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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25화 (25/190)
  • 25화

    우에에엥!

    우나라면 설마 박시우의 애착 사우나 통 ‘우나’?

    집 베란다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을 때 우나가 있던 바닥도 함께 암흑에 빠지긴 했었지.

    그때 같이 던전에 휩쓸린 건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우나 통이 최종 보스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베카, 던전 최종 보스 내가 가지고 있던 사우나 통 맞아?’

    [‘탑의 주인’은 46층에 찾아온 헌터들로 인해 부재중입니다.]

    맞아. 베카는 46층 보스이기도 했지.

    지금이면 아마 흰 수염 영감의 피로가 싹 풀려서 문이 개방되었을 테니 한창 바쁘겠지.

    “저 무늬, 우리 우나랑 똑같아.”

    박시우가 보스 몬스터의 몸체에 새겨진 우주와 행성 무늬를 유심히 살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시우는 겁도 없이 보스에게로 다가가 몸을 낮춰 사우나 통의 아랫부분을 들여다봤다.

    “있어. 내 이름. 진짜 우리 우나가 맞아!”

    보스가 자신의 우나임을 깨달은 박시우의 낯빛이 환해졌다.

    “그런데 어쩌다가 던전의 보스가 되어버린 거야? 버려졌다는 건 또 무슨 말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워하는 박시우를 보니 주인 허락도 없이 멋대로 흰 수염 영감에게 사우나 통을 빌려줬던 지난날이 떠올라 양심이 찔렸다.

    설마 흰 수염 영감한테 빌려준 걸 버렸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난 버린 게 아니라 잠시 대여해주고 찾아올 생각이었는데.

    박시우가 나서서 찾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우에에엥!”

    [자신을 버린 전 주인을 본 ‘버려져서 점 찍고 돌아온 사우나 통, 우나(SS)’가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우나는 자신을 버린 게 박시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시뻘게져서 분노했다.

    사우나 통을 몸체 삼아 양옆으로 튀어나온 손에 빨간 글러브를 끼고 휘두르는 것이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위협적이었다.

    ‘저거 맞으면 이가 옥수수 알 털리듯이 날아갈 것 같은데?’

    난 맞은 것도 아닌데 이가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사우나 통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혹시라도 우나가 자신을 버린 것이 나라는 걸 기억해내면 곤란하니까.

    “시우 형! 그건 형이 아는 우나가 아니야! 당장 보스한테서 물러서!”

    경계는커녕 우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박시우에게 지호가 경고하듯 소리를 쳤다.

    하지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박시우는 오히려 보스에게 다가갔다.

    “우나야, 내 이야기를 좀 들어봐. 내가 너를 제대로 관리 못해서 잃어버린 건 맞지만, 절대 버릴 생각은 없었어! 오빠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잖…….”

    박시우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우나가 글러브로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 것이다.

    하여간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우나에게 세게 한 방 얻어맞은 박시우는 코피를 쏟으며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박시우, 이 멍청아! 지금 네 앞에 있는 건 네 애착 사우나 통이 아니라 SS급 보스라고! 꼭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겠냐?”

    “아니야, 당장은 화가 나서 그렇지. 우나라면 분명 내 말을 들어줄 거야. 나랑 함께한 시간이 몇 년인데. 잃어버린 건 내 잘못이니까 우나가 이렇게 화낼 만도 해.”

    “야! 계속 두들겨 맞다가는 진짜 골로 가는 수가 있다니까?”

    내 만류에도 박시우는 손등으로 코피를 훔치더니 재빨리 일어나 우나를 향해 두 팔을 양옆으로 펼쳤다.

    “우나야, 난 괜찮으니까 화가 풀릴 때까지 쳐.”

    진짜 미친놈인가?

    왜 던전에서 최종 보스하고 청춘물을 찍고 앉아 있어?

    차마 내 호적 메이트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우에에엥!”

    “오빠는 정말 괜찮으니까 마음 약해질 필요 없…….”

    “우에에에엥!”

    이번에도 박시우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약해질 마음 같은 것도 없는지 우나가 두 손을 모아 사정없이 그를 찍어 내린 것이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박시우가 다시 한 번 나가떨어졌다.

    저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과격한 광경에 멀찍이서 바라만 보던 나도 슬슬 상황이 심각해지는 걸 감지했다.

    “형! 미쳤어? 그걸 그냥 맞고만 있으면 어떡해?”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건지 지호가 쓰러진 박시우에게 달려가 가드를 쳤다.

    박시우,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니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전부 죽는다고요?”

    황당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현정우가 재킷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어째 내 주변에는 하나같이 또라이들만 가득한 건지.

    절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긴 한데, 보스가 SS급이라 각인을 발현한다고 해도 혼자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게다가 던전이라고는 오늘 처음 들어와봤으니 하급 몬스터와도 싸워본 경험이 없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온천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필요하다면 마음 놓고 각인을 발현할 수 있게 보는 눈들을 없애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무슨 속셈이야? 순순히 날 돕겠다고 나서고?’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모처럼 정상적인 성좌 역할을 하려는 운수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요즘 부쩍 눈치가 빨라졌다”며 “널 도우면 재미난 구경거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말합니다.]

    무슨 점괘가 나왔길래 저렇게 선뜻 날 돕겠다고 나서는 거지?

    ‘설마 내가 죽는 걸 재미난 구경거리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 참 다행이네. 생각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어서.’

    다행히 본인도 자신이 정상이 아니란 건 아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가 각성자라는 걸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다는 거지?

    ‘단,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해.’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귀찮긴 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구경거리니까 들어주겠다”며 미소 짓습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왠지 웃는 게 기분 나쁘다”며 불쾌해합니다.]

    나도 좀 찜찜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일단 내가 우나한테 공격당해서 쓰러지는 걸 보여준 뒤에 뭐든 해.’

    만약을 대비해서 핑곗거리가 될 만한 스토리 하나쯤은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왜 귀찮은 일을 사서 하냐”며 의문스러워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그래도 이편이 비밀스럽기도 하고 스릴 있지 않냐”며 짜릿하다고 합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저 자식은 취향도 변태 같다”며 꺼림칙하게 여깁니다.]

    ‘자, 그럼 어디 달려들어볼까?’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쟨 또 왜 갑자기 급발진해서 폭주 기관차처럼 드릉드릉거리냐”며 불안해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넌 E급 각성자고 사우나 통은 SS급 보스라는 걸 잊지 마”라며 경고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충고는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운수야,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어딘가 불안한 얼굴로 의문을 표합니다.]

    ‘내가 죽는 걸 즐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라고.’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이런 미친★☆☆★”이라며 “당장 그만두지 못하냐”며 욕을 쏟아냅니다.]

    “진상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해! 이 박시우 같은 사우나 통아! 네가 죽나 내가 죽나 어디 한번 해보자!”

    모두가 방심한 것을 틈타 나는 다짜고짜 사우나 통에게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뒤늦게 여기저기에서 나를 만류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이미 화가 난 우나에게 내려 찍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였다.

    “박수온! 우나야, 아무리 너라도 내 동생을 건드리는 건 못 참아.”

    박시우가 얼음으로 된 총을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세 장의 부적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이마에 척 달라붙었다.

    동시에 그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제 정리된 건가?

    쓰러진 척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나는 슬며시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다들 정신을 잃고 잠든 상태였고, 그들의 주변으로 황금빛 결계가 씌워져 있는 게 보였다.

    상황을 살핀 난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눈앞을 지나간 문구들을 살폈다.

    내가 보스에게 대책도 없이 달려들었을 때, 한꺼번에 떠오른 창들이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불사의 방패’로 나의 방어력을 일시적으로 ???????만큼 상승시킵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보호의 결계’를 치는 주술을 외웁니다.]

    [‘보호의 결계’ 힘으로 필드 내 사람들은 일정 기간 보스의 타격을 입지 않습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각인을 통해 계약자를 대신해 타격을 입습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저승사자에게 오늘 자 망자 명부에서 ‘박수온’이라는 이름은 빼라고 지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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