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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04)화 (104/190)

104화

내가 질투가 좀 많아서

“곧 남자 친구가 될 거라고 해두지.”

‘응?’

당혹스러운 해령의 발언에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그가 턱으로 내 머리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이런 날파리가 꼬이지 않게 하려면 강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다”며 현정우를 경계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누르지 말아줄래? 움직일 수가 없잖아!’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웁니다.]

‘그래, 관두자. 관둬.’

솔직히 현정우가 수상쩍은 행동을 많이 하긴 하지만 나한테 이성적인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다고 생각했는…….

“곤란하네요. 저도 수온 씨한테 관심이 많은데…….”

줄 알았는데…… 있었다고?

저런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면서도 현정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날 향해 물었다.

“들어보니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신 것 같으니까 제게도 기회가 있는 거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길드장 동생에게 베푸는 호의나 관심이라 치부하기에 현정우의 행동은 종종 지나친 감이 있었다.

이번 건 해령의 말에 동감해.

현정우는 없던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멀리하는 편이 좋을 타입이었다.

“아니요.”

단호하게 답한 나는 해령의 뺨을 감싸 내게로 당겼다.

자연스럽게 해령과 내 볼이 맞닿았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눈이 동그랗게 뜨입니다.]

“보시다시피 제 마음은 결정된 거나 다름이 없어서.”

해령과 다정하게 볼을 맞댄 나는 현정우를 향해 과할 정도로 씽긋 웃어 보였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겁도 없이 성좌의 얼굴을 잡아당기질 않나……”라며 당황합니다.]

‘확실히 해야 날파리가 꼬이지 않는다면서? 그리고 시작은 네가 했거든? 나도 이러고 있는 거 달갑지만은 않으니까 빨리 해치우고 끝내자?’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잊지 마라. 빨리 해치우고 끝내자고 말한 건 너다”라며 경고합니다.]

“지호를 낫게 할 방법은 박시우를 통해서 듣도록 할게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현정우에게 선을 그었다.

“수온 씨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당연히 존중해드려야죠.”

현정우는 아쉽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생각보다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래도 시우 형 동생이니까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는 것 정도는 괜찮겠죠?”

붙임성 있는 미소를 띠며 현정우가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뭐, 이건 형식적인 인사 같은 거니까.

현정우가 박시우와 지호의 동료라는 걸 생각하면 적당히 맞춰주며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나쁜 그림은 아니라 생각했다.

악수에 응하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 그때였다.

나보다 앞선 해령의 커다란 손이 현정우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것도 곤란한데.”

미소를 띤 얼굴과 달리 손등에 굵직한 힘줄을 세운 해령의 시선이 현정우를 서늘하게 직시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는 마치 자신의 반려를 지키는 맹수처럼 매섭게 빛났다.

“보다시피 내가 질투가 좀 많아서.”

* * *

암호를 외치며 온천으로 들어선 나는 약방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보다시피 내가 질투가 좀 많아서.”

그 말을 하는 해령을 보는 순간,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느껴질 정도로 해령은 차가운 오라를 뿜어냈다.

찰나이긴 했지만, 진짜 자신의 연인을 지키려 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게 바로 성좌로 살아오며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건가?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정말 인정하긴 싫지만…… 아주 잠깐 설렜다.

이 정도면 해령은 성좌가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 해.

이 좁은 온천 바닥에서만 썩기에는 아까운 얼굴과 연기력이었다.

“틈이 없는 분이시네요. 아쉽게도.”

어쨌든 해령이 잘 연기해준 덕분에 현정우도 더는 내게 여지를 남기거나 말을 잇지 않았다.

계속 주시하긴 해야 하겠지만 앞으로 현정우가 대놓고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일은 줄어들겠지.

한시름 놓기가 무섭게 병원에 있는 지호가 떠올랐다.

흑막 성좌의 계약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지호를 살리는 게 먼저야.

2층으로 올라선 나는 곧장 약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약 항아리(EX) : 드르렁~ 휘유우우~ 드르렁~ 휘유우우~]

어르신은 피곤하셨는지 잠들어 계셨는데 코를 골 때마다 뚜껑이 열렸다가 닫히길 반복했다.

“약 항아리, 태평하게 잠들어 있을 때가 아니다. 일어나라.”

어르신이 곤히 잠들어 계시는 것을 보고 죄송한 마음에 망설이고 있는데 해령이 맨발로 항아리를 홱 걷어찼다.

[약 항아리(EX) : 컥, 크헉!]

“해령,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르신!!!”

놀란 내가 처량하게 바닥에 널브러진 항아리를 향해 달려가자 어르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쿨럭, 손녀야……. 아무래도 나는 여기까지인 것…….”

긴 백발을 흐트러뜨린 채 쓰러진 어르신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다시 평범한 항아리로 돌아가고 싶은 건가?”

“크흠, 해령 님은 농담도 참 섭섭하게 하십니다. 저는 그저 잠시나마 손녀의 보살핌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말 한마디에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니 어르신도 온천처럼 해령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손수 보살펴주도록 하지.”

“그건 정중히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상만 해도 꺼림칙하다는 듯 어르신이 해령의 보살핌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를 돌아봤다.

“그래서 손녀야,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니?”

“지옥귀의 저주를 풀 수 있는 해독제를 한시라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라서 여쭤보려고 왔어요.”

“지옥귀의 저주 해독제는 지금의 네가 만들기에는 무리일 텐데?”

내게는 무리한 일이라는 듯 어르신은 나를 말리고 싶은 눈치였다.

“제 동생이 지옥귀의 저주에 걸렸어요. 그래서 24시간 이내에 해독제를 마시지 못하면…….”

“그래,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말을 잇지 못하는 나의 등을 어르신은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꼭 내 절박한 심정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감정이 북받쳤다.

“내가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는 도와주마. 하지만 남은 일은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단다. 이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고,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할 수 있겠니?”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네, 할 수 있어요. 지호를 살릴 수만 있다면.”

여기서 또 가족을 잃는다면 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테니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르신은 내 결정을 존중한다는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새살은 온천에 있는 걸 쓰면 되고…… 문제는 저승의 홍옥 열매와 성스러운 석상의 눈물이다. 특히 저승의 홍옥 열매는 이름처럼 저승에서만 자라서…….”

[성좌 ‘저승의 염라’가 “홍옥 열매는 구해둘 테니 저승에 들르라”며 강림차사에게 열매를 구해올 것을 명령합니다.]

‘고마워! 염라!’

모처럼 염라가 내 성좌라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홍옥 열매는 염라가 도움을 주기로 했어요.”

“아무리 염라께서 도움을 준다고 하셔도 저승의 규율을 어길 수는 없을 텐데…….”

어르신은 내 말을 듣고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탓인지 내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어르신, 성스러운 석상의 눈물은 어떻게 구하죠?”

“홍옥 열매를 구했다면 나머지는 쉽지. 성스러운 석상을 구할 수 있는 건 딱 한 곳이다.”

“그게 어딘데요?”

어르신은 별것 아니라는 답했다.

“탑 47층.”

“……네?”

어르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탑의 주인’이 “47층에 있는 돌덩이는 손가락으로 툭 치면 부서지니까 걱정하지 마라”며 안심시킵니다.]

‘……전혀 안심이 안 되는데?’

베카는 SS급 던전 브레이크를 놀이터 수준이라고 말한 전적이 있었다.

게다가 마탑은 랭커급 헌터들이 통째로 뭉쳐서 들어가도 목숨이 위태로운 곳이라고!

애초에 47층을 깬 헌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47층 돌덩이 등급이 뭔데?’

[‘탑의 주인’이 “SSS급”이라며 “알려준 공략법대로 하면 순식간에 격파한다”고 장담합니다.]

잠깐만, 나보고 혼자 SSS급 몬스터를 상대하라는 거야?

잠시 집필에 도움을 요청할까도 해봤지만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렸을 때 SS급 우나에게 죽기 직전까지 당했던 박시우가 떠오르자 재빨리 생각을 접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게 SSS급 스킬인 용의 포효가 있다는 것인데…….

마나가 부족해서 한 번밖에 쓸 수 없지만, 베카가 공략법을 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베카, 내가 지금 46층으로 갈게!’

“저, 다녀올게요!”

“손녀야, 행운을 빈다!”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고 약방을 나서는데 해령이 내 앞을 막아섰다.

“지금의 네 상태로 혼자 47층을 격파하는 건 무리다. 마탑에 있는 존재에게는 내 힘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대신 각인이 있잖아. 부채도 제법 손에 익었고…….”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내 손목을 감아쥔 해령이 언성을 높였다.

날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내 손등에 얼굴을 묻은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가 죽을 수도 있다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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