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특별 고문 (1)
* * *
정적이 내린 회의실.
이재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적대적인 시선들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젊은 청년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이재혁은 잠깐 저 시선을 받는 주인공이 자신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다가, 이내 생각을 포기해버렸다.
생각만 해도 위가 저리는 느낌이었다.
청년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까 이 지경까지 왔겠지마는.
이재혁이 김현우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헤어질 때까지 계속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협회 정치 상황으로 이지아가 엮여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조차 마찬가지다.
화난 듯 눈썹을 찌푸릴지언정 전체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사회 영감들과 눈을 마주치는 김현우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싸늘하게 내려앉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격차가 너무나 커서 섬뜩함 마저 들 정도였다.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유엔 평화군 특수부대. 피스 메이커에서 4년간의 복무를 마쳤습니다. 부대에서 맡은 임무는 작전 보좌, 보급, 정찰 등이 있으며 해결한 던전 브레이크의 숫자는 그러니까… 너무 많아서 못 세겠군요.”
볼펜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기에, 속삭이듯 중얼거린 말은 모두의 귀에 쏙쏙 틀어박혔다.
김현우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단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앉아있는 이사들의 고개가 삐거덕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김현우가 이재혁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 사람들, 눈빛 한번 살벌한데요.”
“제가 그래서 위궤양 생길 거 같습니다.”
이재혁은 당신 눈빛도 만만찮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가 자리를 비켰다.
단상 위에 선 김현우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전역하고 1년간 카페 알바를 하며 헌터를 준비했었고, 지금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바스타드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담당 헌터는 한유정입니다. 혹시 저한테 따로 질문 있습니까?”
“이재혁이.”
가장 앞자리에 앉은 중년 남자가 엉뚱한 이름을 불렀다. 흠칫 놀란 이재혁이 쭈뼛거리며 고갤 들었다.
비상임 이사 윤석건, 헌터 관련 장비를 만드는 방산업체 대표이사인데, 원래 구멍가게 수준이던걸 협회장이 협회 차원에서 밀어주며 사업 규모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고향 선후배 사이입니다.
윤 이사가 책상을 툭툭 두들기며 힐난조로 말했다.
“아주 재밌는 짓거리를 하는구만.”
“그, 필요에 따라 초빙 해왔을 뿐입니다. 협회는 지금 미증유의 비상사태를 마주쳤고 전문가가…….”
이재혁이 더듬거리며 변명하자 윤 이사가 말꼬리를 잘랐다.
“헛소리. 유엔군 출신이라면 김현우 말고도 현역에 몇 명쯤은 있을 텐데.”
당연하지만 대한민국 육군에 유엔군 워슈트 부대 출신이 김현우 한 명뿐이지는 않았다. 그가 전역한 지금도 몇몇 한국군이 유엔에서 활약 중이었다.
“그래도 결국.”
김현우가 손을 들어 이재혁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은 건 저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거죠.”
자문이란 보통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가에게 부탁하는 자리다. 경력 쌓고 남들에게 충분히 인정받는 지위를 가지려면 대개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원래라면 새파랗게 젊은 김현우를 고문으로 선임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철원군 게이트에서 이천 명을 구하는 장면을 전문 방송 장비로 전부 찍어놨었다. 시청률은 32퍼가 나왔다.
사람들이 찾는 건 김현우가 될 터다.
이미 짜인 판이고 흐름이었다.
윤 이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고문 선임 권한은 이사회에 있어. 결국에는 우리들의 투표로 결정된다는 걸 알고 있나?”
“알죠.”
“그리고 앉은 자리가 절반으로 나뉘어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회의실 책상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아홉이, 우측에는 여섯이 앉아 있었다.
공략이 실패하길 바라는 협회장 라인. 그리고 공략이 성공하길 바라는 부협회장 라인.
그의 편을 들어줘야 할 세력은 명확하게 열세였다.
“잘 압니다. 지금 사람 목숨으로 권력 놀이하고 있잖습니까.”
“듣던 대로 입이 험하군.”
“저한테 쌍욕 안 들어먹는 걸 다행으로 여기시죠. 초면이라 봐 드리는 겁니다.”
“……투표에서 본인이 이길 거라 확신하나?”
이사회의 숫자는 대부분 홀수로 떨어진다.
다수결로 의결 사항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아홉이 적대적이고, 여섯이 우호적이었다.
즉, 마음먹고 깽판 치면 절대 김현우가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협회장이 경질된 1년간 새 협회장이 선출되지 않았던 거고, 아직도 협회가 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던 거다.
“그럼요.”
김현우가 비웃었다.
“설마 윤석건 이사님께서는 이게 투표로 결정할 의결 사항이라 보십니까?”
철원군 게이트로 천 명이 넘게 사망했다. 김현우라는 인물이 새롭게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재혁이나 김현우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입에서 슬금슬금 말이 나왔다.
그런 와중에 부협회장이 고문 선임을 의결로 올렸다.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말이 들려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했다.
협회가 아무리 민간단체라도 여론을 무시하지 못한다. 여론이 움직인다는 건 정부도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협회에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가 있었다.
윤 이사 또한 그걸 알고 있기에 김현우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여론을 움직여 압박하셨었죠.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걸 이용해 퇴로를 막아놓고, 2차 공략대로 지명하고. 어차피 우울증 때문에 던전을 못 들어가는 거 아니까, 이지아가 거절하고 여론 나빠지면 이때다 싶어서 묻으려 했을 거 뻔하고.”
“…….”
“상황이 반대가 됐군요.”
결국 이지아에게 한 짓 그대로 돌려준 거에 불과했다.
김현우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부협회장님, 이사님들 슬슬 퇴근해야 하는데 그만 시작하시죠.”
그가 빙긋 웃으며 이사들을 둘러봤다.
“혹시 제가 여기 있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밖으로 나가드릴까요?”
* * *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길 5분.
의결은 금방 끝났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이사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이 아니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지나쳐갔다.
어쩌라고?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기다렸다. 작업복을 입었지만 관료 특유의 분위기를 전혀 지우지 못한 남자가 뒤늦게 나왔다.
“이재혁 본부장님.”
이름을 부르자 이재혁이 반색하며 걸어온다. 그가 내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아이고오, 현우 씨. 아니, 김현우 고문님! 와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의결안 통과됐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씀하신 걸 보니까 잘됐나 보네요. 떨어트려 주면 좋았을 텐데.”
진심으로.
비꼬던 내 말에 화나서 반대표가 나오길 빌었다.
“당연하죠. 이미 판 짜인 거 확인됐는데 반대하면 등신들이지… 만장일치로 통과했어요.”
이재혁도 한껏 아쉬운 얼굴을 했다.
우리는 복도를 걸으며 협회를 빠져나갔다. 지나가던 직원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나와 이재혁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물론이고 이재혁도 제법 유명인이다. 외부에서도 심심찮게 뉴스나 기자회견에 얼굴을 비추는데, 협회 내부에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거기에 내가 협회랑 사이 안 좋은 것도 유명했다.
원래라면 멱살 잡고 싸우고 있어야 할 두 사람이 사이좋게 복도를 걸어가니까 의아하게 보이겠지.
홍해 갈라지듯 인파가 양옆으로 쫙 물러났다. 우리는 그 길을 뻘쭘하게 걸었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무시하는데 이재혁이 묻는다.
“그럼 이제 매니저 일은 그만두시는 겁니까?”
“네?”
“비상근이긴 해도 협회 특별 고문이잖아요. 굳이 매니저 일 하실 필요 있습니까? 명예직이긴 해도 월급 따박따박 나와요.”
“얼만데요?”
“350만 원이요.”
입꼬리를 씰룩이자 이재혁이 발끈한다.
“현우 씨는 회사에서 얼마 받으시는데요?”
“15억이요.”
“매니저가 월급으로 15억이요? 협회장을 해도 그렇게는 못 받는데 무슨.”
그가 한참을 웃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정색한다.
“어, 혹시 진짜로 15억을 받고 계신 건 아니죠?”
“그럼요. 회사에는 200만 원 정도 받고 있어요.”
“그럼 뭘 고민하세요? 협회 고문 경력이면 매니저 일 때려치워도 상관없겠는데. 어차피 그쪽 대표님이랑은 친구시잖아요. 일하기 편하게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오세요.”
그게 좋은 방법이긴 하지.
이지아와의 계약은 멘탈 케어에 관한 거니까 매니저를 그만둔다 해도 상관없고.
“아뇨. 그래도 그만둘 생각 없어요.”
이재혁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중에 뭐, 회사라도 하나 차리시게요?”
“협회에서 지랄만 안 하면요.”
“쪼잔한 영감태기들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차장으로 나온 우리는 웃으며 악수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현우 고문…!”
“협회가 망할 때까지요.”
“그럼요!”
공동의 목표 아래에 우리는 손을 잡았다.
이재혁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나는….
음.
어쨌든, 좋든 싫든 간에 이젠 한배를 탄 사이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아.”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그에게 물었다.
“본부장님. 고문 선임 발표는 언제 할 겁니까?”
“바로 해야죠. 부협회장님이랑 일정 잡아서 이른 시일에 기자 회견 열겁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일주일만 미뤄줄 수 있을까요?”
이재혁이 눈을 깜빡인다.
아마 이해 안 될 거다. 썩 합리적인 이유는 아니라서.
“네? 굳이 왜요?”
그의 물음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놀라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요.”
내가 진짜,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 장난쯤은 괜찮겠지.
* * *
집에 돌아온 나는 루리를 앉혀놓고 오늘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이야기해 줬다.
“이거 유정이나 언니들한테는 꼭 비밀인데, 내가 이번에 협회 특별 고문이 됐거든? 회의실 들어갔을 때 이사 놈들 얼굴이 얼마나 썩었는지. 사진 찍어서 지아한테 보여주고 싶더라.”
루리가 요구르트를 꼴깍꼴깍 넘긴다.
“특별 고문이 뭐야?”
“그러니까 이게 조언자 같은 건데….”
“조언자가 뭐야?”
“그러니까, 한 사람이 세상 모든 일에 통달할 수는 없으니까 전문 지식이 필요할 때 물어볼 수 있게끔…….
“선생님 같은 거네?”
“…그래, 협회 선생님이다.”
애들한테 어감의 차이를 인지시켜주는 건 고된 일이다. 맥빠진 내가 소파에 드러누웠다. 루리가 문제집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소파로 들고 왔다.
대충 받아쓰기 공책, 알파벳 깜지 노트, 그림으로 배우는 덧셈뺏셈 책들이다.
루리가 연필을 엉성하게 쥐고 받아쓰기 연습을 했다.
[됬다/됐다]
땀을 뻘뻘 흘리던 녀석이 왼쪽에 체크했다. 들으라는 듯이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루리가 슬쩍 눈치를 보고 지우개로 지운다. 그리고 날 쳐다보길래 고갤 끄덕였다. 먹구름 낀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숙제야?”
“응, 엄마가 내줬어.”
저 나이대 애가 시킨다고 말을 잘 들을 리가 없는데.
“안 하면 벌이라도 받아?”
설마 유정이가 애를 때리진 않겠지.
루리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안 하면 혼자 씻어야 해……”
“숙제 다 하면?”
“엄마가 같이 씻어주고 잘 때 뽀뽀도 해줘! 그리고 80점 넘으면 요구르트도 하나 먹을 수 있어.”
상이랑 벌이 좀 아기자기하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이나 숫자 정도는 떼야 할 거 같아서 한유정에게 과외를 시켰다.
사실 시키지 않아도 한유정이 원래부터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하는 거 용돈이나 조금 더 챙겨주려고 핑곗거리 하나 만들었다.
책상에 엎드린 루리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깔린 루리의 일기장을 집었다.
철원군 게이트 이후로 몇 페이지가 새로 추가됐다.
총 다섯 장.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이지아가 한유정 몰래 요구르트를 챙겨줬다,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네 장.
나머지 한 장의 일기를 읽었다.
[오늘도 아빠가 날 자리에 앉혀놓고 한탄했다! 협해 선생님이 됬다고 자랑하는데 뭔지 모르걨다.]
실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생님이 협회 고문을 말하는 거였구나.
루리에게 하루 일과를 줄줄이 읊은 지 어느덧 한 달.
슬슬 효과를 보는 거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