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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22화 (22/190)

22화

!!주의!!

잔잔한 바람이라며…….

난 뼈대만 남은 베란다를 공허한 눈으로 바라봤다.

한순간에 건물을 가루로 만드는 게 어떻게 잔잔한 수준이냐고!

그나마 다행인 건 콘크리트가 말 그대로 먼지 조각이 되어 사라졌기에 떨어지는 잔해가 없어 더 큰 사고가 초래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대체 부채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부채질 한 번에 베란다가 분쇄기에 갈린 종잇장처럼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거야?

부채의 위력을 실감한 나는 시스템창을 켰다.

[온천 지배자의 부채(EX)]

[수천 년간 온천 용의 힘이 깃든 부채. 성좌 ‘온천의 지배자’와 각인을 새긴 계약자만이 착용할 수 있다.]

[고유 스킬(장비 착용 시에 사용 가능)]

[1단계 스킬 : 잔잔한 바람(S)]

[2단계 스킬 : 자물쇠]

[3단계 스킬 : 자물쇠]

[맥스(Max) 스킬 : 자물쇠]

……EX급 부채였어?

성물이니까 보통 물건은 아닐 거라고 예상했지만, 1단계 스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잔잔한 바람의 위력은 대단했다.

게다가 1단계 스킬이 S급이면 다음 단계들은 등급이 어떻다는 거야?

헌터들이랑 성좌는 급이 다르다는 게 새삼 실감 나네.

남몰래 감탄하고 있는데 불현듯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2단계 스킬 개방까지 필요한 친밀도 0/300]

친밀도는 뭐지?

[자물쇠를 눌러 퀘스트 수행을 통해 친밀도를 올리면 고유 스킬 개방이 가능합니다.]

설명에 따르면 친밀도를 올려야 윗 단계의 스킬 개방이 가능하다는 것 같은데.

무기랑 친밀해져야 한다는 건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왕이면 강한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자물쇠를 눌렀다.

[2단계 스킬 개방 친밀도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당연히 수락이지!

[2단계 스킬 개방 친밀도 퀘스트 진행을 수락하였습니다.]

[2단계 스킬 개방 친밀도 퀘스트가 개방됩니다.]

[성좌와 친해지길 바라!(1)]

[성좌 ‘온천의 지배자’와 10초간 손잡기 (0/10초)]

[성공 시 보상 : 친밀도 100]

뭐? 내가 누구랑 손을 잡는다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성좌 ‘온천의 지배자’면 틀림없이 해령이다.

친밀도를 올리라는 게 장비 숙련도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친밀도였어? 그것도 성좌하고?

심지어 퀘스트 이름 끝에 ‘(1)’이 들어갔다는 건 다음도 있다는 뜻이겠지.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응, 영원히 2단계 스킬은 열릴 일 없어.

응, 아직 이 세계는 S급 스킬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어.

나는 잔잔한 바람에 내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부채가 이 정도면 귀걸이는 어느 정도일까?

아무 기대감 없이 확인한 부채의 능력이 사기 수준이라 귀걸이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커졌다.

[온천 지배자의 귀걸이(EX)]

[온천 용의 힘이 깃든 천에 천년의 여의주로 장식을 달아 만든 귀걸이.]

[고유 스킬(장비 착용 시에 사용 가능)]

[패시브 스킬 ‘예쁜 게 최고야. 짜릿해’ 적용]

패시브 스킬 이름 상태가 왜 때문에?

충격적인 스킬 이름에 잠시 멈칫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효과를 확인했다.

[패시브 스킬 ‘예쁜 게 최고야. 짜릿해’ 효과로 고귀함과 매력이 상승하고 외모에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인기도가 상승한다.]

어쩐지 푸석한 피부가 깐 달걀처럼 부드러워졌더라니.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

평소에는 동네에 돌아다니는 백수1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만화를 찢고 나온 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투명한 은발에 눈동자 색까지 변한 탓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달까?

내 입으로 말하니까 민망하긴 하네.

해령의 반짝반짝 빛나는 꽃 미모 비결도 이거였나?

부채 능력만으로도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더 나아가 귀걸이는 착용하기만 해도 외모까지 상승시켜준다니……. 왜 성좌들 인물들이 하나같이 반반한지 빠르게 납득해버렸다.

그래, 다 같은 또라이여도 이왕이면 잘생긴 게 낫지.

눈요깃거리라도 생기는 거잖아?

그래도 부채에 비하면 좀 약소하긴 하지만.

시스템창을 끄려는 순간, 구석에 적힌 작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성물 ‘온천 지배자의 부채’와 함께 착용 시 세트 효과 있음. (?)]

세트 효과면 중요한 거 아닌가?

왜 이것만 작게 써놨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새끼손가락으로 겨우 누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물음표를 눌렀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 소환 가능(주문 ‘성좌 이름 소환’)(하루 1회 사용 가능)]

[소환 시 성좌 ‘온천의 지배자’는 거부할 권한 없음.]

내용을 읽어보니까 왜 작게 쓰여 있었는지 알겠네.

해령의 짓이 분명했다.

소환을 거부할 수 없으니까 최대한 감추려고 한 거겠지.

거부할 권리가 없는 소환은 못 참지!

해령을 약 올릴 거리가 생기자 나도 모르게 사악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러나 통째로 뜯겨 나가버린 베란다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빠르게 현실을 자각했다.

그 전에 이것부터 수습해야 하는데…….

아니, 애초에 이게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맞긴 한 거야?

하지만 보자. 바리스타에, 약 제조에, 수맥 찾기까지……. 지금도 흔한 온천 사장의 영역을 지나치게 넘어서긴 했지.

난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영계야, 무너진 집을 복구하는 약도 있을까?’

[가이드 ‘영계’가 “세상에 그런 약이 어디 있냐”고 황당해합니다.]

‘약이 아니어도 괜찮아. 뭐 없을까?’

[가이드 ‘영계’가 “아무리 EX급 온천이라도 그런 재주는 없다”며 “집 짓는 문제는 건설업자를 찾아가라”고 말합니다.]

모처럼 영계는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고, 동시에 내 희망의 불씨는 힘없이 꺼졌다.

이제 다 끝난 건가…….

무력감에 허탈해 있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방대원입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여기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계시면 잠시 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어쩐지 조용한 게 이상하다고 했다.

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가 없지.

지금 대답하면 문을 열어야 하고, 그러면 베란다가 부서진 경위도 설명해야만 한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 없을까?

밥솥이나 충전기가 터졌다고 할까? 근데…… 밥솥 때문에 베란다가 산산조각이 날 수 있어?

내가 밥솥하고 친한 건 아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겠다.

집이 너무 오래됐다고 할까?

그러기엔 누가 봐도 신축 건물인 데다가 내부 자재들이나 건축 구조까지 우수하다는 평으로 주변보다 시세가 높은 아파트였다.

나 하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피해 보게 할 수는 없지.

“혹시 건물 붕괴로 못 움직이는 상태라면 목소리나 물건을 두드려서 신호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움직일 순 있는데 말 못할 사정이 있으면 어쩌죠?

“대답이 없으시면 남은 폭발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을 강제로 개방하겠습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곧 열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그 와중에도 수긍이 갈 만한 변명거리는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여기 집주인인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자 문밖이 잠시 고요해졌다. 이 목소리는 분명 박시우였다.

근데 박시우…… 46층에서 온천 사장 나타날 때까지 버티고 있는 거 아니었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곳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했습니다. 일단 밖에서 살펴봤을 땐 베란다 쪽 벽면이 뚫려 있는 게 보여서 혹시나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을 개방하려는 중입니다.”

그렇구나. 소방대원님은 상황을 다 알고 오신 거였어.

밖에서 보면 우리 집 베란다만 뚫려 있을 테니까 알 수밖에 없었겠지.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요? 안에 우리 누나가 있을 텐데. 누나한테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지호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아직 안에 폭발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장비 없이 안으로 들어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려는 걸 소방대원이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는 둘 다 S급 헌터니까 괜찮습니다. 여기 헌터 면허증입니다. 확인하셨으면 뒤로 물러나세요.”

박시우의 말을 끝으로 더는 소방대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이어 현관문이 얼어붙는 게 보였다.

아마도 성질 급한 박시우가 문을 통째로 깨부술 생각인 것 같았다.

소방대원까지 출동한 이 마당에 문이 열린다면, 모든 매체가 ‘온천 사장이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아파트 베란다를 날려먹었다’고 떠들어댈 게 뻔했다.

“각인 해제.”

일단 급한 대로 각인 상태부터 풀었다.

물론 여전히 베란다는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었다.

‘누구든 베란다가 뜯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를 만들어주면 내가 진짜 찐하게 사랑해줄게! 그러니까 뭐든 좀 해봐!’

이제 믿을 건 성좌들뿐이었다.

[성좌 ‘운수를 믿습니까?’가 “그건 돕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이참에 정체를 드러내고 최고가 되어보자”며 불사검을 뽑아 듭니다.]

‘도로 넣어! 이 도움 안 되는 성좌 새X들아!’

“박수온! 괜찮아?”

순식간에 문을 깨부수고 박시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탑의 주인’이 “방금 한 맹세를 잊지 말라”고 내게 당부하며 던전을 생성합니다.]

‘응? 던전을 어쩐다고?’

동시에 지반이 흔들리더니 베란다 쪽에서 암흑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주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등급 :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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