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특별 고문 (3)
* * *
이재혁이 눈을 깜빡이며 내가 내민 물건을 바라봤다. 그가 코를 킁킁거리며 물었다.
“이게 웬 겁니까?”
“붕어빵이요.”
“제가 붕어빵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인터넷 기사로 두들겨 맞으시던데요. 붕어빵 먹고 일 제대로 안 한다고.”
이재혁이 손가락을 튕긴다.
“일주일 전에 뜬 기사 보셨구나! 그거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뇨. 오늘 거요. 하나 더 떴어요.”
“……아, 대진 일보 십새끼들. 사람이 거 붕어빵 좀 먹을 수 있지.”
이재혁과 허름한 카페에 앉아 서류들을 늘어놨다. 주위에 손님은 없었다. 전에 만났던 그의 삼촌네 카페다.
고문으로서의 첫 번째 일이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에는 지금 사람이 필요했다.
“한국에 유능한 인재가 없죠.”
이재혁이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답답한 듯 눈썹을 찌푸린 그가 서류를 넘겼다.
“제가 외국에서 고작 4년 정도 일했었다는 이유로 본부장 자리에 앉았으니까요. 협회 내부는 사실상 전멸입니다. 저도 유령 부서에서 하릴없이 놀다가 올라간 거에요.”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라고 협회에서 설치해놨지만 이게 썩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협회 정치 요인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저쪽에서는 물 떠 놓고 망하라 고사만 지내고 있었다.
멀쩡히 먹고 있던 밥상도 뒤집는데, 가뜩이나 부족한 전문 인력들이 풍족하게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아는 사람들은 협회 상황 뻔히 알고 있어서……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에 들어오는 걸 영 마땅찮아 하거든요.”
“어느 정도입니까?”
“학을 떼는 수준이죠. 부협회장 라인이 질 거 뻔하다고 생각하는데, 괜히 이쪽하고 엮이면 협회에 밉보일 테니까요.”
헌터 업계는 유통되는 돈을 생각했을 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좁았다.
청문회 당시 랭킹 1위인 이지아가 전 동료들에게 증인 요청을 했지만, 전부가 협회 눈치를 보며 거부했다.
이것만 봐도 협회가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올스타들이 공략을 실패한 상황.
그런 와중에 협회와 척을 지면서 밥줄 끊길 위험을 감수하고, 욕먹기 딱 좋은 자리에 기어들어 올 얼간이는 찾기 힘들었다.
이재혁이 명단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일단 협회 내부보다는 PMC, 길드, 대학 등에서 차출, 아니, 협력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사회가 했던 것처럼 여론 움직여서 재야인사들 지명하면…….”
“아니요.”
“네?”
“순서를 조금 다르게 정하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혹시 커피 드십니까?”
“저희 삼촌네 가게이긴 한데, 뭐,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먹겠습니다.”
매대로 들어가서 커피 원두를 뒤졌다.
식기구들을 볼 때부터 그를 것 같더니만, 비싼 품종을 쓰고 있었다.
조카가 먹는다는데 인색하게 굴진 않겠지.
추출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렸다.
“저희한테 지금 제일 필요한 인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고위 헌터 아닙니까?”
이재혁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안경닦이를 꺼내 알을 닦는다. 흐릿한 시야 때문인지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결국 어비스 던전을 공략해야 끝나니까요. 그러기 위해 만든 본부고요. 지명받을 때마다 똥 씹은 얼굴로 불평…….”
이재혁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돌린다.
“…을 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공략하려면 헌터가 필요하죠.”
맞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의 과제는 본질적으로 공략에 있었다.
전 국민이, 여론이, 정부가 원하는 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것.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미국에서 공략 기간을 최소 2년 정도 잡았다죠?”
“네.”
“저희가 그보다 앞서 공략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맞습니까?”
“자존심 상하지만 그렇죠.”
전력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했다. 자존심은 전략과 전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지아 같은 별종을 제외하면 한국 헌터는 미국 헌터보다 명확히 열세였다.
“이사들에게 앞에서 발표 것처럼, 최소 2년간은 던전 브레이크를 담당할 헌터들이 필요합니다.”
크랙, 웨이브, 게이트 등.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철원군에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
만약 헌터들이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었다면 굳이 유엔군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던전이 아닌, 브레이크를 전담할 헌터들이 필요했다.
이재혁이 깨끗하게 닦은 안경을 코 위에 걸쳤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헌터들을 징집해서 5분 대기조처럼 운영하자, 이 말씀이죠?”
그가 문제점을 짚었다.
“헌터들이 자기 경력을 포기하고 대기조에 들어가려 할까요…? 게이트까지 대비하려면 꽤 많은 숫자가 필요합니다.”
“이번 철원군 게이트 이후로 외국에 파견 나가 있던 워슈트 부대가 일부 복귀했습니다. 협회에서 전부 도맡을 필요는 없어요.”
“네? 현우 씨가 그런 걸 어떻게…….”
핸드폰에 등록된 국방부 차관의 번호를 보여줬다.
“…아, 이제 좀 거물 느낌이 나네요.”
“제가요? 본부장님만 하려고요.”
나야 얼굴만 좀 팔린 연예인이고.
창가에 앉아있는 소시민 같은 남자, 이재혁은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실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기자들한테 붕어빵 먹는 모습 찍혔다고 투덜대는 거로는 썩 연상되지 않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해결되지 않는 동안 그는 행정부고, 협회고, 사법부고,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언터쳐블이었다.
이재혁이 물었다.
“그럼, 헌터들은 어디서 충당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말씀드리자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억지로 끌어들이면 인권위에서 지랄해서.”
참, 이런 시국에도 열심히 일한다.
커피잔을 양손에 쥐고 창가로 걸어갔다. 이재혁이 꾸벅 고갤 숙이며 받는다.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전에 유정이랑 협회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 한유정이라고 제가 담당하는 헌터인데….”
“알고 있습니다.”
“반년 전쯤에 협회에서 유정이한테 하나 제안을 하더라고요.”
“제안이요?”
아마….
내가 본격적으로 업계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을 품게 된 계기였다.
계약서로 장난질을 치려고 했거든.
“협회에서 헌터들에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대신에, 강제 동원 명령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처리하기 힘든 던전을 공략할 때 써먹으려고요. 독소조항이죠.”
키워줄 테니까 은혜 갚으라는 뜻이다.
혹시 모르니까 계약서로 목줄 채워놓고.
이재혁이 두 눈을 크게 뜬다.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계약한 헌터들. 우리가 협회에서 뺏어옵시다.”
협회가 준비한 밥상을 훔쳐 먹는다.
그들을 빼앗아오는 건 문제가 아니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는 말 그대로 깡패였다. 이재혁이 달라고 하면 협회에서는 필요한 거 다 챙겨줘야 한다.
다만,
“계약서를 조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제 동원 명령의 범위가 단순 ‘던전 공략’에만 맞춰져 있는지. 지금처럼 ‘던전 브레이크 대응’에도 강제 동원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아아, 그러니까, 현우 씨 말씀은 법조인부터 먼저 구해야 한다는 거군요?”
“네.”
다 마신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법적인 문제들을 마주칠 겁니다. 그걸 저희가 살짝 틀어서 이용할 때도 있을 거고요. 내부에 믿을만한 법률 전문가 한 명은 있어야 해요.”
“현우 씨, 협회에는 이미 법무팀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저희 입장에서 믿을 수 있습니까?”
“어, 음.”
눈을 굴리던 이재혁이 머쓱하게 웃는다.
“못 믿죠.”
협회 측 사람들이다.
이재혁도 협회 측 사람이지만, 정치 구도 때문에 절대 아군으로 볼 수 없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필요한 것들을 말했다.
“일단, 헌터법을 전문으로 해야 합니다. 이쪽에서 일한 경력도 길어야 하고요. 유능하면 더욱더 좋겠죠.”
“…….”
“저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좀 거칠고 더럽습니다. 법망을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서 능숙하게 맡은 일을 처리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법률 전문가이면서 비서 실장 정도가 되겠군요.”
“…….”
“다음으로 절대 배신하지 않아야 합니다. 법률 담당인 만큼 계약서 한 번 장난질 치면 저희가 속절없이 당할 수 있거든요. 협회에서 꾸준히 접촉을 시도할 겁니다.”
“…….”
“되도록 협회랑 척을 진 사람이 좋겠네요. 아무래도 그게 안전하겠죠.”
“흐. 현우 씨 말씀은 그러니까….”
이재혁이 기가 차다는 듯 웃는다.
“헌터법 전문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데. 더러운 일에 능숙하지만 협회의 유혹에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업계에서 오래 일했지만 협회랑 척을 진 인간이어야 한다고요?”
“네.”
그가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런 사람이 대체 어딨습니까! 직업적 사명감이 강한데 더러운 일은 능숙하고, 업계에서 오래 일했지만 협회랑 척을 진 사람이! 그것도 법조인 중에서요? 분홍색 유니콘을 찾는 게 더 쉽겠습니다!”
“한 명 있습니다.”
“네?”
“제가 한 명 알고 있습니다.”
* * *
* * *
사무실로 들어온 박 변호사가 서류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사무장님, 이제 퇴근합시다.”
사무장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벌써요?”
“요즘 철원군 게이트 때문에 일없잖아요. 포켓몬스터 그만하시고 들어가 보세요.”
“하하.”
그가 정색하며 물었다.
“티 납니까?”
“당연히 티 나죠.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피카츄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레드에요?”
“골드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코트를 챙긴 사무장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떠났다.
따라서 나가려던 박 변호사가 문득 켜져 있는 TV를 바라보았다.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그가 멈췄다.
「뭣들하고 있어? 내가 지금 귀머거리 병신들한테 지껄인 거야?! 전부 뒤지게 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약 30분 전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몬스터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하신 분들은──」
「다들 살아남읍시다, 시발.」
뉴스에서 한창 철원군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이 아주 시끄러웠다. 그야 당연했다.
평화롭던 나라에 몬스터 게이트가 등장하고, 한 청년이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을 구했는데 조용할 리가 없었다.
“하, 어쩐지. 그 양반 나이에 맞지 않게 담력이 있더라니.”
박 변호사가 허탈하게 웃었다.
속은 건 아닌데 속은 기분이었다.
잘난 척 조언은 다 해줬는데 더 험한 세상에서 구르다 온 인간이지 않은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평범하지는 않았다.
협회와 부딪힐 때마다 대부분 옆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전부 엿먹이는 것도.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행동력이나 눈치가 빠른 인간이었다.
“군인이라 그랬구만.”
그가 사무실의 불을 끄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터벅, 터벅.
그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터벅.
제자리에 멈춰 선 박 변호사가 조심스레 코트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철컥.
손끝에 닿는 쇠의 감촉이 차갑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누구…!”
“접니다.”
박 변호사 맥빠진 소리를 냈다.
“현우 씨?”
김현우가 힐끔, 코트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박 변호사의 손을 쳐다봤다.
“변호사가 총도 가지고 다니세요?”
“하는 일이 좀 험하잖습니까. 이거 덕에 몇 번 살았어요.”
“그거 총포법 위반….”
박 변호사가 코트에서 손을 빼며 넉살 좋게 웃었다. 그가 총구를 턱밑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딸칵!
모델 건이었다.
“내가 법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인데 설마 그걸 모르려고. 허세용이에요.”
김현우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일 좀 맡기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바쁘세요?”
“무슨 일인데요?”
“협회요.”
“물 맥이는 겁니까?”
“당연하죠.”
박 변호사가 시계를 확인했다.
4시 50분.
아직 퇴근 시간 안 됐다.
“원래는 상담료가 좀 비싼 몸인데.”
그가 빙긋 웃었다.
“협회 건은 무료로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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