한가?”
“돈은?”
“돈은 필요 없다고 한다. 온천욕이면 된다는군.”
“돈이 필요 없다고?”
그게 말이 돼? 재차 확인했지만 베카는 거듭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좋은 조건일 수 있나?’
이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가능해! 완전 가능!”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기에 나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붙이며 강한 긍정을 표시했다.
“가능하다고 한다.”
통화를 이어가던 베카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숙박도 가능하냐고 묻는군.”
내가 살펴본 바로는 성좌들이 쓰는 방을 제외하고도 1층과 2층 곳곳에 빈방이 많이 있었다.
‘일당도 안 받고 일해주는데 숙박쯤이야.’
“숙박도 오케이! 원한다면 온천 요리도 챙겨준다고 해!”
베카가 내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바로 숙식을 하고 싶다는데?”
나야 내일이라도 당장 판매를 할 수 있으면 좋았다.
“와도 좋다고 해줘.”
“온천 사장이 가능하다고 하는군. 그렇다면 바로 문을 열어주도록 하지.”
잠깐……! 문을 열어?
베카는 탕에 담근 발을 빼내고 나왔다.
“베카, 문을 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내가 베카에게 묻는 순간이었다.
[‘탑의 주인’이 던전 브레이크를 생성합니다.]
‘왜 갑자기 던전 브레이크를 여는 건데?’
[!!주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등급: SS>]
[!!돌발 퀘스트!! ‘피로에 지친 베카(EX)’ 성공 보상으로 온천의 배달원들을 획득합니다.]
검은 소용돌이처럼 생긴 포털에서 앙증맞고 상큼한 오렌지색 부리가 툭 튀어나왔다.
그때였다.
“꽤액!”
통통한 몸뚱이에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노란색 오리 인형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