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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28화 (28/190)
  • 28화

    예쁘잖아요?

    ‘운수야, 어떻게 된 거야? 부적이 붙어 있는데 현정우가 어떻게 깨어난 거야? 부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니야?’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수면의 부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억울해합니다.]

    부적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면 현정우가 왜 눈을 뜬 거냐고.

    너무 놀라서 경직되어 있는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현정우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너무 팬이에요! 사인 한 장만 해주세…….”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현정우가 다시 뒤로 넘어갔다.

    그는 마치 깨어난 적 없다는 듯 다시 일정하게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설마 잠꼬대였냐…….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잠버릇도 요란하다”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네.

    꼼짝없이 정체가 들통나는 줄 알았잖아!

    잠꼬대까지 하는 걸 보니 현정우의 상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르니까 서둘러 돌아가자.

    “각인 해제.”

    내 주문에 부채와 귀걸이가 사라지고 머리카락이 본연의 색을 되찾았다.

    그럼, 준비는 다 끝났고.

    ‘운수야, 부적으로 잠든 사람을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난 걸치고 있던 사우나 가운을 둘둘 말아 가방에 구겨 넣으며 물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부적을 떼어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오케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 곧장 모두의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냈다.

    “박시우! 박지호! 다들 정신 좀 차려봐!”

    난 한없이 느긋한 얼굴로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그들을 흔들어 깨웠다.

    온천 사장으로 각성한 뒤에는 꼭 필요한 요리 실력은 안 늘고 쓸데없이 연기력만 는 것 같다니까.

    “아…….”

    가장 먼저 깨어난 건 박시우였다.

    쓰러지면서 부딪친 건지 박시우가 눈살을 찌푸린 채 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나를 봤다.

    “박수온? 여기는 저승인가?”

    헛소리하는 걸 보니 아직 잠이 덜 깼구만?

    말보다 행동으로 알려주는 게 빠를 것 같아서 손을 뻗어 박시우의 볼을 사정없이 꼬집었다.

    “악! 아파!”

    박시우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빨갛게 부어오른 볼을 매만졌다.

    “나 살아 있었어? 근데 우리 우나는?”

    일어나자마자 우나부터 찾다니 참으로 지독한 사랑이었다.

    아니지. 이 정도면 집착이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나가 박시우의 여자친구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저렇게 되어 있던데?”

    난 모르는 척 던전 바닥 한가운데에 방치된 우나를 가리켰다.

    “우나야! 원래대로 돌아온 거구나!”

    박시우는 눈 깜짝할 새에 자리에서 일어나 우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감동의 재회를 했다.

    저러라고 올려준 체력이 아니긴 한데, 행복하니까 됐다.

    “음, 시끄러워…….”

    박시우의 소란에 지호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지호야, 괜찮아?”

    공격을 받은 건 아니라 괜찮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지호의 안부부터 물었다.

    “맞다. 나 던전에서 보스랑 싸우고 있지 않았나? 누나가 우나한테 맞아서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나. 누나는 괜찮은 거야?”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자 지호가 유심히 내 상태를 살폈다.

    “응, 멀쩡해! 일어났더니 괜찮아져 있던데?”

    아무래도 지호는 부적이 붙은 시점부터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기억을 못하는 편이 낫지.

    나로서는 설명할 일이 줄어드는 거니까.

    이로써 이 일에 온천 사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거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모든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거다”라고 말합니다.]

    ‘뭐야? 그 의미심장한 말은? 그렇게 말하니까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잖아!’

    더 캐물으려고 했지만 그 후로 운수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시우 형이랑 정우 둘이서 SS급 보스를 해치운 거야?”

    “일단 난 아닌데.”

    지호의 물음에 어느샌가 잠에서 깨어난 정우가 하품을 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나도 이제 깨어난 참이라. 모처럼 꿈까지 꾸면서 잤네.”

    “그 말은 시우 형이 솔플을 했다는 거야?”

    놀란 지호가 눈을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박시우를 돌아봤다.

    “아니, 던전을 클리어 한 건 내가 아니야.”

    “그럼 누군데?”

    지호야, 그건 박시우도 모른단…….

    “온천 사장이지.”

    몰라야 하는데?

    박시우는 던전을 클리어 한 게 나라고 단정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보지도 못했는데.”

    양심에 찔린 난, 어색하게 웃으며 박시우를 향해 물었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져 있었다.

    “온천 사장이 흔적을 남기고 떠났거든. 그것도 대문짝만하게.”

    내가 놓친 게 있다고?

    사우나 복도 가방에 숨겼고 각인도 완벽하게 해제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들킬 만한 단서는 없었다.

    “아, 그러네. 이걸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잠자코 있던 지호까지 그 흔적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뭘 남겼는데?

    영문을 몰라 답답해 미치기 직전에 지호가 짧게 말을 덧붙였다.

    “전체 헌터 시스템창에 대문짝만하게 띄워놓고 갔는데.”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시스템창이 또?

    난 곧바로 시스템창으로 눈을 돌렸다.

    [‘온천 사장’이 던전 브레이크 <등급 : SS>의 최종 보스 ‘흑화한 사우나 통, 우나(SS)’를 무찌르고 최초로 SS급 던전을 클리어 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이제 가는 길마다 황금빛 명예가 따를 것이다”라며 미리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러니까 황금빛 명예 같은 건 트럭째 갖다줘도 싫다고!’

    * * *

    같은 시각, 수온은 시스템창의 농간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에 없던 명예를 얻음과 동시에 세간의 관심을 아낌없이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만큼, 익명 헌터 게시판에서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와 미쳤…….>

    * * *

    보란 듯이 SS급 보스 솔플 하고 다니는 온천 사장 클라스. ㅎㄷㄷ…….

    * * *

    └익명1 : 이번 던전 브레이크 SS급이라 협회 소속 헌터들도 죽을까 봐서 서로 안 들어가겠다고 미뤘다고 함.

    └익명2 : 국민 세금만 처먹는 헌터 협회 ㅅㄲ들! 사람 죽고 나서 출동할 거냐?

    └익명3 : 협회장 사퇴해라!

    └익명4 : 온천 사장님을 협회장으로!

    └익명5 : 솔직히 온천 사장님을 담기에는 협회가 너무 작다. 온천 사장, 온천국 세우자!

    └익명6 : 온천국 좋네. 세우자! 2222

    └익명7 : 제가 그곳의 첫 국민이 되겠습니다.

    └익명8 : 선 넘네. 내가 먼저다. 줄 서라.

    └익명7 : ‘익명7’이 이 댓글을 싫어합니다.

    <이번 SS급 던전 브레이크 일어난 곳>

    * * *

    박시ㄸ 박지누ㄸ네 집이라고 함.

    * * *

    └익명1 : 헐. 박시ㄸ랑 박지누ㄸ는 온천 사장님 실물 영접한 거임?

    └쓰니 : 그건 나도 알 도리가 없음.

    └익명2 : 닭도리탕.

    └쓰니 : ‘쓰니’가 이 댓글을 신고합니다.

    └익명3 : 근데 저번에 온천 사장 사진 찍은 것도 집필 아니었음?

    └쓰니 : 맞을걸? 집필 길드원이라고 들음.

    └익명3 : 집필이 온천 사장을 잘 찾아다니는 것임? 아니면 온천 사장이 집필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임?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집필하고만 엮이는데?

    └익명4 : 듣고 보니 그러네. 알고 보니 박시ㄸ네 여동생이 온천 사장?

    └익명5 : 또 집필덕후 납셨죠? 좋은 건 다 집필이랑 억지로 엮는 거 솔직히 꼴 보기 싫음. ㅋ

    └익명4 : 응. 니 얼굴.

    └익명6 : 거울 봤는데 못생겨서 화났죠?

    └익명5 : 응. 내가 절구로 빻아도 니 얼굴보다 나아.

    └익명7 : 급발진 오지네. ㅋㅋㅋㅋ

    └익명8 : 그래서 박시ㄸ 여동생은 왜 묻힘?

    본캐와 부캐 모두가 입방아에 오르게 된 장본인, 수온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이곳에서 지내는 건 무리 같지?”

    한쪽 벽면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집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나처럼 허망한 표정의 지호가 내게 물어왔다.

    “그렇겠지.”

    당장 수리를 한다고 해도 빨리 고쳐지진 않을 것 같았다.

    “나랑 지호는 당장 오늘부터 46층 뚫으러 가기로 해서 한동안 거기서 먹고 자야 할 것 같은데. 너 혼자 호텔 가서 지낼 수 있겠냐?”

    “아무래도 누나 혼자 두는 건 좀, 그냥 우리가 일정을 바꾸는 게…….”

    지호와 박시우는 나를 혼자 두는 게 영 불안한 눈치였다.

    하긴 최근에 기자들 출입도 있었고, 던전 브레이크도 일어났으니까 걱정할 만도 하지.

    하지만 함께 지내게 된다면 보는 눈이 있으니 내가 자유롭게 온천을 드나들지 못하게 된다.

    온천을 오래 비웠다가 이용권을 환불 당하면 곤란하니까.

    “됐어. 나 친구 집에 가 있으면 돼.”

    “너 친구 없잖아.”

    박시우가 팩트로 뼈를 때렸다.

    “있거든? 내 인간관계를 네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

    “친구 이름이 뭔데?”

    일단 발끈해서 큰소리치긴 했는데,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인생 다 부질없다. 박수온.

    하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박시우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온천으로 갈 명분도 필요하니까.

    순간 내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순이!”

    “사람 이름 맞아? 진짜 그런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고?”

    박시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내 친구 이름 깎아내리려는 거야? 우리 해순이 고슴도치처럼 까칠하고 츤데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친구거든?”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해순이라는 이름을 듣고 “멋진 작명 센스”라며 끅끅거리며 웃습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혹시 저거 내 이야기냐”고 묻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보고 있었나 보네.

    “진짜 갈 데가 있긴 한가 본데?”

    “있으니까 던전이나 가시지?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난 탑으로 가는 포털을 열고 기다리는 현정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친구 집 가 있을 테니까 걱정 마. 집 구하면 연락하고.”

    계속 일정을 미룰 수가 없었는지 박시우가 현정우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형님, 수온 씨, 다음에 또 봬요!”

    “빨리 안 가냐?”

    박시우의 따가운 시선을 못 이긴 현정우가 포털로 사라졌다.

    탑으로 갈 준비를 마친 박시우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돈 필요하면 연락할게.”

    “하여간, 박돈돈. ‘돈’ 자가 많이 들어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한결같이 정다운 인사에 박시우가 투덜거리며 포털로 들어섰다.

    “누나, 친구 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해.”

    “알았으니까 어서 가!”

    내가 등을 떠밀고 나서야 지호는 가까스로 포털에 들어섰다.

    “휴, 이제 끝났네.”

    포털이 닫힌 걸 확인한 뒤, 나는 목에 걸린 마스터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내 보금자리가 되어줄 곳으로 향하게 해줄 욕, 아니, 암호를 뱉었다.

    “시X!”

    * * *

    “해순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한테 그런 친구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네.”

    지호는 탑에 들어선 후에도 수온에 대한 걱정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우리가 박수온의 인간관계를 다 알 수는 없지. 지금은 46층 공략에 집중해. 잘못하면 다시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게 박수온한테 더 큰 죄를 짓는 거야.”

    “그래. 무사하게 돌아가야 누나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을 테니까.”

    부모님이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려 사라진 뒤로 방에 틀어박혀 죽은 것처럼 살던 수온. 그 암울했던 기억을 떠올린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드 준비를 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진짜 지독한 남매애라니까. 하긴 직접 보니까 신경이 쓰이긴 한다만.”

    “네가 뭔데 박돈돈을 신경 써?”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정우가 능글맞게 웃으며 던진 말에 박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예쁘잖아요?”

    “야, 너 저리 꺼져! 너 앞으로 박돈돈한테 접근 금지인 줄 알아.”

    현정우의 저 간단명료한 답에 흥분한 박시우가 긴 다리로 발길질을 해댔다.

    “아이고. 무서워라! 이대로 길드에서 제명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씀하신 대로 꺼져 있다가 시간이 되면 돌아오겠습니다, 형님.”

    느긋하게 움직이면서도 박시우의 발놀림을 피해낸 한정우가 순순히 그에게서 멀어졌다.

    탑의 귀퉁이에 기대어 선 한정우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들었다.

    “관심이 가지 않을 리가.”

    현정우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화면 속에는 헌터 게시판에 올라온 수온의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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