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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50화 (50/190)

50화

상상하지 못했던 저승사자의 정체 ㄴㅇㄱ!

정처 없이 어디론가 달리는 열차의 바퀴 소리.

그리고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났다.

잠들어 있지만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는 마치 가위에 눌린 듯했다.

그 상태에 익숙해질 때쯤, 열차가 서서히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비로소 눈이 뜨였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도 저승행 직행열차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승 교통부(황천길)-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을 때도 주변은 온통 캄캄한 암흑이었다.

열차는 나를 버리듯 그곳에 내려두고 떠나버렸다.

안내 방송에서 황천길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정말 저승에라도 온 건가?

주변을 둘러보려 해봤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데 저 멀리 어둠 속에 희미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불꽃은 천천히 점차 내게로 가까워졌다.

“이 망자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를 듣자 누군가 머릿속에서 징을 친 것처럼 머리가 크게 울렸다.

“어디 보자, 사건 번호가 어떻게 됐더라? 크르릉…….”

고민하는 듯한 목소리가 꼭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여기 있군. 사건 번호 19999013023 망자.”

부산스럽게 종이를 넘기던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사건 번호를 읊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누군가가 내게 사건 번호를 말해주었던 것 같긴 한데…….

망자라 부르는 걸 보니 내가 진짜 죽기라도 한 것 같았다.

“박수온.”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부르자 머리가 찡하고 울렸다.

“박수온.”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이름이 불릴 때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박수온.”

마지막으로 이름을 불렸을 때서야 굳었던 몸이 다시 움직이며 꿈속에 있는 것처럼 흐리던 머리가 맑아졌다.

“저승에 온 걸 환영한다! 망자여! 이제 정신이 든 건가?”

머리가 맑아지니 방금 저 정체 모를 목소리가 내 이름을 세 번 불렀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저승사자들이 망자를 데리러 올 때 이름을 세 번 부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그럼…… 이 목소리의 주인은 저승사자?

목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들자 환한 불꽃이 공중에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니까. 이제 저승의 주민이 되었으니 그대에게도 저승의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둥절하던 내가 목소리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온통 암흑뿐이던 시야에 저승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저승사자 처음 보나?”

저승사자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어왔다.

검은 갓에 검은색 도포.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했던 저승사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봐봐. 이러니까 내가 염라가 저승사자인 줄 알았지.

“하긴 죽은 것도 처음일 테니 저승사자를 보는 것도 처음이겠지. 크릉! 크릉! 크르릉!”

저승사자는 갓을 비집고 나온 갈기를 쓸어넘기며 자신이 한 농담에 호탕하게 웃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고 있긴 했지만, 내 앞에서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를 내면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건 분명 사자였다.

세상에, 누가 저승사자가 진짜 사자인 줄 알았겠냐고!

“진짜…… 사자시네요?”

“왜? 사자가 저승사자인 것에 뭔가 문제가 있나?”

아니요. 이름과 직업이 일치해서 문제는 없긴 한데요.

“그냥 제 환상 속 저승사자하고는 차이가 좀 있어서요.”

“날 보는 망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긴 하더군. 하긴 내가 이승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외모이긴 하지. 크릉! 크르릉!”

저승사자가 털이 복실거리는 손으로 널따란 골격을 가진 턱을 매만졌다.

망자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말 안 해도 알겠어.

한 가지 더, 저승사자의 자기애가 남다르다는 것도.

“망자여, 그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넋을 놓고 내 외모를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러다 재판 순서를 놓치겠어. 서둘러 재판장으로 가자.”

어째서인지 망자들의 뜻을 대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한 저승사자가 내게 걸음을 재촉해왔다.

맞아. 나 지금 죽었지?

이대로 따라가면 진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거 아냐?

게다가 재판? 재판이라니?

내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데!

비록 얼마 전에 박시우가 아껴놓은 과일 젤리를 몰래 훔쳐 먹긴 했지만, 박시우도 내 메X나 꺼내 먹었으니까 엄연히 쌍방과실이잖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찾아야 하고 냉동실에 뿌O뿌O도 얼려놨고, 우리 지호 장가도 보내야 한다고!

고작 바나나 우유 하나 만들려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할 수는 없어!

순간 저승에 올 때 탔던 열차가 떠올랐다.

날 두고 매정하게 떠나버렸지만, 저승행이 있다면 분명 이승행도 있겠지.

저승에 왔던 열차를 다시 타고 나가면 살아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혹시 다른 열차라도 있을까 싶어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저 즈음에서 내렸는데…….

어째서인지 철길이 보이지 않았다.

“소용없다. 망자여, 이곳의 열차는 모두 일방통행이다.”

아니, 일방통행만 하는 열차가 어디 있어?

들어오는 길이 있으면 나가는 길도 있어야지!

어쨌든 사자의 말대로라면 나가는 열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인 건가?

절망한 것도 잠시 나는 죽기 직전에 봤던 해령을 떠올렸다.

아니지. 나에게는 든든한 백, 성좌들이 있잖아!

‘해령! 내 말 안 들려?’

해령을 불러봤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운수야!’

언제나 소통이 활발했던 운수도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소용없다. 망자가 되는 순간, 생전 모든 성좌와의 계약은 모두 해지된다. 이곳에서 실체를 보이지 않고 망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분뿐이시고.”

정말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고?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지니 저승사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그때였다.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EX)!! 저승행 직행열차 (2)가 열립니다.]

[저승에서 살아남기]

[재판에서 승소하기 (0/1)]

[성공 보상 : 개같이 부활 / 패소 시 : 사망]

퀘스트 창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성좌와의 계약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퀘스트는 유효한 것 같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퀘스트 내용을 살폈다.

[저승에서 살아남기]

[재판에서 승소하기 (0/1)]

[성공 보상 : 개같이 부활 / 패소 시 : 사망]

재판에서 승소하라고?

그러고 보니 이족보행 하는 저승사자가 방금 나에게 재판장에 가야 한다고 말했었지.

결국 저승의 법정에 서야 하는 건가?

죽었는데도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불쌍한 K-영혼이 서글프게 울었다.

확실한 건 없지만, 지금 내가 저승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나는 평생 청렴하고 당당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법정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됐다.

아니, 오히려 이 점이 플러스 요인이 될지도 몰랐다.

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거니까!

어쨌든 퀘스트 보상이 ‘개같이 부활’인 걸 보면 아직 희망은 있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개같이 부활이면 뭐 어때?

확실한 건 없지만 되살아날 수 있는 실낱같은 확률이라도 있다면 이 퀘스트를 완료하고야 말 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판에서 이겨야 해.

희망이 생긴 것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어떻게 재판에서 이기지?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저승에 관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저승의 재판은 현실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들어본 것도 너무 오래전이라 자세하게 떠오르는 건 거의 없다는 말이지?

뭘 알아야 대비를 하든가 하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망자여, 이만 이승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운명을 받아들이시게.”

저승사자는 그 한숨이 망자의 한이라고 여겼는지, 나를 달래듯 투박한 손으로 내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사자라면 내가 치를 재판에 대해 좀 더 아는 게 있을지도 몰라.

“사자님, 제가 재판에 가야 한다고 하셨죠?”

난 희망에 빛나는 눈빛으로 저승사자를 바라봤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에 사자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다. 망자들은 모두 저승의 재판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처분이 결정되니까.”

“뭘 재판하는 건데요?”

“그 또한 망자들에 따라 다르다. 그대 같은 경우는…… 어디 보자.”

저승사자가 앞으로 흘러내린 갓을 고쳐 쓰며 서류뭉치를 뒤적거렸다.

“이런……. 자네는 생사재판 대상자군. 쯧쯧.”

서류의 내용을 살피던 사자가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으며 혀를 찼다.

“생사재판이요? 그게 뭔데요?”

“그대처럼 명부에 적힌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은 망자들의 생사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이다.”

저승사자의 설명대로라면 퀘스트 내용처럼 재판에서 승소하면 부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자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다만 재판에서 승소할 확률이 아주 희박하다는 게 문제지…….”

왜지?

“오죽하면 인간들이 생사재판에서 승소하는 걸 기적이라고 부를까?”

그럼 기적처럼 살아난 사람들은 전부 생사재판에서 승소한 거였나?

“이번에도 해보나 마나 패소일 게 뻔해.”

사자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재판에서 졌다고 단정 지으며 서류를 덮었다.

“어째서 벌써 재판을 포기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길 수도 있는 거잖아요. 수명을 다 못 채우고 죽은 것도 억울한데 적어도 뭐라도 해봐야죠!”

나는 서류를 도로 집어넣으려는 사자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글쎄, 해보나 마나 결과는 뻔하다니까? 괜히 내 힘만 빼는 꼴이 될 거야. 하루에만 해도 억울한 죽음을 맞아 저승에 들어오는 망자만 수천, 수만에 달하는데 설렁설렁해도 과로사를 면하지 못할 판이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나와 달리, 저승사자는 벌써부터 의욕을 잃은 얼굴로 과도한 업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뿐이었다.

“어차피 저승사자는 죽은 몸이라 과로사할 일은 없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쿠르르릉!

한창 저승사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천둥 번개와 같은 소리가 났다.

나와 사자는 동시에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시선이 향한 곳은 호리병같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저승사자의 통통한 뱃살이었다.

방금 그 소리가 저 배에서 났다고?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하도 바빠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다 보니…….”

배꼽시계가 울린 것이 쑥스러운지 저승사자가 헛기침을 하곤 검붉은 갈기를 매만졌다.

잠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진짜 먹힐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한번 시도해볼 만은 했다.

난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도시락을 꺼냈다.

해령이 만들어준 도시락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이건 지나칠 수 없죠. 출출하실 저승사자님께 제 소중한 도시락을 양보하겠습니다.”

“아니, 이건!”

도시락 뚜껑을 열자 갓 구운 것처럼 노릇노릇한 온천표 돈가스가 자태를 드러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고소한 향을 음미하던 사자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아주 오래전에 딱 한 번밖에 못 먹어봤지만, 이 군침이 도는 향기와 먹음직스러운 색깔…….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그 귀한 온천표 돈가스가 아닌가?”

……저승사자가 온천표 돈가스를 알고 있어?

솔직히 온천표 돈가스가 맛있긴 하지만, 저승에서도 알아볼 줄은 몰랐다.

“맞습니다. 자, 허기지실 텐데, 어서 드셔보세요.”

“고맙다!”

순순히 도시락을 내어주자 배고픔에 눈이 뒤집힌 저승사자는 허겁지겁 돈가스를 먹어치웠다.

나는 빠르게 도시락을 비워가는 사자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좋아.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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