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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01화 (101/112)

〈 101화 〉 오늘은 슈퍼 스타 (7)

* * *

철원군 게이트로 천 명의 피해자가 나온 뒤 가장 바쁜 곳을 꼽으라 하면 당연코 방송국이었다.

늘 그랬다.

희생자가 큰 사고가 터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쏠렸다. 그래서 가장 바쁜 건 보도국과 교양국이었다.

방송국 앞 흡연구역.

‘철원군 게이트­ 진실 속으로’를 담당 중인 임 피디가 초조하게 도로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어이구, 교양국 사람들 요즘 얼굴 활짝 폈네. 이렇게 나와서 담배 피울 시간이 있어? 막판 찬스 잡는다고 바쁠 텐데.”

동기인 예능국 피디였다.

시사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리는 만큼 반대급부로 예능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든다. 그들은 이걸 휴가라고도 표현했다.

편성 취소되고 그 자리를 시사 프로그램들이 차지하니까, 한동안 예능은 나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임 피디가 도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바쁘지. 뒤지게 바빠, 지금.”

“그런데 여기서 뭐 해? 이번에 시청률 22퍼 나왔던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이번 기회 놓치면 교양국 답도 없을 텐데.”

임 피디가 턱짓으로 멀리 벤치 쪽을 가리켰다. 예능국 피디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따라갔다.

“방송국에 왜 거지가 있어? 교양국에서 섭외한 거야?”

“아니, 식구들.”

꾀죄죄한 몰골 때문에 거지들이 모여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 양반들 왜 다 튀어나와 있냐?”

그가 당황해서 물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교양국 부장들이었다.

깡그리 모여서는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택시가 방송국으로 들어왔다. 임 피디가 눈을 번뜩이며 담배를 바닥에 비벼껐다. 그가 대답했다.

“의전하러.”

“의전? 아니 무슨 의전을 부장들까지 와서 해? 대통령이라도 와?”

“아니.”

“그럼 누군데?”

택시에서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내렸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20대 중반 정도. 멀리서 거지꼴로 기다리던 부장들이 앞다투어 달려갔다.

청년이 당황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나이가 두 배는 많아 보이는 부장들이 굽신거리니까 땀까지 삐질 흘린다.

임 피디가 대답했다.

“누구긴. 김현우 몰라? 혼자 살아남기에 나온 반짝 스타 있잖아.”

“아.”

예능국 피디가 피식 웃었다.

“지금 고작 매니저 하나한테 저렇게 설설 기는 거야? 교양국도 갈 데까지 갔구만?”

“왜? 대통령은 되는데 매니저는 부장님들한테 의전 받으면 안 되냐?”

“그럼 방송국 부장이랑 일개 매니저랑 급이 맞다고 생각해?”

“지랄. 대통령이 교양국 폐지 막아줬어?”

방송에서 그렇게 보도 때리고 난리 쳤는데도 아무도 안 막아줬다.

“그런데, 저 양반은 막아줬어.”

원래 자기 밥줄 챙겨주는 인간이 최고인 법이다.

*

방송국 회의실.

임 피디가 맞은편에 앉은 김현우를 쳐다봤다. 처음 봤을 때랑은 분위기가 제법 달라져 있었다.

편집실에서 인사를 나눌 때는 약간 어리숙하다고 해야 하나. 게이트 영상 속의 청년이 맞나 싶을 만큼 순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꿈틀거리는 눈썹은 어딘가 성난 것 같고, 책상을 툭툭 두들기는 검지에는 고민이 묻어나왔다.

꼭 의자에 앉아서 교양국 폐지를 나지막이 언급하던 사장 같았다.

그러니까, 도저히 스물여섯 살짜리 꼬맹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긴 하지.’

UN 특수부대 출신에다가 게이트에서 이천 명을 구해낸 영웅이다. 그걸 평범의 기준으로 잡기에는 제법 무리가 있었다.

그가 마른 입술을 핥는데 옆에 있던 최 작가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님, 방송 기획 다시 짜신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 말 그대롭니다. 기존에 제가 부탁드린 걸 엎고 싶어서요.”

“원래는 이지아 씨 위주로 편집해달라는 거였죠? 지금은 팀장님 위주로 촬영 들어가 달라는 거고요.”

김현우가 고갤 끄덕였다. 조금 미안한 얼굴이었다.

기획 단계부터 다시 짜자는 게 얼마나 무리한 부탁인지, 상식적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영상은 몇 편이나 만들어놨습니까?”

임 피디가 팔짱을 끼며 턱을 긁적였다.

“다음 주에 나갈 2편 인터뷰 촬영 중이었어요. 지아 씨도 나갈 계획이라, 오늘 중으로 촬영 날짜 잡혔다고 현우 씨한테 전화드리려고 했었죠.”

“부장님이나 국장님 반응은요?”

“뭐, 처음부터 급조 기획이다 보니까 불평은 없습니다. 시청률도 이지아 씨한테 포커스 맞출 때랑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추측 중이고요.”

김현우가 워슈트 공개를 꺼리는 이상, 아무래도 이지아 보다는 화제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CP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김현우의 영상이 이지아보다 다큐로서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검열 없이 워슈트고 뭐고 싹 다 내보내면 좋겠지만 이미 한차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전부 내보낼 겁니다.”

“네?”

임 피디가 눈을 깜빡였다.

“특수부대 출신이라 얼굴 나오면 안된다 하지 않았어요?”

“안되죠.”

워슈트 부대가 몬스터 게이트만 해결하는 건 아니었다. 분쟁 지역에도 투입되며, 인간을 상대로 한 작전도 펼쳤다.

준비 기간만 2, 3년을 넘기는 장기 작전도 허다했다. 그래서 특수부대를 전역하면 비밀 유지를 위해 몇 년간은 신원을 숨겼다. 정보의 노출 때문이다.

김현우가 걱정하던 것도 그거였다.

온갖 날파리들이 꼬일까 봐, 매니저 일만 하고 싶어서 등.

때마침 이지아에게 협회의 공격이 들어왔다. 공적 욕심은 없었다. 가로막은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 그대로 이지아에게 전부 떠넘겨줄 생각이었다.

이재혁 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원래는 안 되는데.”

그가 엄지로 자신의 입술을 짓눌렀다. 미처 가리지 못한 딱딱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

“가만히 놔두질 않더라고요.”

*

CP가 팔짱을 끼고서 방송국 복도를 초조하게 걸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정수기 통에서 물 한 모금 받아 마시고,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무시했다. 끙끙거리기를 한참,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김현우가 걸어 나왔다.

“임재훈 피디한테 볼일 있으세요? 제가 너무 길게 잡아놨나 보네요.”

“아잇, 저놈한테 볼일은 무슨 볼일이요. 현우 씨 가는 길에 얼굴이나 보려고 왔지.”

김현우가 곤란한 얼굴로 웃었다.

“그, 저한테 너무 격식 안 차리셔도 됩니다. 방송국 올 때마다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면 무서워서 못 와요.”

“어우, 이 정도는 예의죠, 예의. 아, 혹시 연예인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네?”

“저어기, 저쪽에 음악방송 방금 끝났는데. 아이돌 구경하실래요? 사인이랑 사진도 제가 말해서 찍어드릴게요.”

예능국처럼 끗발 날리지는 않아도 나름 부장급이다. 김현우가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보고 싶긴 한데 지금은 바빠서 안 되겠네요.”

“아.”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꾸벅 고갤 숙인 김현우가 복도를 걸어갔다. 뒷모습을 쳐다보던 CP가 작게 중얼거렸다.

“거절하는 것도 예의 있다니까.”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임 피디랑 최 작가가 널브러진 종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최 작가! 임 피디! 워슈트! 워슈트 어떻게 됐어!!”

관심사는 오직 그거 하나뿐이었다.

임 피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워슈트 내보내도 된데요.”

“어? 진짜?”

“그리고요.”

“어.”

“본인이 레드 게이트 생존자라던데요. 성동 중학교 2인.”

CP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한참 뒤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지, 진짜? 아니, 20년 동안 게이트가 고작 두 번 열렸는데 그걸 전부 들어간 거야…?”

그림이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진다.

임 피디가 격정적인 어조로 되뇌었다.

“부장님, 이거요, 이거, 이거 시발…!”

*

아이돌 사인이라도 받아달라고 했을 걸 그랬나.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바쁘지는 않았다. 할 일들은 방금 회의로 전부 끝마쳤다.

협회 데이터베이스에서 내 기록이 삭제된 이상, 지금의 여론전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협회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 아마 그대로 걸려들었으면 많이 곤란해졌을 거다.

화염을 뿜어낸다거나, 번개를 내려친다거나, 그런 직관적인 능력들과 다르게 마음의 평화는 증명하기 힘드니까.

정신병 환자를 구해서 실험한다 쳐도 짜고 치는 고스톱 소리 들을 게 뻔하다. 이지아가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 우울증을 거짓으로 꾸몄다. 분명 그렇게 몰아갔겠지.

그러니까, 반대로 움직였다.

이지아에게 몰아주려던 업적을 전부 내 쪽으로 돌렸다.

아마 이지아 혼자 있었으면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거다. 고작 해봐야 50명 정도 되지 않았을까. 버스 하나 분량 정도는 사방에서 몰려들어도 충분히 막아냈겠지.

내가 있기에 이천 명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자만심이 아닌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게이트에 갇힌 게 반대로 나 혼자였다면, 몇 명을 구했을까. 썩 좋은 결과가 예상되지는 않았다. 이지아 혼자 90%에 해당하는 몬스터들을 막아냈으니까. 그녀가 없었다면 대형 몬스터가 나올 때까지 버티지도 못했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사람들을 구하기는 커녕 내 목숨 하나 건지기도 바빴을 거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맡아서 이천 명이란 사람을 구해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나무에 등을 기댔다. 고갤 들어 올려 높게 뻗어있는 협회 건물을 바라봤다.

혀끝이 아렸다.

이제 내가 할 일들은 전부 끝냈다. 나머진 흐름대로 흘러갈 따름이다.

쏘아진 화살이 멈추는 건 결국, 목적지에 박히고 나서다.

* * *

일주일 뒤.

바스타드 소드 사옥.

복도에서 김현우와 마주친 이지혜가 짧게 혀를 차며 지나가려 했다.

“야, 이지혜.”

“…?”

이지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왜 갑자기 반말을…?”

“그럼 내가 열일곱 살짜리한테 존댓말 써줄까?”

“처음 봤을 때는 존댓말 썼었잖아요…?”

“글쎄, 존댓말 써줘야 하나 반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계속 무시당하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더라고. 그리고 유정이 친구잖아.”

김현우가 이지혜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웃으면서 일하자. 웃으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상 그만 찡그리고.”

“네, 뭐….”

이지혜는 김현우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재수 없어.”

*

숙소에 도착한 이지혜가 신발을 벗으며 다급히 외쳤다.

“언니, 언니! 나 아까 2팀장 만났었거든?”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던 나예정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2팀장? 김현우?”

“어! 그 인간!”

“그 사람이 또 왜?”

“나한테 갑자기 반말 하는 거 있지? 진짜, 한유정만 아니었으면…!”

아니었어도 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예정이 염동력으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김현우 이름 석 자에 발작하는 건 이지혜보다 나예정이 더 심했다. 그녀가 이지혜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맞장구쳤다.

“마음에 안 들어 죽겠네. 이지아만 아니었으면…!”

나예정과 이지혜가 열심히 김현우의 욕을 하며 소파에 앉았다.

“송 팀장님도 분명 뭔가 당했다니까? 김현우한테 할 말 다 하는 척하면서, 잔뜩 쫄아서 정작 불편한 말은 아무것도 못 해.”

“김현우 저거 맨날 실실 웃는 거 있지? 다 연기야. 전에 정색하고 있는 거 봤는데, 눈빛 살벌해서 얼마나 무서웠는줄 알아?”

그렇게 투덜거리기를 한참.

이지혜가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시사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요즘 철원군 게이트 때문에 채널을 어디로 돌려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아, 맞다. 오늘 이지아 선배 다큐 나온다고 했는데. 어디였지?”

이지혜의 혼잣말에 나예정이 대답했다.

“11번.”

그녀가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8시였다.

“이제 곧 시작할 시간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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