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싸늘하다
[탑 46층의 문이 개방됩니다.]
수온이 쏘아 올린(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이 한 줄은 또 한 번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헌터 익명 게시판에서도 46층 개방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현재 탑 상황>
* * *
탑 입구에 기자들 쫙 깔리고 ‘집필’ ‘아트’ ‘열망’ 상위 랭커 속한 길드들 다 모여서 탑 안으로 뛰어 들어감.
* * *
└익명1 : ㅈㅍ이 그렇게 트라이해도 문지기가 문 안 열어주겠다고 드러누웠다고 하지 않음?
└익명3 : 그런데 이게 열리네.
└익명4 : 집필보다 상위 클래스가 있다는 거 아님?
└익명5 : 집필 배 아플 듯ㅋㅋㅋㅋ
└익명6 : 어디서 열망충 냄새 안 나요?
└익명5 : 응. 다음 집필순이.
└익명6 : 응. 벌레 컷!
└익명2 : 1, 2, 3위 길드 다 비상인 거 보면 46층 개방한 사람은 그 안에는 없다는 이야기 아님?
└익명4 : ㅇㅈ
<탑 46층 개방한 새X 누구냐?> [작성자 : 시X또]
* * *
너 내 동료가 되라.
* * *
└익명1 : 작성자명 시X또! 찐 박시ㄸ다!
└익명2 : 아이고, 형님.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익명3 : 제가 그 동료가 되어도 되겠습니까?
└익명4 : 응. 안 받아줘.
└익명3 : 그럼 발닦개라도…….
└익명1 : 미친Xㅋㅋㅋㅋㅋㅋㅋ
└익명5 : 꽃길 열어드려라! 찐이시다!
<다들 46층 이야기하는 중에 미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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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주변에 서성이다가 박시ㄸ 박지누ㄸ 실물 영접했는데 핵존잘 ㅠㅠㅠ
●▅▇█▇▆▅▄▇ 여기가 내가 누울 자리인가.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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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1 : 아주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쓰니 : 아저씨인데요?
└익명2 : 식스센스급 반전.
└익명2 : 아버님, 방에 집필 브로마이드 하나 놓아드려야겠어요.
└쓰니 : 어디 있다가 이제 왔니? 아들아.
└익명3 : 미친 남팬ㅋㅋㅋ도랏맨ㅋㅋㅋㅋ
└익명4 : 나 남잔데, 솔직히 이건 ㅇㅈ
└익명5 : 근데 S급 헌터이기까지 함. 더러운 세상.
└익명4 : 이 정도면 얼굴로 등급 매기는 거 아님?
└익명6 : F급 확정.
└익명4 : 응. 다음 F급.
<이번에 탑 46층 개방한 거 EX 각성자 아님?>
* * *
왜 그 온천 사장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개방됐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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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1 : 팩트만 말하자면 온천 주인 아직 등급 확실하지 않음. 히든 필드 온천만 EX급 확정인 거임. 온천 사장이 EX급 각성자라는 건 헌터 전문가들 추측일 뿐.
└익명2 : 설명충 오지죠?
└익명3 : 이거 쓸 시간에 각성했으면 S급.
└익명4 : S급이 누구 집 댕댕이 이름인 줄 앎? 개나 소나 S급 ㅇㅈㄹ.
└익명3 : 열폭하는 거 보니 F급이죠?
<탑 46층 올라간 거 온천 주인일 가능성 (증거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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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 집필 길드원인데 내가 오늘 제일 처음 46층에 올라갔거든? 그런데 문지기 영감 1인용 목욕탕에서 사우나하고 있었음. 증거 사진 첨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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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1 : ㅋㅋㅋㅋ사우나잼.
└익명3 : 그 와중에 표정 극락.
└익명2 : 진짜 온천 사장이 드간 거 아님?
└익명4 : EX급 각성자잼.
└익명5 : 이거 보니까 나도 사우나하고 싶어짐.
└익명1 : 저 사우나 통 아시는 분 좌표 좀.
└익명6: 안녕하세요. 헌터 잡화점 운영자입니다. 고객님께서 문의하신 제품은 저희 잡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1인용 사우나 통 [네이비(성인용) : 우주와 행성]’입니다. 저희 제품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1 : 돈쭐 내러 간다.
└익명3 : 공구하면 할인해주시나요?
└익명6 : 20인 이상 공동 구매하시면 10%할인 해드리고 있습니다.
└익명3 : 1인용 사우나 통 공구하실 분 구함 (1/20)
└익명7 : 22222
└익명2 : 33333$
<상위 랭커 형님들!>
* * *
46층 열린 김에 같이 쳐들어가서 뚫으면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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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1 : 나 ㅈㅍ 소속 길원인데 지금 46층 올라가면 바로 튕김.
└쓰니 : 헐. 집필 길원 형님한테 댓을 받아보다니 무한 영광입니다. 인사 씨게 박겠습니다.
└쓰니 : 그런데 왜 46층에 올라가면 튕기는 거죠? 알려주십쇼. 행님.
└익명1 : [46층의 문지기 영감이 사우나를 방해받기 싫어합니다.] [45층으로 쫓겨납니다.]
└익명1 : 무한 회귀잼.
└쓰니 : 예? 사우나요?
└익명1 : 이 문구를 보고 45층으로 쫓겨난 흔한 랭커들 반응.gif
45층에서 무한 대기를 타고 있는 건 시우와 지호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튕기냐?”
“지금도 튕기고 오는 길이야.”
하품하며 묻는 시우에게 가망이 없다는 듯 지호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늘 안에는 올라갈 수 있으려나?”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의 시우가 익명 헌터 게시판을 빠르게 훑다가 화면을 넘기던 손가락을 멈췄다.
시선을 고정한 시우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박지호, 이거 봐봐. 아무리 봐도 우리 ‘우나’ 같지 않냐?”
‘우나’는 시우가 자신의 애착 사우나 통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의 부름에 지호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화면 속 사진에는 우나와 같은 디자인의 사우나 통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평화로운 표정의 46층 문지기가 있었다.
“에이, 세상에 같은 사우나 통이 얼마나 많은데.”
말도 안 된다는 듯 지호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그건 그런데……. 난 이게 왜 우리 우나 같지? 꼭 우리 우나가 날 데려가달라고 울고 있는 것 같아.”
지호는 고작 사우나 통 하나에 온갖 주접을 떨고 있는 자신의 친형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진짜 미친놈인가?’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한 시우는 그 후로도 한동안 사진 속 우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같은 시각, 시우의 애착 우나를 46층 문지기 영감에게 넘긴 장본인은 한창 약초 캐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채집을 통해 약초 ‘새살’을 획득합니다.]
[연속 채집 성공으로 스킬 ‘호미는 거들 뿐(A)’을 획득합니다.]
[스킬 ‘호미는 거들뿐(A)’의 효과로 2분간 약초를 두 배로 획득합니다. 재사용 쿨타임 : 30분 00초]
개이득! 지금 캐면 약초가 두 배!
나는 쉬지 않고 호미질을 했다.
[약초 ‘새살’을 획득합니다. x2]
[약초 ‘새살’을 획득합니다. x2]
어르신이 준 호미의 성능도 좋고 스킬 효과까지 겹쳐서 약초 가방은 순식간에 두둑해졌다.
너무 열심히 했나?
어느덧 숨도 차고 허리도 뻐근해졌다.
난 기지개를 켜듯 몸을 뒤로 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배도 슬슬 고프고…….
나는 어느새 홀쭉해진 배를 매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하게 먹을 거라도 챙겨 오는 건데.
온천에서 배달 음식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쉬운 마음에 어르신이 준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뜻밖에 주먹밥을 발견했다.
어라? 난 이런 걸 챙긴 기억이 없는데?
혹시나 상한 건 아닌가 싶어서 주먹밥의 정보를 확인했다.
[‘약 항아리(EX)’의 정성이 담긴 주먹밥(S)]
[‘약 항아리(EX)’가 처음 생긴 손녀를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만든 주먹밥. 먹으면 체력을 Max로 회복시켜준다.]
어르신, 완전 감동이에요!
안 그래도 채집 한 번 할 때마다 체력이 달아서 회복이 필요한 참이었다.
어디…… 앉아서 먹을 만한 데가 없나?
안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주변을 넓게 돌아봤다.
좀 떨어진 거리에 커다란 대리석으로 된 신전처럼 생긴 공간이 있었다.
약초밭 뷰치고는 많이 화려한 것 같은데.
약초 캐다가 쉬라고 만들어놓은 건가?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배가 고팠던 터라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장 신전의 돌계단으로 올라가 앉았다.
[‘탑의 수호자’가 외부인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뜹니다.]
주먹밥을 먹으려고 꺼내 드는데 창이 하나 떠올랐다.
‘탑의 수호자’라면 문 입구를 지키고 있던 영감을 말하는 건가?
이름 한번 거창하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헌터들이 오르는 탑의 수호자인 줄 알겠어.
[‘탑의 수호자’의 움직임으로 스산한 기운이 피어오릅니다.]
갑자기 왜 스산한 기운이 피어오른대?
영감이 들어가 있는 온천수가 식었나?
이곳으로 들어온 지 꽤 시간이 흘렀으니 온천수가 식었을 법도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추운 것 같지?
나는 등을 타고 스멀스멀 오르는 듯한 한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뒤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왜 공포 영화에서도 이러다가 꼭 뒤에서 귀신이 튀어나오잖아.
왜 무서울 때는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걸까?
전보다 더 겁이 나버린 나는 몸을 웅크린 채 기둥에 등을 기대어 귀신이 튀어나오는 통로를 막아보고자 슬금슬금 뒤로 움직였다.
그때였다.
“웬 놈이냐?”
바로 내 귓가에서 서늘한 입김이 피어오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