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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87화 (87/190)
  • 87화

    온천 사장이 쑥 라테를 만들 때

    “주인, 죽지 마!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가이드 ‘영계’에게 “골든 타임을 놓치면 곤란하다”며 “수온이 암살 쑥 라테에게 당해 죽어가고 있으니 당장 약 할아범에게 가서 해독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오라”고 재촉합니다.]

    영혼이 반쯤 빠진 상태로 알림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샤레니안이 돌처럼 단단한 손으로 나의 양어깨를 붙든 채 나를 힘껏 흔들었다.

    충격에 빠진 내 몸이 그의 손아귀에서 종잇장처럼 흔들렸다.

    1초도 아니고, 0.1초도 아니고, 0.01초 차이로 실패를 해……?

    고작 그 시간이 모자라서 내가 다리에 쥐 나는 걸 참아가면서 버틴 29분 55.99초의 피 땀 눈물이 공중 분해 됐다는 거야?

    그럼 내 근무 태만 면제권은?

    내 500만 골드는?

    내 특수 보상은?

    띠링!

    [없습니다.♪~ ᕕ( ᐛ )ᕗ]

    친절한 시스템창은 내 속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외면하고 싶은 부분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보상이 없다? 겨우 0.01초 때문에?

    “하하하하하하하!”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벽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앉은 채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주인, 정신이 든 거야? 속은 괜찮고?”

    알림창이 사라지고 나니 날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샤레니안의 멀끔한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에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그 얼굴이 오늘은 박시우 이상으로 얄미워 보였다.

    그야 이 녀석이 0.01초 차이로 오더를 실패하게 만든 오늘의 VIP니까.

    네놈 때문에 내가…….

    이가 바드득 갈리는 와중에 오른쪽 상단의 2번 오더창이 보였다.

    [오더 내용 : 쑥 라테 한 잔 (오더 제한 시간 : 4분 40초)]

    그러고 보니까 아직 시간이 남았네?

    ……이거다.

    “그래, 우리 샤레니안! 내가 쑥 라테 만들어주기로 했었지?”

    고개를 숙인 채 음산한 기운을 뿜으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나의 팔을 샤레니안이 붙잡아 세웠다.

    “아니다. 주인, 지금은 오더를 수행하는 것보다 휴식이 먼저다. 쑥 라테는 주인이 건강해지고 먹어도…….”

    아니? 지금이어야만 해.

    “말리지 마.”

    나는 내 손목을 붙잡은 샤레니안의 손을 단호하게 쳐내며 그를 돌아봤다.

    “내가 아주 야무지게 한 잔 타줄 테니까.”

    나와 얼굴을 마주한 샤레니안은 더는 나를 붙잡거나 말리지 않았다.

    “해령…… 주인의 상태가 이상하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 광기가 느껴졌어.”

    내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샤레니안이 바위 같은 몸은 오들오들 떨며 해령을 돌아봤다.

    “흑화한 거겠지.”

    새파랗게 질린 샤레니안과 달리 해령은 마치 예상한 결과라는 듯 차분하게 답했다.

    “주인이 흑화를 해? 암살 쑥 라테를 먹은 탓인가? 그렇다면 약 할아범한테 말해서 빨리 해독제를 구해야지!”

    당장에라도 약방에 달려갈 것 같은 샤레니안을 향해 해령이 콧방귀를 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애초에 수온은 쑥 라테를 먹은 일이 없다.”

    “그럼 방금은 왜 벽에 기댄 채 쓰러져 있었던 거지? 나는 쑥 라테를 맛보다가 독에 중독되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수온은 내가 준 오더를 수행하면서 쉬고 있었을 뿐이다. 네가 나타나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0.01초를 남겨두고 실패하긴 했지만…….”

    “그렇다는 건…….”

    [가이드 ‘영계’가 “부엌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몸을 파르르 떱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오늘 샤레니안의 불사 능력이 무력해질 정도로 운수가 좋지 못하다”며 “몸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운수는 언제 봐도 참 용하다니까?

    불길함을 직감한 샤레니안이 긴장된 얼굴로 복도에 서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부엌을 들여다 보는 것이 느껴졌다.

    적절한 때에 나타나줬군.

    “잘 왔어, 샤레니안. 안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참이었는데 이 양동이 좀 들어줄래?”

    다정하게 웃으며 샤레니안을 부르자 잔뜩 경계한 강아지처럼 나의 동태를 살피던 그가 잠시 안도하며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주인, 쑥 라테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큰 양동이를 어디에다 쓰려고?”

    샤레니안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제 손에 들린 스테인리스 양동이를 내 앞으로 흔들어 보였다.

    “여기서 네가 할 일은 딱 하나뿐이야. 그때까지는 내가 다 해줄 테니까 보고만 있어.”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어붙인 나는 찬장에서 미리 갈아둔 쑥 가루가 담긴 통을 꺼내 들었다.

    “먼저 쑥 가루를 조금…….”

    [찬장에서 숙성된 쑥 가루 : 와랄라랄랄랄랄라!]

    나는 뚜껑을 열어 쑥 가루를 통째로 들이부었다.

    [‘납작코 온천 찬장(S)’: 형님, 그건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요?]

    양동이의 반을 채운 쑥 가루를 본 찬장이 평소처럼 훈수를 두고 나섰다.

    “찬장아, 뭐라고? 내가 집중하느라 시스템창을 못 봤네?”

    나는 통 뚜껑을 있는 힘껏 눌러 담으며 찬장을 광기에 번뜩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납작코 온천 찬장(S)’이 “아, 아닙니다. 형님, 과연 배포만큼 손도 크시다는 말이었습니다”라며 납작하게 고개를 숙입니다.]

    “이건 내가 봐도 좀 많은 것 같은…….”

    “다음은 우유. 장고야, 물건은?”

    샤레니안이 뭐라 말하려는 것을 간단히 잘라먹은 나는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굴복한 온천 냉장고(S)’가 “싱싱한 물건 여기 있습니다, 형님!”이라며 신선한 우유가 있는 냉장실의 문을 활짝 엽니다.]

    냉장실에서 우유를 꺼낸 나는 습관적으로 제조일자를 살폈다.

    “제조일자가 오늘인 것 보니까 물건 상태가 좋네. 고생이 많다, 장고야.”

    [‘굴복한 온천 냉장고(S)’가 “과찬이십니다, 형님!”이라며 정중하게 문을 닫습니다.]

    “그럼 우유도 적당히…….”

    [오늘 짜낸 신선한 우유 : 콸콸콰알콸콸콸!]

    말과 달리 우유 1리터가 단숨에 양동이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이쿠! 손이 미끄러져버렸네! 뭐, 몸에 좋은 건 많이 넣을수록 좋지! 샤레니안, 안 그래?”

    나는 빈 우유곽을 두 손으로 힘껏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다.

    일자로 접힌 우유곽이 저라도 된 것처럼 샤레니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좋지. 좋긴 한데 이건 너무 많…….”

    “맞다! 원래는 뜨거운 물을 넣어야 하는데 시원하게 먹는 쑥 라테도 맛있으니까 이대로 저을게!”

    나는 부엌의 한편에서 양동이에 걸맞은 커다란 국자를 발견했다.

    국자를 들어 양동이 안에 든 재료들을 섞자 내용물이 상당히 걸쭉해졌다.

    [진화한 초록 괴물 쑥 라테(SS) : 꾸루루룩! 꾸루룩!]

    원래 쑥 라테를 저으면 거품이 났었나?

    “주, 주인. 방금 쑥 라테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지 않았나?”

    “어차피 배 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아.”

    샤레니안도 뭔가 수상쩍다는 걸 느낀 것 같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국자로 쑥 라테가 잘 섞이도록 저었다.

    이 정도면 잘 섞인 것 같고…….

    “자, 이제 양동이 이리 줘.”

    양동이를 향해 손을 뻗자 줄곧 표정이 좋지 않던 샤레니안이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역시 처음부터 나눠서 먹을 생각이었던 거지? 어쩐지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샤레니안에게서 양동이를 건네받은 나는 어느 때보다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턱을 덥석 부여잡았다.

    “입 벌려, 샤레니안.”

    쑥 라테 들어간다.

    * * *

    “아아아아악!”

    “샤레니안, 거기 안 서?”

    EX급 온천에서는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쑥 라테를 (양동이째로) 먹이겠다는 나와, 살기 위해 질주하는 샤레니안의.

    “주인, 나는 진짜 억울하다!”

    “닥쳐! 0.01초 때문에 오더 보상이 전부 날아간 나보다 더 억울해?”

    [진화한 초록 괴물 쑥 라테(SS) : 꾸루루룩! 꾸루룩!]

    내 억울한 심정을 대변하듯 쑥 라테가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초록색 혀를 낼름거렸다.

    “누가 나 좀 살려줘!”

    이에 질겁한 샤레니안이 혼비백산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반쯤 기어가다시피 내려갔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불사신이 살려달라고 하는 건 처음 듣는다”며 팝콘을 먹으며 안방 1열에서 추격전을 관람합니다.]

    [가이드 ‘영계’가 “계약자와 샤레니안 님의 때아닌 술래잡기 놀이가 벌어졌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탑의 주인’이 “한입 거리, 술래잡기가 뭐냐”며 궁금증을 가집니다.]

    [가이드 ‘영계’가 “술래잡기는 술래인 사람이 다른 이를 잡아서 술래로 만드는 놀이”라며 “즉, 끝나지 않는 추격전이다”라고 설명합니다.]

    [‘탑의 주인’이 “수온이 하면 나도 하겠다”며 술래잡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웁니다.]

    샤레니안을 쫓아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려는 그때였다.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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