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속보!!
[!!속보!! 도심 속에 베카 떴다.]
탑 최종 보스 베카의 행보는 지상에서도 단연 화제가 됐다.
<나 지금 퇴근길인데>
* * *
내 위에 베카 있다.
* * *
└익명1 : 퇴근길이 아니라 황천길이었네.
└쓰니 :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으면 오늘 부장이 히스테리 부릴 때 사직서랑 같이 쌍욕 박고 나오는 건데…….
└익명2 :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
└익명3 : ㅋㅋㅋㅋㅋ 이게 이렇게 절망적으로 들린다고?
└쓰니 : 이 또한 운명…….
└익명2 : 이럴 줄 알았으면 인턴한테 잔소리 덜하고 빨리 퇴근하는 거였는데……. 인턴은 왜 내 기분 풀어주겠다고 별벅스 기프티콘을 보내서는 베카를 만나게 하는 거냐고!
└익명3 : 인턴의 암살 계획 ㅋㅋㅋㅋ
└쓰니 : 인턴이 별벅스 기프티콘을? 혹시 김곤대 부장님?
└익명2 : 쓰니가 그걸 어떻게……. 자네, 혹시 나초봉 인턴인가?
└쓰니 : 쓰니의 댓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익명2 : 맞구나? 나인턴?
└익명3 : ㅋㅋㅋㅋ인턴 튐. ㅋㅋㅋㅋ
└익명4 : 번외편 – 우리는…… 같은 회사에 있어.
└익명5 : ㅋㅋㅋㅋㅋㅋ ㅁㅊ ㅋㅋㅋㅋ 하필 거기서 만나냐고,
└쓰니 : 여기 게시글 삭제 안 되나요?
└익명2 : 응, 캡쳐. 나인턴, 내일 따로 나 좀 보지.
└쓰니 : 다 같이 멸망 엔딩 나쁘지 않을지도?
└익명6 : 쓰니ㅋㅋㅋㅋㅋ 흑화.
<근데 베카>
* * *
탑에서 어떻게 나온 거지? 원래 보스들 탑 안에서만 젠 되는 거 아님?
* * *
└익명1 : 내 말이……. 여기 오기 전에 열망 연합 길드가 공략 시도했었는데 순식간에 죽기 직전까지 발렸다고 함.
└익명2 : ㅎㅊㅎ 길드원 다 버리고 런 했다고 함.
└익명3 : 역시 ㅎㅊㅎ 인성 클라스 ;;;
└익명4 : 열망 나락
└익명5 : 지금 베카 잡겠다고 군인들 배치해서 사격 준비하고 있는데 장전하기도 전에 총 튕겨냄 ;;
└익명6 : 군인들이 각성자냐? 보스가 도심 한복판에 나타났는데 헌터 협회는 뭐 하고 있냐?
└익명7 : 저번 SS급 던전 브레이크 때부터 쫄아서 숨어 있쥬?
└익명8 : 우리 다 죽고 나면 나타날 듯.
└익명9 : ㅇㅈ.
<집필 긴급 투입>
* * *
박시또랑 박지누또가 자진해서 시민들 대피하는 거 돕기로 했다고 함.
* * *
└익명1 : 역시 갓집필!
└익명2 : 이 맛에 집필 하쥬?
└익명3 : ㅎㅊㅎ가 집필 반만 닮았으면.
└익명4 : 최소 다시 태어나야 할 듯.
└익명5 : ㅋㅋㅋ팩폭 ㅋㅋㅋㅋ
└익명6 : 그럼 오늘 박시우랑 박지호 실물 영접 가능한 건가요? 여기가 내가 누울 자리인가?
└익명7 : [베카 : ???]
└익명8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히려 좋아!$
한편 탑 46층, 베카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힘에 압도되어 있던 집필 길드원들은 비로소 자유를 되찾았다.
“현정우! 이 자식, 또 어디 갔어?”
그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시우는 베카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정우를 찾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 만큼 빠르게 이동하려면 정우의 S급 포털이 필요했다.
“저…… 여기 있습니다.”
시우의 부름에 그늘진 탑의 구석에서 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 거기서 나와?”
“방금 베카 못 보셨어요? 거슬리는 게 있으면 다 죽일 듯한 표정이었다고요.”
다시 생각해도 오싹하다는 듯 정우가 양팔을 감싸 안으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다고 길드원들을 두고 제일 먼저 달아나다니, 현정우답네.”
“달아나다니 그렇게 섭섭한 말씀을! 다 같이 가려고 이렇게 포털도 준비해뒀는데!”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은 정우가 탑의 구석진 곳에 열린 포털을 가리켰다.
“어느 틈에 포털을 연 거야?”
“방금이요.”
‘조금 전만 해도 베카한테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었을 텐데?’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온화한 정우의 미소를 지켜보는 시우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시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탯창으로 향했다.
그의 스킬은 이제 막 쿨타임이 풀리는 참이었다.
[탑의 주인 ‘베카’의 정신 지배로 일정 시간 동안 스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쿨타임 : 3분 57초>]
정신 지배를 악착같이 버텨낸 시우에게도 쿨타임은 적용됐다.
그런데 시우의 쿨타임이 풀리기 전에 정우가 포털을 열었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정우에게 쿨타임에 걸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하지만 시우가 알기로 정우는 포털을 여는 것 외에 다른 스킬이 없었다.
‘그게 다인지는 까보기 전에 모르는 일이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시우는 성큼 정우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다.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내가 다른 건 다 눈감아줄 수 있어도 비밀이 있는 놈이랑은 같이 일 못해.”
예리해진 시우의 눈동자가 한층 서늘해졌다.
“형도 참 뜬금없다니까…….”
찰나의 순간 정우의 미소가 차갑게 식었다.
“제가 뭘 숨기겠어요? 기껏 미리 포털을 열어뒀는데 칭찬도 없고! 서운합니다.”
정우가 울상을 지으며 서운해하자 시우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뭐, 그건 차차 알게 되겠지. 일단 알겠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왕이면 베카가 있는 곳으로 포털 연결해줘.”
“그런 거쯤은 어렵지 않죠!”
언제 그랬냐는 듯 정우는 한껏 들든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연이어 시우는 정우의 귓가에 대고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시우가 한마디 하면 못해도 두 마디로 받아치던 정우였는데 이번만큼은 조용했다.
“박지호, 가자.”
정우를 뒤로하고 시우는 지호를 불러들였다.
“응!”
큐브 지팡이를 꺼내든 지호가 시우를 따르려는 그때, 한발 물러나 있던 집필의 길드원들이 포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저희도 도울게요! 베카를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지만, 시민들을 대피하는 데에는 힘을 보탤게요!”
“너희들 뜻이 정 그렇다면야, 다치지만 마.”
무뚝뚝하게 길드원들을 격려한 시우가 달아나듯 포털을 타고 사라졌다.
“시우 형, 지금 부끄러워한다! 방금 그걸 찍었어야 했는데!”
지호가 친형의 흑역사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길드원들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시우의 뒤를 따랐다.
평소 같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우 놀리기에 동참했을 정우가 모두가 사라진 포털을 돌아봤다.
“멋대로 단독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경고에 가까운 시우의 귓속말을 떠올린 정우의 입가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보이는 것처럼 영 바보는 아닌가 보네.”
* * *
“집필 소속 헌터입니다. 지금부터 보호 마법을 쓸 예정이니 저희를 따라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주세요.”
포털의 타고 나온 집필 길드원들은 곧바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시우와 지호는 서울 도심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서 베카는 적안을 번뜩이며 하늘의 한 부분을 노려보고 있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베카, 사람들한테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긴장 상태로 베카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시우가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는 그때,
쿠와아앙!
굉음과 함께 붉은 벼락이 하늘을 갈랐다.
“하늘에 금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지호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하늘의 균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우는 차분히, 하지만 냉정히 주변을 살폈다.
‘이번에도 벼락은 사람들을 노리지 않았다.’
“베카가 노리는 건 사람들이 아니야.”
확신에 찬 시우의 목소리에 지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 때문에 저 난리를 부리는 건데?”
“그건 나도 모르…… 어? 저건 뭐지?”
미간을 찡그린 시우가 베카의 맞은편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우나 가운을 입고 초록색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눈부신 은발을 흩날리고 있었다.
* * *
“꼭, 그렇게 하고 가야만 하겠나?”
저승을 벗어나기 직전, 염라는 샤레니안의 때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내게 재차 물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안 그래도 샤레니안이 쓰던 때수건이라 찝찝해 죽겠는데.
어금니를 꽉 깨물며 웃자 염라는 그제야 창피하다는 눈길을 거둬들이며 판결봉을 들었다.
“그런데 날 베카한테 보내준다면서 망치는 왜 들어?”
고작 작은 나무 망치일 뿐인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을 두르고 있는 염라가 드니까 어딘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나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봤어. 스릴러 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이…….’
“가라.”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염라가 판결봉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성물 ‘저승의 나무 망치’를 사용합니다.]
[염라가 정한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나는 순식간에 베카가 있는 서울 도심의 하늘로 이동했다.
음……?
그런데 어쩐지 발밑이 허전했다.
“나 지금 공중에 떠 있니?”
[잠시 뒤, 땅으로 추락합니다. <남은 시간 : 3초>]
‘염라야, 당연히 이다음도 생각해두고 날 여기로 보낸 거겠지? 무슨 대책이 있는 거지?’
[성좌 ‘저승의 염라’가 “그걸 꼭 생각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누가 들어도 생각 안 해둔 것 같잖아?
‘야, 미쳤어? 이대로면 살아나자마자 추락사라고!’
[성좌 ‘저승의 염라’가 “넌 네가 계약한 자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태평하게 하품합니다.]
[추락합니다.]
염라의 말은 뒤이은 시스템창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는 베카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 믿을 건 하나뿐이었다.
“베카! 나 여기 있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젖 먹던 힘을 다해 베카를 불렀다.
그 순간이었다.
마치 내 목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순식간에 베카가 내게로 날아왔다.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나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