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9화 (9/190)

9화

미스터리한 초록 괴물이 나타났다

“에이, 온천이 EX급이지 사장은 아닐 수도 있잖아.”

“사실 확정된 건 없지만, 헌터 전문가들 말로는 EX급 온천을 개방했고 직업이 온천 사장인 걸로 봐서 각성자가 EX급 이하인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고.”

‘여러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박시우는 정체불명의 온천 사장이 EX급 각성자라고 믿는 쪽인 것 같았다.

기대가 큰 것 같은데 안타깝네.

바라는 인재는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은데.

“직업이 온천 사장이면 돈가스 튀기고 차 끓이는 게 다인 거 아냐? 탑 뚫는 데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혹시 아냐? 온천수를 쏟아부어서 죄다 쓸어버리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을지.”

조금이라도 일찍 미련을 버리길 바라는 마음에 한 말이었는데 박시우는 더 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죄다 쓸어버리는 온천수를 찾긴 했어. 나까지 쓸려 가 죽을 뻔한 게 문제였지만.’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몰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웃음 참기에 실패합니다.]

‘웃지 마라.’

나야 돈만 잘 벌면 장땡이라 지금 내 등급에 충분히 만족하지만, 샤레니안의 웃음은 뭔가 기분이 나빴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바란다면 소문 이상의 실력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불사의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며 “일단 여기 와서 간단한 칼질부터 배우자”고 말합니다.]

검도 쥐어본 적 없는 생초짜를 데리고 전장에 나가려고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됐거든. 그보다 지금 전쟁터 아냐? 싸우면서 이렇게 딴짓해도 되는 거야? 보통은 저러면 칼 맞지 않나?’

의문과 동시에 알림 문구가 떠올랐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의 등에 적군의 칼이 꽂힙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어쩐지 불안하다 싶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당장 자리를 깔아도 될 실력이라며 자신의 제자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관심 없어.’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아쉽다”며 입맛을 다십니다.]

그러고 보니까 성좌는 칼에 맞으면 어떻게 되지?

이 또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살아 있으면 무슨 말이 있을 텐데 샤레니안은 잠잠했다.

‘설마 죽었나?’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칼에 맞아 힘????과 체력????이 상승합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등에 꽂힌 칼을 뽑아내고 적군의 목을 날립니다.]

‘살아 있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스탯까지 상승했단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괜히 본인에게 불사라는 명칭이 붙은 게 아니다”라며 피로 붉어진 입술을 혀로 쓸어냅니다.]

샤레니안의 명칭에 ‘불사’가 붙은 이유가 있다면, ‘살인귀’라 불리는 것에도 그만한 근거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순간, 본능이 말했다.

‘저승의 염라’, ‘운수를 믿으십니까?’, ‘온천의 지배자’, ‘불사의 살인귀’까지.

애초에 성좌들은 신의 영역에 있는 존재들로, 무정하고 각성자를 유희로 삼는 비인간적인 집단으로 알려진 바 있다. 허나 내가 계약을 맺은 성좌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미친X들일 수도 있겠다고.

싸늘하다.

꼭 내가 목을 베인 것 같은 기분에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성좌는 계약자를 죽이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게 새삼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뭐, 나만 안전하면 됐지.

분위기로 봐서 그들도 더 이상 온천 사장을 구하러 다니기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EX급 온천 사장을 내 사람으로 만들면 46층도 공략 가능성이 좀 보이려나?”

내가 잔에 우유를 붓다 말고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박시우는 아직도 헛된 꿈에 부풀어 있었다.

못 찾는다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시우의 사람이 될 생각은 더욱이 없었다.

내가 그 온천 사장인 것도 모르고 신이 나다니.

일곱 살짜리 아이처럼 들뜬 박시우를 보니 한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게도 느껴졌다.

“한창희도 온천 사장 찾겠다고 던전 곳곳에 길드원들 싹 풀었다던데. 누나도 기억하지? 왜, 고등학교 때 누나한테 차이고 자기가 어장 속 물고기였다고 소설 쓰다가 뺨 맞았던 진상.”

“아, 기억났다.”

한창희.

오랜만에 들어서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그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 인생 베스트 오브 베스트 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창희는 당시 몇 없는 S급 헌터로 국내 7위 랭커라는 걸 무기 삼아 온갖 횡포를 일삼는 인물이었는데, 나를 우연히 보고 마음에 둔 모양이었다.

그날부터 내게 러브 레터며 선물 공세를 해왔던 것 같은데, 내 사물함이나 책상엔 항상 그 비슷한 것들이 들어차 있던 바람에 난 한창희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공개 고백을 했다가 대차게 차인 뒤 한동안 내가 어장을 치면서 좋은 건 다 받아먹었다는 헛소리를 하고 다니더만,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남매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몇 안 되는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박시우와 지호가 어떻게 손을 쓴 것 같았다.

‘박시ㄸ’랑 ‘박시누ㄸ’라는 별명이 생긴 계기가 그 사건이라고 하니까.

그 이후로 한창희는 박시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상위 랭커임에도 1위 길드 집필에는 발도 붙이지 못했다.

그 이후 길드 집필에 들지 못한 헌터를 모아서 새로운 길드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게 국내 3위 길드 ‘열망’이고, 지금도 악감정이 남았는지 호시탐탐 집필의 일에 훼방을 놓는다고 들었다.

그러다 들켜서 몇 번 호되게 깨졌는데도, 질척거리는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금 그 한창희가 날 찾고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 생각만으로 기분이 더러워졌다.

―속보입니다. 오늘 전국 곳곳에 정체불명의 EX급 온천 사장을 찾기 위한 랭커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으로 연결해보겠습니다.

“오, 저기 뉴스에도 나오네.”

지호가 돌아본 화면에는 헌터들이 바글바글 개미 떼처럼 모여서 던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많은 사람이 이 추운 날씨에 전부 나 하나 찾겠다고 저러고 있다는 거야?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나는 리모컨으로 화면을 껐다.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 쑥 라테나 먹자.”

한동안은 집이랑 온천에서만 생활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나는 쑥 라테 두 잔을 박시우와 지호 앞으로 가져갔다.

“어? 나 이거 본 적 있어.”

쑥 라테를 받아든 박시우가 아는 척을 했다.

“어디서 봤는데?”

“탑 15층에서 나오는 슬라임이 이렇게 생겼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카페는 돈 아까워서 안 간다는 박시우가 쑥 라테를 알 리가 없었다.

근데 듣고 보니까 슬라임을 뭉개서 담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점성이 걸쭉한 쑥 라테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박시우에게 설득당할 뻔했다.

“됐어.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내가 마실 테니까.”

“아, 먹어! 이건 내 거야.”

슬라임 같다고 할 때는 언제고 박시우는 잔을 품 안으로 가져가더니 빼앗기도 전에 들이켰다.

“그럼 나도 마셔볼까?”

지호도 김이 나는 쑥 라테를 호호 불어 머금었다.

“야, 박돈돈.”

쑥 라테를 맛본 박시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왜?”

“너 각성했냐?”

갑작스럽게 정곡을 찔린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뭔가 느낀 건가?

뒤늦게 난 시스템창을 떠올렸다.

쑥 라테를 마셨을 때 나처럼 시스템창에 알림 문구가 뜨는 걸 보고 추측한 걸지도 몰랐다.

“진짜 탑 15층에서 나오는 슬라임으로 즙 짠 것 같은 맛이 나는데.”

긴장하고 있던 몸이 박시우의 헛소리에 풀어졌다.

그 말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했던 거냐?

날 놀리는 데 이토록 진심인 걸 보니 박시ㄸ라는 별명 값을 제대로 하는 중이구나 싶다.

“……그래서 15층 슬라임은 먹어봤고?”

아직 맛보기 전이면 내가 먹여주려니까.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운을 느낀 건지 지호가 급히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그래도 따뜻한 걸 먹으니까 몸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아. 누나, 고마워.”

우리 천사 지호는 말하는 것도 어쩜 이렇게 예쁠까?

그 속에 박시우랑 같은 피가 흐른다는 건 내게는 영영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였다.

“아!”

지호의 살가움에 흐뭇해져 있는데 박시우가 갑자기 신음을 내며 배를 움켜잡았다.

나와 지호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로 향했다.

“나 급똥!”

“아, 진짜……. 먹는데 똥 이야기를 해?”

잔을 내려놓은 지호가 불쾌함을 드러냈다.

박시우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저런 게 내 호적 메이트라니. 원래도 믿기 싫었지만 오늘따라 더 했다.

“저녁을 너무 많이 먹고 왔나? 누나, 나도 화장실 좀.”

“응, 다녀와.”

뒤이어 지호도 조용히 화장실로 떠났다.

어라? 그런데 왜 미션을 성공했다는 말이 없지?

이상함을 느낀 나는 미션창을 켰다.

[온천표 쑥 라테 만들기]

[온천표 쑥 라테 (0/1)]

[보상 : 100만 골드 / 추가 보상 :???]

쑥 라테를 세 잔이나 만들었는데 한 잔도 카운팅 되어 있지 않았다.

왜 0이라고 표시되어 있지?

내가 만든 게 쑥 라테가 아니면 뭔데?

난 맛을 보기 위해 여분으로 남겨둔 쑥 라테의 정보창을 켰다.

[초록 괴물 쑥 라테(E)]

[뭘 넣었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쑥 라테. 끝까지 다 마신 불굴의 의지로 체력이 10 상승한다.]

[※주의 : 99.9% 확률로 설사를 유발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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