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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05)화 (105/190)
  • 105화

    [탑 47층에 입성합니다.]

    나도 알고 있다.

    마탑은 경험 많은 S급 헌터들도 높은 확률로 목숨을 잃는 곳이라는 것을.

    더군다나 아직 클리어 한 헌터가 없는 47층에는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정확히는 정보가 없었다.

    해령이 이렇게까지 날 말리는 것도 이해해.

    만에 하나 내가 죽게 된다면 온천은 다시 문을 닫을 테고, 해령은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게 될 거다.

    어떻게든 나를 말리려 하는 해령의 절절한 얼굴을 마주한 탓인지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됐다.

    난 두 손으로 해령의 뺨을 감싼 채 날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해령, 잘 들어. 난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거야.”

    나를 담은 그의 호수 같은 두 눈동자가 파도치듯 크게 일렁였다.

    “그래서 지호도 살릴 거고 앞으로도 온천 손님들도 받고 네가 해주는 온천표 돈가스도 지겹도록 해달라고 할 거야! 그러니까 날 믿어!”

    “……정말 대책 없는 자신감이군.”

    눈가가 붉게 물든 해령이 반쯤 잠긴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답했다.

    “왜? 자신할 만하지. 난 이 대단한 온천의 하나뿐인 사장이니까!”

    어깨를 펼치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당당하게 웃어 보이자 해령이 옷소매로 붉어진 눈을 가리며 낮게 읊조렸다.

    “……만들어주겠다.”

    “응?”

    “온천표 돈가스라면 얼마든지 만들어줄 테니까. 꼭 이곳으로 돌아와라.”

    “그 약속 꼭 지켜야 한다? 나 많이 먹는 거 알지?”

    “……잘 알지.”

    그제야 해령은 눈을 내리감으며 옅게 웃었다.

    “네가 먹기에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준비해두도록 하지.”

    “응!”

    의지를 다지면서도 마지막까지 나를 꼭 붙잡고 있는 해령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몇 번이고 날 보내는 것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던 그는 결국 어렵게 손을 거둬들였다.

    “나, 빨리 다녀올게! 돈가스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해령에게서 돌아섰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내가 살아 돌아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으니까.

    * * *

    나는 곧장 온천의 문을 열고 마탑의 46층으로 왔다.

    “박수온.”

    안으로 들어서자 베카가 짧은 다리로 총총 달려와 내 앞에서 비장하게 두 팔을 펼쳐 보였다.

    “이 앙증맞은 가운은 뭐야?”

    베카는 나와 똑같은 디자인의 사우나 가운을 입고 초록색 때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온천 회원장이라는 자가 보내준 것이다. 너와 커플룩으로 입으라고…….”

    또? 그놈의 온천 회원장…….

    보송한 사우나 가운을 차려입은 베카는 귀여움 그 자체였지만 이 선물을 준 사람이 또 온천 회원장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날 찾고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온천 회원장 이야기만 나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꼭 박시우가 코앞에서 날 덕질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달까?

    “루카를 통해서 들어보니 커플이라는 말은 연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온천 회원장이라는 자의 눈에는 우리가 그만큼 가까운 사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베카는 나와 같은 옷을 선물 받은 것이 내심 기쁜 건지 통통한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꼭 베카의 등 뒤로 신이 나서 살랑거리는 꼬리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베카랑 내가 특별한 사이긴 하지! 자, 어때? 이렇게 하니까 베카랑 똑같지?”

    난 인벤토리에서 사우나 가운을 꺼내 입은 뒤 베카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베카는 수줍은 듯이 때밀이 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다. 검은 아기 고양이 같아!

    나는 여느 때처럼 베카의 사랑스러움에 숨죽여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 이내 이성을 되찾고 46층에 들른 본래의 목적을 떠올렸다.

    “베카, 네가 47층에 있는 석상의 공략법만 알고 있으면 순식간에 격파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렇다.”

    다행히 그냥 한 말은 아니었는지 베카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난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혹시 47층 공략법을 나한테 알려줄 수 있을까?”

    단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고 전부 외울 각오로 베카의 말에 집중을 쏟고 있는 그때였다.

    베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공략법이라면 이미 알려줬다.”

    언제 베카가 47층 공략법을 알려줬지?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베카에게 공략법을 들었던 기억은 없었다.

    “베카, 미안해. 아무래도 내가 어르신이랑 같이 대화를 하고 있어서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공략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건 어렵지 않지.”

    이번엔 아예 메모해두자는 생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자 베카가 입을 열었다.

    “그 돌덩이를 손가락으로 툭 치면 된다.”

    “손가락으로…… 뭐?”

    키패드를 누르며 메모하던 손이 굳은 듯이 멈췄다.

    “이렇게 손가락으로 치면 석상이 부서진다고.”

    베카가 자신만만하게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꿀밤을 먹이는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설핏 스치듯이 봤던 베카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탑의 주인’이 “47층에 있는 돌덩이는 손가락으로 툭 치면 부서지니까 걱정하지 마라”며 안심시킵니다.]

    ……그게 공략법이었어?

    “어쩌면 내가 저승으로 가는 문을 열지 않고도 염라를 만나게 될지도…….”

    허탈함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자 베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베카, 나는 고작해야 E급 헌터야.”

    “……이 세계에 E등급이 있다고?”

    베카는 E등급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 그게 바로 나란다?

    역시 SS급 던전 브레이크를 놀이터로 생각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어쩔 수 없지. 사우나 가운을 입고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각인을 활용해보는 수밖에…….”

    이제 믿을 건 오직 각인뿐이라는 생각에 입이 바싹 마르는 그때, 베카가 내 목에 자신이 두르고 있던 때밀이 수건을 둘러줬다.

    이 익숙한 촉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탄력……!

    그건 분명히 샤레니안의 애착 때수건이었다.

    지옥귀 사태 때 루카를 타고 날다가 떨어뜨려서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걸 어떻게 네가…….”

    “네가 저승을 균열을 닫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났을 때, 그 때수건이 운명처럼 내게 날아왔다. 그게 꼭 네가 준 증표 같아서 가지고 있었다.”

    넓은 도시 한복판에서 떨어뜨린 물건이 하필이면 베카한테로 날아갔다니.

    그 물건이 손수건만 됐어도 운명처럼 느껴질 뻔했는데…….

    분실물마저도 빼박 온천 사장이었다.

    “네가 이 때수건으로 46층을 격파했을 때부터 네 등급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다.”

    “베카…….”

    “만에 하나 네가 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저승을 박살 내서라도 널 되찾아올 테니까 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를 하고 온전히 돌아오면 된다.”

    베카의 말은 내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줬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저승의 미래가 토마토에게 달렸다”며 강림차사에게 명부에 박수온의 이름이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라고 지시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된 것 같지만…….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내게 약을 발라줄 사람이 사라지면 곤란하니 주인을 돕겠다”며 주섬주섬 불사의 방패를 꺼내옵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마탑의 몬스터를 직접 타격할 수는 없겠지만 보호할 수는 있으니 온천을…… 아니, 널 지켜주겠다”며 보호 결계 부적을 들어 보입니다.]

    ‘운수야, 다 들린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쓸데없이 귀만 밝다”며 구시렁거립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마나를 소진해 각인의 동기화율을 최대치로 올립니다.]

    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어찌되었든 내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래, 까짓것 뭐 있어? 어디 한 번 붙어보자!’

    몸을 일으켜 세운 난 씩씩하게 베카가 있는 46층을 지나 47층의 문 앞에 섰다.

    석상이 새겨진 거대하고 높은 문을 보는 순간 긴장감에 마른침을 절로 삼켜졌다.

    “부채!”

    하지만 굴하지 않고 부채를 쥔 채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나한테는 온천의 식구들이 있다!’

    [‘온천 사장’이 탑 47층에 입성합니다.]

    기다란 은발을 휘날리며 기세 좋게 47층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의외로 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석상은 어디에 있지?’

    그때, 거센 바람이 일더니 47층의 열린 문틈으로 카드 한 장이 날아 들어와 허공에서 환한 빛을 냈다.

    ‘저 카드는……!’

    저승에 균열을 냈던 것과 같은 문양의 카드였다.

    곧바로 47층의 입구를 돌아봤지만, 문은 이미 굳게 닫힌 상태였다.

    [!!작동 오류!! ???가 스킬 ‘락(Lock)’을 사용합니다.]

    [계약한 성좌들의 모든 스킬이 탑 47층에서 무력화됩니다.]

    ‘갑자기 보호 스킬이 잠긴다고? 이번에도 저 카드 짓인가?’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때,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무섭게 흔들리더니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 사이로, 내 다섯 배는 되는 크기의 석상이 우뚝 솟아났다.

    곱슬머리를 가진 신의 형상을 한 석상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압도될 정도로 위화감이 느껴졌다.

    [탑 47층을 지키는 수호자 ‘성스러운 석상(SSS)’이 침입자를 인지합니다.]

    석상의 눈동자가 정확히 내게로 꽂히는 그때였다.

    [!!버그가 감지되었습니다.!!]

    [!!버그 보상!! 당신의 명성치를 스탯으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시스템의 과실로 일어난 긴급한 상황이므로 당신의 명성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립니다.]

    석상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드는 생각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재빠르게 수락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기존 명성치(102585)가 올 스탯으로 환산됩니다.]

    [전체 스탯이 102585 상승합니다.]

    [전체 스탯 상승으로 등급이 상승합니다. ‘탑 좀 뚫어본 온천의 주인(S)’]

    [명성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실시간 스트리밍이 진행됩니다. (현재 접속자: ???????명)]

    [동시 접속자 폭주로 인한 집계 시스템 마비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소요 시간: 59초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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