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26화 (26/190)

26화

끼에에에엑!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수면 부적’을 사용합니다.]

[‘수면 부적’의 효과로 해당 부적이 붙은 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잠깐 사이에 난리가 났었네. 다들 나한테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이때까지 관심 없는 척한 거였구나?’

[성좌 ‘저승의 염라’가 “사장이 죽으면 온천 문이 닫히는 걸 걱정하는 것뿐”이라며 담뱃대를 입에 물며 말을 아낍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이 창을 좋아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이 창을 좋아합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이 창을 좋아합니다.]

‘아, 예……. 그러시겠죠.’

난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부채!”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각인이 발현됩니다.]

성좌의 부채를 불러내자 세트인 귀걸이가 함께 나타나며 전처럼 머리가 은발로 변했다.

역시 은발은 아직 어색하단 말이지.

꼭 구미호가 된 기분이랄까?

이제 이걸로 우나만 정리하면 모든 게 끝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어디선가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에에에엥! 우에에에엥!”

난동을 잠재우기 위해 부채를 소환한 것이 무색하게도, 우나는 쓰러진 박시우를 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설마, 지금 박시우 때문에 우는 건 아니겠지?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팰 때는 언제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우나를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지긴 했다.

사실 우나가 저리 화가 난 데에는 내 잘못도 있으니까.

‘우나를 원래대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들 봤으니 알겠지만, 원래는 낡고 평범한 사우나 통일 뿐이었거든.’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귀찮은데 그냥 보내버리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나도 그편이 편한 건 아는데, 박시우 때문에 서럽게 우는 걸 봐버린 이상 내 손으로 없애버리면 꿈에 나올 것 같아.’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완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합니다.]

‘역시 운수야. 뭔가 아는 게 있어?’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해령의 부채에 모든 생명체를 본연의 상태로 되돌리는 스킬이 있다”고 귀띔을 해줍니다.]

내가 알기로 1단계 스킬에는 그런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 개방되지 않은 스킬 중에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몇 단계 스킬인지 알고 있어?’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2단계 스킬”이라고 말합니다.]

2단계면…… 해볼 만도 한데?

난 곧장 친밀도 퀘스트 창을 켰다.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1)]

[성좌 ‘온천의 지배자’와 10초간 손잡기 (0/10초)]

[성공 시 보상 : 친밀도 100]

그냥 손만 잡고 10초를 버티면 친밀도 100을 얻을 수 있다는 거잖아.

[2단계 스킬 개방까지 필요한 친밀도 0/300]

분위기로 봐서는 2단계 스킬 개방을 위한 친밀도 퀘스트는 계속 이 정도 수준일 것 같은데.

인공호흡 수준이었지만, 입도 맞춘 사이인데 까짓것 어려울 것 없지.

그런데 던전 안에서는 마스터키가 통하지 않으니까…… 일단 해령이 옆에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고심하던 그때, 내 머릿속에 성좌의 부채와 귀걸이 세트 효과가 반짝하고 떠올랐다.

‘맞아! 각인이 있으면 성좌를 소환할 수 있다고 했었지?’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갑자기 소환 이야기가 왜 나오냐”며 당혹스러워합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소환할 생각이면 멈춰”라고 말립니다.]

‘내가 왜 멈춰?’

“해령 소환!”

반항심이 인 나는 해령을 소환하는 주문을 외쳤다.

“악!”

희뿌연 안개와 함께 해령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향해 비명을 냅다 내질렀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웃겨 죽겠다며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굽니다.]

재밌는 구경거리라는 게 이거였냐…….

온천욕을 하고 있었던 건지 해령은 얇은 천으로 된 가운만 걸친 채로 있었다. 소환된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소환되어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해령이 황급히 몸을 가렸다.

물에 젖은 탓에 언뜻 속의 다부진 몸이 비쳤기 때문이다.

“너 왜 벗고 나타나는 거야?”

물에 젖은 남자를 보는 건 또 처음이라 감회가 아주 남달랐다.

“그러게 내가 소환하지 말라고 경고했잖아!”

그게 이런 뜻인지는 몰랐지…….

“일단 알겠고…… 온 김에 네가 우나 좀 원래대로 돌려주고 가면 안 돼?”

해령이 해줄 수 있다면 굳이 어렵게 친밀도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성좌는 계약자에게 힘을 빌려줄 수는 있지만, 던전이나 탑에서 나오는 존재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전에 샤레니안도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론은 거저먹는 건 안 된다는 거네.

“알겠어. 그럼 이제라도 옷 좀 챙겨 입는 게 어때?”

“그렇게 노골적으로 훑어보지 말란 말이다!”

단지 옷을 입으라는 의미였는데, 오해를 사고 말았다.

“네가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할까 봐 말해두는데 다른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으니 꿈에서 깨도록 해라.”

다른 생각은 네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관심도 없거든?”

“우에에엥! 우에, 꾸에, 꾸에에엑…….”

해령이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정신이 쏠려 있던 도중에, 우나의 울음소리가 묘하게 변한 것이 나의 의식을 깨웠다.

[‘버려져서 점 찍고 돌아온 사우나 통, 우나(SS)’가 주인을 해쳤다는 죄책감에 절망에 빠집니다.]

알림 문구 뒤로 검은 해골 형상이 우나를 감싸더니 순식간에 몸 안으로 침투했다.

“끼에엑! 끼에에엑!”

우나의 눈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며 괴기한 웃음소리를 냈다.

[‘버려져서 점찍고 돌아온 사우나 통, 우나(SS)’의 절망 속으로 사악한 혼령들이 깃들어 흑화합니다.]

[‘흑화한 사우나 통, 우나(SS)’가 포악해집니다.]

흑화한 우나가 글러브 낀 손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젠장! 너 때문에 밍기적 대는 바람에 우나가 흑화했잖아!”

그사이 도포를 걸쳐 입은 해령이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을 말자! 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뭐지?”

“아,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이렇게 된 이상 2단계 스킬을 열지 않으면 안 되겠어. 우선 빠르게 퀘스트를 완료해야 했다.

“손!”

“뭐?”

“빨리! 손!”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 손을 내밀자 해령이 내게로 손을 건넸다.

나는 그 손을 덥석 붙잡았다.

“뭐…… 이게 갑자기 뭐 하는 짓이지?”

대뜸 성질부터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해령은 이 상황이 당혹스러웠는지 말을 더듬었다.

‘이대로 10초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신경은 온통 퀘스트에 쏠려 있었다.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1)]

[성좌 ‘온천의 지배자’와 10초간 손잡기(9/10초)]

마지막 1초!

[2단계 스킬 개방 친밀도 퀘스트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1)’를 완료했습니다. 친밀도 100을 획득합니다. 다음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수락!

망설이다가는 곧 우나에게 잡힐 것 같았기에 나는 두 번 생각 않고 빠르게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2)]

[성좌 ‘온천의 지배자’와 손깍지 끼기 (0/1)]

[성공 시 보상 : 친밀도 100]

얼씨구? 이젠 손깍지야?

무슨 놈의 퀘스트가 이렇게 스킨십에 집착을 해?

하지만 그걸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던 나는 곧장 해령을 돌아보며 외쳤다.

“다시 손!”

“지금 누구 똥개 훈련 시키는 건가?”

날 보는 해령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뒤에 보스 쫓아오는 거 안 보여? 이대로면 나 죽어! 빨리 손!”

짜증을 내면서도 해령은 내게 손을 내어줬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손깍지를 꼈다.

이번에는 필시 욕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해령은 조용했다.

그새 손잡는 것에 적응한 모양이었다.

하긴 몇천 년 된 용의 힘이 깃든 성물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셀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을 텐데, 손잡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

입으로 숨을 불어 넣어주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했잖아.

오히려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게 더 이상하지.

[2단계 스킬 개방 친밀도 퀘스트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2)’를 완료했습니다. 친밀도 100을 획득합니다. 마지막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수락! 이제 마지막이다!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3)]

[성좌 ‘온천의 지배자’ 심쿵하게 만들기 (0/1)]

[성공 시 보상 : 친밀도 100]

친밀도 퀘스트라며!

그런데 왜 여기서 심쿵이 나와?

마지막 퀘스트 내용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번뜩 생각이 스쳤다.

클리어 하기는 틀렸다.

사포 같은 데다가 나이만큼 경험도 많을 저 까칠이의 심장을 풋내기인 내가 쉽게 뛰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자포자기하려는 그 순간.

[2단계 스킬 개방 친밀도 퀘스트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3)’를 완료했습니다. 친밀도 100을 획득합니다.]

[2단계 스킬 ‘태초의 바람(SS)’이 개방됩니다.]

클리어라고? 진짜?

나 뭐 한 게 없는데?

놀란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툭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토마토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는 해령이 보였다.

* * *

캄캄한 어둠 속을 환하게 밝히며 피어오르는 양초 하나.

심지에 피어오르는 불꽃 속에서 얼굴이 붉어진 해령과 그를 당혹스럽게 바라보는 수온의 모습이 비쳤다.

“재미있는 구경이 될 줄 알았는데.”

빛나는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입가에 드리워져 있던 장난스러운 웃음이 가뭄이 난 땅처럼 메말라갔다.

“불쾌해.”

금실 같은 머리카락 아래로 푸른색과 붉은색의 신비로운 눈동자를 담은 눈매가 일그러지며 촛불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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