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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5화 (5/190)

5화

심봤다!

[소비 욕구가 증가한 성좌들이 온천에 가고 싶다고 난리 법석을 부립니다.]

온천 사장이면 평생직장인 데다, 달에 9,000만 골드가 보장된다면 웬만한 S급 헌터보다 수익이 좋았다.

꿈만 꿨을 뿐인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F급인 게 뭐가 중요해?

돈만 잘 벌면 장땡이지.

앞으로 쭉 펼쳐진 꽃길을 걸을 생각에 입가가 절로 올라갔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내게 “혹시 운수를 믿으십니까”하고 물어옵니다.]

‘이거 도를 믿으십니까 아니야?’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도’가 아니라 ‘운수’라고 강조합니다.]

혼자만의 생각이 저기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운수를 믿으십니까’는 방금 내가 똥손이라는 것도 맞췄었지.

이미 나에 대해 맞춘 이력이 있다 보니 묘한 신뢰감이 생겼다.

‘그건 왜 물어? 나 돈 없어.’

일단 난 지갑부터 사수하고 나섰다.

사기는 본인도 모르고 당하는 거니까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사장님이 너무 아리따우셔서 운수를 봐드리고 싶었을 뿐 돈은 필요 없다”며 지갑은 넣어두라는 듯 손을 내젓습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대신 손금도 같이 보는 편이 정확해서 잠시 사장님의 손을 잡아봐도 되겠냐”고 눈웃음을 치며 꼬리를 살랑거립니다.]

내 운을 봐준다면서 대체 꼬리는 왜 살랑거리는 건데?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새로 온 주인이 네놈이 부담스러워서 달아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검을 꺼내 들고 살기를 뿜어냅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그런 일이라면 기꺼이 명부를 빌려주겠다”고 나섭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자신은 순수하게 운수를 봐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울먹입니다.]

‘딱히 부담스럽진 않은데.’

처음 겪어보는 성좌의 꼬리 치기가 황당했을 뿐, 난 대외적으로 꽃미남에 속하는 박시우와 지호와의 오랜 동거 생활과 부대낌에 단련된 덕분에 이성의 치근덕거림에는 그다지 타격이 없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내 말에 의기양양하며 “불순한 마음은 당신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저 순진한 얼굴에 속지 말라”며 “속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라고 당부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운수는 그런 거 모른다”며 순진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직 만나기 전인데도 운수에게서 진한 FOX의 향이 느껴졌다.

갑자기 ‘불사의 살인귀’의 말에 신용이 생기는군.

나는 그의 당부를 새겨듣기로 했다.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그래서 내 운수가 어떤데? 한번 들어나 보자.’

EX급 온천을 이용하는 성좌니까 실력은 인증한 거나 다름이 없지.

나는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에게 앞으로의 운을 미리 점쳐보기로 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일단 만나서 손금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손금을?’

손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데.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검을 뽑아듭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다시 생각해보니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며 황급히 말을 바꿉니다.]

저런……. 꼭 손금을 볼 필요는 없었다는 거잖아?

‘불사의 살인귀’가 아니었다면 그 말을 그대로 믿을 뻔했다.

나는 급속도로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미심쩍어졌다.

‘됐어. 운수 안 볼래.’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능글맞게 웃으며 “농담이었으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공짜라는데 한 번 볼까?

내심 앞날이 궁금했던 나는 ‘운수를 믿으십니까?’에게 회생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제대로 봐.’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탁상 위로 엽전을 던져 나의 운수를 점칩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바닥으로 떨어진 엽전을 보며 ‘나락’이라며 한탄합니다.]

‘꽃길 가득한 미래가 아니라…… 나락이라고?’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그렇다고 완전히 나락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안심하라는 듯이 웃습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나에게 “재물과 동시에 죽을 운이 온다”고 말합니다.]

‘재물이 들어오면 뭐해? 죽어버리면 하나도 소용이 없는데?’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온천을 즐기고 싶으니 되도록 살아서 온천을 운영해달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난 온천 사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나도 그냥 돈줄 정도로 생각하니까 깔끔하고 좋긴 한데, 방금 전 그 운수가 조금 찜찜했다.

뭐 점이 꼭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더는 그들에게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온천으로 발을 들였다.

[히든 필드 ‘메마른 온천(EX)’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와……. 진짜 크네.”

밖에서 봤을 때에도 규모가 크다고 느끼긴 했지만, 직접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예상보다도 훨씬 어마어마했다.

1층엔 온천으로 보이는 탕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꽤 여럿 있었음에도 입구 사이의 간격이 널찍했다.

게다가 2층은 따로고.

과연 EX급 온천다운 규모였다.

이곳이 나의 꽃길과 여생을 함께할 온천인가?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라.”

영계는 작은 몸을 움직여 일하기 편해 보이는 개량 한복을 한 벌 내어줬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려는 그때.

“그럴 필요 없다.”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은실을 엮은 듯한 신비로운 은발에 맑은 호수를 보는 듯한 물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외모의 남자가 바다색 도포를 흩날리며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파란색 이온 음료 광고에 나올 것 같은 청량한 외모.

그게 그를 본 내 첫 감상이었다.

성좌들은 외모도 EX급인 건가?

박시우와 지호를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얼굴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남자가 나를 향해 몸을 낮추자 그의 귀 아래로 늘어진 귀걸이가 살랑거렸다.

“어차피 곧 돌아가게 될 테니까.”

차게 식은 바다색 눈동자가 내게로 고정됐다.

꽃 같은 외모와 달리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곱지 못했다.

이 불만스러운 말투…….

처음부터 묻지 않아도 누군지 짐작이 갔다.

“네가 온천의 지배자 맞지?”

“그 또한 알 것 없다. 다시 말하지만 넌 얼마 안 가서 이곳을 제 발로 나가게 될 테니까.”

보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겼는데 이 남자…….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나?’

“다 들린다.”

‘들으라고 한 말인데.’

남자가 약이 올라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언제까지 여유로울 수 있는지 보자고.”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필수!) 온천 사장이 되기 위한 첫걸음, 메마른 온천을 살려라!]

[수맥 찾기 (0/1)]

[실패 시 죽음]

이게 무슨 소리지?

웅장한 건물 크기에 정신이 팔려서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주변이 온통 메마른 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것도 없는 F급한테 다짜고짜 수맥을 찾으라니!”

“네 말이 맞아. 아무것도 없이 수맥을 찾는 건 불가능하지.”

[성좌 ‘온천의 지배자’에게서 ‘평범한 곡괭이(F)’를 획득합니다.]

남자는 내 손에 곡괭이를 들려줬다.

[평범한 곡괭이(F)]

[이름대로 평범한 곡괭이다.]

뭐야?

이 이름만큼이나 성의 없는 설명은.

‘지금 나한테 특별할 것도 없는 곡괭이 하나로 수맥을 찾으라는 거야?’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어차피 운영할 사람도 없으면 노는 온천인데 너무 가혹한 조건이다”라며 항의합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까칠함이 고슴도치 수준”이라며 답답함에 담뱃대를 뭅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고슴도치를 모욕하지 말라”며 화를 냅니다.]

“시끄러워. 어차피 메마른 온천이라면 문 열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어.”

성좌들의 항의에 냉랭하게 답한 남자는 나른한 고양이처럼 마루에 늘어져 앉아 나를 바라봤다.

실패 시 죽음이라니 너무 극단적이잖아!

그 순간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말해준 점괘가 떠올랐다.

‘재물과 동시에 죽을 운이 온다’

재물과 나락이 동시에 들었단 게 이런 거였나?

내가 죽으면 내 재물은?

“내가 죽으면 미리 받은 9,000만 골드는 어떻게 되는데?”

“당연히 돌려줘야지.”

남자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냅다 바닥에다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900만 골드도 아니고 9,000만 골드를 도로 뱉어내? 그건 못 참지!’

더군다나 소리도 없이 비명횡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포기하면 편할 걸 굳이 어려운 길을 간다”며 한심한 눈초리를 합니다.]

‘나 곡괭이 들었다? 저승길도 같이 가봐?’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내 서늘한 눈빛을 느끼고 딴청을 피웁니다.]

남자의 도발에 열이 끓어오른 나는 더욱 세게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몸을 감싸고 돕니다. 스킬 ‘분노의 곡괭이질’을 획득합니다.]

[스킬 ‘분노의 곡괭이질’ 획득으로 행운 스탯이 열립니다. 행운이 +10 상승합니다.]

그때였다. 얼굴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비가 오나?”

내가 있는 곳은 노천탕이라 천장이 뚫려 있었기에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이 물방울은 어디서 튄 거지?

[수맥을 발견했습니다. 곧 온천수가 터져 나옵니다. 남은 시간 : 3초]

진짜 수맥을 발견했다고?

“심봤다!”

나는 양팔을 하늘 위로 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경고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주의 : 휩쓸리면 사망할 수 있음]

아니, 잠깐만.

[남은 시간 : 2초]

최소한 달아날 시간은 달라고!

[남은 시간 : 1초]

[남은 시간 : 0초]

[온천수가 거세게 치솟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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