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오늘은 슈퍼 스타 (10)
* * *
도착한 사무실은 한 차례 폭격을 당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난장판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기진맥진한 팀장들이 한군데 모여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전화기는 얼마나 울려댔는지 선을 아예 뽑아놨다.
바닥에 널브러진 포스트잇을 하나 주웠다. 날림으로 휘갈겨 놓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대진 신문사 강우석 기자]
[인터뷰 문의]
[xxxxxxxxxxx]
아침 9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치면 지금이 오후 5시니까…….
한 손에 들고 있는 커피가 갑자기 초라해진다.
조금 더 푸짐하게 사 올걸 그랬나?
“슈퍼스타 2팀장님, 이제 오셨네요?”
구석 자리에 앉은 한예림이 아는 체를 한다. 기절해있는 팀장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커피를 뒤적이며 물었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마끼아또 어떤 거로 드려요?”
“아메리카노.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대표님이 살 뺄 데가 어딨다고요.”
“얼씨구?”
커피와 빨대를 건넸다. 한예림이 뚜껑을 분리하더니 그대로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혀를 내밀고 손부채질을 한다. 성질머리 급한 아가씨 같으니라고.
“찬 물 떠 올까요?”
“직원한테 뭘 그런 걸 시켜요? 됐어요. 일 봐요.”
한예림이 머그잔을 들고 탕비실로 달려갔다.
뒤늦게 옆 책상에서 좀비 신음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한 명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2팀장님, 저도 아메리카노 하나만 주십쇼.”
아까 이지혜한테 한 잔 주고, 한예림한테 한 잔 주고, 아메리카노는 이젠 나 먹을 거 하나 남았다.
먼지처럼 바스러질 것 같은 홍보팀장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꼴을 보니까 콩팥을 달라고 해도 줘야겠다.
“큼, 이거 드세요. 저 때문에 많이 바쁘셨죠?”
“덕분에요.”
커피를 홀짝이던 홍보팀장이 목베개를 벗으며 물었다.
“근데 대표님이랑 왜 존댓말을 쓰세요? 저희 있어서요?”
“네? 그게 무슨….”
“두 분 친구인 거 팀장들은 다 알고 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툭하면 대표실에 뻔질나게 들어가고 맨날 아이 컨택하는데 회사 사람들이 모를 리가 있나. 처음엔 사내 연애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팀장님네 딸이 그런 거 아니라고 오해 풀어줬어요.”
“제 딸이요?”
루리가 여기에 들린 적 있던가?
“한유정이요. 맨날 팀장님 뒤만 쫄쫄 쫓아다니잖아요.”
아, 유정이.
“……그런데, 예림이랑 친구인 게 그렇게 티 나요?”
“네, 많이요.”
젠장.
티가 나는구나.
숨긴다고 숨겼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전혀 아닌가 보다. 홍보팀장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꼴랑 스물여섯에 팀장 달고 있길래 이게 대체 뭔가 싶었죠. 대표님이랑 친구라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이해 가네. 유엔군에서 복무하셨다면서요? 지금 인터넷 반응도 난리에요.”
그가 마우스를 딸칵이며 기사들을 확인했다.
1면이 전부 다큐 이야기로 도배돼있었다.
“홍보팀장님은 뭐 하고 계셨어요?”
“대표님이랑 보도 자료 준비하고 있었죠. 2팀장님이랑 이지아 씨 건으로.”
이지아의 2차 공략대 참가 여부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라 있었다. 길거리만 걸어도 심심찮게 듣는 이야기다. 당연히 바스타드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 반응했지, 덜하지 않았다.
이지아는 우리 회사의 대표 헌터고, 얼굴이었으니까.
회사 차원에서도 대응하고 있다.
특히 고생하고 있는 게 홍보팀장이다. 협회의 여론전에 대응하기 위해 보도자료 뿌리고, 오보 뜨면 수정 요청한다고 계속 기사만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내 건까지 더해졌다. 아마 욕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일 거다.
역시 커피 말고 도넛도 사 올걸 그랬어.
홍보팀장이 뻗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요, 팀장님.”
그가 의아한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원래 다큐 주인공은 이지아 씨 아니었어요? 그걸로 2차 공략대에서 빼내는 계획이었잖아요. 갑자기 2팀장님으로 포커싱을 바꾸니까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협회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제 기록을 말소시켰어요.”
“네?”
“원래 계획대로 갔으면 아마 소집일 날 제대로 당하고 나왔을 겁니다. 역풍 얻어맞고 여론만 나빠져요.”
“아니, 뭔, 아무리 협회랑 악연이어도 그렇지. 걔네가 그렇게까지 해요?”
“하더라고요.”
당초 계획은 이지아의 우울증을 핑계로 2차 공략대에서 빼내려고 했다.
이를 눈치챈 협회가 데이터베이스에서 내 기록을 말소시켰다.
우울증을 언급하면 핑계로 보일 게 뻔하다. 2차 공략대 지명에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헌터도 이미지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이.
사람들의 위험을 외면하고 자기 안위만 챙긴다. 얼마나 욕을 먹겠는가. 갈 곳 잃은 분노가 이지아에게 향할게 뻔하다.
만약 협회에서 이지아의 헌터 자격을 말소시킨다고 할 때, 누가 같이 협회를 욕해주겠는가.
헌터로서 기사회생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다시 판을 짰다.
키보드를 두들기며 보도자료를 작성하던 홍보팀장이 손가락을 멈췄다.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2팀장님,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는데요.”
“네.”
“원래 계획대로 했으면 이지아 씨를 영웅으로 만들고, 그 업적으로 욕 안 먹고 2차 공략대 참가를 거부하는 거잖아요. 우울증 핑계 삼아서.”
“네.”
“그런데 주인공을 팀장님으로 바꾼 게 대체 무슨 소용입니까?”
홍보팀장이 의자를 빙글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팀장님이 유엔군인 거랑, 이지아 씨가 공략대에 참석 못하는 거랑, 아무런 상관도 없지 않아요?”
날카롭게 찌르는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네, 전혀 없죠.”
“차라리 2천 명 구한 업적이라도 몰아줘서 욕 덜 먹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이지아가 2차 공략대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우울증은 변명이 아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핑계로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즉.
“결국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홍보팀장이 뭐라 입을 열려던 때였다.
한예림이 머그잔을 들고 걸어왔다. 후룩, 그녀가 차가운 물을 마시며 자리에 앉았다.
“2팀장님, 방금 협회에서 연락 왔는데 이지아 씨 소집날짜 정해졌어요. 스케줄 미리 확인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네.”
“팀장님들이 우리 친구 사이인 거 다 알고 있던데요.
“……엥? 진짜?”
그녀가 고갤 갸웃했다.
“어떻게 알았지? 홍보팀장님, 저희 티 나요?”
홍보팀장이 괴상한 얼굴을 한다.
대충 그럼 설마 그걸 몰랐겠냐는 표정이다. 나한테는 직접 표현했지만, 한예림은 대표라 도저히 말을 못 꺼내는 모양새다.
입꼬리를 씰룩이던 그가 헛기침을 했다.
“2팀장이 대표님한테 너무 친근하게 대하더라고요.”
결국 날 팔아먹는다.
나도 대표 되든가 해야지. 역시 월급 주는 사람이 최고다.
시계를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보드를 두들기던 홍보팀장이 파티션 밖으로 고갤 내민다. 그가 물었다.
“2팀장님, 어디 가세요?”
“일 남아 있어서요.”
“이 시간에요? 내일 하시고 이따가 같이 퇴근하시지 그래요?”
“아뇨, 회사는 잠깐 지아 데려다주러 온 거에요.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
코트를 걸치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퇴근하려면 아직 멀었다.
* * *
이재혁 본부장은 거울을 보며 작업복을 입었다.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복장이었다. 출근길에 꼴랑 붕어빵 하나 사 먹는다고 대서특필 되는 신분인데, 작업복이라도 걸쳐서 친근함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지퍼를 잠그며 혼자 중얼거렸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협회.”
치안이 좋지 못한 국가는 던전 관리가 힘들다. 던전을 맡아 처리할 각성자들이 사람을 쑤시고 다니기 때문이다. 돈이란 원래 불법적인 방법으로 버는 게 훨씬 쉬운 법이다.
남들이 10년간 벌 돈을 개고생해서 1년 만에 버느니, 그 돈을 강탈하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제3세계와 선진국의 일상은 극과 극이랄 정도로 차이가 컸다. 해결하지 못한 던전 브레이크로 툭하면 아프리카에서 수천 명의 희생자가 나올 때, 한국은 20년간 고작 두 번의 게이트가 열렸다.
레드 게이트는 아직도 원인이 파악 불가능한 재난이었고, 철원군 게이트는 공략 불가 판정을 받은 어비스 던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누락된 것 하나 없이 그동안 던전을 완벽하게 처리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국토 면적은 좁다.
치안은 뛰어나고 면적대비 인구는 지나칠 정도로 많다. 수도권에만 1천만 명의 인구가 거주 중이며 레드 게이트 당시 현장에 있던 헌터들의 활약으로 사망자는 고작 1,500명에 불과했다.
한국은 치안이 뛰어나기에, 각성자들 대부분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헌터를 꿈꾼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협회에서 주관하는 헌터 시험에 합격한 뒤 라이센스를 따도, 다시 한번 길드라는 거름망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거르고 거른 엘리트 헌터들이 돈 좀 벌겠다고 기를 쓰고 던전을 처리한다. 한국에 남아나는 던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수지 안 맞는 일부 던전은 협회에서 기획재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지금 어비스 던전을 처리하는 것처럼.
즉, 한국은 던전 관리에 있어서 지나치게 유능했다.
“쓰읍. 이거 위궤양 맞는 거 같은데.”
그리고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
이재혁이 집무실 의자에 앉아 TV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김현우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나오고 있었다.
맥심 2분의 1 커피를 이재혁에게 건넨 여비서가 지나가듯 물었다.
“김현우였죠? 협회랑 몇 번 치고박고 싸웠던 사람.”
레드 게이트 당시 천오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에 협회에서는 이지아를 영웅으로 만들고, 의도적으로 띄웠다.
고작 열여섯이던 소녀를 말이다. 업적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유망주도 카메라만 비춰주면 유명인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다큐 방송 시청률 32퍼.
현재 한국에서 김현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한 시간 뒤에 본부장님이 올리신 안건으로 이사회 회의 있습니다. 이제 준비하셔야겠는데요?”
“아이고, 늦었다가 영감태기들한테 한 소리 들을라.”
자리에서 일어난 이재혁이 부랴부랴 서류 가방을 챙겼다. 아래에 있을 때는 본부장이라는 자리가 높게만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결국 위에는 위가 있는 법이고, 그건 꼭대기 자리에 앉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끄으으윽…!”
이재혁이 갑자기 눈을 까뒤집고 발작하자 비서가 당황했다.
“보, 본부장님! 왜 그러세요?!”
“이제 회의실 들어가야 한다 생각하니까 쓴물 올라와서요. 어제는 꿈에 영감태기들이 나와서 절 칼로 찌르더라고요. 지독한 새끼들.”
맥빠진 목소리가 물었다.
“…우황청심환 하나 드릴까요?”
이재혁이 반색했다.
“있습니까?”
“보나 마나 긴장하고 계실 거 같아서 하나 챙겨놨어요. 회의실 들어가기 전에 드시고 가세요.”
“아잇, 이 귀한걸….”
이재혁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황청심환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물을 마셨다.
시청률 32퍼 다큐멘터리 방송.
김현우가 판을 깔아놨다.
아니, 새로 만들었다.
기꺼이 할만했다.
그가 손바닥으로 양 볼을 짝짝 때리며 기합을 넣었다.
이제, 아귀들의 전장으로 들어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