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똥손의 꿈빛 바리스타~☆
대체 눈으로 무슨 말을 했길래 시스템창이 자체 필터링을 해?
웬만한 욕설은 귀엽게 봐주는 시스템창이 특수문자까지 사용해가며 걸러낸 걸 보면 보통 욕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어.
누가 호감이 있는 사람을 저렇게 살벌하게 쳐다보겠냐고.
엉터리 호감도창 때문에 졸지에 공주병 말기 환자로 몰리게 생겼다.
“농담이야, 농담. 그러니까 표정 좀 풀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큰돈이라도 떼먹은 줄 알겠네.”
장난이었다는 듯이 가볍게 둘러대고 나서야 해령은 내게서 험한 눈빛을 거둬들였다.
“차라리 큰돈을 떼먹히는 게 낫지.”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떱니다.]
‘그 정도라고?’
언뜻 봐도 나에 대한 해령의 호감도는 바닥 수준이었다.
차라리 호감도창에 오류가 생긴 게 다행인 걸지도.
나는 진심으로 오류가 고쳐지지 않기를 바라게 됐다.
그게 아니면 스탯창에 있는 자물쇠는 영영 열릴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이제 헛소리는 다 끝난 건가?”
“네, 끝났습죠.”
진지한 얼굴로 묻는 해령에게 나는 건성으로 답했다.
“영계야, 들어와라.”
“예, 지금 들어갑니다!”
끙차!
해령의 부름에 열린 문으로 앙증맞은 크기의 영계가 낑낑거리며 상을 들고 들어왔다.
털 찐 작은 병아리가 상을 옮기고 있어.
귀여워!
웬만한 일에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약한 부분이 ‘작고 귀여운 것’이었다.
지금의 영계는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켰다.
입으로 터져 나오려는 감탄사를 겨우 삼킨 후, 나는 흐뭇한 눈길로 내 앞에 상을 내려놓는 영계를 지켜봤다.
[가이드 ‘영계’가 내 시선을 꺼림칙하다고 느낍니다.]
‘해치지 않아.’
[가이드 ‘영계’가 내 눈빛에 위험을 느끼고 뒷걸음질을 칩니다.]
“영계야.”
내 부름에 영계가 작은 몸을 움찔거렸다.
“왜 부르는 것이냐?”
“네 털 엄청 보송해 보여서 그러는데 잠깐만 만져보면 안 될까?”
부드러워 보이는 털을 향해 손을 뻗으려 하자 영계가 재빠르게 내게서 거리를 뒀다.
“거절한다.”
단호하긴.
저만치 멀어진 영계를 보며 아쉬워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고소한 향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이건 돈가스다!
식욕을 자극시키는 냄새에 상을 가리고 있던 덮개를 휙 열자 먹음직스러운 돈가스의 자태가 드러났다.
다른 건 몰라도 돈가스만큼은 냄새만 맡고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다.
무려 내 최애 음식이니까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또 체력 떨어져서 성가신 일 만들지 말고 먹어.”
해령은 툴툴대면서도 내 손에 젓가락을 들려줬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잘 먹겠습니다!”
바사삭!
돈가스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머금자 튀김옷의 바삭한 식감이 느껴졌다.
“튀김옷이 미쳤다! 진짜 맛있어!”
행복감에 젖어 있는 나를 지켜보던 해령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첫 조각을 시작으로 난 순식간에 돈가스를 먹어치웠다.
[‘온천표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체력이 Max로 회복됩니다. 체력 (30/30)]
평범한 돈가스를 먹었을 뿐인데 체력이 풀로 회복된다고……?
언젠가 박시우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포션은 아주 희귀해서 정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그 말은, 내가 방금 먹은 돈가스를 헌터들에게 팔면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이야기잖아?
내가 똥손이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레시피대로 만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온천표 돈가스를 방금 먹은 그대로 만들 수 있게만 된다면 벼락부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최대한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많은 헌터들을 고용하면 엄마, 아빠를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슬쩍 영계에게 온천표 돈가스의 레시피를 물어보기로 했다.
“영계야, 네가 만들어준 돈가스가 너무 맛있어서 그러는데, 온천표 돈가스를 만드는 특별한 비법 같은 게 있으려나?”
“그건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당연히 영계가 만든 건 줄 알았는데, 아니라면 대체 누가…….
내 눈은 자연히 해령에게로 향했다.
‘에이……. 설마.’
“기껏 만들어줬더니 그 떨떠름한 반응은 뭐지?”
“진짜 네가 만든 거라고?”
놀라워하는 내게 해령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얼핏 봐도 희고 고운 섬섬옥수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그래. 네가 만들어보기 전에 먹어보고 맛을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니까.”
“내가 이걸 만든다고?”
해령의 희고 고운 손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온천에서 파는 음식은 온천 사장이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지. 이 온천에서는 차를 팔기도 하고 환자를 치료해주기도 한다. 사장이라면 음식이나 차를 만드는 데에도 능숙해야 하고 약도 제조할 수 있어야 하지.”
여기 온천 아니었어?
백번 양보해서 음식이나 차까지는 그렇다고 쳐.
온천 사장이 무슨 약을 제조해?
“재미있는 농담이네.”
하, 하, 하. 스타카토로 끊어 웃으며 손을 내젓는데 반면 해령의 얼굴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농담 같은가?”
아니.
너무 농담 같지 않아서 문제였다.
“약 제조는 아무나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난 자격증도 없어서 제조했다간 불법이야, 불법.”
“그건 알아서 해결될 테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고. 이거나 마셔라.”
일 하나라도 덜어보려고 애를 쓰는 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해령이 내 앞으로 뜨끈한 김이 나는 잔을 건넸다.
“이게 뭐야?”
“쑥 라테다. 온천의 인기 메뉴지.”
쑥 라테는 처음인데.
낯선 음료에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향부터 음미했다.
향긋한 쑥 향이 나네.
초록 괴물 같은 색깔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잠시, 매력적인 향에 이끌린 나는 쑥 라테를 한 모금 머금었다.
젠장.
이것도 맛있잖아!
쑥이라서 쓴맛이 날 줄 알았는데, 설탕을 넣은 건지 달짝지근했다.
“마음에 든 모양이군.”
해령의 말에 정신이 들었을 때, 난 이미 라테 한 잔을 비운 상태였다.
[‘온천표 쑥 라테’를 한 잔 마셨습니다. 산뜻한 쑥의 기운으로 체력이 5 증가합니다. 체력 (30/35)]
앉은 자리에서 맛있는 쑥 라테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체력이 5나 올라갔다.
이게 말이 돼?
수많은 헌터들이 체력을 올려보겠다고 전문 트레이너를 붙여 집중 관리를 받고 있지만, 체력은 그리 쉽게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이 온천의 한계는 어디지?
겨우 맛보기 단계인 것 같은데 이미 평범한 수준을 넘어 있었다.
역시 EX급 온천이라 다른 건가?
소리 없이 감탄하던 중, 문득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체력 스탯을 올려주는 포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잖아?
차라리 쑥 라테 장사를 한다면…….
돈가스보다 손도 덜 갈 것 같고, 무엇보다 희소성이 있었다.
게다가 쑥 라테라면 아무리 똥손인 나라도 도전해볼 만할 것 같고.
“해령! 나한테 쑥 라테 만드는 법을 알려줄 수 있어?”
내 부름에 해령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이 큰 건지 얼굴이 작은 건지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찰나에 본 게 다지만, 어쩐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는데.
“어떻게 안 거지?”
“뭘 말이야?”
“내 이름. 알려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 그래서 놀랐던 거구나.
“계약하니까 시스템창이 알려주던데?”
“그랬군.”
호감도창에서 봤다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대충 둘러대자 해령이 어쩐지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직 재료가 남았으니까 시험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걸 받아라.”
해령이 내게 금색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이게 뭐지?
그걸 건네받는 순간, 손에서 두루마리가 사라졌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에게서 ‘온천표 쑥 라테 레시피’를 획득합니다.]
[히든 스킬 ‘온천 사장은 꿈빛 바리스타’가 개방됩니다.]
[온천표 쑥 라테 만들기]
[온천표 쑥 라테 (0/1)]
[보상 : 100만 골드 / 추가 보상 :???]
레시피가 열리면서 미션창이 떠올랐다.
쑥 라테 레시피를 얻은 것만으로도 이득인데 100골드라니!
반드시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른 나는 곧장 레시피를 열었다.
[온천표 쑥 라테 레시피]
[재료 : 쑥 가루 10g, 뜨거운 우유 170ml, / 설탕 1스푼]
[쑥 가루(10g)에 설탕 1스푼과 우유(170ml)를 넣는다.]
일단 살펴보긴 했는데, 그냥 다 때려 넣으라는 말로 들리는 건 착각이겠지?
어째 레시피를 읽고 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것 같았다.
그때 우리 집 부엌 담당인 금손 지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지호가 그랬어. 요리는 ‘감’이라고.
나는 영계가 내어준 재료를 감으로 때려 넣은 뒤, 뜨거운 우유를 부었다.
분명 레시피대로 만들었는데 쑥 라테의 색이 아까 봤던 것보다 칙칙하고 걸쭉해 보였다.
내가 만들었지만 미심쩍은 비주얼이었다.
그래도 일단 초록색이고, 쑥하고 우유를 넣었으니까 쑥 라테 비슷하게라도 되지 않았겠어?
“해령, 쑥 라테 맛 좀 봐줄래? 처음 만들어본 거라서 맛이 좋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스멀스멀 자리를 뜨려는 해령의 옷깃을 붙잡아 앉혔다.
“지금 급한 볼일이…….”
“오늘 나를 구해주기도 했고, 식사도 만들어줬잖아. 나도 뭔가 대접하고 싶었는데 안 될까?”
나는 사실 해령이 험한 말을 쏟아부으며 나가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해령은 순순히 내가 만든 쑥 라테가 담긴 잔을 집어 들었다.
기합을 넣듯 숨을 들이마신 후, 결연하게 라테를 들이켠 해령의 오른쪽 눈썹이 불안정하게 꿈틀거렸다.
“어때?”
내가 만든 라테를 먹고도 멀쩡한 걸 보니까 희망이 있었다.
기대감에 빛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해령이 묵묵히 잔을 비웠다.
“처음치고는 맛이 나쁘지 않군.”
“진짜? 다행이다!”
내가 쑥 라테를 무사히 만들어내다니!
성취감에 환하게 웃자 해령도 옅은 웃음으로 답했다.
성공한 김에 지호랑 박시우한테도 해줘볼까?
“영계야, 남은 재료는 내가 챙겨가도 돼?”
“상관없다.”
영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보자기째로 재료를 챙겨 넣었다.
박시우, 다시는 나를 똥손이라고 놀리지 못하게 해주마!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봐야겠어. 내일까지 쑥 라테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서 올게.”
“그래. 배웅은 영계에게 맡기도록 하지.”
나쁘지 않은 해령의 감상에 의욕이 샘솟은 나는 보따리를 챙겨 들고 일어났다.
급한 일이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해령은 영계에게 뒤를 맡기고 조용히 바깥으로 사라졌다.
많이 바쁜가 보네.
성좌는 놀고먹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
“출구는 저기다. 머릿속으로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면서 문을 열면 그곳으로 갈 수 있어.”
영계가 온천 데스크 안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어디로든 데려다주는 문 같은 건가?
영계가 알려준 대로 집을 떠올리며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타다다닥!
어디선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젖 먹던 힘을 다해 뒷간으로 달려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