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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82화 (82/190)
  • 82화

    보상의 상태가 이상하다

    칠흑처럼 어두운 시스템창,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문구…….

    나는 그 문장을 유심히 바라봤다.

    성좌들의 시스템창이 진한 색을 띠기 전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특수 스탯 XX가 상승한다는 것.

    내 추측이 맞는다면 특수 스탯 XX과 시스템창 색의 농도는 연관이 있어 보였다.

    예를 들어서 특수 스탯 XX 수치가 높을수록 시스템창 색이 진해진다던가.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으로 인해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낸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샤레니안은 언젠가 나를 본 적이 있는 것처럼, 꼭 나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울컥했던 감정이 한결 잦아들며 평소의 침착한 상태를 되찾았다.

    그런데 방금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장면은 뭐였을까?

    “……잖아! 이 바보야!”

    그 순간 맞은편에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누구였을까? 그건 또 언제고?

    너무 희미하고 잘게 조각난 기억이라 되새기기도 어려웠다.

    틀렸어. 떠오르질 않아.

    기억을 되살리려 할수록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낀 내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맞은편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평소보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샤레니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

    꼭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잖아.

    본능적으로 샤레니안이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어. 물어보면 되잖아.

    “샤레니안, 혹시 우리가 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어? 조금 전 같은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내 눈물을 닦아내던 샤레니안의 손끝이 굳은 듯 멈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놀란 듯한 그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그렇지만 이상하잖아.

    온천 사장이 되기 전의 내가 샤레니안을 어떻게 만나……?

    일반인은 이 온천을 보지도 못하는데…….

    혼란에 머릿속이 어지럽던 그때, 무겁게 닫혀 있던 샤레니안의 입술이 열렸다.

    “있었지.”

    “진짜 있었다고? 언제? 어떻게?”

    답을 듣고 나니 더 궁금한 게 많아졌다.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나를 보며 샤레니안은 그때를 추억하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온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을 때. 그때도 주인이 나를 치료해주지 않았나?”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샤레니안을 만난 그날을 말한 거였구나. 난 또…… 그전에 만난 적이 있는 줄 알았잖아.

    어쩐지 기운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섭섭하군. 나는 주인을 만난 그날이 잊히지 않는데 말이야.”

    서운하다는 듯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샤레니안이 두 팔을 포갠 채 시무룩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기억을 못한 게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거든.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걸 봤는데 누가 그걸 기억 못할 수가 있겠어?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걸.”

    사람이 아니라 성좌인 게 천만다행이었지.

    “날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다니 감동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들을 수 있는 거지?

    정정하고 싶었지만 이제 와 말하기엔 샤레니안은 이미 너무 깊게 감동한 상태였다.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그냥 좋아하게 두자.

    “약이나 마저 바르자.”

    내게 다가와 앉는 샤레니안의 뒤로 검붉게 물든 마룻바닥이 보였다.

    잠깐만 저기는 샤레니안이 누워 있던 곳인데……. 설마…….

    “샤레니안, 너 잠깐 이리 와봐.”

    난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샤레니안의 가운을 여민 끈을 끌어당겨 풀었다.

    “아무리 내 몸이 탐난다고 해도 이렇게 거칠게 다루면 곤란…….”

    가운이 흘러내려 상체가 일부 드러난 샤레니안이 조신하게 옷깃을 여미며 수줍은 얼굴을 했다.

    진짜 저 입을 잠가버릴 수도 없고.

    “헛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불사신 은퇴하게 만들어버릴라니까!”

    내 협박이 제대로 먹힌 건지 까불거리던 샤레니안이 꼬리를 내리며 얌전해졌다.

    그 틈에 그의 등을 살핀 나는 차마 웃지 못했다.

    “너 등이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참은 거야?”

    샤레니안의 등에는 칼날만 한 상처가 깊게 패인 채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제 칼에 찔렸다는 상처가 이건가?

    그 상태로 굳을 수밖에 없던 건 그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등에는 날카로운 것에 베이거나 깊이 찔린 듯한 흉터들로 가득했다.

    그걸 보는 순간, 샤레니안이 죽지 않는 몸을 가졌다는 사실이 한껏 와닿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상처를 입고 살아 있을 수는 없어.

    “별거 아닌 상처다. 조금 따가운 정도니까.”

    심각해진 걸 눈치챈 건지 샤레니안이 다시 가운을 걸쳐 상처를 가리려 했다. 나는 지지 않고 상처를 들춰냈다.

    “피가 이렇게 나는데 별거 아닌 상처라고?”

    샤레니안을 향해 피 묻은 손을 내어 보이고서야 그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넌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얼마나 아프게 살아왔으면 이렇게 크고 깊게 패인 상처가 따가운 정도로 느껴지는 걸까?

    “또 주인의 손에 피를 묻히고 말았군.”

    이 와중에도 샤레니안은 가운의 소매로 내 손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데 급급했다.

    상처가 이렇게 심각한데 정작 본인은 고작 내 손에 피가 묻을 걸 걱정하고 있다니…….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뒤로 돌아앉아. 앉아 있는 게 힘들면 엎드려도 좋아.”

    “됐다. 그러면 기껏 깨끗하게 닦아놓은 손이 더럽혀질 텐데. 그건 내가 원하지 않는다. 말했듯이 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어.”

    샤레니안은 손을 내저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내가 억지로 눕혀야 하겠어?”

    “정말이지 네 고집은 이길 수가 없군.”

    내게서 물러날 기세가 보이지 않자 마지못해 샤레니안은 내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이건 아파도 어쩔 수 없어. 약을 바르면 나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내 손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샤레니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팠으면서 괜찮은 척 굴기는.

    그나마 다행인 건 내게 새살이 솔솔이 있다는 거였다. SSS급 명약인 만큼 약을 바르자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어드는 것이 보였다.

    “다 됐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샤레니안이 가운을 끌어올려 바르게 고쳐 입었다.

    “아직 약이 스며들기도 전인데 벌써 가운을 입으면 어떡해? 옷이 다 흡수해서 회복이 늦어지기라고 하면 어쩌려고?”

    “뭐가 좋다고 상처를 오래 봐? 난 누구랑 달리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서 이런 것쯤은 금방 낫는다.”

    그래, 나 저질 체력이다.

    “입이 산 걸 보니까 정말 다 나은 모양이네.”

    “그래, 다 나았다. 그러니까 따라와.”

    마루에서 내려온 샤레니안이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가 데려간 곳은 바로 앞에 있는 온천탕이었다.

    “여기서 뭘 하려고?”

    답을 듣기도 전에 샤레니안이 내 손을 탕 안에 담갔다.

    힘줄이 선 샤레니안의 돌덩이 같은 손이 조심스럽게 내 손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샤레니안은 피에 유난히 민감한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본인에게 피가 묻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한테 묻은 피는 두고 보지 못한다는 거랄까.

    “왜 이렇게 다른 사람한테 피가 묻는 걸 싫어해?”

    내 물음에 샤레니안은 깨끗해진 내 손 이곳저곳을 살피다 말고 나를 마주 봤다.

    “피를 묻히는 건 나 혼자로도 족하니까.”

    샤레니안의 시선은 얼마 안 가서 내 손으로 옮겨갔지만 아주 잠깐 마주친 눈동자가 너무 슬퍼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사연 있는 남자인가?

    확실히 단순한 성격인 줄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는 신경이 쓰이긴 했다.

    “어?”

    샤레니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손가락을 뻗어 내 뺨을 가리키며 말했다.

    “뺨에 상처, 아물었다!”

    “아, 그런가?”

    내 뺨을 바라보던 샤레니안이 손으로 상처가 난 편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흉터가 있던 자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끈해져 있었다.

    “덕분이다.”

    샤레니안이 짤막하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다른 낯간지러운 말들은 잘도 하면서 정작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건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상처에 약을 발라준 게 다긴 하지만 뿌듯하네.

    모처럼 성취감에 기뻐하고 있는 그때.

    띠링―

    맑은 종소리와 함께 나무판이 떠올랐다.

    [첫 오더를 성공적으로 완료합니다.]

    [첫 오더 완료 보상으로 근무 태만 면제권(7일)을 획득합니다.]

    아싸!

    근무 태만 면제권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장하다. 박수온!

    기쁨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그때였다.

    나무판에 이어서 검은색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첫 오더 완료 특수 보상(오더 의뢰자 : 불사의 살인귀)을 획득합니다.]

    [!!체력이 1000 상승합니다. (50/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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