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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11화 (11/190)

11화

카악 퉤!

저 사람 살아 있는 거 맞아?

“저기요?”

말을 붙여봤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의 코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살아 있는 건 다행이긴 한데, 혹시 이 남자가 온천을 찾는 헌터면 어쩌지?

만약 그렇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아마 이대로 두면 꼼짝없이 죽고 말 테니까.

남자는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온천에서 송장을 치우게 될지도 몰랐다.

피를 흘린 채 쓰러진 남자를 보니 실종된 부모님이 떠올랐다.

젠장!

‘영계야.’

고민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영계를 불렀다.

[가이드 ‘영계’가 설사병으로 앓아누운 해령을 돌보다 말고 나를 돌아봅니다.]

‘약방은 어디에 있어?’

[가이드 ‘영계’가 “2층에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오른쪽 첫 번째 방”이라고 말합니다.]

‘혹시 피가 멈추거나 상처를 낫게 하는 약도 만들 수 있어?’

[가이드 ‘영계’가 “약 항아리는 못 만드는 약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단 살리고 보자.

뒷일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곧장 2층의 약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히든 필드 ‘약 항아리의 약방’에 들어섭니다.]

약방 한편에는 약을 보관하는 것으로 보이는 서랍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반대편에는 장독처럼 생긴 커다란 흰색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영계야, 혹시 피를 멎게 하는 약 제조법을 알아?’

[가이드 ‘영계’가 “‘새살’이라는 약초를 약 항아리에 넣으면 약을 제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새살’이라는 약초를 찾으면 된다는 말이지?'

생김새를 알 수 없으니 일일이 정보창을 열어보면서 찾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줄줄이 늘어선 서랍장 중 하나의 손잡이를 당겼다.

[약 항아리의 약방 서랍을 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서랍을 여는데 무슨 권한이 필요해?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나는 발 한쪽을 벽에 디딘 채 손잡이를 당겨 서랍장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약 항아리의 약방 서랍을 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갖은 노력에도 계속해서 똑같은 문구만 떠오를 뿐 소용이 없었다.

진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자.

주변을 살피던 내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항아리 옆 탁상에 약초 무더기가 높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곧장 약초의 정보를 확인했다.

[누군가 쓰려고 따놓은 약초 ‘새살’]

[상처 부위의 피를 멎게 하고 빠른 속도로 새살이 자라나게 한다.]

나이스!

찾았다! 새살.

이제 약초를 약 항아리에 넣기만 하면 됐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하얀색 항아리 안에 약초를 던져 넣었다.

그 순간이었다.

[약 항아리(EX) : 카악 퉤!]

약 항아리가 내 면전에 대고 약초즙을 뱉어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내 뺨에서 흘러내리는 걸쭉한 액체에 손을 가져갔다.

“시X! 진짜 침이잖아! 양아치도 아니고 항아리가 침을 뱉어?”

[‘온천 마스터키(EX)’의 암호와 일치합니다.]

[히든 필드 ‘온천(EX)’을 벗어납니다.]

뭐야? 나가는 것도 돼?

그런 말은 없었잖아!

나는 순식간에 약방을 벗어나 내 방으로 돌아왔다.

맙소사! 진짜 환장하겠네.

“야, 박돈돈! 네가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진짜 지릴 뻔했잖아! 빨리 문 안 열어?”

이마를 짚는 순간, 박시우가 발로 방문을 걷어찼다.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내 호적 메이트의 불행은 뭐다?

“싫어! 시X!”

나의 행복이다.

[‘온천 마스터키(EX)’의 암호와 일치합니다.]

[히든 필드 ‘온천(EX)’으로 이동합니다.]

“악!”

쓰러진 남자의 처참한 몰골은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했다.

다시 한 번 그가 숨을 쉬고 있는 걸 확인한 난 약방으로 달려가 약초를 집어 들었다.

“자, 착하지? 약초를 꼭꼭 씹어서 약을 만드는 거야.”

정면 돌파가 통하지 않는다면 어르고 달래자는 게 나의 전략이었다.

[‘약 항아리(EX)’가 “온천 사람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핏덩이가 늙은이한테 노동을 시키려 하는구만!”이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아, 어르신이셨구나.

어쩐지 가래침 뱉는 솜씨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했다.

“아이고, 어르신을 몰라뵀네요. 어르신, 혹시 비행기 좋아하세요? 비행기 들어갑니다. 윙~”

난 밥 먹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는 부모처럼 약초로 비행기 흉내를 내며 항아리로 가져갔다.

[‘약 항아리(EX)’가 “당장 치워라”라며 뚜껑을 닫습니다.]

항아리에 뚜껑도 있었네?

오래된 것치고 보존 상태가 좋았다.

[‘약 항아리(EX)’가 “요즘 시대에 누가 근로 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키냐”며 따집니다.]

항아리가 근로 계약서도 알아?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그래요. 근로 계약서 써요! 쓰면 되잖아요.”

월급이 나가더라도 EX급 약 항아리가 만드는 약을 갖다 팔 수 있다면 그게 훨씬 이득이었다.

[‘약 항아리(EX)’가 “내가 왜?”라며 시치미를 뗍니다.]

네가 써달라며!

지금 보니 박시우를 능가하는 또X이 항아리였다.

“어르신, 지금 아래층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피를 너무 심하게 흘려서 어르신의 약이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발암 항아리를 설득하기 위해서 난 상황을 찬찬히 설명했다.

[‘약 항아리(EX)’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라고 묻습니다.]

상관은…… 없지?

[‘약 항아리(EX)’가 “너랑도 상관없는 사람이지 않냐며 굳이 살리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습니다.]

[‘약 항아리(EX)’가 “그대로 죽는 편이 온천에도 이로운 일이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항아리에게 으쓱거릴 어깨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긴박한 상황이니 잠시 궁금증은 넣어두기로 했다.

“득이 될 게 없는 일이라는 건 잘 알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보니까 가족이 떠올라서 모르는 척할 수가 없는데. 제 가족은 전부 S급 헌터거든요.”

[‘약 항아리(EX)’가 “지금 EX급 항아리 앞에서 S급 헌터를 자랑하는 거냐”며 실소를 터뜨립니다.]

나는 차마 약 항아리처럼 웃지 못했다.

이 이야기까지는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려서 실종됐어요. 15년도 더 넘었지만 찾지 못했고요. 나라에서는 일찍이 포기해버렸지만, 전 아직 부모님이 살아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쭉 돌아오길 기다릴 거고요.”

그래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이 남자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아래층에 있는 남자에게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테니까.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아서…… 그래서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그때였다. 약 항아리에서 갑자기 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약 항아리(EX)’ : 끅! 끄흑!]

[‘약 항아리(EX)’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라며 오열합니다.]

아, 우는 거였어?

[칭호 ‘사연 있는 여자’를 획득합니다.]

[칭호 ‘사연 있는 여자’의 효과로 해당 사연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사연 있는 여자라니…….

쓸데없는 칭호가 또 하나 늘었다.

“어르신, 물이 넘치는데요. 뚝 하고 그치시는 게 어떨까요? 안 그러면 온천이 물에 잠겨버리겠어요.”

[‘약 항아리(EX)’가 “뚝!”이라고 외치며 울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의외로 마음 약한 어르신이었네.

[‘약 항아리(EX)’가 나를 ‘약방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히든 스킬 ‘슬기로운 약방 생활(EX)’을 획득합니다.]

[약방의 모든 서랍장이 개방됩니다.]

좋아! 스킬도 열렸고.

“자, 이제 드실 거죠?”

[‘약 항아리(EX)’가 비행기를 해달라고 합니다.]

언제는 안 하겠다고 뚜껑까지 닫아버리더니.

지금은 기대가 된다는 듯이 뚜껑이 들썩거렸다.

“자, 약초 들어갑니다. 윙~ 비행기!”

[‘약 항아리(EX)’가 약초 ‘새살’을 삼킵니다.]

“이러면 재료 준비는 끝난 거예요?”

[‘약 항아리(EX)’가 “약을 완성하려면 ‘솔솔 가루’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게 뭐죠?”

[‘약 항아리(EX)’가 “위에서 다섯 번째 오른쪽에서 세 번째 칸에 ‘솔솔 가루’가 있다”고 합니다.]

약 항아리가 알려준 대로 서랍장을 여니 반짝이는 연두색 가루가 보였다.

“어르신, 이거 맞아요?”

[‘약 항아리(EX)’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줌 움켜쥐어 넣으라”고 말합니다.]

주먹 가득 가루를 움켜쥔 나는 그대로 항아리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약 항아리(EX)’가 ‘솔솔 가루’를 삼킵니다.]

[‘약 항아리(EX)’가 약을 제조합니다.]

얼마 안 가 약 항아리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약을 내놨다.

난 물약을 집어 들었다.

[명약 ‘새살이 솔솔’을 획득합니다.]

[새살이 솔솔(S)]

[상처의 피가 멎고 새살이 돋아난다.]

명약이라더니 S급 물약이네.

처음 만져보는 S급 물약에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정신을 붙들었다.

“어르신, 약 고마워요!”

약 항아리 어르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나는 곧장 아래층으로 돌아와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남자는 약이 완성될 때까지 잘 버텨준 것 같았다.

“이것 좀 먹어보세요.”

나는 남자의 머리를 내 무릎 위에 올린 뒤 S급 물약을 입으로 천천히 흘려보냈다.

약효가 제대로 들었는지 남자의 등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멎었다.

역시 S급이라 그런지 효과가 엄청 빠르네.

약 항아리 어르신한테 부탁해서 몇 개 더 만들어놔야겠다.

당장 위험한 순간은 넘긴 것 같아 한숨 돌리며 빈 병을 내려놓으려는 그때.

어쩐지 무릎이 허전했다.

묘한 기분에 고개를 돌리자 쓰러져 있던 흑발의 미남자가 언제 일어났는지 순식간에 상체를 일으킨 뒤 몸을 낮춰 나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내게로 고정된 밤의 바다 같은 매섭고 깊은 흑색 눈동자, 그 아래에 새겨진 매력점이 한층 선명해졌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남자의 입가가 삐뚜름히 올라갔다.

“또 보네, 박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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