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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1화 (1/190)

1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자, 여기 수건 배달 왔다.”

자신이 용이라고 주장하는 영계가 짤막한 등에 짊어지고 온 수건을 바닥에 쏟아냈다.

내 앞으로 볕에 바싹 마른 수건이 우수수 떨어져 산을 이뤘다.

내가 왜 여기서 수건이나 개고 있는 거지?

이를 악물면서도 나는 꾸역꾸역 수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에서 온천을 운영하며 사는 것.

그건 세계에 첫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뒤, 대대로 S급 헌터만을 배출한 집안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 박수온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처음 온천의 주인으로 각성했을 때는 내게도 드디어 꽃길이 열리는구나 싶었는데 말이야…….

온천은 내가 바라는 대로 사람들이 잘 찾아올 수 없는 은밀한 곳에 있긴 했다.

평범한 인간들이나 웬만한 헌터들의 눈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성좌들의 온천이었으니까.

여기까지도 좋다 이거야.

정원이 넷이 전부인 온천이니 손님이 많지 않길 바랐던 내 뜻과도 맞았다.

문제는 그 ‘넷’이 미친X들이라는 거였다.

“주인, 내가 등을 조금 다쳐서 그대가 약을 좀 발라줬으면 하는데…….”

때마침 첫 번째, 미친X이 나타났다.

피범벅이 된 옷을 팔에 걸친 채 자신의 탄탄한 등을 드러내는 흑발의 남자는 불사의 살인귀라 불리는 샤레니안이었다.

밤하늘을 담은 듯한 먹색의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뺨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고 있는 그는 내가 딱 한 번, 상처를 치료해준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피를 철철 흘리며 이곳을 찾아왔다.

여기가 온천이지, 응급실이냐고!

“다쳤으면 병원을 찾아가.”

“아, 피를 많이 흘렸더니 현기증이…….”

샤레니안은 할 말이 없어질 때면 현기증이 온다며 휘청이다 쓰러졌다.

게다가 쓰러질 때는 꼭 내게 기댔다.

당신 불사신이라서 안 죽잖아. 이 사기꾼아.

날 성가시게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계략남 재질의 미친X이라는 건 알겠다.

“수온, 오늘의 운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아?”

이제 막 목욕을 끝낸 건지 촉촉이 젖은 황금색 머리카락에 이슬이 맺힌 채로 대충 가운을 걸치고 내게로 다가와 앉는 온순한 사막여우상의 남자가 바로 두 번째 미친X이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서 틈을 보이면.

“예를 들어 연애운이라든가…….”

어느새 내게 귓속말을 하며 성큼 가까워져 있다.

강아지인 척하는 여우라고 보면 된달까.

이름이 운수인데, 진짜로 그날의 운을 본다.

“운수를 믿으십니까?”

새삼 첫 만남에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가 떠올랐다.

그 후로 시도 때도 없이 내 운수를 봐주겠다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도를 믿으십니까 재질의 미친X이라면 설명이 쉽겠다.

“응? 이 흉물스러운 시체는 갖다버리고 나와 운을 보자니까.”

운수가 내 반대쪽 팔에 붙어서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화가 턱밑까지 치밀어 올라 뒷골이 뻐근해지는 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정신 사납게.

마음 같아서는 개고 있던 수건으로 그 고운 얼굴을 후드려 패주고 싶었다.

그냥 다 때려치울까?

이를 바드득 갈며 수건을 들어 올리던 나는 눈앞에 떠오른 창에 굳은 듯이 멈췄다.

[온천 수건의 자존심은 살아 있는 각!]

[각 맞춰서 수건 개기 (50/100)]

[완료 보상 : 200만 골드]

200만 골드!

200만 골드면 웬만한 직장의 정직원 한 달 월급보다 많았다.

수건 백 개를 개서 한 달 월급을 번다는 건 다시 생각해도 입맛을 다실 정도로 달콤한 조건이었다.

그래, 이제 반만 더 개면 200만 골드다.

때려치우더라도 이것까지는 마무리하는 거야.

난 즐겁다. 난 즐거워.

수건만 개면 하늘에서 200만 골드가 쏟아진다고!

“수온,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야? 응?”

51번째 수건을 개고 있는데 운수가 나의 팔을 잡고 흔드는 바람에 애써 공들여 잡아놓은 모양이 흐트러져버렸다.

[현재 수건의 각(45도)이 이탈하였기 때문에 카운팅 되지 않습니다.]

거의 끝난 거였는데 이 미친X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개야 하잖아…….

“아, 진짜 못해먹겠네!”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한 나는 수건을 바닥에 팽개쳤다.

내 포효를 들은 건지 저승탕의 문이 열리고 세 번째 미친X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비단을 보는 것 같은 결 좋은 흑색 장발에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의 남자는 염라.

모두가 생각하는 그 염라대왕이 맞다.

저승에서 종일 명부를 보느라 지친 몸을 회복 효과가 있는 온천수에 녹이러 온다는데, 일이 얼마나 많은지 온천에서도 서류를 보고 있다.

기다란 담뱃대를 물고 있던 염라가 안개처럼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불그스름한 입술을 열었다.

“여기에 써라.”

그는 내게 기다란 두루마리 일부를 내보이며 붓을 건네줬다.

“뭘 쓰라는 건데?”

“널 화나게 한 놈의 이름.”

“이 두루마리가 뭔데 이름을 쓰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는 내게 염라는 담배 연기처럼 가볍게 말을 뱉어냈다.

“저승 명부.”

거기에 이름 쓰면 죽는 거 아니야?

“생년월일까지 쓰면 더 정확하게 죽일 수 있고.”

아니, 무슨 동양판 데스노트냐고!

“모른다면 내가 대신 알아봐줄 수도 있다.”

“됐어. 나 화 안 났으니까 그건 넣어둬.”

난 출생 기록지까지 꺼내드는 염라의 팔을 붙들어 말렸다.

다른 거면 몰라도 저승 명부면 아무리 성좌라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저 진지한 얼굴을 보아하니 농담을 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니고.

아쉽다는 듯 염라는 펼쳐진 두루마리를 되감았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명부를 들이미는 그는 무심한 붓질 한 번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잔혹함을 가진 진정한 퇴폐미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특히 동백 꽃잎을 물고 있는 것처럼 붉은 입술과 적안이 묘하게 야릇한 기분이 들게 했다

물론, 내 눈에는 그저 한국판 데스노트를 든 미친X일 뿐이지만.

자, 침착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나는 새 마음, 새 뜻으로 뭉개진 수건을 펼쳐 다시 개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손이 내 손에 들려 있던 수건을 앗아갔다.

“그러게 애초에 이곳은 너처럼 작고 엉성한 데다가 속물 덩어리이기까지 한 꼬맹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잖아.”

입을 여는 족족 재수 없는데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게 하는, 한여름의 바다색 얇은 도포 차림의 남자는 해령.

은발에 밝은 물색 눈동자를 한 그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외모는 천상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해령은 내 피셜 이곳 최고의 흑막이자 이곳 온천수를 다스릴 수 있는 나의 최초 계약자였다.

까칠하기로는 사포 수준인 그가 나를 대신해 수건을 접었다.

나보다 훨씬 빠르고 깔끔하게 수건을 갠 그가 내 품에 완성품을 안겨줬다.

[타인의 손을 빌려 완성된 칼각(90도) 수건은 카운팅에서 제외됩니다.]

[타인의 손을 빌리려다 발각되었기 때문에 페널티로 쿨타임이 적용됩니다.]

[페널티 쿨타임 : 12시간 00분 00초]

아…….

매정하게 굴 거면 아예 돕지를 말든가!

왜 츤데레 미친X이어서는!

페널티 쿨타임은 반나절.

하루에 나오는 수건은 정확히 50장이었다.

저 미친 츤데레가 수건을 개어주는 바람에 수건 한 장이 부족해서 이틀이면 끝날 걸, 하루 더 끌게 되었다.

무엇이든 빠른, 빠름의 민족 피를 이어받은 난 분노와 광기에 불타올랐다.

이번만큼은 나도 못 참아!

평화로운 내 온천 사장의 꿈, 단 한 가지 문제점은 이들 넷이 나를 각성시킨 계약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계약 파기 시 죽음이라는 조항만 없었어도 당장 청산하는 건데…….

약삭빠른 머리가 회전하는 지구본처럼 재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계약 파기만 하지 않으면 문제없다는 거잖아?

난 우주로 쏘아지는 인공위성 같은 추진력으로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덕분에 내게 기대어 있던 샤레니안이 바닥으로 꼬꾸라지기 직전에 몸을 일으켰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꾀병이었군.

눈을 가늘게 뜨며 샤레니안을 흘겨본 나는 염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염라, 이 두루마리랑 붓 좀 빌려도 될까?”

염라는 흔쾌히 내게 두루마리와 붓을 넘겨줬다.

그것들을 건네받아 두루마리를 펼치고 앉은 나는 어느 때보다 열중해서 힘차게 붓을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두루마리를 집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온천으로 들어오는 나무 문에 두루마리를 펼쳐 걸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난 어느 때보다 환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손 인사를 건넨 나는 문만 열면 머릿속의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온천의 출구를 열고 사라졌다.

“이게 뭐지?”

족자를 들여다본 염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를 선두로 네 명의 성좌들이 모두 두루마리 앞으로 모여들었다.

‘오늘부터 무기한 영업을 쉽니다. -온천 사장 박수온 백’

그날, 내가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이후부터였다.

그 미친 성좌X들이 광적으로 내게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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