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00)화 (100/190)

98화

너 우냐?

우리 지호……. 쓰러졌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벙찐 상태로 병실 안의 상황을 지켜봤다.

“아니야. 이건 임팩트가 약해. 그냥 우리 우나를 데려와서 아예 반신욕 하는 컨셉으로 갈까? 눈에 띄어야 온천 사장님도 보실 것 아니야?”

카메라 셔터음 때문에 내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박시우는 현정우가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확인하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박시우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우나 가운 차림에 치렁치렁한 은색 가발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동자까지 파란색이라면…….

설마 덕질이라고는 한 번도 안 해본 박시우가 지금 내 코스프레를 하는 거야?

[HOT] 요즘 인싸들이 노는 법

* * *

[사진]

* * *

사진 속 온천 사장처럼 사우나 가운 차림에 때수건 스카프 두르고 온천 사장에 빙의해서 현생네컷 찍음.(은발 가발+파란색 렌즈 필수)

문득 익명 헌터 게시판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설마 아픈 애를 데리고 지금 현생네컷을 찍고 있는 거야?

박시우, 저거 지금 제정신 맞아?

분노 게이지가 슬슬 올라갈 조짐을 보이는데 때마침 침대 맡에 앉아 있던 지호가 입을 열었다.

“형, 던전 브레이크에서 사우나통한테 그렇게 맞고도 또 우나 타령이야?”

지호는 우나를 언급하는 박시우를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지호에게는 SS급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렸던 그날의 악몽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우나 탓이 아니야. 우나가 버림받았다고 느꼈다면 내가 맞을 만한 짓을 한 거지.”

정신 나간 박시우는 그 와중에도 우나의 편을 들고 나섰다.

저건 더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는데…….

매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누가 보면 우나가 여자 친구인 줄 알겠네.”

아주 잠깐 우나를 몬스터로 돌려놓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사이 답이 없다는 듯 박시우를 바라보던 지호가 때밀이 수건을 목도리처럼 여미려던 찰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나?”

나를 발견한 지호의 커다란 두 눈이 한층 더 커졌다.

이렇게까지 놀라는 걸 보니 내가 이곳에 올 거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호가 멀쩡한 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난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올랐다.

내 눈은 자연스럽게 거지꼴을 한 박시우에게로 향했다.

긴 가발을 축 늘어트린 채 시퍼런 눈동자를 번뜩이는 그는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몰골이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박시우를 보고 “아악! 내 눈!”이라며 자신의 두 눈을 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내지릅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안구에 치명타를 입습니다.]

‘……미안하게 됐다. 다들 눈 감아.’

나는 처음으로 샤레니안에게 진심을 다해 미안함을 느꼈다.

불사신에게도 치명타를 입힐 정도의 몰골을 한 인간이 내 호적메이트라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인간이었다.

“박수온, 네가 어떻게 여기를 알고…….”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으로 박시우는 지호 못지않게 놀란 것처럼 보였다.

“박시우, 지금 그게 중요해?”

나는 곧장 박시우에게 다가가 머리에 쓰인 가발을 무 뽑듯이 뽑아내 우나가 글러브로 후려치듯이 그를 향해 휘둘렀다.

챱!

“네가 이러고도 제정신이야? 애가 이 지경이 됐는데 왜 말을 안 해?”

챱!

“왜? 말을 안 하냐고! 박시우, 이 오늘만 사는 인간아!”

“아, 아파! 아프다고!”

찰진 소리와 함께 가발 싸대기를 맞은 박시우가 붉어진 뺨을 가련하게 감싸 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누나, 잠깐만!”

“비켜, 내가 오늘 박시우 사우나 통에 담가버리려니까.”

보다 못한 지호가 날 말리고 나섰지만 나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그랬어! 형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내가 쓰러졌다는 걸 알면 누나가 걱정할 게 뻔하니까.”

“그래도 박시우 너는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정말 만약에 그러다가…….”

엄마, 아빠처럼 영영 지호를 볼 수 없게 되어버리면…….

이래서 내가 헌터가 되겠다는 걸 달갑지 않게 여긴 거였는데.

순간적으로 울컥한 난 목이 메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미안해, 돈돈. 내 생각이 짧았다.”

언제나 내 감정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던 박시우였기에, 이번에도 그가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사과를 건넸다.

“……손 안 치워?”

당장에라도 손을 물어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쏘아보니 박시우가 조용히 손을 거둬들였다.

“그래서 지호 어디가 얼마나 안 좋은 건데?”

긴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내가 지호를 향해 물었다.

“별것 아니야. 그냥 지옥귀 사태 때 보호막으로 오래 버티느라 몸에 조금 무리가 갔대. 조금만 입원 치료받으면 나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지호야, 아무리 걱정을 끼치기 싫다고 해도 몸 상태가 어떤지까지 숨기지는 않았으면 해.”

그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현정우가 지호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박지호, 너 또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누나, 그게…….”

쿨럭!

입을 열려던 지호가 갑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지호야, 괜찮아?”

불길한 예감은 왜 빗나가지 않는 걸까?

“나 괜찮아.”

지호는 입을 가린 손을 급하게 숨겼지만 입가에 묻은 핏자국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마나를 한계치까지 끌어썼다더니, 그 후유증인가?

내 표정이 굳은 것을 눈치챈 지호가 손등으로 입을 닦아냈다.

“누나…….”

손등에 묻어나온 피를 본 지호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그만, 다 조용히 해.”

두 눈으로 직접 본 이상 지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더는 의미가 없었다.

냉랭하게 돌아선 난 병실 한편에서 셀카봉을 들고 있는 현정우를 돌아봤다.

“저랑 잠깐 대화 좀 하시죠, 현정우 씨.”

내 말을 듣는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현정우의 선한 눈매가 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죠.”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 * *

“지호에게 마나를 회복하는 약이나 치료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료진들도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고 말이죠.”

현정우를 통해서 들은 지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마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건 계속 지호가 앞으로도 저 상태이거나 혹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건가?’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너도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마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의 몸에 치명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령이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목숨에 지장이 갈 수도 있다고 말했었지.

‘온천의 향료를 사용하면 마나를 회복할 수 있지 않아?’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마나가 회복되지 않는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향료를 써도 효과가 없다”며 “동생의 몸을 낫게 하려면 마나의 회복을 막고 있는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네가 위대한 온천의 계약자라는 것을 잊지 마라”고 말합니다.]

‘뭔가 방법이 있다는 거야?’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60초 뒤에 공개됩니다”라며 자취를 감춥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60초를 카운팅 하고 있는 시스템창을 노려보고 있는데 현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호를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누나를 끔찍하게 생각하거든요, 그 녀석. 그래서 알리지 말라고 한 걸 겁니다.”

현정우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지호를 싸고돌았다.

“그런데 현정우 씨는 어떻게 제 번호를 아신 거죠?”

언뜻 보면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현정우는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박시우도, 지호도 현정우가 내게 연락한 걸 모르는 것 같았는데, 무슨 수로 내 번호를 알고 있었던 건지…….

‘흑막 성좌랑 계약한 게 혹시 현정우인가?’

혈연을 제외하고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람은 현정우가 유일했다.

S급 포털을 여는 스킬이 전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나처럼.

“지호가 떨어뜨린 폰을 주웠거든요.”

현정우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순간, 내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청순이였을 때 지호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저걸 왜 현정우가 가지고 있는 거지?’

“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던전에서 주운 건데 때마침 연락처가 있어서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지 도움이 될까 해서 그랬던 건데……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미심쩍은 부분은 많았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불우한 과거가 있는 자라는 것 외에 특별한 건 느껴지지 않는다”며 현정우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고 가슴 아파합니다.]

‘야, 나 좀 섭섭하다? 내가 죽다 살아와도 그 정도로 슬퍼하지는 않았잖아?’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네가 뭘 아냐”며 둥근 부채 뒤에 얼굴을 숨긴 채 대답을 회피합니다.]

운수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면 현정우는 아닌 건가?

하지만 단순히 우연이라기에는 나와 너무 많은 부분이 엮여 있었다.

“그 폰은 저한테 주세요. 지호 거니까.”

“아, 돌려준다는 게 사진을 찍고 노느라 잊고 있었네요. 여기요. 저는 길드 일정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게 휴대폰을 건네준 현정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병원 복도를 벗어났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이 느껴지던 웃음이 왠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현정우에 대해서는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나저나 지호는 어쩌지?”

막막한 심정으로 복도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는 그때였다.

“거기.”

오버핏 후드티를 입어도 널찍한 어깨가 돋보이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내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았다.

흐트러진 은발.

금테가 달린 동그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신비로운 사파이어색 눈동자가 내게로 꽂혔다.

“너, 우냐?”

해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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