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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35화 (35/190)

35화

요단강 건너갔다가 온 썰 푼다 (2)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 우리 남매는 싸움판에 뛰어들었고,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쥐고 사과까지 받아냈다.

“또 우리 누나랑 형 괴롭히면 그땐 내가 누구든 다 패버릴 거야!”

내 가방으로 저보다 한 뼘씩은 더 큰 형들을 막아내느라 흙투성이가 된 지호가 달아나는 무리를 향해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렸다.

“야, 우리 얼굴에 상처 났어. 어떡해? 나 때문에 엄마한테 혼나겠다.”

나는 내게 안기는 지호의 뺨에 난 상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괜찮아! 지호가 누나를 지킨 거니까 난 혼나도 괜찮아!”

“그래! 박돈돈,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라. 다시는 너 못 괴롭히게 만들어줄 테니까.”

박시우가 상처가 난 주먹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어쨌든 이겼다!”

“누나가 이겼다!”

지호와 박시우가 주먹을 맞대며 외쳤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주먹 위로 손을 보탰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전부였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희뿌연 연기가 시야를 메웠다.

죽기 전에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던데……. 그게 진짜였나?

내가 이렇게 떠나버리면 지호가 분명히 슬퍼할 텐데. 지호는 어릴 때부터 누나가 없으면 울기부터 하는 울보란 말이야.

박시우는 또 어떻고?

평생 동안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굴지만, 내가 부모님을 잃은 충격으로 무작정 가출했을 때 잠도 안 자고 밥도 거르면서 온 동네를 백방으로 뒤져 나를 찾아낸 사람이다.

나를 발견하자 화를 내기는커녕 무사해줘서 고맙다며 난생처음으로 눈물을 보일 만큼, 사실은 누구보다 끔찍하게 날 생각하지.

부모님에 이어서 나까지 이렇게 가버리면 박시우와 지호 둘 다 폐인이 되어버릴 거야.

그래도 저 남자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속에 고이 묻어두고 꺼내보지 않으려 했던 얼굴들을.

‘이 녀석들, 다들 왜 이렇게 엉망이 됐어? 얼굴에 상처들은 또 뭐고?’

나는 엉망이 된 세 남매를 보며 놀라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시야를 가리는 연기처럼 기억 속 그들의 얼굴 역시 희미하게 바래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선명히 기억나는 게 있었다.

“엄마! 아빠!”

서럽게 울면서 달려가 안긴 품이 무척 따뜻했다는 것.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로 한껏 뭉근해진 몸은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것같이 무겁게 느껴졌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비틀거리는 내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남자가 겉옷을 대충 걸쳐 입고 황급히 다가왔다.

눈앞이 핑 돌아 휘청이는 날 남자가 부축해왔다.

“당신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어요?”

난 희미해지는 의식을 겨우 붙든 채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누굴 만날 수 있냐고 묻는 거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난 열띤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답했다.

“부모님이요. 어린 날 두고 사라져버린…….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어요. 날 두고 대체 어딜 가버린 거냐고. 매일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이 아팠고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 살아왔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고.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각을 마지막으로 불이 꺼진 것처럼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 * *

“이렇게 약한 몸으로 대체 어딜 가겠다는 건지.”

염라는 쓰러지는 수온을 본능적으로 재빨리 받아냈다.

맞닿은 피부로 전해진 그녀의 체온을 느낀 그가 미간을 좁혔다.

“손이 많이 가는군.”

가볍게 수온을 안아 든 염라가 유유히 저승탕을 빠져나왔다.

“염라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작고 둥그런 몸으로 마른 수건을 나르고 있던 영계가 염라에게 안겨 축 늘어져 있는 수온을 보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탕에서 쓰러졌다. 방으로 옮겨둘 테니 갈아입을 옷을 가져와라.”

“예!”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해진 영계가 짧은 다리를 서둘러 움직이며 달려갔다.

2층에 있는 수온의 방으로 들어서자 염라는 이부자리 위에 살며시 그녀를 내려놓았다.

“저승초의 독한 향기 때문에 정신을 잃은 모양이군요.”

소란스러움을 느낀 약 항아리가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사뿐히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혹시 탕에서 저승의 담배를 피우셨습니까?”

염라가 옷을 고쳐 입으며 부정하지 않자 약 항아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승의 담배를 입에 달고 사시는 염라께서는 느끼지 못하시겠지만, 보통의 인간이 그 향을 맡게 되면 이런 식으로 열병을 앓게 되지요.”

약 항아리가 앓는 소리를 내는 수온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다행히 열이 높지는 않았다.

“제가 해독제를 만들어올 테니 염라께서는 저승으로 돌아가보셔도 됩니다. 저승의 업무가 많아서 눈 붙일 틈이 없으시니까 저승초같이 독한 담배로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버티시는 것 아닙니까?”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한다. 잔소리하려는 것이라면 그쯤 하도록 해.”

“예, 예. 염라께서는 자기 몸 하나만큼은 알아서 잘 혹사하시지요.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약 항아리가 좀처럼 짓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염라를 바라보았다.

“염라께서 본인의 몸을 혹사하는 것까지 참견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가 다치는 일은 없게끔 해주십시오."

염라를 향한 진회색 눈동자가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제 손녀와도 같은 아이니까.”

제 할 말을 단호히 마친 약 항아리가 약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인간의 몸은 본래 이토록 약하단 말인가?”

염라는 매일같이 처리해야 할 망자의 명부가 태산처럼 쌓이는 이유를 새삼 절감했다.

‘약 할아범은 솜씨가 좋으니 알아서 잘 치료해주겠지.’

염라가 잠시라도 일에서 손을 떼면 저승은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자들로 인해 방대한 혼란이 일어났다.

그런 이유로 염라는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었다.

수온을 지켜보던 염라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염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두 손으로 그의 옷깃을 꼭 붙잡은 채 아이처럼 잠든 수온이었다.

“가지 마…….”

나쁜 꿈을 꾸는 건지 수온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

누군가를 붙잡는 듯한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탕에서 쓰러지기 직전 수온이 했던 말을 되짚어보던 염라가 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의 체격만큼이나 큼직하면서도 희고 고운 손이 수온의 눈물을 훔쳤다.

“좋지 못한 꿈을 꾸게 만들어서 미안하군.”

염라의 손길이 닿자 안도한 듯, 수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그 미소를 지켜봤다.

“염라님, 이제는 돌아가셔야 합니다!”

문 앞으로 갓을 쓴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얼핏 저승사자의 형상이었다.

그는 도착하기가 무섭게 염라의 걸음을 재촉했다.

“쉿.”

저승사자를 향한 염라의 눈빛이 매서웠다.

처음 보는 그의 날이 선 얼굴에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푹 숙인 고개만큼이나 한껏 작아졌다.

“지금 이 시각에도 결재해주셔야 할 망자의 명부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가져와라.”

“예?”

예상하지 못한 답에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어 염라를 바라봤다.

“이곳으로 가져와라. 처리해야 하는 명부.”

“예, 염라님의 명을 받듭니다.”

단호한 염라의 기세에 눌린 저승사자는 더는 토를 달지 않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골치가 아파와 이마를 짚던 염라가 습관적으로 금장식이 새겨진 기다란 담뱃대를 입에 물려다 수온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뿌연 담배 연기 대신 긴 한숨을 내쉰 염라가 담뱃대를 내려놨다.

멋쩍은 두 손으로 팔짱을 낀 그의 눈길이 수온에게로 포근히 내려앉았다.

* * *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환한 햇살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눈부신 햇살, 개운한 몸…… 나 저승에 온 게 아니었나?

저승이라 하면 온통 암흑으로 덮여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밝았다.

옷도 내 최애 곰돌이 잠옷으로 갈아입혀져 있고.

시야가 또렷해지자 내 방 안에서 수북히 쌓인 서류 더미를 하나씩 꺼내 훑어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어젯밤 나를 데리러 왔던 그 남자였다.

“그건 제 이름이 적힌 명부인가요? 저승이라고 해봤자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제가 지내던 온천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이곳은 네가 지내던 온천이 맞다.”

아직 온천이라고?

“그렇다면 저승사자님은 왜 이곳에 계신 거죠?”

“네가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남자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자 도포 자락을 움켜쥔 내 손이 보였다.

“그리고 난 저승사자가 아니라 염라다.”

“네? 뭐…… 뭐라고요? 네가 염라? 그럼 검은 갓은 뭐야? 저거 저승사자만 쓰는 거 아니었어?”

뜻밖의 정체를 알게 된 난 염라가 벗어놓은 검은 갓을 가리켰다.

“저건 저승에 가면 다들 머리에 쓰고 다니는 흔한 물건이다.”

검은 갓에 까만 도포는 저승사자들만의 국룰 아니었어?

“그럼 나한테 가자고 한 건 어딘데?”

“저승탕에서 나가라고 한 것이다. 그곳은 내 전용탕이니까. 나와 계속 같은 탕을 쓸 수도 없는 일이지 않나?”

그런 뜻이었구나.

괜히 나 혼자 오해해서 요단강 한 번 셀프로 건너고 왔네.

“깨어난 것 같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지.”

내가 일어난 걸 확인한 염라는 서류 뭉치를 챙겨 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같이 있어준 건가?

차갑게 생겨서 이름도 염라인 주제에 의외네.

저 멀리 사라져가는 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차였다.

[성좌들의 호감도 퀘스트가 모두 완료됩니다.]

[히든 스탯이 개방됩니다.]

[히든 퀘스트(EX)가 열립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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