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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2화 (2/190)

2화

내가 예쁜 걸 어떡해

“박수온, 나 오늘 탑 뚫으러 가서 늦게 들어온다.”

거실로 나오는 발소리에 소파에서 자고 있던 나는 거북이처럼 이불 속에서 얼굴만 쏙 꺼냈다.

잠에 어려 덜 뜨인 눈으로 올려다보니 내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박시우가 보였다.

“저녁에 라면 거하게 끓여 잡수셨나 보네.”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원래가 그런 거면 더 큰일인데.”

막 일어난 내 얼굴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 이 죽빵을 날려주고 싶은 남자가 바로 박시우. 나보다 두 살 많은 혈육이다.

표범을 연상하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에 반반한 외모는 봐줄 만한 수준이었지만, 보다시피 인성에 문제가 있다.

“진짜 큰일 한번 내봐? 국내 1위 길드장이 쌍코피 흘리면서 탑에 나타났다고 하면 스포트라이트 세게 받을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아직 각성도 못한 조무래기한테 당할 정도로 만만한 몸이 아니라서.”

소파에 팔을 기댄 채 날 내려다보며 웃는 박시우의 은회색 머리카락이 은은한 빛을 냈다.

원래 흑색이었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버린 건, 성좌가 ‘겨울의 왕’이라 찬 기운이 몸에까지 영향을 줘서 그렇다고 했다.

그 정도면 계약했다는 성좌가 손에서 얼음을 내뿜는 여왕, 엘X인 거 아냐?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어쨌든 S급 헌터로 각성한 박시우는 제 앞길을 막는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하며 최단기간에 45층 탑의 기록을 깨며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은 ‘집필’이라는 1위 길드의 길드장인데, 이 이름의 뜻이 또 기가 막힌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다고 해서 집필이라는데, 오른손의 흑염룡이 잠깐 깨어나서 지어주고 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글거렸다.

“집에 늦게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상관은 없는데 돈은 잊지 말고 보내.”

목적 또렷한 당부에 박시우의 눈썹이 불만스럽게 일그러졌다.

“넌 위험천만한 탑을 뚫으러 가는 오빠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

“그럼 어떡해. 그 잘난 오라버니랑 동생 때문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돼서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겨버렸는데.”

난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의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턱짓을 했다.

그곳에는 이틀 전부터 몰려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 특종 거리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모인 기자들 대부분이 우리가 아니라 널 기다리고 있는 거거든?”

박시우의 말대로였다.

세상에 첫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그때부터 우리 집안은 대대로 S급 헌터를 배출해왔다.

당연히 부모님들도 S급 헌터고, 앞서 말했듯이 박시우도 S급 헌터.

내 남동생 박지호도 무기에 레전드 스탯을 달아주는 세계 유일의 S급 행운 큐브로 각성해서 S급 헌터 가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 각성하지 못한 날 제외하고.

그렇다고 해서 조급하다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헌터가 되고 싶지 않은 쪽이었다.

S급 헌터였던 부모님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때마다 몬스터를 처단하기 위해 전전하셨다.

눈 붙일 시간도 없이 바쁘게 활동하던 부모님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정체불명의 던전에 휘말려서 실종됐다.

전례에 없는 던전 유형에 우리 남매는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했고, 나라에서는 ‘명예의 헌터’라는 훈장을 하나 걸어주고는 어영부영 부모님의 장례를 치러버렸다.

그렇게 헌터라는 이름으로 나라에 공헌했던 부모님들은 서서히 국민의 기억에서 잊혔다.

그런 게 헌터의 삶이라면 나는 죽어도 사양하겠어.

어쨌든 잘난 가족을 둔 덕분에 나는 쭉 숨죽이듯이 지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 중에 누군가가 종종 나와 박시우가 함께 다니는 걸 본 건지 익명 헌터 게시판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박시ㄸ 여동생 얼공한다.>

* * *

[사진]

* * *

└익명1 : 레알 박시ㄸ 여동생이라고? 여친 아니고?

└쓰니 : 나랑 아파트 같은 동에 삶. 첨엔 나도 여친인가 했는데 둘이 대화하는 거 보니까 ㄹㅇ 호적메이트.

└익명1 : 대화가 어땠길래 그럼?

└쓰니 : 공기 반 욕 반.

└익명3 : ㅋㅋㅋㅋ 호적메이트 킹정이죠?

└익명2 : 천상계 외모.

└익명1 : 팬 1호.

└익명3 : 그 시절 우리들의 첫사랑. 긴 생머리 그 애.

└익명1 : 킹정 ㅋㅋㅋ 이 형님은 지금 첫사랑에 빠졌다.

└익명2 : ㅋㅋㅋ 주접 보소.

└익명3 : 박시ㄸ 박지누ㄸ 집안으로 외모 유전자 몰빵됐나 봄.

└익명4 :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자작나무 타는 냄새.

└쓰니 : 응. 니 인중 냄새.

하나의 게시글은 순식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지ㅎ 별명 박지누ㄸ 뜻.>

* * *

박지ㅎ 누나 ㄸㄹㅇ라는 말이 있음. 평소에는 성격 좋게 웃고 있는데 자기 누나 건드리면 박시ㄸ 이상으로 ㄸㄹㅇ라 함.

* * *

└익명1 : 주작이라던 놈 어디 갔냐?

└익명2 : 개멋있어.

└익명3 : 그런데 진짜면 왜 이때까지 숨어 살았던 거임?

└익명1 : 그러게 레알 여신인데.

└익명4 : 너무 예뻐서 피곤했나 봄.

└익명2 : ㅇㅈ

<박시ㄸ 박지누ㄸ 누나가 조용히 산 이유>

* * *

아직 각성 못해서 그런 거 아님? 박시ㄸ 박지누ㄸ 가문 S급 헌터만 배출한다고 유명하지 않음? 부모님도 S급 헌터였음.

* * *

└익명1 : 아, 그 정체불명 던전 브레이크로 실종됐던 S급 헌터 부부.

└익명2 : 헐,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익명3 : 각성했는데 F급일 수도 ㅋㅋㅋ

└익명4 : 응. 그래도 너보다 잘살아.

<뜬금없이 미안한데.>

* * *

S급 던전 근처에 있는 온천 가본 사람? 한 3년 전인가? 나 분명히 거기 들어가서 목욕도 하고 돈가스도 먹었거든? 나 반실신 상태로 갔었는데 거기 다녀오니까 밤새 팔팔할 정도로 몸이 좋아진 거임. 그런데 다시 가보니까 없음. 사라졌나 했는데 본 사람이 없대.

* * *

└익명1 : S급 헌터인 척 오지죠?

└익명2 : 네. 다음 주작질.

슬슬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잠잠해지겠지.

익명 헌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훑어보던 나는 침이 고이는 걸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돈가스 이야기하니까 돈가스 먹고 싶네.

“거봐. 할 말 없지?”

“내가 예쁘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내가 일부러 그랬나? 태어나보니까 예쁜 걸 어떡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나를 박시우는 던전에 출몰하는 몬스터를 보듯이 바라봤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네 실체를 알아야 하는데. 그래도 여신 소리가 나올까?”

박시우는 진심으로 바깥의 사람들에게 지금의 나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한탄스러워했다.

“우리 누나가 한 미모하는 건 사실이지.”

그때 거실로 지호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같은 피를 나눴지만, 사나운 인상의 박시우와 달리 지호는 온순한 강아지상이었다.

눈을 살짝 가리는 앞머리와 목을 조금 덮는 길이의 흑발이 그와 잘 어울렸다.

우리 막둥이는 날 닮아서 말도 참 예쁘게 한다는 말이야.

지호는 박시우랑 같이 탑을 오르러 갈 생각인지 손에 든 짐이 많았다.

“이것 봐. 우리 막둥이가 맞다 하잖아. 박시우, 이 정도면 너 시력검사 좀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시력검사는 너희 둘이 더 시급해 보이는데.”

박시우는 둘 다 답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겉옷을 챙겨 들었다.

“올 때 메론바. 사 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릴 거야.”

나는 이불을 몸에 두른 채로 소파에 매달려 그들을 바라봤다.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쏙 내민 나를 보면서 뭔가를 느낀 듯한 박시우가 허공에서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띠링!

동시에 내게 알람이 울리며 창이 떠올랐다.

[OO은행 입금 2,000,000원 박시우]

“잘 챙겨 먹어. 돈돈아.”

돈돈이는 어릴 때부터 돈가스를 좋아하는 나를 부르는 박시우만의 애칭이다.

본인은 ‘돼지 돈’ 자의 뜻이 더 크다는데 그건 내가 알고 싶지 않으니까 모르기로 했다.

눈치챈 거겠지. 내가 불안해한다는 걸.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큰돈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주는 능력 있는 호적 메이트를 둔 덕분에 놀고먹는 백수로 살 수 있는 건 기쁜 일이었지만, 마냥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녀올게. 누나.”

“올 때 메론바 잊으면 안 돼!”

“응, 올 때 메론바!”

현관을 나가는 둘의 모습이, 실종되던 날 마지막으로 본 부모님의 뒷모습과 겹쳐 보였으니까.

그냥 헌터 같은 거 하지 말고 다 같이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온천이나 차리고 살면 안 되나?

내가 어렸을 적에 가족들끼리 마지막으로 갔던 온천처럼 말이야.

바쁜 부모님과 가족 여행을 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하지만 딱 한 번, 부모님과 함께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던전을 빠져나와 우연히 들른 온천에서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기분 좋은 휴식을 취했다.

그날부터 내 꿈은 온천 사장이 되는 거였고 말이야.

온천을 차리려면 돈이 얼마나 들려나?

나는 든든해진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오늘 점심에는 기필코 돈가스를 먹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가이드 ‘영계’가 ‘온천의 후계자’를 탐색합니다.]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떠오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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