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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96)화 (96/190)

96화

[앗! 온천에 귀인이(가) 나타났다!]

[2단계 스킬을 개방할 때까지 필요한 염라의 ‘ㅅㅈㅎ’ 기억 : 1/3]

[특수 스탯 ‘저승의 염라’의 XX이 1000 상승합니다.]

염라의 기억이 하나 채워졌어!

동시에 특수 스탯 XX도 상승했다.

잘 생각해보니까 특수 스탯 XX이 올라갈 때마다 뭔가를 하나씩 얻은 것 같아.

원한 건 아니었지만 해령 때도 XX이 올라가면서 3단계 스킬이 열렸고 마나 스탯이 생겼지.

샤레니안 때도 특수 스탯 XX가 상승한다는 알림창이 뜨고 난 이후에 특수 보상을 한 번에 체력을 1000이나 얻었었다.

아직 특수 스탯이 높아지면 왜 시스템창의 색이 짙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까지 지켜본 바로는 내게 이로운 신호인 것 같았다.

그런데 ‘ㅅㅈㅎ’ 기억에서 ‘ㅅㅈㅎ’은 대체 뭘 말하는 거지?

지금 기억의 개수가 채워진 걸 보면 방금 이 상황과 연관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와서 염라한테 한 거라고는 쑥 라테를 준 것밖에는 없는데…….

저 초성과 맞는 말이 뭐가 있더라.

솔직한? 성장한? 신중한?

머리를 굴려봤지만 무슨 말을 넣어도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다.

어쨌든 쑥 라테와 연관되어 있을 테니 좋은 기억은 아닐 것 같아.

“내가 미안해, 염라.”

안 그래도 일에 찌들어 녹초가 되어 있는 염라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인생의 쓴맛을 보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해령한테 쑥 라테를 만드는 법을 다시 배워볼게.”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 되면 레시피를 받아 정확하게 계량이라도 해서 적어도 탈은 안 나게 만들어야지.

언젠가 물 조절에 실패해서 라면을 스파게티로 만든 내게 지호는 말했다.

“누나, 뭐든 만들다 보면 느는 거야. 누나도 안 해서 그렇지 하다 보면 잘할걸?”

아무래도 지호의 요리 상식은 내게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만들 때마다 괴물에 가까운 뭔가가 되는 걸 보면…….

요리에 그다지 흥미가 없던 나였지만 이렇게까지 소질이 없을 줄은 몰랐다.

차갑게 식은 거무죽죽한 쑥 라테를 보며 침울해져 있는데 염라가 잔을 들어 남아 있는 몇 모금까지 마셔버렸다.

염라가 다시 내려놓았을 때 잔은 깨끗이 비어 있었다.

“이번 것도 내게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방금은 암살자 취급을 해놓고서는…….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염라의 말에 조금은 기운이 났다.

“나쁘지 않았으면 한 잔 더 마실래?”

“정중히 사양하도록 하지.”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염라는 즉각 냉정하고 칼같이 대답했다.

한 번 더 물어봤다가는 어디 한 군데 베이겠네.

저렇게 단호한 표정을 보니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이해되었다.

퀘스트를 받은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기억 하나를 모으다니…….

2단계 스킬이 개방되어야 저승의 명부를 볼 수 있는데 남은 기억은 언제 또 모은담?

‘ㅅㅈㅎ’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기억을 빨리 모으는 건 어려웠다.

다른 성좌면 모르겠지만 애초에 염라는 바쁜 탓에 온천에 오는 일이 드물어 퀘스트를 시도해볼 기회조차도 많지 않고…….

잠깐, 굳이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나?

바로 내 옆에 명부를 볼 수 있는 염라가 있잖아.

잘만 부탁하면 부모님의 상황을 알아봐 줄지도 몰랐다.

“염라, 혹시 네가 본 명부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도 있어?”

“불가능하다.”

“네 각인이 있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라도 명부의 내용을 누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조금도?”

“조금도.”

“……가차 없네. 그래도 각인까지 새긴 사이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 거긴 하지만 돌아오는 염라의 답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매정하게 느껴지긴 해도 저승의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역시 2단계 스킬을 개방해서 내가 직접 명부를 확인해보는 수밖에는 없나?

엄마, 아빠가 그때까지 무사하셔야 할 텐데…….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막막한 심정에 한숨을 내쉬는 그때, 염라의 뒤에서 검은 갓을 쓴 그림자 같은 형체가 나타났다.

“염라, 네 뒤에…….”

“염라대왕님, 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나타난 것을 알리기도 전에 그림자가 예를 갖추며 염라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검은 갓을 썼네? 저승사자인가?

“놀랄 것 없다. 강림차사이니. 인간들의 언어로 보좌관 같은 것이지.”

얼어붙은 나와 달리 염라는 차분한 얼굴로 손을 뻗어 강림차사를 물러가게 했다.

염라의 보좌관이었구나…….

“그보다 나 방금 저승인을 본 거야?”

난 다급히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내가 살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숨도 잘 쉬고 맥박도 잘 뛰고 있는 걸 보면 살아 있는 게 분명한데 어떻게 저승인을 본 거지?’

“내 각인이 있으니까. 그러면 살아서도 저승의 것들을 볼 수 있다.”

“그 말은 내가 죽은 사람도 볼 수 있다는 말이야?”

“네가 바란다면.”

“지금은 딱히 보고 싶지 않은데.”

보게 된다면 내 인생이 한순간에 공포 영화가 되고 말 게 뻔했다.

내 인생은 정체 모를 흑막 성좌한테 쫓기는 범죄 스릴러로도 이미 충분히 복잡하다고.

하지만 그 힘을 바라는 순간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런 일은 없길 바라지만, 만약에라도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거라면…….

그렇다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거니까.

“만에 하나…….”

부모님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어느샌가 염라는 내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이마로 흘러내린 나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속을 털어놓을 말동무가 필요하다면 날 찾아와도 좋다. 내가 말솜씨는 좋지 못해도 듣는 귀에는 재주가 있어서.”

여느 날처럼 무심해 보이는 눈동자였는데, 어쩐지 지금은 나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염라는 내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럴 때 보면 온천의 성좌 중에 염라가 가장 어른스러운 것 같았다.

실제로 염라대왕이니까 제일 어른이긴 하려나?

그 모습이 나를 토마토라고 놀리던 때와는 정반대라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기회가 된다면 저승도 구경시켜주지.”

다른 건 몰라도 저승 구경은 좀…….

염라는 좋은 의도로 말한 것 같지만 그 소리야말로 나에게 섬뜩하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날 변호했던 저승사자한테 온천표 돈가스 도시락을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조만간 저승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네. 가게 되면 들를게.”

그렇게 해령한테 배워야 할 게 또 하나 늘었다.

“대왕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염라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또다시 갓을 쓴 강림차사가 나타나 그를 재촉했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군.”

“그래, 급해 보이는데 어서 가봐.”

아직 피로가 덜 풀린 것인지 염라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돌아서서 걸어가던 염라가 일순간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한다.”

“응?”

갑자기 뭘 좋아한다는 거지?

의문을 품는 그때.

“온천의 돈가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염라는 이내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더니 휙 돌아서서 사라져버렸다.

* * *

“왜 악역을 자처하시는 겁니까?”

저승의 집무실로 돌아온 염라가 의자에 걸터앉자 강림차사 령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명부를 열람할 자격을 갖지 못한 자에게 그 내용을 누설하면 전해들은 자가 죽게 되지요. 그 사실을 일러주셨다면 가차 없다는 소리는 듣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요. 우리 대왕님께서 얼마나 심려 깊으신 분인데…….”

그 순간 서류를 집어 든 염라의 날카로운 시선이 령에게로 꽂혔다.

“아,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닙니다. 대왕님을 모시러 갔다가 우연히…….”

다급히 두 손을 내젓는 령을 보던 염라가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원망할 곳이 있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슬퍼하지 않겠지.”

“오오……! 그렇게 깊은 뜻이! 역시 대왕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군요.”

령이 염라의 사려 깊음에 감복했다.

하지만 염라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에 빠져 있었다.

‘슬픈 사연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얼마든지 봤다.’

그런 망자들을 보면서 가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더러 있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수온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딘가 달랐다.

슬픔에 잠겨 있는 수온을 봤을 때 염라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같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지? 시간을 내기 위해 최근 무리한 탓인가?’

“아이고 참, 염라대왕님께 이것을 전해드린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령이 옷소매에서 염라의 담뱃대를 꺼내 들어 공손히 내밀었다.

“재판 때 두고 가셨더군요. 별일이십니다. 대왕님께서 몸처럼 여기시던 담뱃대를 다 잊고 가시고…….”

‘그러고 보니 저승초에 손을 대지 않은 지가 꽤 되었군. 수온이 집무실을 드나들 때쯤부터 담뱃대를 들지 않았으니까.’

염라는 령에게서 담뱃대를 받아 들었다.

“……저승초 때문이었나?”

매일 달고 살다시피 하던 저승초를 멀리했으니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제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내고서야 염라는 오늘 자 명부로 눈을 돌렸다.

한동안 명부를 들여다보던 염라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손으로 자신의 눈을 쓸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순간적이긴 했지만 염라에게 명부에 쓰인 이름들이 전부 박수온으로 보였다.

‘심각하군. 이것도 저승초를 끊었기 때문인가?’

그렇다기에는 평소처럼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염라가 서류를 내려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터 피로해지면 저승초 피우지 말고 온천으로 와. 내가 해령한테 피로를 푸는 향료를 만드는 법을 배워둘 테니까.”

저승초가 필요해지면 온천에 오라던 수온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향료를 괴물로 만들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수온을 생각하는 염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눈치채지 못하는 새에 염라의 담뱃대는 손이 잘 닿지 않는 책상의 구석진 자리에 놓여 있었다.

* * *

염라가 떠난 뒤, 나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방금 뭐였지? 왜 뜬금없이 사람을 노려보고 그래?

뭐, 자기가 온천표 돈가스를 좋아하니까 똑바로 배워두라는 뜻이야, 뭐야?

방금 그 기세로 봐서는 다음에 방문할 때까지 제대로 온천표 돈가스를 마스터해두지 않으면 진짜 내게 저승 구경을 시켜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디 금손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는 없나?

‘시스템창, 내게 답을 알려줘!’

영악한 시스템창은 꼭 필요할 때만 침묵을 지켰다.

어쩔 수 없지. 내일 날 밝는 대로 해령을 찾아가는 수밖에…….

빈 잔이 놓인 쟁반을 들고 터덜터덜 탕을 빠져나오는데 맞은편에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며 걸어오는 해령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부르려는 그때였다.

띠링!

[앗! 온천에 귀인이(가) 나타났다!]

[!!긴급 퀘스트!! ‘원활한 온천 운영을 위한 똥손 갱생 프로젝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주의 : 구제 불가능한 똥손은 자동 수락 됩니다.]

알림창을 확인한 나는 조심스럽게 내 손을 들여다봤다.

[구제 불가능한 똥손(난이도 : EX)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자동 수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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