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우나 집착광공
“다른 데다 둔 거 아니야? 잘 생각해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박시우를 보며 지호가 침착하게 물었다.
“아니야. 근래에 탑 뚫으러 다닌다고 사우나를 오랫동안 못하긴 했지만,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다용도실에 있는 거 확인했다고!”
박시우, 내 방도 그렇게는 안 들여다보지 않나?
사우나 통을 향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각별한 애정이었다.
“그럼 사우나 통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그게 어딜 갔다는 거야?”
보물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날뛰는 시우가 피곤하다는 듯 지호가 마른세수를 했다.
“혹시 46층 문지기 영감이 들어가 있던 사우나 통이 진짜 우리 우나인 거 아니야?”
역시 박시우의 본능은 무시할 게 못 됐다.
……귀신같이 자기 건지 아네.
순식간에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아직도 그 소리야? 형,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다른 곳도 아니고 탑 46층이야. 형이 랭커지 형의 사우나 통이 랭커는 아니잖아?”
환장하겠다는 듯 지호가 반박을 하고 나섰다.
옳지, 우리 지호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난 지호에게 물개 박수를 쳐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럼 우리 우나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데?”
“형이 마지막으로 쓴 뒤에 대충 던져놓고 못 찾는 거겠지. 같이 찾아줄 테니까 다시 찾아보자.”
울상이 된 박시우를 달래듯 지호가 소파에 폰을 던져두고 그를 다용도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우나야! 어디에 있는 거야? 오빠 여기 있다!”
박시우는 애절하게 우나를 부르짖으며 돌아다녔다.
누가 보면 우나가 동생인 줄 알겠어.
고작 사우나 통 하나일 뿐이니까 저러다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넘긴 나는 지호가 던져두고 간 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온천 회원 ― 온천 사장님의 회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 팬 카페가 켜져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회원 수가 6,030명으로 늘어 있었다.
46층을 클리어 했다는 것만으로 나한테 이렇게 열광하는 거야?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정말 헌터들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의문을 가지다 보니 궁금해졌다.
그래도 일단 내 팬 카페잖아.
게시판이나 한번 둘러나 볼까?
대부분 작성자가 ‘온천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된 걸 보니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 같았다.
<온천 사장님의 선택은?>
이것부터 보자.
민초단 VS 반민초단
* * *
└온천 회원1 : 위대하신 분이니까 당연히 민초단이지.
└온천 회원2 :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치약을 왜 먹는 거죠?
└온천 회원1 : 치약이라니 말이 심하시네. 입안이 상쾌해지면서 달콤한 게 얼마나 맛있는데.
└온천 회원3 : 그냥 양치질을 하세요.
└온천 회원4 : 양치질을 하래 ㅋㅋㅋㅋㅋㅋ
└온천 회원5 : 민트의 참맛을 모르다니 불쌍 ㅜ
└온천 회원6 : 다들 민트 초코 안 드셔보셨어요?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맛.
└온천 회원2 : 치약 반 초코 반.
└온천 회원4 : 치약 드립 개웃기네.ㅋㅋㅋㅋ
└온천 회원 7 : 민초가 대세지! 이번에 민초맛 우유 나온 거 모름?
└온천 회원8 : 대형 가글 아님?
└온천 회원9 : 가글 ㅇㅈㄹ ㅋㅋㅋㅋ
난 먹고 안 죽는 거면 가리지 않고 먹는 파인데.
그래서 내가 만든 음식은 제외다.
먹고 ‘산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말하고 나니까 좀 슬프네.
그나저나 쑥 라테 미션부터 빨리 깨야 하는데.
지난번 초록 괴물 쑥 라테를 떠올리자 급속도로 씁쓸해졌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런 게 대체 왜 궁금한 거지?
팬 카페 회원들은 대부분 헌터일 텐데 스킬이나 공략법 같은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의문을 가지며 다음 게시글을 눌렀다.
<사장님, 파인애플 피자는>
* * *
안 파시나요?
* * *
└온천 회원1 : 파인애플을 대체 왜 구워 먹냐? ㅁㅊㄴㄷㅇ
└온천 회원2 : ㄹㅇ. 나 민초단인데 이건 이해 안 가네.
└온천 회원3 : 파인애플은 구워 먹으면 더 달고 맛있어집니다.
└온천 회원1 : 응. 다음 설명충.
안 팔아요. 다음.
<온천 사장님 안착함.>
이 사람이 내 인성을 어떻게 알았지?
날 아는 사람인가?
무심결에 게시글 제목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가 조심스럽게 글을 눌렀다.
제 마음속에 안착.
* * *
└온천 회원1 : 주접보소 ㅋㅋㅋㅋㅋㅋ
└온천 회원2 : 온천 사장 정체 알아냄. (대댓 있음)
└온천 회원2 : 유모차임. 나를 애태우니까.
진짜 미친놈들인가?
보면 볼수록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온천 사장님 길드>
* * *
골라주세요! 1. 집필 2. 아트 3. 열망
* * *
└온천 회원1 : 오, 이건 좀 궁금하다.
└온천 회원2 : 1, 2, 3위 길드 순서대로 있네.
└온천 회원3 : 솔직히 상위 길드에서 고르긴 하겠지.
└온천 회원4 : 무조건 갓열망!
└온천 회원1 : 오마이갓!
└온천 회원5 : 사장님, 아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온천 회원장 : 사장님은 집필에 들어올 운명이십니다.
└온천 회원3 : 아무리 그래도 회원장님은 중립 기어 박으셔야죠!
└온천 회원6 : 회장님이 알고 보니 집필?
└온천 회원7 : 자매작 ― 회장님이 S급 랭커였다.
4번 가입하지 않는다.
그런데 온천 회원장이라는 사람 어쩐지 말투가 낯익은데?
저 말투 어디서 봤지?
생각에 잠긴 채로 화면을 내리고 있는데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집필인 지인한테 들은 건데 박시ㄸ랑 박지누ㄸ>
* * *
온천 회원이라고 함
* * *
└온천 회원1 : 박시ㄸ 박지누ㄸ 입덕 ㅋㅋㅋㅋ
└온천 회원2 : 마성의 온천 사장님.
└온천 회원1 : ㅇㅈ ㅋㅋㅋㅋ
└온천 회원3 : 원래 둘 다 닉네임 공개하고 활동하지 않음?
└온천 회원4 : ㅇㅇ맞음. 박지누ㄸ는 찾았는데 박시ㄸ가 안 보임.
└온천 회원3 : 아직 가입 전인 거 아님?
소문 진짜 빠르네.
둘 다 가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몇 시간 전에 올라온 게시글이라니.
새삼 둘이 관심 받는 랭커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근데 방금 박시우 가입한 거 확인했는데 왜 닉네임이 없다고 하지?
자기애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박시우란 인간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익명으로 활동한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좀 의외인데? 몰래 익명 달고 온천 사장의 정보가 있는 게시글을 염탐이라도 하려는 건가?
“형! 잠깐만 진정해봐. 그래서 지금 진짜 탑에 가겠다고?”
팬 카페 구경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던 중 다용도실에서 박시우가 빠른 걸음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그 뒤를 따라 나온 지호가 그의 팔을 붙들었다.
탑에 간다니? 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내 감으로는 46층 문지기 영감이 가지고 있던 사우나 통이 우리 우나라니까?”
“그러니까 형 사우나 통이 왜 탑에 있겠냐고. 그것도 46층에!”
확신에 찬 시우에게 환장하겠다는 표정의 지호가 소리쳤다.
“나도 몰라! 내가 사우나 통 밑부분에 이름을 써놨으니까 가서 확인해보면 될 거 아냐?”
사우나 통에 이름도 써놨어?
이건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그래서 사우나 통 하나 찾겠다고 지금 탑엘 가겠다고?”
“그래!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나를 되찾아야겠어!”
난 반쯤 눈이 돌아서 나가는 박시우를 보며 생각했다.
저게 진정한 집착광공의 모습인가?
대상이 사우나 통인 게 옥에 티지만.
“형! 아, 진짜 돌겠네! 누나, 나랑 형 잠시 나갔다 올게.”
“어, 정우냐? 지금 탑으로 가는 문 좀 열어라.”
지호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박시우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
집필에 정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현정우’ 한 사람뿐이었다.
현정우라면 ‘S급 포털’로 각성한 사람이잖아?
직업이 워낙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현정우는 한 번 가본 곳이면 어디든 포털을 열어서 단숨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즉 박시우가 현정우를 불렀다는 건, 순식간에 46층으로 갈 수 있다는 거잖아?
박시우가 문지기의 사우나 통 아래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걸 확인하면 내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온천 사장이라는 게 밝혀지면 카페에서 본 6,000여 명의 헌터가 개미 떼처럼 내게 몰려들지도 몰라!
“시X! 그건 죽어도 싫어!”
[‘온천 마스터키(EX)’의 암호와 일치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박시우보다 먼저 사우나 통을 사수해야 했다.
[히든 필드 ‘온천(EX)’으로 이동합니다.]
“악!”
온천에 도착하자마자 46층으로 가는 표를 꺼내 들고 데스크 안으로 달려 들어가던 나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발을 부여잡고 한 발로 콩콩 뛰었다.
급하게 가다가 뾰족한 데스크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친 것이다.
발가락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진 채 휘청이며 데스크에 몸을 기댔다.
안 돼!
새끼발가락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우나 통은 내가 사수하고 만다!
부딪친 발을 절뚝이며 이를 악물고 온천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사우나 통에 대한 강한 애착과 절박함이 ‘온천(EX)’의 심금을 울립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각인이 발현됩니다.]
연이어 문구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살필 틈도 없이 문지기 영감에게로 달려갔다.
“영감님, 사우나 통 돌려받으러 왔어요.”
“오호라, 약 할아범이 보낸 자였나? 자네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군.”
“일단 사우나 통부터 주세요!”
흰 수염 영감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사우나 통밖에 없었다.
“서두르긴, 여기 있네!”
흰 수염 영감이 내게 박시우의 애착 사우나 통을 내어줬다.
이제 끝났다!
안도하며 사우나 통을 회수하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