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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89화 (89/190)

89화

개방!

[‘탑의 주인’이 “박수온, 찾았다”라며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상자 사이로 고개를 내밉니다.]

[‘탑의 주인’이 수온이 없는 걸 확인하고 덩그러니 놓인 쑥 가루와 1리터의 우유를 보며 시무룩해집니다.]

휴, 진짜 잡히는 줄 알았네.

저승의 눈으로 문을 열고 염라의 집무실로 달아난 덕분에 간발의 차로 베카에게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탑의 주인’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에 말없이 상자 사이를 뒤집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해령이 팝콘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라이벌의 등장으로 온천을 수색하는 꼭두각시의 수를 늘립니다.]

해령은 술래잡기에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꼭 사라진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놀란 거겠지.

내가 염라의 각인을 얻었다는 걸 모르고 있을 테니 당연히 걱정이 되려나?

해령에게만이라도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지금 말을 했다가는 시스템창에 의해 내 위치가 들통날지도 몰랐다.

뭐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어차피 여기서 몇 초만 버티면 술래잡기도 끝나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베카에게 잡히지 않고 10분 동안 술래잡기하기 (9분 11초/10분 00초)]

때마침 남은 시간은 40초 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거지?”

퀘스트에 정신이 팔려 있는 중에 잊고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아.

여기 염라의 집무실이었지?

그리고 상황이 워낙 급했던 탓에 염라의 입을 막은 것이 이제야 기억났다.

고개를 돌리니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린 자세를 유지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염라가 보였다.

계속 저렇게 있었던 거야?

얼굴만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같이 생겼는데 의외였다.

“시스템창으로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 알리지 않으면 괜찮아. 봤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온천에서 한창 술래잡기 중이거든.”

“술래잡기? 계속 쫓고 잡기를 반복하는 무의미한 인간들의 놀이 말인가?”

뭐, 종일 일만 하는 염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

사실 나 역시도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또래 친구들이 의미 없어 보였던 때가 있었다.

오늘처럼 직접 어울려 놀아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

“꼭 그렇지만은 않아.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하면 무의미한 놀이도 즐거워지거든.”

“소중한 존재라……. 그렇군. 그대가 말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건 지금 같이 술래잡기를 하는 자들을 말하는 건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질문을 하는 염라는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였다.

하긴, 염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는 권력자인 만큼 어깨가 무거울 거야.

지금도 그렇지만 온천에 쉬러 왔을 때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으니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하는 염라가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뿐만은 아니지. 나한테는 온천에서 만난 모두가 소중하거든. 시스템창을 쭉 지켜봤으면 알겠지만 내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지 못해서.”

피투성이가 된 샤레니안이 자신의 몰골보다 내 인간관계가 더 처참하다고 했었지.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처참하지도 않았다.

온천에 있는 식구들이 생겼으니까.

“그런가? 그럼 나도 있겠군.”

명부에서 눈길을 거둔 염라가 나를 바라봤다.

“응?”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내게 염라는 턱을 괸 채로 답했다.

“그대의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에.”

아, 아직도 그 말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너도 온천의 소중한 고객님이니까.”

“그렇군.”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아주 잠깐 염라가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 보였어.

그걸 보고만 있었을 뿐인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염라의 집무실로 피신해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는데,

삐―

경보음과 함께 알림창이 떠올랐다.

[!!경고!! 술래잡기 지역 이탈! 10초 안에 온천으로 복귀하세요. (주의: 시간 내 복귀하지 않으면 퀘스트 실패) 남은 시간 : 9초 51]

처음에는 술래잡기 지역을 이탈하면 안 된다는 말 같은 거 없었잖아?

삐―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시스템은 경보음을 울리는 것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하여간 시스템 녀석들 제멋대로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간다, 가! 열려라, 참깨!”

난 곧장 저승의 눈으로 염라의 집무실에서 온천으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

“벌써 돌아가려고?”

“급한 일이 생겨서 긴 이야기는 못해! 시간 나면 꼭 온천에 쉬러 와!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난 이만!”

랩을 하듯 빠르게 말을 내뱉은 나는 온천의 창고로 돌아왔다.

온천으로 돌아오자 시끄럽게 울리던 경보음도 멈췄다.

“폐쇄!”

깔끔하게 저승 문을 닫고 뒤처리까지 마친 나는 퀘스트창을 올려다봤다.

[베카에게 잡히지 않고 10분 동안 술래잡기하기 (9분 59초/10분 00초)]

띠링!

제한 시간 10분이 채워지는 순간,

[히든 퀘스트 ‘탑의 주인’ 길들이기(EX) (1) 베카에게 잡히지 않고 10분 동안 술래잡기하기를 완료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창이 떠올랐다.

성공이다!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던 그때.

“박수온, 어디에 있는 거지?”

나를 애타게 찾고 있는 베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창고에 숨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퀘스트도 성공했고 베카에게도 술래잡기의 즐거움을 알려줘야지.

홀가분해진 걸음으로 창고 문을 열고 나오자 저 멀리서 1층에 있는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베카가 보였다.

베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숨기에 그 항아리는 너무 좁은 거 아냐?

뭐, 이제는 딱히 상관없지만.

“아이참, 이제 웬만한 곳에는 다 숨어본 것 같은데! 이제 어디에 숨어볼까?”

1층을 울릴 듯이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자 항아리를 탐색하고 있던 베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봤다! 봤어!

“이것 참, 고민인데! 이번에는 불사의 탕에 숨어볼까?”

베카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못 본 척 혼잣말을 이어가자 베카가 숨을 죽인 채 2층으로 올라왔다.

베카, 허술해!

토도도도도……. 토도도…….

신이 난 베카의 발소리가 복도를 작지 않게 울렸다.

이러면 아무리 무딘 술래라도 눈치채고 도망간다고!

하지만 난 잡히길 기다리는 술래였기에 모르는 척 베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잡았다, 박수온!”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베카는 빠르게 달려와 다리를 두 팔로 힘껏 껴안았다.

“이럴 수가! 베카, 대단한걸! 내 계획은 완벽했는데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지?”

난 태연하게 잡힌 연기를 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난 널 찾아낼 거다.”

날 찾아내고서야 베카는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베카가 이렇게 밝게 웃는 건 처음 봐.

잡혀주길 잘했는걸?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에이, 꼭두각시보다 마탑 꼬맹이가 먼저 찾아버린 건가”라며 아쉬워하면서 꼭두각시를 수거합니다.]

언뜻 복도의 벽을 타고 다니던 검은 그림자들을 본 것 같은데, 그게 운수의 꼭두각시였던 모양이었다.

운수가 꼭두각시를 수거하자 벽을 타고 다니던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탑의 주인’이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팝콘 나무의 팝콘을 구해주겠다”고 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마탑 꼬맹이, 너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탑의 주인’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술래잡기하길 잘했어.

베카랑 운수의 사이도 좋아진 것 같고 말이야.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0만 골드를 획득합니다.]

즐거운 차에 퀘스트 보상까지 들어오니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500만 골드를 복구하고 나니까 두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아.

후련함에 속이 뚫리는 걸 느끼는 그때.

띠링!

[퀘스트 특수 보상(만족도 : 높음)으로 판도라의 구슬(2개)을 획득합니다.]

손에 정체불명의 붉은 구슬 두 개가 쥐어졌다.

* * *

수온이 다녀간 후, 염라의 집무실로 그의 직속 비서인 저승사자 령이 들어왔다.

그는 갓을 썼을 뿐 일정한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별일입니다. 염라대왕님께서 그런 얼굴을 하시다니…….”

“내 얼굴이 어떤데?”

염라가 붓을 내려놓고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령을 돌아봤다.

“쓸쓸하다는 표정을 하고 계시는군요. 대왕님께서는 항상 혼자서도 대담한 업적을 이루어오셨기에 그런 걸 모르시는 분인 줄 알았거든요.”

“쓸쓸하다라…….”

염라는 모르는 감정이었다.

그건 저승의 업무를 보는 데에는 불필요한 감정이니까.

정확히는 몰라도 수온이 다녀간 뒤 염라의 마음 한편이 허전하긴 했다.

“시간 나면 꼭 온천에 쉬러 와! 기다리고 있을게!”

수온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린 염라가 아직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일을 빨리 끝내고 온천욕을 즐기고 싶군.”

여느 때와 달리 종이를 넘기는 염라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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