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축하합니다]
앗, 갑자기 뭐지.
목 뒤가 따가워.
실수로 성이 난 여드름을 긁은 것 같은 고통이었달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통증이 뒷목을 때렸다.
“윽, 아파”
아찔한 통증에 몸부림치던 중에 열감이 느껴지는 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진짜 여드름이라도 난 건가?
그렇다기에는 벌에 쏘인 것같이 아픈데.
지금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피하고자 조심스러운 손길로 목을 쓸자 딱딱한 뭔가가 만져졌다.
이건 여드름의 감촉이 아닌데?
그렇다고 벌에 쏘인 것 같지도 않았다.
혹시 뭘 잘못 먹어서 생긴 알레르기 같은 건가?
생각해봤으나 오늘 별다르게 먹은 게 없었다.
그럼 대체 이건 뭐지?
촉감은 꼭 단단한 껍질 같은데…….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감촉이라는 거였다.
분명 전에도 만져본 적이 있어.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난 곧장 해령의 뺨에 나타난 반짝이는 비늘을 바라봤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어느새 그의 얼굴로 손을 뻗고 있었다.
내 손이 해령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아?”
늘어난 테이프처럼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지잉 하고 울렸다.
이건 누구의 목소리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머리를 깨질 듯이 조여오며 목 뒤의 열감이 심해졌다.
괴로워…….
눈앞이 빙빙 도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이는 그때, 커다란 누군가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그 손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쪼개질 듯이 아프던 머리가 멀쩡해졌다.
오히려 전보다 상쾌해진 것 같기도 하고…….
방금 그건 뭐였지?
“괜찮은 건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내게 닿아 있는 손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내 아래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해령이 보였다.
해령의 손이 닿았을 뿐인데 두통도, 목 뒤의 열감도 잠잠해졌다.
어째서지?
난 자연스럽게 열기가 느껴지던 부위를 매만졌다.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던 곳이 본래의 피부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는 건 혹시…….
“해령, 그대로 가만히 있어봐.”
나는 고개를 숙여 내 무릎에 누워 있는 해령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그 자세로 굳은 해령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일순간 일렁였다.
……역시 없어.
해령의 뺨에서 빛나던 유리 조각 같던 비늘도 더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방금 그 통증은 해령과 연관이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럼 그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뭐였지?
그마저도 고장 난 테이프처럼 끊겨서 들리는 바람에 확실하게 듣지 못했다.
이번에도 샤레니안과 함께 있을 때와 같아.
꼭 갈기갈기 찢어진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단편적이고 불확실해.
벌써 오늘만 해도 두 번째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걸 보면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온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걸까?
오더가 끝나면 좀 쉬든지 해야겠어.
“계속 안색이 어두운 것 같은데 다리에 쥐라도 난 건가?”
내 낯빛이 좋지 않았는지 해령이 내 얼굴을 살피며 물어왔다.
“쥐는 20분 전부터 났거든?”
오더를 완료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버틴 결과.
20분을 넘어서고부터는 적응을 한 건지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떠냐? 시스템!
이게 바로 K-근성이란다!
“쥐가 나서 상태가 안 좋은 거라면 바로 일어나겠…….”
“어딜 일어나?”
나는 몸을 일으키려는 해령의 이마를 재빨리 눌러 내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누구 마음대로! 머리를 뗄 수 있는 건 보상을 받고 난 후다!
“오더 완료까지 4분도 안 남았는데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얌전히 누워 있어. 보상을 받기 전에 내 무릎에서 네 머리가 떨어지면 그때는 둘 다 저승 가서 염라 보는 거야, 알겠어?”
염라와의 만남을 기약하는 내게서 진심을 느낀 건지 해령이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 저승사자를 고용했군.”
내 살벌한 표정을 마주한 해령은 숨을 죽인 채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누웠다.
나는 온순해진 그를 향해 입가를 올려 친절하게 미소 지었다.
“잔소리는 돈으로 주세요. 고객님.”
[스킬 ‘자본주의 미소’의 효과로 보는 이들의 소비 욕구가 증가합니다.]
습관적으로 자본주의 미소를 짓는 순간, 해령이 내게서 고개를 휙 틀었다.
그의 귓불이 평소보다 붉어져 있었다. 눈썹도 불만스럽게 구겨져 있는 걸 보니 제대로 열이 받은 게 분명했다.
이러다 만족도가 떨어지는 거 아니야?
짐작하건대 해령의 특수 보상은 마나일 확률이 높았다.
왜냐면 용의 포효도 마나를 근원으로 삼는 스킬이니까.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한 스탯이기도 했다.
그래도 내게는 자본주의 미소가 있으니까 걱정이 없지!
암살 쑥 라테도 돈 주고 사 먹게 하는 게 그 스킬인걸. 분명 만족도를 올리는 데도 크게 한몫할 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여유롭게 웃으며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자 마침 알림창이 떠올랐다.
[보는 이가 없으므로 스킬 ‘자본주의 미소’의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
보는 이가 없어서 자본주의 미소가 통하지 않는다고?
순간, 내가 자본주의 미소를 지을 때 해령이 고개를 돌린 것이 떠올랐다.
눈만 피하면 통하지 않는 거였어?
다시 자본주의 미소를 써볼까 했지만, 고개를 돌린 채 누운 해령은 나를 다시는 돌아볼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만족도가 물 건너가는 것인가.
허망함에 반쯤 넋이 나가 있는데 연한 보랏빛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재판을 보다 말고 “누가 내 이름 소리를 내었느냐”며 귀를 만지작거립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해령에게 경고할 때 염라 이야기를 했었지.
‘거기서도 내 말이 들려?’
저승에서도 자기 이름은 귀신같이 알아듣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이름 한번 살벌하게 부르던데 원한이라도 생긴 거냐”면서 “그런 거라면 이걸 빌려주겠다”며 명부를 꺼내 듭니다.]
‘응, 잘하면 곧 저승에서 널 만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네.’
“명부를 빌릴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해령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자 해령이 옷 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절실하게 때수건을 흔듭니다.]
어느 틈에!
나는 구조 요청을 하는 해령을 발견하자마자 손에 들린 때수건을 매처럼 빠르게 낚아채서 멀리 던져버렸다.
“허튼 수 쓰지 말고 3분만 얌전히 있자.”
“무서울 정도로 철두철미하군.”
빈틈없는 방어에 해령이 혀를 내둘렀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때수건 안 사요”라며 성좌 ‘온천의 지배자’를 잡상인 취급합니다.]
……혹시 SOS 요청을 눈치채는 거 아닌가 했는데.
샤레니안이 샤레니안했네.
“망할, 샤레니안! 저놈은 뇌도 근육으로 된 게 분명하다.”
샤레니안에게 외면당한 해령은 낮게 욕을 읊조리며 자포자기한 얼굴을 했다.
해령도 탈출하는 걸 포기한 것 같고 이제 오더 시간이 차기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오더 진행 현황 : 병약한 성좌에게 쉴 곳과 무릎을 빌려주기 (28분 30초/30분 00초)]
1분 30초만 버티면 목표치 달성이니까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오더는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쑥 라테를 만들다가 염라를 만날 일이 뭐가 있냐”고 묻습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박수온이라면 어렵지 않다”며 “쑥 라테를 만들다가 자칫 맛이라도 보면 즉시 저승행”이라고 단언합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설마 박수온이 쑥 라테 맛을 본 거 아니냐”며 “그건 자살행위”라며 불안해합니다.]
그 쑥 라테를 돈 주고 시킨 게 본인이라는 걸 샤레니안은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았다.
괜히 말했다가 귀찮은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까 상대하는 건 그만두자.
해령도 잠든 것 같고 남은 시간이라도 편하게 있을 생각으로 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포근한 햇살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잠이 솔솔 쏟아졌다.
난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무거운 눈꺼풀을 뜨려고 애썼다.
잠들면 안 되는데……. 조금만 있으면 끝나는데…….
[오더 진행 현황 : 병약한 성좌에게 쉴 곳과 무릎을 빌려주기 (29분 50초/30분 00초)]
이제 10초만 버티면 된다!
오더 완료까지 10초를 남겨둔 그때,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샤레니안이 나타났다.
심각한 표정의 샤레니안을 마주하는 순간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쟤가 왜 여기 왔지?
[오더 진행 현황 : 병약한 성좌에게 쉴 곳과 무릎을 빌려주기 (29분 59초/30분 00초)]
알림창이 오더 목표 시간까지 1초가 남았다는 것을 알리는 그때.
“안 돼애애! 박수온! 죽지 마!”
절박한 얼굴의 샤레니안이 내게 달려와 가차 없이 해령을 쳐냈다.
동시에 해령의 머리가 내 무릎에서 떨어졌다.
아…… 안 돼.
설마 실패는 아니지? 누가 제발 아니라고 해줘!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순간.
띠링!
[축하합니다.]
기분 좋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간발의 차로 실패한 줄 알았는데 성공한 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그때였다. 다시 한 번.
띠링!
[보상은…….]
보상은?
[없습니다.♪~ ᕕ( ᐛ )ᕗ]
보상이 없다니 이게 뭔 개소리야?
띠링!
[☆경☆ 0.01초 차이로 3번 오더 수행에 실패했습니다. ☆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