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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13)화 (113/190)

113화

꼬리의 유혹

“운수야, 너 머리에서 귀가……! 그리고 그 꼬리는…….”

‘너무 보송해 보여!’

“보지 마라!”

운수가 당황하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귀와 꼬리를 손으로 누르며 황급히 감추려 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그의 복슬복슬하고 통통한 꼬리가 눈앞에서 살랑거렸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운수야, 나 지금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니 운수가 감은 눈을 슬며시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을 뻗어 포동한 꼬리를 가리켰다.

“꼬리……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

“절대 안 돼!”

꼬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게서 위기감을 느낀 건지 운수가 빠르게 자신의 꼬리를 품에 안으며 나를 경계했다.

“귀여운 걸 보고도 참으라니! 이건 고문이야.”

“……어째서 묻지 않는 거냐?”

아쉬움에 손만 꼼지락대고 있는 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운수가 내게 넌지시 물어왔다.

“뭘?”

“내게 여우 귀와 꼬리가 생겨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냐?”

“그게 뭐 어때서? 그것도 운수 너잖아. 거기다 이 부드러워 보이는 꼬리랑 쫑긋 솟은 귀 좀 봐! 이건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랑스러운 거지!”

“진짜 이상한 녀석.”

“그것도 맞아. 온천 사장으로 각성한 것보다 이상한 게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운수의 경계가 느슨해지기가 무섭게 나는 그의 꼬리로 눈을 돌렸다.

“꼬리…… 한 번만…….”

“안 된다고 했잖아!”

격한 반응과 함께 운수의 꼬리털이 곤두섰다.

‘꼬리 만지는 게 진짜 싫은가 보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운수가 싫다는 걸 계속 강요할 수는 없었다.

“네가 싫다니까 어쩔 수 없지. 이제 더 이상 부탁 안 할게. 아쉽다, 진짜 만져보고 싶었는데…….”

미련 가득한 눈으로 꼬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운수가 들고 있던 부채로 나를 가리켰다.

“너! 지금 내 꼬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네 주머니에 있는 물건부터 처리해라.”

“내 주머니에 뭐가 있는데?”

무심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지호의 휴대폰이 손에 들어왔다.

“이건 지호 스마트폰인데?”

“그 물건에 환각 스킬이 걸려 있었다. 네가 이 꽃밭으로 오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고.”

그렇다기에 휴대폰은 평소와 다를 게 없이 평범했다.

“환각 스킬이 걸렸다는 물건이 이 스마트폰 확실해?”

“믿기 어렵다면 눈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이리 내라.”

평정심을 되찾은 운수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손을 내미는 운수에게 휴대폰을 넘겨주면서도 그의 귀와 꼬리가 있던 자리를 아련하게 바라봤다.

‘여우 꼬리랑 귀, 더 보고 싶었는데.’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심기가 불편해진 운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탑의 주인’이 ‘수온이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 여우 귀와 꼬리를 추가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넌 남의 신체 부위를 일일이 기록하지 말라”며 소리칩니다.]

“아, 실수! 나 혼자만 생각한다는 게…….”

유독 여우 꼬리와 귀를 보인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운수에게는 숨기고 싶은 부분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꼬리를 만지고 싶다는 티를 내는 건 자제해야지. 그래도 쳐다보는 건 괜찮겠지?’

“다 들린다고!”

분명히 혼자 생각하려고 했는데 시스템의 농간인지 운수에게도 내 생각이 들리고 만 것 같았다.

“됐다. 더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반쯤 해탈한 듯한 운수가 부채를 들어 휴대폰을 내려찍었다.

우지끈―

유리가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한순간에 휴대폰 화면에 금이 갔다.

“지호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내 멘탈도 파사삭 부서졌다.

휴대폰을 장난감처럼 뽑는 지호는 어떨지 몰라도 백수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의 스킬 ‘환각’의 숙주가 사라집니다.]

[스킬 ‘환각’이 해제됩니다.]

휴대폰을 부수자 오류가 난 것처럼 깨진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진짜 환각이 걸려 있었잖아?”

그걸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누군가 네가 모르는 사이에 이 물건에 스킬을 걸어놓은 모양이군. 이번에도 짐작이 가는 자가 없나?”

“……현정우.”

“그러고 보니 그자가 저 물건을 건네주긴 했지.”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던 운수가 의문스럽다는 듯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하지만 스킬을 썼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성좌 ‘저승의 염라’가 “이미 온천 성좌들의 스킬을 무력하게 만든 전적이 있는 자인 것부터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라며 “이번에도 무슨 수를 쓴 걸지도 모른다”며 경고합니다.]

‘염라의 말이 맞아. 이번에도 환각이 발현되고 나서야 휴대폰에 스킬이 걸려 있다는 걸 눈치 챘잖아.’

현정우가 미리 손을 썼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게 맞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현정우가?’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의심이 가는 사람이 박시우의 길드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집필에 소속된 이상 박시우와 지호와도 함께 움직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인물일 것이다.

게다가 지호 병실에서도 같이 있었던 걸 보면 길드원 중에서도 특별히 가까운 사이인 것 같고.

만약 진짜 현정우의 짓이라면 왜 날 노리는 걸까?

내가 온천 사장인 걸 눈치 채서?

그러고 보니 내가 각인한 모습을 처음 보인 헌터는 현정우였다.

그럼 내가 온천 사장이라는 걸 밝히거나 포섭하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현정우에게서 나를 온천 사장이라고 의심한다거나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낌새는 없었다.

게다가 ‘???’는 나를 같은 편으로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공격하고 있잖아.

심지어 A급 바나나 던전에서는 나를 진짜 죽게 만들었고.

‘악의를 품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돼.’

그럼 내가 현정우에게 원한을 샀다는 건가?

그렇다기에 내가 현정우를 만난 건 SS급 던전 브레이크가 열렸던 때가 처음이었고, 요 근래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였다.

‘아니지. 꼭 내가 원한을 산 게 이유일 필요는 없지?’

박시우랑 지호가 나를 아낀다는 건 헌터 업계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다.

지호가 남한테 원망받을 일을 벌일 리는 없고 이건 누가 봐도 박시우다!

‘박시우는 입만 열면 빵을 주고 싶어지니까…….’

죽빵.

만에 하나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더라도 집필은 1위 길드인 만큼 외부의 적도 많았다.

현정우가 집필에 들어온 건 최근이라고 들었어.

어쩌면 다른 길드의 스파이일 확률도 있었다.

실제로 ‘???’는 나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으니까 목표가 나 하나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 말은 박시우랑 지호도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이번만 해도 지호가 지옥귀의 저주에 걸려서 죽을 뻔했다.

‘두 번은 안 당해!’

“운수야.”

비장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운수가 흠칫 놀라며 날 바라봤다.

“온천으로 돌아가자.”

앞장을 서며 운수를 스쳐 지나간 나는 이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놀란 운수에게서 순식간에 귀여운 여우 귀가 솟아났다가 사라졌다는 건 나만 아는 비밀로 묻어두기로 다짐하면서.

* * *

“근데 어디로 나가야 해?”

자신만만하게 앞서 나가던 나는 얼마 안 가서 머리를 긁적이며 운수를 돌아봤다.

눈앞에 펼쳐진 꽃밭은 바다의 수평선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들어오는 것도 그러하듯 나가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다. 꽃밭의 주인인 나나 이 꽃잎의 기운을 담을 수 있는 자만이 출입할 수 있지.”

“그럼 난 어떻게 들어온 거지?”

운수의 설명을 듣자 하니 내가 이 꽃밭에 혼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 더욱 의문스러워졌다.

“……아마도 지난번에 날아간 꽃잎 때문이겠지.”

“응?”

“굳이 알 필요 없다. 널 이 꽃밭에 다시는 들일 생각이 없으니까.”

단호박보다 더 단호하게 말을 마친 운수는 들고 있던 둥그런 부채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방울의 맑은 소리가 울리며 안개가 일더니 잠시 후, 온천으로 가는 입구가 열렸다.

“가라.”

“넌 안 가?”

“난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다시 이 근처는 얼씬도 말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수는 입구와 함께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 *

수온을 꽃밭에서 내보낸 운수는 날아오는 꽃잎 몇 장을 잡아 손에 쥐었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펼치자 꽃잎들이 금빛을 내며 일정한 형태로 공중에 떠올랐다.

눈가리개를 한 운수가 글을 읽듯 꽃잎이 보여주는 미래를 읽어나갔다.

“부귀영화와 함께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난다.”

꽃잎이 알려주는 미래를 들여다보던 운수의 뺨을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 * *

“그러니까 오밤중에 갑자기 온천의 요리를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고?”

해령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온천으로 돌아오자마자 해령에게 온천 요리 수강을 부탁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네게 필요한 건 잠이다.”

“아니야, 온천 사장 주제에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온천의 음식이 하나도 없잖아! 한동안은 온천에 붙어 있을 테니까 향료를 만드는 법도 알려줘! 부탁할게, 응?”

두 손을 모으고 부탁하는 날 보던 해령이 못 이기겠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원래 사장에게 온천의 일을 전수하는 건 내 소관이다만. 갑자기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새로운 목표가 생겼거든!”

“그게 뭔데?”

해령의 물음에 나는 탁상에 놓인 손에 힘을 잔뜩 쥐었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별 기대 없이 날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서도 긴장감이 일었다.

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해령을 바라보며 답했다.

“온천을 만들 거야. 바로 헌터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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