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별빛이 내린다. 샤랄라라라~
[거센 온천수에 휩쓸립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 온천수가 고래의 입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온천수를 발견해 등급이 상승합니다. ‘초보 온천의 주인(E)’]
F급에서 E급으로 한 단계 상승한 것을 기뻐할 틈도 없이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에 잠겨 10초마다 체력이 5씩 감소합니다. 체력 (15/30)]
숨 막혀!
[산소 부족으로 의식이 흐려집니다. 사망까지 남은 시간 : 60초]
[산소 부족으로 의식이 흐려집니다. 사망까지 남은 시간 : 59초]
내가 죽을 시간까지 알려주다니, 쓸데없이 친절해!
난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보려고 몸을 바둥거렸다.
[물의 저항으로 체력이 1 감소합니다. (14/30)]
[물의 저항으로 체력이 1 감소합니다. (13/30)]
체력은 왜 이렇게 빨리 다는 거야?
이러다 숨보다 체력이 부족해서 먼저 죽을 판이었다.
그래,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자 절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아…….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건가?
온천으로 성공해서 돈을 벌면 능력 좋은 헌터들을 많이 고용해서 실종된 부모님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럼 박시우랑 지호도 지금처럼 쫓기듯이 위험한 헌터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 온천에 전부 모여 전처럼 화목하게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산소 부족으로 의식이 흐려집니다. 사망까지 남은 시간 : 10초]
10초대에 들어서니 시야가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물속에서 피어난 환한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누군가의 손이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러고는 입으로 따듯한 숨을 불어 넣어줬다.
물속에서도 신비롭게 빛나며 흩날리는 은발에, 살며시 내려앉은 긴 속눈썹 아래로 드러난 차가운 사파이어색 눈동자.
내게 입으로 숨을 전해주고 있는 건 성좌 ‘온천수의 지배자’라 불리는 남자였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자신의 주인을 각인합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숨결로 60분 동안 온천수 안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살았다…….
남자는 나를 품에 안아 순식간에 물 위로 올라갔다.
그의 주변으로 물결이 거세게 휘몰아치자 바다색 도포가 어지러이 흩날렸다.
이상하다.
왜 언젠가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지?
흐릿하게 보이는 남자와 내 오래된 기억 속의 누군가가 겹쳐졌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기운이 폭주하는 온천수를 안정시킵니다.]
[메마른 온천탕에 온천수가 차오릅니다. 온천수 효과로 히든 필드 ‘온천(EX)’ 안에서 10분마다 체력이 5씩 회복됩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점심으로 돈가스 먹어야 하는데…….”
[돈가스를 떠올려서 배고픔을 느낍니다.]
[배고픔에 체력이 1 소모됩니다. 체력 (2/30)]
“정신 차려, 꼬맹이.”
귓가에 누군가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눈꺼풀이 무거워서 뜨이지 않았다.
“영계……백숙도 맛있는데…….”
[가이드 ‘영계’가 내 의식의 흐름을 듣고 분노합니다.]
이 와중에 침은 고이네.
[영계백숙을 떠올려서 배고픔을 느낍니다.]
[배고픔에 체력이 1 소모됩니다. 체력 (1/30)]
[칭호 ‘저질 체력’을 획득하셨습니다.]
배고픈데 졸려…….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데다 물에 빠진 탓인지 몸이 서늘했다.
“추워…….”
몸을 웅크린 난 본능적으로 포근하고 넓은 품에 파고들었다.
“정말 골고루 하는군.”
누군가가 천 같은 것으로 내 몸을 두르는 것이 느껴졌다.
[칭호 ‘저질 체력’의 효과로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강제로 수면에 빠집니다.]
그걸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고소한 튀김 냄새…….
이건 분명 돈가스다!
식욕을 자극하는 돈가스 냄새에 홀린 듯 눈이 떠졌다.
“어라? 여긴 어디지?”
나는 아까 영계가 줬던 옷으로 갈아입혀진 채 객실로 보이는 방의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다.
갑자기 터진 온천수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아무리 F급, 아니지. 지금은 E급으로 성장했으니까 엄연히 E급 각성자인데!
어떻게 체력이 30밖에 안 돼?
온천 사장이라 몬스터를 사냥할 일이 없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보통 E급 헌터들 체력이 1000에 가까운 것과 비교하면 심각하게 열악한 수준이었다.
이참에 내 스탯이나 확인해볼까?
내 눈이 잠시 잘못된 걸 수도 있잖아.
체력이 30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는 스탯창을 켰다.
[직업 : EX급 온천의 사장(E)]
[체력 : 15/30 | 힘 : 20 | 행운 : 10 | 자물쇠]
[보유 스킬 : ‘자본주의 미소(A)’, ‘분노의 곡괭이질(A)’]
[히든 스킬 : ‘온천 이용권 판매 데스크(EX)’/ 자물쇠]
[칭호 : ‘저질 체력’]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구나.
체력 30에 힘이 20이라니.
절망적인 숫자에 깊은 한숨을 내쉬다 히든 스킬창으로 눈을 돌렸다.
……히든 스킬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심지어 온천 이용권 판매 데스크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용권을 파는 것뿐인데, EX급이잖아?
EX급 온천이 히든 필드라고 했으니, 온천 사장이라는 직업과 연관된 스킬들은 모두 히든 스킬로 분류되는 모양이었다.
이 자물쇠는 뭐지?
그 존재가 궁금했던 난 자물쇠를 눌렀다.
[아직 개방되기 전인 스킬입니다. 개방 조건 : 알 수 없음]
자물쇠가 걸려 있는 걸 보니 히든 스킬도 뭔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스탯에도 자물쇠가 있네?
[아직 개방되기 전인 스탯입니다. 개방 조건 : 성좌들의 호감 얻기 (진행도 50% 확인하기)]
개방하려면 성좌들의 호감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런데 어떻게 진행도가 50%나 될 수 있지?
딱히 내게 호감을 느끼는 성좌들은 없는 것 같았는데 말이야.
아, 딱 한 명 빼고.
내게 꼬리를 치던 성좌.
난 가장 먼저 성좌 ‘운수를 믿습니까?’를 떠올렸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지?
호기심에 확인하기 버튼을 누르자 ‘성좌들의 호감 얻기’ 진행 상황이 나타났다.
[‘저승의 염라’ 염라 (미완료)]
일단 염라는 예상했던 결과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성좌 명이 ‘저승의 염라’라니, 박시우의 흑염룡에 잇는 작명 센스였다.
진짜 염라대왕이면 인정.
그게 아니면 중2병에 걸린 게 확실했다.
중2도 성좌가 될 수 있나?
아니, 성좌에게도 나이란 게 있는 거야?
성좌는 미지의 존재이다 보니 아직 알 수 없는 정보가 많았다.
조금은 엉뚱한 생각과 함께 나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운수를 믿으십니까?’ 운수 (미완료)]
어라? 운수가 미완료야?
그럼 누가 내게 호감을 가진 거지?
같이 차 마시자고 하면서 꼬리까지 치더니……. 역시 FOX였다.
겉과 속이 완전 다르잖아!
넌 이제 믿고 거른다.
의외의 결과에 묘한 배신감을 느낀 나는 콧방귀를 끼며 목록을 넘겼다.
[‘불사의 살인귀’ 샤레니안 (완료)]
불사의 살인귀면……. 아직 대화도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데.
이거 호감도 정확히 측정하는 거 맞아?
오류가 생긴 게 아닌가 싶어 창을 다시 껐다가 켜봤지만, 결과는 처음과 같았다.
성좌 명 옆에 쓰인 건 진짜 이름인가?
샤레니안…….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영계가 이 이름을 언급한 것도 같고…….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뭐,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겼겠지.
일단 쿨하게 넘겨버리고 마지막 성좌의 호감 진행 상태를 확인했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호감 창을 들여다보던 난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 믿느니 차라리 박시우가 정상인이라는 걸 믿겠어.
나는 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곧바로 창을 닫았다.
“정신이 든 건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온 건, 온천의 지배자였다.
그는 전과 달리 나와 비슷한 개량 한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가?
어두운 남색도 잘 어울리네.
색이 진한 옷을 입으니 그의 새하얀 얼굴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았다.
아냐, 지금 얼굴 감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홀린 듯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곧 현실로 되돌아왔다.
“보시다시피?”
난 양손을 든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자는 내 앞으로 몸을 낮추고 앉아 커다란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보고는 곧바로 멀어졌다.
방금 뭐가 왔다 가지 않았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열은 없는 것 같군.”
뭐라 혼잣말을 하던 남자는 냉랭한 눈초리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빛이 어찌나 서릿발 같은지 얼굴이 다 따가울 지경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든가?”
“너…….”
남자가 청량한 외모와 잘 어울리는 연분홍색 입술을 달싹거렸다.
“예전에 날 만난 적이 있나?”
“난 오늘 각성했는데?”
“그렇긴 하지.”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한지 남자는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그를 보니 방금 스쳐 지나갔던 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온천의 지배자’ 해령 (완료)]
“너 혹시 츤데레야?”
“츤데레가 뭐지?”
내게로 해령이 의문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음……. 왜, 무심한 척하면서 챙겨주는 이율배반적인 행위 있잖아. 네가 나한테 까칠하게 굴고 있지만, 실은 나한테 호감이 있다거나?”
그저 상태창에 표시된 내용을 확인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해령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눈으로 험한 말(★☆★☆★☆★☆★☆★☆)을 쏟아냅니다.]
별 속에 담긴 수많은 육두문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