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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75화 (75/190)

75화

잡았다! 요놈!

내 협박이 염라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토마토도 같이 들고 오라니.

누가 봐도 날 놀리고 있잖아!

하긴 염라대왕께서 뭐가 무서우실까?

무려 저승이 집인데.

‘절대 안 갈 거거든?’

고작 이것만 해도 이렇게 놀려대는데 얼굴을 보였다가는 무슨 놀림을 받으려고.

[성좌 ‘저승의 염라’가 “그러든지. 이 토마토야”라면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습니다.]

‘좋은 말로 할 때 토마토라고 부르지 않는 게 좋을걸? 너 진짜 토하는 수가 있어.’

[성좌 ‘저승의 염라’가 “그렇구나, 토마토야”라며 계속해서 웃습니다.]

……분하다.

염라는 다른 성좌들처럼 쉽게 흥분하거나 자극을 받지 않았다.

‘토마토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난 어릴 적부터 화가 나거나 부끄러우면 얼굴이 잘 빨개지고는 해서 곧잘 토마토라는 별명이 붙곤 했다.

근데, 염라대왕이면 원래 이런 것도 알고 있고 그런 거야?

딱 봐도 내 쪽이 더 염라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 같잖아!

[성좌 ‘저승의 염라’가 “토마토를 토마토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냐”고 묻습니다.]

머리는 침착하라고 하는데 저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말투가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아니야. 침착하자. 수온아.

여기서 화내면 염라의 수에 말리는 거야.

크게 숨을 들이마신 난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도 엄연히 박수온이라는 이름이 있거든?’

[성좌 ‘저승의 염라’가 “난 토마토가 더 마음에 든다”며 “이참에 개명해보는 것은 어떠냐”며 권합니다.]

얼씨구? 이제는 개명까지?

‘애초에 난 토씨도 아니거든?’

[성좌 ‘저승의 염라’ : !!!]

그 안 어울리는 느낌표는 뭔데?

애초에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냐고!

염라가 어찌나 놀려댔으면 이제는 저 느낌표 세 개가 날 놀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고심 끝에 “그럼 성은 박, 이름은 토마토로 하자”라고 말하며, “박토마토라고 부르겠다”고 합니다.]

뭐? 박토마토?

나도 더는 못 참아!

‘안 해! 못해! 누구 좋으라고 그래?’

참다가 못해 터진 나는 격렬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내가”라며 미소 짓습니다.]

졌다. 졌어.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양팔을 늘어뜨렸다.

염라는 진정한 강자였다.

하긴 하루에만 수백의 망자를 상대하는 것 같던데 그중에 별의별 진상이 다 있었겠지.

‘너도 참 피곤하겠다. 거기에 나까지 보태진 않을게. 볼일 봐.’

정말 서류를 마저 살피러 간 건지 염라의 시스템창이 멎었다.

그럼 나도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본격적으로 성물을 살피려는데 연한 보랏빛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딱히 피곤하지 않다, 그대는”이라며 어색하게 서류를 만지작거립니다.]

어라? 염라의 시스템창 원래 보랏빛이 돌았었나?

방금만 해도 회색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지. 베카의 시스템창은 빨간색이니까 염라 역시 고유의 색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해령도 시스템창이 파란색이었던 것 같고.

그럼 샤레니안이랑 운수의 시스템창은 무슨 색이었지?

……관심이 부족했던 건지 둘의 색깔은 떠오르지 않았다.

뭐, 시스템창 색깔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나?

중요한 건 시스템창에 담긴 마음이지!

그래도 염라의 반응을 보면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게 싫지는 않았나 보네.

흐뭇해지려는 그때.

[성좌 ‘저승의 염라’가 “그대는 토마토니까”라고 말을 덧붙입니다.]

떠오르는 보라색 시스템창에 난 주먹을 쥔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놈의 토마토오오옥!’

약 오르게도 나의 분노를 마지막으로 염라는 조용해졌다.

한동안 토마토케첩도 싫어질 것 같아.

나는 열을 삭히며 토마토를 잊기 위해 왼손에 감겨 있는 붉은 보석이 박힌 펜던트 목걸이로 눈을 돌렸다.

[저승의 눈(EX)]

[저승과 지옥을 관장하는 저승의 눈이 담긴 목걸이. ‘저승의 염라’가 각인을 새긴 계약자만이 착용할 수 있다. 각인된 계약자는 1단계 스킬 ‘저승의 문’을 이용해서 저승에 갈 수 있다. 저승의 눈을 이용해 저승에 갈 시 계약자는 죽지 않는다.]

[고유 스킬(장비 착용 시에 사용 가능)]

[1단계 스킬 : 저승의 문 개방/봉쇄(SS)]

[2단계 스킬 : 자물쇠]

[3단계 스킬 : 자물쇠]

[맥스(Max) 스킬 : 자물쇠]

저승의 눈은 저승의 문을 여닫는 데에만 쓰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저승의 눈은 EX급 성물답게 아직 열리지 않은 스킬이 많았다.

게다가 저승의 눈만 있으면 죽지 않고 저승을 오갈 수 있다니!

죽지 않는 줄 알았으면 아예 염라의 집무실로 쳐들어가서 난장판을 만들고 오는 건데…….

토마토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금 이보다 더 아쉬울 수 없었다.

그 참에 저승사자도 만나고 말이야.

저승에서 맺은 귀한 인연이니까 할 수 있다면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어쨌든 이 저승의 눈만 있으면 사자에게 온천표 돈가스를 대접하겠다는 약속은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릉! 크르릉!”

벌써 돈가스 도시락을 받고 좋아할 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제대로 된 돈가스를 만드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난 계속해서 저승의 눈의 정보창을 읽어나갔다.

[패시브 스킬 ‘잡았다. 요놈!’ 적용]

해령의 부채도 그랬지만 저승의 눈에 달려 있는 패시브 스킬 이름도 심상치 않네.

듣기만 해도 쇠고랑을 철컹철컹 찰 것 같은 이름이야.

보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 시스템의 작명 센스에 궁금증이 커진 나는 스킬 설명으로 눈을 돌렸다.

[패시브 ‘잡았다. 요놈!’의 효과로 위엄이 상승하고 저승의 눈을 착용하고 있을 때 상대는 물음에 진실로 답할 확률이 높아진다. 단, 거짓으로 답을 했을 경우 그 상대는 페널티를 입는다.]

저승의 눈을 착용하면 상대가 진실로 답할 확률이 높아지는구나?

패시브 스킬의 효과의 쓸모를 안 나는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이것만 있으면 박시우가 냉장고에 아껴둔 내 간식을 훔쳐 먹는 것도 자백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잡았다. 요놈!

박시우의 덜미를 잡을 생각에 숨죽여 웃던 나는 마지막 문장을 되새겼다.

하지만 상대가 거짓을 말했을 때는 페널티를 받는다고 했지?

박시우 성격에 사실대로 말할 인간이 아닌데 혹여 불굴의 의지로 거짓을 말했다가는 페널티를 입을 게 뻔했다.

가볍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네.

잘못 사용했다가 박시우가 페널티를 입으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졌다.

박시우의 자백을 받는 걸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아쉬워하며 2단계 스킬 개방 조건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2단계 스킬을 개방할 때까지 필요한 염라의 기억 : 0/3]

스킬 개방 조건은 해령 때랑 똑같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였다.

이것도 성좌들마다 조건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염라의 기억은 뭘 말하는 거지?

어렸을 때의 추억 같은 건가?

염라만큼이나 미스테리한 조건이었다.

[2단계 스킬 개방 시 저승의 명부 열람 가능]

아, 그러고 보니까 나 저승의 명부도 얻었었지.

지난번에 염라가 떨어뜨린 서류에 사람의 생사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던 걸 보면 저승의 명부에서 부모님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명부!”

[‘저승의 명부’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2단계 스킬 개방 필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명부를 불러내보았지만 여전히 전과 같은 내용의 시스템 문구만 돌아왔다.

저승의 명부만 열람할 수 있다면 실종된 부모님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저승의 눈은 2단계 스킬까진 열어야겠어.

작게나마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강해지다 보면 혼자 힘으로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실종된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울컥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무언가가 치솟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 굳이 돈 들여서 헌터를 고용할 게 뭐 있어?

이 명부가 더 빠르고 정확할 텐데!

나는 금방이라도 범람할 것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오랫동안 묻어둔 감정을 터뜨리기에는 일렀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야.

모처럼 홀로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방의 미닫이문 위로 커다랗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더니 그림자가 주저 없이 내 방을 향해 가까워졌다.

뭐지? 침입자인가?

문득 해령이 나를 노리고 있는 성좌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오르며 뒷목이 서늘해졌다.

온천에는 나랑 계약한 성좌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

하지만 온천의 성좌들의 힘을 막고 날 죽이기까지 했던 성좌야.

예상을 벗어난 일을 벌이지 않으란 법이 없었다.

‘각인 해제.’

상대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해령의 부채를 쓸 생각으로 나는 먼저 염라의 각인을 해제시켰다.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미닫이문 바로 앞으로 다가온 그림자를 주시하는 그때.

열린 문틈으로 베개를 든 작고 뽀얀 얼굴이 슬며시 나타났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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