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온천 사장의 축복
[‘온천 사장’이 탑 48층을 개방합니다.]
[탑 47층을 첫 클리어 한 ‘온천 사장’의 소속 국가에 ‘온천 사장’의 축복을 내립니다.]
[‘온천 사장’의 축복으로 24시간 후부터 소속 국가의 모든 헌터에게 탑 47층이 개방됩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이 종료된 뒤에도 온천 사장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그 시각 익명 헌터 게시판은 국내에서 47층을 클리어 한 헌터가 나타났다는 것에 대한 흥분과 환희로 들끓고 있었다.
<온천 사장 47층 클리어 실시간 스트리밍 본 사람들 현실 반응>
* * *
―온천 사장 좋아하지 마.
―그게 뭔데.
―온천 사장 좋아하지 말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 * *
└익명1 : 후…… 나 몰랐는데 온천 사장 좋아하네?
└익명2 : 어제 스트리밍 본 후로 그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잠도 잘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습니다……. 온천 사장 잊을 수 있는 법 아시는 분 대댓 좀…….
└익명3 : 윗댓 왜 이렇게 절절해 ㅋㅋㅋㅋㅋㅋㅋㅋ
└익명4 : 내 말이ㅋㅋㅋㅋㅋ 주접 오지네.
└익명5 : 솔직히 밥 안 먹어도 배부름. ㅋㅋㅋㅋ 우리는 온천 사장 보유국이다!!!
└익명6 : ㅇㅈㅇㅈ.
└익명4 : 지금 해외 언론에서도 온천 사장 집중 조명하고 있음. 조만간 전 세계가 온천 사장 찾으러 나설 기세.
└익명5 : 딴 곳에 뺏기기 전에 온천 사장님,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익명6 : 안 그래도 지금 온천 사장님 때문에 전쟁 남.
└익명4 : 헐? 실화?
└익명6 : 아름다워(war), 귀여워(war), 사랑스러워(war).
└익명7 : 아씨 ㅋㅋㅋㅋㅋ 짜증 나는데 웃은 내 자신이 싫다.
└익명4 : ㅋㅋㅋㅋㅋ2222
<나 오늘 울었다>
* * *
“……왜 울었는데”
“양파 때문에...”
“온천 사장이 양파냐…….”
―온천 사장은 멋있었다
* * *
└익명1 : 아니, 오늘 게시물들 상태 다 왜 이런 건데? ㅋㅋㅋㅋㅋ 다 미친 것 같음.
└익명2 : 솔직히 석쌍들 용의 포효로 날려버릴 때 본 사람들은 다 같이 한마음으로 오열했다.
└익명3 : 희대의 명장면……. 저도 울었음.
└익명4 : 나 스트리밍 못 봐서 그런데 왜 석쌍임? 석상 아님?
└익명5 : 탑 47층에 있는 석상이 알고 보니 쌍둥이였음. 그래서 석쌍이라 부름.
└익명6 : 석쌍 ㅋㅋㅋㅋㅋ 작명 센스 오지네. 이런 말은 대체 누가 만드는 거냐? ㅋㅋㅋㅋ
└익명7 : 나도 궁금함 ㅋㅋㅋㅋㅋㅋ 찾아서 상 줘야 한다.
└익명4 : 와, 그럼 SSS급 둘을 혼자 해치운 거임?
└익명5 : 그러니까 레전드지. 갓사장!
└익명4 : 역사적인 스트리밍 놓친 저는 녹화 동영상 돌려 보면서 광광 웁니다. ༼;´༎ຶ ༎ຶ༽
<이제 집필>
* * *
전 세계에서 온천 사장한테 관심 가지니까 온천 사장님 찾는 데 속력 낸다고 아예 탑에서 먹고 자기로 했다 함.
* * *
└익명1 : ㅎㅊㅎ네도 부랴부랴 찾는다고 난리임.
└익명2 : 솔직히 찾아도 온천 사장이 안 간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익명3 : 온천 사장님 정도면 솔플도 나쁘지 않지.
└익명4 : 그런데 국내 1, 3위 길드는 온천 사장 찾는다고 난리인데 아트는 왜 이렇게 조용함? 그래도 국내 2위 아님? 온천 사장 탐날 텐데?
└익명5 : 거기 길드장이 베일에 싸인 인물이잖음. 아트 소속 지인 피셜인데 아직 별다른 지시가 없다고 하나 봄.
└익명6 : 그러고 보니까 아트 생긴 지 꽤 됐는데 길드장 얼굴 아는 사람이 없네?
└익명5 : 지인 피셜 아트 길드장 얼굴 아는 사람 아트에도 없다고 함. 온천 사장급 신비주의.
└익명7 : 온천 사장한테 묻혀서 어디서 혼자 이불 덮고 울고 있는 거 아님?
<내일 탑 47층 온천 사장 축복 받으면>
* * *
탑 47층 가실 레이드 팟 구함 (0/100000000000)
* * *
└익명1 : 저승길은 혼자 가라.
└익명2 : 쓰니도 안 감. ㅋㅋㅋㅋ 모집 인원 0이잖음.
└익명3 : 함정 카드 발동. ㅋㅋㅋㅋㅋ
└익명4 : 솔직히 랭커들 다 모이는 거 아니면 트라이도 어려울 듯.
└익명5 : ㅇㅈ. 집필도 46층을 못 깼는데…… 47층은…….
<나만 온천 사장 본 적 있는 얼굴인 것 같냐?>
* * *
묘하게 낯익지 않음?
* * *
└익명1 : 그래서 어디서 봤는데?
└익명2 : 대답.
└익명3 : 말 못하죠?
└익명2 : 어그로 끈다고 고생이 많다.
└익명3 : 관종ㅅㄲ ㅉㅉ
“그러게. 어디서 봤을까?”
어두운 호텔 방 안.
모니터 앞에 앉아 자신이 작성한 게시글을 살피던 현정우가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언제까지 이 비밀을 지켜보고 있기만 해야 하는 건데?”
현정우의 시선이 어두컴컴한 방 한편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이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듯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서두를 것 없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깨진 어두운 공간 속에서 기계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뭐라도 된 것처럼 칭송받는 온천의 성좌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인데 잘됐지. 온천 사장은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더군. 그걸 잘만 이용하면 그 녀석들까지 전부 망가뜨릴 수 있겠어!”
어둠 속의 성좌는 그것이 즐거운 일이라도 되는 양 킬킬대며 웃었지만 현정우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답했다.
“내 목표는 위선자인 주제에 지들이 영웅인 척 떠들어대는 존재들이야. 굳이 다른 것 때문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들도 위선자다. 겉과 속이 다른……. 네 아버지를 죽게 했던 그 헌터들처럼.”
어둠의 성좌의 속삭임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린 현정우의 눈동자가 짙은 분노로 물들었다.
“그날의 분노와 고통을 잊지 마라. 이 세상에서 영웅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악마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내가 너를 도울 테니…….”
어둠의 성좌가 현정우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절망과 무력감으로 망가지는 녀석들의 얼굴을 볼 것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쇳소리를 내며 웃던 어둠의 성좌가 손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곳에는 탑 47층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수온이 비치고 있었다.
* * *
[실시간 스트리밍이 종료됩니다.]
[‘성스러운 석상(SSS)의 눈물’을 획득합니다. x2]
‘해냈다!’
나는 성스러운 석상의 눈물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 짧은 환호성을 질렀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널 계속 내 계약자로 뒀다가는 내 수명이 먼저 줄어들 것 같다”며 심장을 부여잡습니다.]
‘그래도 내 걱정은 했나 보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널 걱정한 게 아니라 온천을 걱정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나 때문에 울부짖는다는 거 시스템창이 다 전해줬는데?’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는 부재중이므로 “삐―” 소리가 나면 음성 메시지를 남겨주십시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 : 삐―]
‘그 소리를 너가 내면 부재중이라고 한 의미가 없지 않니?’
운수답지 않게 허당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보니 당황하긴 한 모양이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명부에 먹칠을 한 것 때문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림차사의 잔소리를 듣습니다.]
‘염라, 좋았다!’
나는 조용히 염라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웃는 걸 본 강림차사의 잔소리가 더 길어집니다.]
염라는 저승의 업무만으로 충분히 피곤할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잔소리 듣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머리에 피가 난다”며 잠시 온천에 들러 약 항아리에게 치료받을 것을 권합니다.]
‘아니야. 지금은 남은 재료를 모으는 게 먼저야.’
조금 피곤한 감이 있긴 했지만 아직 체력이 절반 넘게 남았으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어차피 저 고집은 못 꺾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고 말하며 2층 방의 침구를 정리합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지금 말려도 모자랄 판에 부추기면 어떻게 하냐”며 성좌 ‘온천의 지배자’를 나무랍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묵묵히 돈가스를 튀깁니다.]
솔직히 해령도 나를 말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뭐, 나는 잔소리할 사람 줄어서 좋지.
묘하게 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을 뒤로하고 47층을 벗어나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박수온!”
열린 문 사이로 주저앉아 있던 베카가 나를 올려다봤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손을 다급히 등 뒤로 감추면서.
* * *
“해령님, 계속 거기 서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온천의 1층 중앙.
영계가 해령을 향해 물었다.
수온의 방부터 이부자리 청소, 돈가스 튀기기, 향료 만들기까지 순식간에 마친 그는 1층의 한곳만 바라보며 그 주변을 쉴 새 없이 서성거렸다.
“신경 쓸 것 없다. 약은 가져왔나?”
“예, 여기 있습니다. 새살이솔솔 한 통.”
해령의 물음에 영계가 약 항아리에게서 받아온 약통을 건넸다.
“고생했다. 이제 가봐도 좋다.”
“예,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십시오.”
영계가 약통을 받아든 해령을 의문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다 자리를 떠났다.
영계가 사라진 이후에도 해령은 한참 동안 한곳만을 바라봤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라.”
혼잣말처럼 속삭이던 해령이 약통을 든 손을 모아 쥐곤 간절한 표정으로 이마에 댔다.
‘그 뒤는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그곳은 수온이 온천에 들어올 때마다 처음 나타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