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11)화 (111/190)

111화

운수를 믿으십니까?

“해령 님, 샤레니안 님이 또 온천을 피바다로……!”

온천이 피로 물드는 것을 염려한 영계가 부리나케 샤레니안의 귀환 소식을 알렸다.

“쉿.”

잠든 수온을 지켜보던 해령이 소란을 피우는 영계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영계가 짤막한 팔로 재빨리 제 입을 가렸다.

“수온을 방에 옮겨두고 갈 테니 잠시 샤레니안을 맡고 있어라.”

음소거 상태로 고개를 끄덕인 영계가 자리를 뜨자 해령이 수온을 안아 들어 방으로 옮겼다.

정갈하게 깔린 이부자리에 그녀를 옮겨 눕힌 해령은 섬세한 손길로 잠자리를 정돈해줬다.

“샤레니안 님, 정신 차리십시오! 일단 제가 부축을…… 악! 거긴 꼬리라고요!”

아래층의 소란스러움에 수온이 몸을 뒤척였다.

“하여간 샤레니안, 이 도움 안 되는 근육 녀석…….”

미간을 좁히며 혼잣말을 하던 해령이 수온이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하며 그녀의 수면에 방해가 되는 진상을 처리하기 위해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해령이 나간 뒤, 수온은 또 한 번 몸을 뒤척이며 돌아누웠다.

그때, 그녀의 옷 주머니 속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오며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그건 현정우에게서 받았던 지호의 스마트폰이었다.

고장이 난 것처럼 지직거리던 화면에 커다란 느낌표가 떠올랐다.

[???가 스킬 ‘환상’을 사용합니다.]

[스킬 ‘환상’의 효과로 환각 상태에 빠집니다.]

시스템창과 함께 잠들어 있던 수온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눈을 뜬 그녀의 동공에는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마치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 * *

여긴 어디지?

지호에게 해독제를 먹이고 온천으로 돌아와서 해령을 본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다음부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찹찹한 돌바닥에 누워 있었다.

“엄마, 박시우가 자꾸 내 돈가스 뺏어 먹어!”

“박시우, 수온이가 아무리 좋아도 괴롭히지 말라니까. 그러다가 동생한테 미움 받는 오빠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 순간, 절로 눈물이 왈칵하고 차올랐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내가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던 엄마의 목소리니까.

“돈돈이가 날 미워한다고?”

“그래, 자꾸 그러면 시우랑 말도 안 하려고 할걸? 모처럼 다 같이 온천에 놀러 왔는데 수온이가 시우 미워해도 괜찮아?”

“……아니요.”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잊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떠올랐다.

처음으로 가족끼리 온천에 놀러 갔던 그날이란 것을.

몸을 일으키자 그때의 어린 나와 박시우, 지호. 그리고 젊은 날의 엄마, 아빠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돈가스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야, 박돈돈! 이거 너 다 먹어!”

내게 미움 받는 오빠는 되고 싶지 않았던 건지 박시우는 자기 그릇에 남은 돈가스를 전부 내게 옮겨줬다.

“어? 그러면 지호도 누나 돈가스 줄게! 나는 돈가스보다 누나가 훨씬 좋으니까!”

그러자 지호마저 박시우를 따라서 내게 돈가스를 집어주며 내 팔에 꼭 붙어서 애정을 잔뜩 표현했다.

“나, 나도 돈돈이가…….”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박시우가 대단한 다짐을 한 듯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돈돈이가 뭐?”

“……돈돈이는 돈가스.”

결국 돌아오는 건 박시우의 놀림이었지만.

“엄마, 박시우가 또 돈돈이라고 놀려!”

“수온아, 오빠가 다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난 싫어! 박시우 싫어!”

아, 이 장면은 내 소중한 추억이기도 했지만, 박시우의 흑역사이기도 했다.

저 말을 들은 박시우가 목놓아 울어버렸으니까.

아마도 어린 삭제 박시우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됐던 것 같았다.

“아빠, 엄마!”

울음을 터뜨리는 박시우를 달래는 엄마와 자상하게 미소 짓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북받쳐 오르는 그리움에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외침이 닿기도 전에 장면이 바뀌었다.

“오늘은 나 혼자 돈가스 두 개 먹을 거야!”

다음 장소는 부모님이 실종되기 전에 살았던 오피스텔이었다.

그날은 온천에 다시 놀러 가기로 부모님과 약속을 한 날이었다.

“역시 박돈돈, 아직 온천도 가기 전인데 돈가스 먹을 생각부터 하고 있냐?”

“꼭 돈가스 때문만은 아니거든? 엄마랑 아빠가 오랜만에 온천에 데려가주신다고 했잖아!”

“누나 말이 맞아! 엄마, 아빠가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여느 때처럼 박시우와 투닥거리다 지호와 거실에 나란히 앉아서 현관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난 저 현관문이 끝내 열리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까.

내가 부모님의 소식을 알게 된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도심 한복판에 정체 모를 던전 브레이크가 나타나……, 시민 구하려던 S급 헌터 부부 실종.”

어린 내가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의 참혹한 심정이 마음속에 다시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또다시 장면이 변했다.

난 낭떠러지 아래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어린 날의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조금만 버텨줘, 내가 끌어 올려줄 테니까.”

머릿속으로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어린 나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있는 힘껏 팔에 힘을 줬다.

하지만 어린 나의 손에서 차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어린 나의 몸은 어둠 속으로 가까워졌다.

“무슨 짓이야? 어서 잡아!”

내 고함 소리에 어린 날의 내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살고 싶지 않아.”

“뭐?”

“네가 한 말이잖아. 부모님이 실종되면서 내 세상은 모두 무너져버렸다고,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것처럼 쿵 하고 떨어졌다.

꾹꾹 눌러 담아서 감춰둔 그때의 어두운 감정이 되살아나 나의 온몸을 옥죄어왔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도 넌 살아 있는 거지? 부모님이 되돌아온 것도 아닌데…….”

“내가 찾을 거니까! 일단 너도 살아!”

“부모님은 이미 죽었을걸? 벌써 실종된 지 수십 년이 흘렀잖아?”

다시 한 번 힘을 실어 어린 시절의 나를 끌어올리려는 순간, 그녀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마주봤다.

“그건 이미 죽었다는 거 아니겠어?”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비집고 들어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고 싶었다. 그냥 막연하게…… 부모님이 살아 계시길 바랐다.

“더는 희망 없는 일에 애쓰지 마. 그냥 나랑 같이 가자. 어쩌면 그곳에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어린 시절의 내가 스산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끌어당겼다.

소녀는 처음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거워져 있었다.

자연히 낭떠러지에 있는 내 몸도 아래로 기울어지는 그때였다.

“개소리.”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새하얀 손이 끌려 내려가고 있는 나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등 뒤에서 나타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새하얀 얼굴이 내게 닿았다.

잘 어우러지는 화려한 무늬가 박힌 샛노란 개나리색의 도포 자락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래로 쏠려 있는 몸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박수온, 이곳은 환각 속이다. 과거의 너에게 잠식되어 현재의 삶을 포기하지 마라.”

“……넌?”

“네 삶의 이유는 너다. 다른 그 어떤 이유로도 스스로를 저버려서는 안 돼.”

그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박시우와 지호, 그리고 온천 식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맞아. 과거의 나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운수야,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

“……과거의 너 자신을 어둠 속에서 건져내야 한다.”

답을 하는 목소리에서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운수를 알아본 것에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는 것만 봐도 운수잖아?’

“서둘러야 한다. 네 스스로 환각에서 깨어나야 해.”

“나도 알아!”

어떻게 하면 과거의 나를 건져낼 수 있을지 궁리하던 나는 샤레니안의 애착 때수건을 떠올렸다.

‘이럴 때 때수건이라도 있었으면……! 당장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고!’

나의 간절함이 통한 걸까?

[온천 사장의 권한으로 히든 스킬 ‘온천 용품 판매 데스크(EX)’가 열립니다.]

[온천표 초록색 때수건(EX)을 구입합니다.]

어느샌가 내 손에는 때밀이 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운수야, 꽉 잡고 있어라!”

나는 과거의 나를 잠시 운수에게 맡긴 뒤,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으로 기다란 때수건을 펼쳐 과거의 나의 허리에 감아 힘껏 잡아당겼다.

[히든 스킬 ‘온천의 세신사는 나야 나!☆’를 사용합니다.]

[세신사의 손기술과 ‘온천표 초록색 때수건(EX)’의 탄력에 의해 대상이 속절없이 끌려옵니다.]

[환각에서 깨어납니다.]

어느새 눈앞에 넓은 꽃밭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제각기의 크기를 가진 황금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꽃잎들이 어지러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제야 깬 건가?”

이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화려한 황금색 천으로 눈을 가린 운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