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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61화 (61/190)

61화

친오빠의 덕질은 사양한다

“악!”

나는 총알에 관통당해 쓰러지는 지옥귀들의 사체에 일일이 비명을 지르며 반응하는 박시우를 한심한 눈으로 지켜봤다.

자기가 쏴놓고 뭐 저렇게 호들갑을 떨어?

방금 자신만만하게 내 뒤를 지키겠다던 남자는 어디로 간 거냐고?

“아우, C! 왜 죽어서도 움직이는 거야? 징그럽게!”

바로 뒤에서 소리를 질러대니까 귀가 따가워 죽겠네.

예상은 했지만, 그 말은 완벽한 허세였다.

박시우는 사색이 된 얼굴로 떨어져 나온 지옥귀의 팔뚝이 꿈틀거릴 때마다 온갖 험한 말을 내뱉으며 펄쩍 뛰었다.

잠시나마 박시우가 국내 1위 길드장의 위엄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나마 다행인 건 박시우가 정신이 없어 보이는 와중에도 다음 목표물을 정확하게 사격해낸다는 것이었다.

정신 줄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박시우의 눈을 빠르게 타킷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예측하는 것 같았다.

장난감 오리 인형을 상대할 때는 던전 브레이크를 빠져나갈 생각을 하느라 살펴볼 틈이 없었는데…… 제법이잖아?

“으악! 아아아악!”

칭찬이 무색하게도 박시우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러댔다.

아, 진짜 내 친오빠인데…….

왜 이렇게 부끄럽냐?

우나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결같이 세상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 입, 좀 다물고 있을 수는 없나? 몹시 거슬리는데.”

나는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춘 채, 박시우가 못마땅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지금은 운수와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목소리를 바꿀 수도 없으니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목소리를 낮추는 게 최선이었다.

“에이, 저는 사장님이 지루해하실까 봐 그랬죠. 긴장감도 생기니까 계속 집중할 수 있고! 원래 방심할 때 역공을 당하게 되는 거거든요.”

능구렁이 같은 박시우는 어느새 태연한 표정으로 마치 의도한 행동이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기려 했다.

야, 너 누가 봐도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것 같았거든?

“연기가 수준급이네. 피부톤까지 연기하다니 말이야. 너무 새파랗게 질려 있길래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봐.”

“크흡!”

찔리라고 한 말이긴 했는데 박시우는 급기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자존심 빼면 시체인 박시우가 겁먹은 걸 들켰다고 울 줄은 몰랐는데…….

박시우가 우는 걸 보는 건 어릴 때가 전부였던 나는 당혹스러움에 지옥귀들에게 부채를 휘두르면서도 슬쩍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걸로 뭐, 또 울기까지…….”

마음이 약해진 내가 박시우에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렇지만…… 감동했습니다.”

……지금 뭘 했다고?

“온천 사장님이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이건 감격할 수밖에 없죠.”

고개를 든 박시우는 울기는커녕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운 게 아니라 우는 척이었냐?

당했다.

나는 분함에 총으로 지옥귀들을 저격하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박시우를 흘겨봤다.

하지만 지옥귀의 잔해가 튀는 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즐거워하고 있는 걸 보면 내 걱정에 감격했다는 건 진심인 것 같았다.

바퀴벌레만 봐도 새하얗게 질리는 박시우가 징그러운 걸 잊을 정도라고?

박시우가 온천 사장 팬카페에 가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진심인 줄은 몰랐다.

흔한 여자 아이돌 덕질도 해본 적 없는 게 박시우인데, 팬심을 가진다고?

그것도 하필 친동생인 나를?

덕질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잖아.

“온천 사장님을 처음 뵌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한 박시우가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팍을 두드리며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청춘 만화의 한 장면에서 전우애를 나누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X피스』 좀 작작 보라니까. 박시우.

말이며 행동이며 전부 다 오글거린다고!

손가락을 오므리며 질겁하던 난 이내 박시우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아마도 내가 온천 사장이라는 걸 알게 되면 박시우는 이때를 떠올리고 미친 듯이 이불킥을 해대겠지.

“방금 해주신 말을 녹음해서 가보로 남기고 싶은데 다시 말해주실 순 없을까요?”

급기야 박시우는 내 말을 간직하고 싶다며 최애를 만난 소녀처럼 수줍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꺼져.”

어떻게든 박시우의 잘못된 팬심을 끊어내고자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지만.

“까칠하신 것도 멋지십니다! 사장님, 역시 저의 롤모델!”

대체 어느 부분이 좋다는 건데?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박시우는 도리어 전보다 뜨거운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

안 되겠어.

이건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일단 빨리 지옥귀들을 해치우고 이곳을 뜨자!

그게 내가 생각한 최선이었다.

‘근데 이놈의 지옥귀들은 대체 언제까지 쏟아져 나오는 거야?’

내가 박시우와 함께 처리한 지옥귀의 수만 해도 족히 백은 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도 균열에서는 지옥귀들이 폭포수처럼 떼를 지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저승 안전관리부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보면 지옥귀의 개체 수는 846,168,411,656,999 정도”라고 합니다.]

‘그건 애초에 사람이 감당해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잖아?’

[성좌 ‘저승의 염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 만큼 생사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며 판결봉을 두드립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문제는 어떻게 해내냐는 건데…….

“상황이 안 좋은데요. 생각보다 몬스터 수가 많아요. 이대로면 지호가 오래 못 버틸 텐데…….”

덕질에 눈이 멀어 상황을 살피지 않고 있는 줄 알았는데, 박시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호가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넓은 범위로 퍼진 지호의 보호막에 지옥귀가 부딪치며 점차 금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지호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다.

보호막이 깨지면 시민들이 다칠 걸 염려해서 전력을 다해 버티고 있는 거겠지.

박시우의 말이 맞아.

시간을 끌수록 이쪽 상황이 불리해져.

그전에 다른 돌파구를 찾아내야 했다.

보호막이 깨지기 전에 균열을 닫을까?

이곳을 박시우가 버텨주기만 하면 가능한 일인데.

하지만 박시우 혼자로는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지옥귀를 막기에 역부족으로 보였다.

“헌터 협회에 도움을 요청해보는 게 어때? 그쪽이 혼자서 막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박시우에게 인력 보충을 요청해보라고 제안해봤지만, 그는 기대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구조 요청은 일찍이 했죠. 협회는 시민들이 다 죽고 나서야 움직일 생각인 것 같지만.”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주라고 만들어둔 곳이 바로 헌터 협회란 말이다.

그러니까 국민 세금으로 월급도 주는 거지.

새삼 익명 게시판에서 헌터 협회가 하는 일이 없다고 비판하던 댓글들이 떠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욕먹을 만하네.

부모님이 실종되었을 때도 살아 있을 가망이 없다며 별다른 구조 활동도 없이 급하게 장례를 치르자고 밀어붙인 것도 헌터 협회였는데.

그 생각만 하면 절로 이가 악물렸지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사상자를 내지 않고 균열을 닫는 길을 찾는 게 먼저였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혼란스러운 그때, 베카가 허공을 가르며 내게로 다가왔다.

“사장님, 베카가…….”

베카가 다가오는 것이 위협적이었는지 박시우는 긴장감이 맴도는 낯빛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나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혼자 베카를 상대하는 게 무리인 걸 알 텐데 제법 깡이 있네.

그 부분은 박시우를 칭찬해줄 만했다.

“난 괜찮아. 베카는 나와 가까운 사이거든. 하지만 그쪽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저기로 가서 보호막을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줘. 저 상태라면 곧 마법이 무너질 거야.”

난 박시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지호가 있는 편으로 눈짓을 했다.

“그럼 이쪽 일을 부탁합니다, 온천 사장님.”

지호 쪽 상황이 위태롭다는 내 말에 공감했는지 박시우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저는 온천 사장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온천 사장님 보유국이다!”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으며 끝까지 큰소리로 나를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고…….

“네 가족은 왜 저러는 거지?”

“절대 알고 싶지 않으니까 물어보지 말아줘, 베카.”

내 부탁에 착한 베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시우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잔잔한 바람!”

그 와중에도 나는 쉬지 않고 부채를 든 손을 움직였다.

“사상자 없이 저승으로 이어진 문을 닫기만 하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지?”

내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낀 건지 베카가 내 앞을 가로막아 서며 내게 물었다.

동시에 붉은 벼락이 내리치며 지옥귀들이 검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응, 염라가 그렇게 하면 승소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확실해.”

“루카를 타고 올라가서 균열을 닫아. 이곳은 내가 지키겠다.”

베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어.

하지만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베카, 간혹 헌터들이 널 오해해서 공격할지도 몰라.”

어쨌든 헌터들에게 베카는 탑의 주인이자 최종 보스니까 또 다른 목표물이 될지도 몰랐다.

“상관없다. 그런 조무래기들의 공격쯤은 간지러운 정도니까. 그러니까 내 걱정은 말고…….”

베카가 날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자 붉은 마나에 의해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베카와 내 눈높이가 맞춰졌다.

“꼭 돌아와라. 내가 있는 곳으로.”

그사이 또 한 번, 붉은 벼락이 사방에 내리꽂혔다.

베카는 그대로 마나를 이용해 나를 안전하게 드래곤에 태워주고 나를 바라봤다.

“넌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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