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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23화 (23/190)
  • 23화

    꽤애애액!

    베카가 던전을 생성한다는 게 이런 뜻이었어?

    그래, 던전 브레이크 정도는 발생해줘야 베란다가 날아간 게 설명 가능하다는 건 잘 알겠어.

    손으로 눈을 비빈 나는 다시 한 번, 창 안의 문구를 확인했다.

    [!!주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등급 : SS>]

    눈을 씻고 봐도 S가 두 개인 건 변하지 않았다.

    ‘베카, 던전 생성할 능력이 있는 거면 클리어 하기 쉽게 난이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한 거 아냐?’

    [‘탑의 주인’이 “난이도 조절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던전 등급이 왜 때문에 SS인 건데?

    [‘탑의 주인’이 “그래서 놀이터 수준으로 준비했다”며 칭찬을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살랑입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SS등급이 놀이터가 될 수 있는 거야? 지금 랭킹 1위 헌터가 S급인데!’

    [‘탑의 주인’이 충격받은 얼굴로 “어떻게 1위가 S급 헌터일 수가 있냐”면서 세상이 말세라고 한탄합니다.]

    ‘지구상에 처음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세상은 말세였다고!’

    날 바라보는 박시우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박시우 얼굴이 저렇게까지 새파랗게 질리는 건 처음 보네.

    내게는 아주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부모님이 실종된 날 이후로 박시우가 내 앞에서 진심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박시우, 지금 표정 개웃겨.”

    사실 난 급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이 던전 브레이크를 만든 사람이 베카고.

    내게 해령의 각인이 있는 한, 그는 나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던전에 들어가서 각인을 발현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성좌들을 달달 볶아보지, 뭐.

    이 모든 계획을 가능하게 하려면 나 혼자 조용히 던전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누가 보는 데에서 각인을 발현시켰다가는 내 존재가 만천하에 들통날 테니까.

    [!!경고!! 잠시 후,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려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남은 시간 : 2초>]

    이제 2초만 버티면…….

    “젠장! 박수온! 기다려!”

    암흑에서 얼굴만 겨우 내놓고 있는 날 지켜보던 박시우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포기하고 얌전히 헌터 구조대를 기다릴 생각인가 보네.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칭찬해주려는 그때, 박시우가 돌연 속도를 붙여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꼭 내게로 돌진하는 것 같잖아.

    설마 던전 브레이크로 함께 뛰어들려고?

    그건 안 돼!

    박시우가 오면 내 모든 계획이 틀어져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로 인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어쩌면 박시우가 다치게 될지도 모른다.

    “박시우! 오지 마! 저리 꺼지라고!”

    “누나!”

    “저도 같이 가요!”

    박시우가 선두로 나서자 지호와 어딘가 익숙한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동시에 뒤를 따라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다들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제발 꺼지라고! 이거 SS급 던전 브레이크라고! 여기 오면 너희 다 같이 황천길 가는 거라고! 시X!”

    [‘온천 마스터키(EX)’의 암호와 일치합니다.]

    [히든 필드 ‘온천(EX)’으로 이동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절박한 와중에도 내 마스터키는 착실히 일했고,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힘차게 던전 브레이크 속으로 뛰어들었다.

    “누나만 두고 어떻게 가! 죽어도 같이 죽자!”

    지호가 나를 부둥켜안으며 애절하게 소리쳤다.

    난 죽기 싫다고!

    동시에 남은 시간이 0으로 변했다.

    [던전 브레이크 <등급 : SS>로 이동합니다.]

    * * *

    “아야야…….”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린 난, 목욕탕에서 본 것 같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 부딪힌 엉덩이를 매만지며 일어났다.

    “현정우, 포털부터 열어봐.”

    갑작스럽게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린 건데도 박시우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에 연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선한 인상의 남자가 두 손을 허공에 펼치며 무언가를 시도했다.

    저 사람이 현정우구나.

    박시우와 지호를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S급 헌터의 기준은 얼굴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건 아닌가 보네.

    현정우는 강아지상의 준수한 외모였는데, 그중에도 말티즈처럼 작은 강아지 같은 온순한 느낌이 강했다.

    “역시 포털을 생성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뜨네요. 스킬이 S급이라 SS급 던전에서는 먹히지 않는 것 같아요.”

    정우가 면목이 없다는 듯이 머리를 매만지며 박시우를 향해 웃어 보였다.

    게다가 이 미성,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46층에서 내게 온천 사장이냐고 물었던 목소리였다.

    즉, 헌터 게시판에서 나한테 욕을 구걸하던 글을 쓴 사람도…… 이 남자라는 거야?

    주접 범벅이던 글하고는 매칭이 안 되는 얼굴이었다.

    “포털을 생성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SS급 최종 보스를 잡아야만 이 던전에서 나갈 수 있다는 건가?”

    곤란하다는 듯, 박시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봐. 일이 어려워졌잖아!

    내 몸 하나 감당하는 것도 벅찬데 졸지에 짐이 세 개나 늘어버렸다.

    “그러게 내가 오지 말라고 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지! 무작정 따라 들어와서 어쩌려고?”

    답답해진 난 모든 상황을 주도한 박시우를 향해 따지듯 소리쳤다.

    “그럼 너 혼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서 죽게 놔둬?”

    “그래. 그렇게 놔뒀어야지. 그랬으면 적어도 세 사람은 살았을 테니까. 이렇게 하면 내가 같이 황천길 가줘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 줄 알았어?”

    “박수온, 개소리하지 마.”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박시우가 화가 난 듯 내 양어깨를 붙잡은 채 으르렁거렸다.

    화를 내긴 했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박시우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구하려고 했을지.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리는 날 보면서 부모님처럼 속수무책으로 날 잃을까 두려웠겠지.

    하지만 그 바람에 모두가 위험해졌으니 옳은 선택을 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넌 내가 빌려준 돈 다 갚기 전엔 못 죽어.”

    이어진 박시우의 말 덕분에 나의 감성은 산산이 조각났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이 정도면 사채업자 수준 아니냐”며 배를 잡고 웃습니다.]

    그게 목적이었냐?

    “난 용돈 받은 적은 있어도 돈 빌린 기억은 없는데?”

    “난 용돈을 준 적이 없는데? 통장에 기록 다 남아 있다.”

    어쩐지 큰돈을 덥석덥석 던져준다고 했어.

    그래도 그렇지, 쪼잔하게 백수 동생한테 그간 가져간 돈을 다 갚으라고 하다니.

    “그러니까 일단 살아.”

    “살면 용돈으로 쳐주나?”

    “그래,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

    의외로 박시우는 순순히 내 꼼수에 넘어왔다.

    이건 박시우 나름의 표현이겠지. 더 이상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니까.

    뭐, 어쨌든 빚도 청산해주겠다는데 살아야 하지 않겠어?

    애초에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야.

    “지금 SS급 보스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나하고 형뿐인데, 클리어가 가능할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면 시도라도 해보는 게 낫지.”

    지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박시우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앞장을 서서 걸어 나갔다.

    하긴 현정우가 S급 헌터라고는 해도 포털을 여는 재주밖에 없으니 보스를 잡는 건 둘이 도맡아야겠네.

    정 안 될 것 같으면 내가 각인을 쓰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박시우를 따라 타일 바닥 위를 걸어가자 양옆으로 비어 있는 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 속 필드 ‘메마른 목욕탕’으로 진입합니다.]

    [수상한 기척에 잠들어 있던 존재들이 깨어납니다.]

    무언가 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저편에서 노란 물체가 통통 튀어나왔다.

    “지호야, 준비해라. 박수온, 넌 내 뒤로 붙어.”

    못 미덥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형, 저는요?”

    “넌 알아서 살아.”

    “길드장 형, 매정해.”

    박시우에게 거절당한 현정우가 우는 소리를 내며 지호와 나란히 서서 물체를 주시했다.

    “꽥!”

    그런데…… 저 노란색 물체.

    꼭 오리 인형처럼 생겼는데?

    “뭐야? 저거 장난감 오리 인형이야?”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던 건 아니었는지 정우가 제 몸만 한 오리를 향해 겁도 없이 다가갔다.

    “어릴 때 목욕하면서 욕조에 이런 오리 한 마리 띄워놓고는 했었지. 귀여워라!”

    정우가 손을 뻗어 오리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 때였다.

    “꽤애애애액!”

    오리가 귀가 찢어질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심기가 뒤틀린 장난감 오리 인형(S)’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경우 고막 테러 데미지를 입습니다.]

    “악!”

    무방비 상태로 오리에게 공격당한 현정우는 종이 인형처럼 비틀거리다 바닥에 픽 쓰러졌다.

    아무리 오리 인형이 S급이라지만, 같은 등급 헌터가 저렇게 맥없이 당할 일인가?

    “형, 괜찮아?”

    지호가 큐브가 달린 거대한 지팡이로 보호막을 치며 쓰러진 정우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 틈을 노린 박시우가 오리 인형을 순식간에 얼려서 깨부쉈다.

    나이스! 박시우!

    꽤 믿을 만하잖아?

    “이제 된 건가?”

    호적 메이트가 기대 이상의 실력을 가진 것에 안도하던 그 순간, 맞은편 어둠 속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마치, 수많은 눈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는 그때였다.

    [!!경고!! ‘심기가 뒤틀린 장난감 오리 인형(S)’이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경고 메시지와 함께 저편에서 마빡이 빨개진 오리 인형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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