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어디서 똥 냄새 안 나요?
“방금……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쑥 라테가 미친 듯이 만들고 싶어졌어.”
라테에 대한 나의 열정에 샤레니안은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의외군, 이렇게까지 온천 일에 열정적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열정적이지 않을 수가! 제한 시간 안에 온천표 쑥 라테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온천 이용권으로 번 돈을 전부 날려 먹을 수도 있는 일생일대의 절박한 상황인데!
게다가 근무 태만으로 경고를 받는 바람에 제대로 된 쑥 라테를 누군가의 입에 넣기까지 해야 했다.
“참고로 목숨은 보장 못해.”
“……보통은 맛을 보장 못한다고 하지 않나?”
내 손이 닿은 음식이나 음료는 맛이 없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구태여 뒷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자세히 알면 달아날 게 뻔하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곤란해진다.
“그래서 먹을 거야, 말 거야?”
난 샤레니안을 벽에 밀어붙인 채 그에게 은근한 압박을 넣었다.
“그건 이미 결정 난 문제 아닌가? 그대가 지금 안 먹으면 죽일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잖아.”
그야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일단 해령은 이미 쑥 라테로 죽을 고생을 한 탓에 절대 먹으려고 하지는 않을 테고, 영계는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으니 거부할 게 뻔했다.
운수는 눈치가 빨라서 꼬여내기 어려울 것 같고, 염라는 심지어 온천에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어르신한테 드리면……. 그건 정말로 배은망덕한 짓이다.
그러다 결국 남은 건 샤레니안뿐이었다.
“무슨 라테를 만들어줄 건데?”
“온천표 쑥 라테.”
그때 그 온천표 맛으로 나올지는 미지수인 게 문제이긴 하지만.
“오! 이 온천의 쑥 라테 맛은 일품이지! 오랜만에 입이 즐겁겠는걸?”
내 속을 알 리 없는 샤레니안은 한껏 기대한 얼굴이었다.
들뜬 그를 보니 누군가 내게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당신의 양심, 혹시 어딘가에 떨어뜨리진 않으셨습니까?
“난 분명히 경고했다? 목숨 보장 못한다고.”
내 손톱만큼 남은 양심이 거듭해서 샤레니안에게 적색경보를 날렸다.
하지만 그는 내 경고를 한 귀로 흘리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목숨은 걱정하지 마. 난 불사의 몸을 가졌으니까.”
샤레니안이 자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샤레니안이 던져준 검의 이름이 ‘불사검’이긴 했지만, 설마 진짜 불사신이었어?
그래서 처음 봤던 날, 그렇게 오랫동안 피를 한강처럼 흘리고도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거였구나.
이제야 그날의 의문이 풀렸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 쑥 라테를 먹어도 큰 탈은 없겠네.
일말의 양심으로 괴로웠던 내게 그나마 안도되는 말이었다.
“그럼 응접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쑥 라테를 만들 준비를 해올 테니까.”
몇 번이나 만들게 될지 모르니까 재료는 든든하게 챙겨와야겠다.
“알겠어. 그리고 하나 더!”
“뭔데?”
“여기.”
샤레니안을 올려다보자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에 난 상처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불사검을 던져서 생긴 상처였다.
“언제 치료해줄 거야?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쑥을 캐온 날, 약이 남으면 샤레니안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로 했었다.
아직 새살이 솔솔이 남아 있으니까 문제없지.
“가는 김에 약도 가져갈게. 그러니까 얌전히 가서 기다리고 있어.”
“네!”
원하는 답을 얻어낸 샤레니안이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곧바로 응접실로 향했다.
[페널티 적용까지 남은 시간 : 29분 30초]
쑥 라테 한 잔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건 정확히 ‘온천표 쑥 라테’였다.
성공 여부가 미지수인 만큼 시간을 최대한 벌어둬야 했다.
서둘러야지!
‘영계야, 쑥 라테 재료들은 어디에 있어?’
[가이드 ‘영계’가 “2층 맨 왼쪽 방으로 들어가면 부엌이 있다”고 합니다.]
[가이드 ‘영계’가 “입구에서 마스터키를 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릴 거야”라고 말합니다.]
부엌이 자동문이라니, 의외로 신식이네.
‘쑥은 약방에 있지? 가루도 내야 할 텐데. 그건 또 어떻게 하지?’
[가이드 ‘영계’가 “지난번에 약방에 새살을 산더미같이 던져두고 가서 정리하는 김에 부엌에 여분의 쑥과 쑥 가루를 가져다 뒀다”고 말합니다.]
맞아! 까맣게 잊고 있었어!
베카가 갑자기 ‘시X!’의 뜻을 묻는 바람에 당황해서 차마 새살 더미를 정리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왔던 것이 떠올랐다.
영계가 나 대신 그 많은 새살을 정리해준 건가?
‘역시 영계는 최고의 병아리야!’
[가이드 ‘영계’가 “몇 번을 말해야 제대로 알아들을 거냐”며 자신은 “병아리가 아니라 용”이라고 역정을 냅니다.]
‘그렇지만, 생긴 게 병아리 같은걸. 우리 영계, 화내는 표정도 귀여운데 못 봐서 아쉽다.’
[가이드 ‘영계’가 말을 말자며 “쑥 가루는 찬장에 넣어뒀고 우유는 냉장고에 넣어뒀으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말합니다.]
가만 보면 영계도 해령이랑 비슷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부쩍 같이 붙어 다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더니 츤데레가 옮은 걸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2층 복도의 맨 왼쪽에 도달해 있었다.
문에 마스터키를 대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
난 목에 걸고 있던 마스터키를 꺼내 들었다.
[삑― 사장입니다.]
[히든 필드 ‘온천의 부엌(EX)’이 개방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버스에 탑승할 때 많이 들었던 정겨운 목소리였다.
곧이어 부엌의 문이 활짝 열렸다.
고급 목조로 된 넓은 부엌은 신식 아파트의 부엌에 못지않게 깔끔했고 인덕션, 오븐 등 웬만한 것들은 다 갖추고 있었다.
잠깐, 내가 지금 한가하게 부엌이나 둘러보고 있을 때가 아니지.
쑥 가루는 찬장에 있다고 했지?
찬장을 열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악! 냄새!”라며 코를 막습니다.]
응?
“찬장이 말을 해……?”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그래, 말했다! 어쩔래?”라며 따지고 묻습니다.]
하긴 용도 말을 하고 약 항아리도 말을 하는데 찬장이 말을 못할 건 없지.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냄새나는 손으로 이 신성한 몸을 만지지 말라며 질색합니다.]
내 손에서 냄새가 난다고?
혹시나 해서 코에 손을 대고 킁킁대봤지만, 불쾌해할 만한 특별한 냄새가 나진 않았다.
나한테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면.
“그거 혹시 너한테서 나는 냄새 아니야? 혹시 내가 먼지라도 좀 닦아주고 갈까?”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야, 너 말 다 했어?”라며 격분하더니 청소를 하지 않아도 청결이 유지되는 데다가 향균 작용도 된다고 힘을 주어 설명합니다.]
과하게 반응하는 것 보니까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의심이 들었지만, S급 찬장이라면 있을 법한 기능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럼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텃세 부리는 온천 냉장고(S)’가 “어디서 냄새 안 나요?”라고 묻습니다.]
얼씨구? 이제는 냉장고도 말을 하네.
이 온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말하는 걸 워낙 많이 봐온 터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어디서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냐고?”
[‘텃세 부리는 온천 냉장고(S)’가 “네 똥손 냄새요”라고 답합니다.]
냄새만으로 내가 똥손이라는 걸 안다고?
대체 얼마나 후각이 좋으면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거야?
[‘텃세 부리는 온천 냉장고(S)’가 “우리한테 똥손인 거 들켜서 당황했죠?”라며 약을 올립니다.]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찔려서 말 못하죠?”라며 거듭니다.]
재수 없지만 둘은 아주 쿵짝이 잘 맞았다.
“그래! 나 똥손이다! 근데 내가 똥손인 게 너희들이랑 무슨 상관이야? 쑥 라테 재료만 빨리 챙기고 나갈 테니까 숨이라도 참고 있든가!”
난 막무가내로 찬장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어찌나 미동도 없는 것이 꼭 안에서 잠긴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안 열어줄 거죠? 약 오르죠?”라면서 촐랑거립니다.]
냉장고로 타킷을 바꿔봤지만, 그쪽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텃세 부리는 온천 냉장고(S)’가 우리는 똥손이 함부로 이용할 수 있는 몸들이 아니라며 문 열어줄 생각이 없으니 당장 부엌에서 썩 꺼지라고 말합니다.]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동조하며 똥손 냄새 나니까 부엌에서 빨리 나가주라며 비아냥거립니다.]
[페널티 적용까지 남은 시간 : 25분 30초]
‘시간이 없는데……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남은 시간을 확인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정리하자면 이것들은 내 똥손이 칠색 팔색 할 정도로 싫다는 건데…….
‘그렇게 고약한 냄새가 날 정도라면 내가 얼마나 지독한 똥손인지도 알겠네?’
[‘텃세 부리는 온천 냉장고(S)’가 아니까 질색하지 않겠냐며 반문합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둘을 단번에 굴복시킬 만한 짧고 굵은 한 방이.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난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나 여기서 요리한ㄷ…….”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텃세 부리는 온천 냉장고(S)’가 활짝 열립니다.]
[‘콧대 높은 온천 찬장(S)’이 ‘날 가져요!’라고 외치며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