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오늘은 슈퍼 스타 (4)
* * *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까 회사 건물 앞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송 팀장, 이지혜, 나예정, 회사 직원들.
건물 앞을 무슨 바리케이드 치듯 막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주로 막는 건 이지혜랑 나예정이었다. 기자들이 그녀들에게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지혜가 짜증스레 외쳤다.
“이지아 선배님 지금 회사에 없다니까요! 그만 좀 돌아가요!”
“야, 이지혜, 목소리에 힘 빼.”
“기자님들, 이지아 선배님 지금 회사에 없어요~”
저건 또 무슨 콩트야?
당황해서 멍청하게 서 있는데 누가 내 소매를 잡아끈다. 한예림이었다. 내가 물었다.
“저거 다 뭐야…?”
“기자들인데 이지아 취재하러 몰려든 거야.”
“아니 씹….”
기자면 기자지, 남의 사업장까지 찾아와서 저렇게 깽판 쳐도 되는 거야? 한예림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건넨다.
“됐어, 뉴스 뜰 때부터 이럴 거 같더라. 이거나 받아.”
“이게 뭔데?”
종이를 받아 펼쳤다.
낯선 주소가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잠깐 너랑 단둘이 몰래 할 얘기가 있다고 접선해왔어. 그쪽으로 가봐.”
*
한예림에게 받은 주소지를 내비에 입력하고 안전벨트를 맸다.
회사에 올라가려던 게 무색하게 다시 차를 타고 도로로 나갔다. 도착한 곳은 낡고 허름한 카페였다. 가구나 장식품들을 보면 엔틱 컨셉인가보다.
벽장에 진열된 그릇을 보고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이거 비싼 건데. 예전에 카페 사장이 사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 삼촌네 카페입니다.”
깔끔하게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남자가 서 있었다. 낡고 허름한 작업복을 대충 걸쳤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힌 듯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저나 현우 씨나, 얼굴 제법 팔려있는 상태라 어디 마음 놓고 이야기할 만한 곳이 마땅찮더라고요. 지금 저희가 만나면 조금, 그림이 이상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뒷짐을 지고 있던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장 이재혁입니다.”
S급 헌터 이지아가 없으면 공략 자체가 힘들다, 이 말입니다!
TV에 나와서 힘껏 떠들던 그 새끼다.
입가를 억지로 틀어 올리며 손을 마주 잡았다.
“… 매니지먼트 2팀장 김현웁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삼촌한테는 잠깐 자리 좀 비워 달라고 해서 아무도 없습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맥심, 카누, 프렌치 카페, 레쓰비 정도 있습니다.”
커피를 받아 구석진 자리로 갔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
철원군 게이트 때문에 협회 내부에서 임시로 설치했다. 당연하지만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다. 대한민국 국토에 열린 던전에 대해서는 협회에 권리와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어비스 던전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재난을 관리했다.
이재혁이 네모난 무테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직접 만나니까 제가 좀 젊어 보이죠? 방송 나갈 때는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꾸미거든요.”
30대 초반.
나이를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자리인 건 분명했다. 그가 피곤한 얼굴로 눈썹을 찡그렸다.
“한국 협회에 명목상 적임자가 저밖에 없습니다. 철원군 이전에 게이트가 열린 게 10년 전 레드 게이트뿐인데, 현장에서 한창 뛰던 사람들도 경험이 다들 너무 미천해요. 적임자 찾느라 돌고 돌리다가 결국 제가 땡 뽑힌 겁니다. 해외파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전부 찾아봤다.
게이트, 크랙, 웨이브 등 던전 관리가 안정적인 한국에서는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 있기야 하겠지만 협회 외부인이 대부분일 거고, 감투 씌울 때는 당연히 내 사람 앉히는 게 먼저다.
“그런데 절 찾으신 게 그런 말씀 하려고 부르신 거 같지는 않고….”
바쁘니까 빨리 본론이나 말해라.
이재혁이 주머니를 뒤적이며 핸드폰을 꺼냈다.
“비밀스러운 자리니까 확인부터 먼저 하나 하죠.”
그가 물었다.
“혹시 녹음 기능 켜놨습니까?”
“아뇨.”
“실례지만 핸드폰 좀 보여주시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원을 끄며 변명했다.
“사실 켜놨었습니다.”
“녹음기는요?”
“없습….”
이재혁이 가방에서 금속탐지기를 꺼냈다. 그가 내 몸을 체크하려고 하길래 벨트에서 녹음기를 빼 순순히 건넸다.
진짜 마지막이다.
이재혁이 팍 피곤해진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뻔뻔스레 어깨를 쭉 폈다.
미안해 할 사람한테나 미안하지, 마음 같아서는 찢어 죽이고 싶은 놈한테 걸려봤자 어쩌라고,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제가 현우 씨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각설탕이 어딨지?
이재혁 본부장 옆에 있었다.
통을 잡기 위해 상체를 숙이며 손을 쭉 뻗었다.
“히익!”
갑자기 그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더니 손날을 파박 세웠다. 어깨는 잔뜩 움츠리고, 목은 승모근 안으로 푹 파고들었다.
꼭 거북이처럼 등껍질 안으로 숨어든 모양새다.
“…….”
“…….”
깜짝 놀란 나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이해하길 포기하고 일단 각설탕을 두어 개를 커피에 퐁당 빠트렸다.
한참 뒤에 이재혁이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를 끌고 왔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저, 저도 수행원 없이 와서…….”
“그렇게 겁나시면 데리고 오시지 그랬어요.”
“비밀스러운 이야기라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부협회장님한테 들었습니다. 피스 메이커에서 군 복무를 하셨다고요. 제가 일 때문에 주워들은 게 많아서 좀….”
헛기침을 한 이재혁이 다시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갔다. 그가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본론에 앞서 협회 내부 정치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현재 협회는 개판 오 분 전입니다. 이사회는 협회장을 1년째 선출하지 않고 비워두고 있고, 어비스 던전에 대해서도 여태까지 마땅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았었죠.”
이재혁이 각설탕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가 집게로 가장 큰 각설탕 하나를 가리켰다.
“시작은 청문회입니다. 어비스 던전의 공략이 실패하며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했고, 협회장은 이지아 씨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이재혁이 내 눈칠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마 그대로 끝났으면 곧바로 2차 공략대가 결성됐을 겁니다. 하지만 카페 알바가 나타나며 모든 걸 망쳐놨죠.”
각설탕 하나가 커피에 녹아 사라졌다.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협회장도 순순히 물러났고요. 버텼으면 검찰까지 나설 분위기였거든요.”
정부에서 협회를 조질 방법은 많았다.
“본래 이사회 인원 15명 중 협회장 라인이 12명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협회장과 함께 숙청된 비상임 이사가 세 명. 그 자리를 부협회장 라인이 차지합니다.”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협회장 라인 9명.
부협회장 라인 6명.
과반수가 아직 협회장 라인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협회는 협회장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어차피 경질된 인간 아닙니까? 아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조선 시대로 따지면 유배 간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협회에 아직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어깨를 으쓱인 이재혁이 촘촘히 모여있는 아홉 개의 각설탕을 하나씩 가리킨다.
“상임 이사 서광덕, 협회장의 사위입니다.”
“상임 이사 원종찬, 전략 부서에서부터 협회장과 사수 부사수 관계였습니다. 같이 일한 시간이 대충 20년쯤 넘었겠군요.”
“비상임 이사 윤석건, 헌터 관련 장비를 만드는 방산업체 대표이사인데, 원래 구멍가게 수준이던걸 협회장이 협회 차원에서 밀어주며 사업 규모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고향 선후배 사이입니다.”
“비상임 이사 박승호…….”
질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잘 이해했습니다. 협회가 가족으로 운영하는 단체였군요.”
비꼬듯 말하자 이재혁이 안경을 작게 들치며 변명했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협회 내부에서 협회장의 권력이 비대해진 게 대충 2년 전쯤부터였을 겁니다.”
“네?”
“협회장과 정적이라 할만한 인간들이 맥아리 없이 하나둘씩 쓰러져서, 순식간에 그 자리를 협회장의 사람들이 차지했습니다. 이런 기이한 버티기가 가능한 것도 감사위원들까지 허수아비라 가능한 거고요.
내부에서는 암암리에 암살자를 운용한 게 아닌가 추측 중인데….”
내가 책상을 쾅! 내려치며 격분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따졌다.
“협회장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암살자를 기용할 리 없잖습니까! 고작 권력 좀 처먹겠다고!”
2년 전.
정적 암살.
한유정이었다.
“아뇨,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으로….”
“듣기 거북합니다! 함부로 그런 말씀 하지 마시죠. 다른 일로 잘못한 사람이라도, 추측으로 헛소문이 퍼지는 건 분명 옳지 못한 일입니다. 맞죠?”
“어, 네, 제가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데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재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수지간일게 분명한 내가 협회장을 옹호하니까 아리송한 모양이다. 그가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그, 아무튼, 협회장이 현재 경질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부협회장이 새 협회장을 뽑자고 번번이 나서서 의결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뽑히지 않았다.
“협회장 라인 쪽 이사들이 무작정 보류하고 있습니다.”
“사유가 있습니까?”
협회장 자리를 1년간 비워두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이사회에서 변명하는 말은 마땅한 인선이 없다, 자숙 기간을 가지자 등이 있습니다만, 전부 개소리죠. 부협회장이 임시 협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네요.”
협회장이 만약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다면. 권력을 부협회장에게 이양하기 싫은 거라면.
자기 라인에서 적당히 뽑아놓거나 허수아비 한 명을 세워두면 됐다.
여론 잠잠해지고 돌아올 때 해임안 통과시키면 그걸로 끝난다.
그런데 왜?
굳이?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장 자리를 이사회에서 앉혀놓은 겁니다. 이사회의 뜻은 곧 협회장의 뜻이나 마찬가지고요.”
비밀스러운 이야기라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부협회장님한테 들었습니다. 피스 메이커에서 군 복무를 하셨다고요.
하지만 본인은 부협회장 라인임을 은연중에 밝혔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에 정부와 민중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현재 협회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였다. 민주사회에서 여론과 관심은 곧 힘이니까.
이지아에게 한 짓처럼 여론을 등에 엎고 공략대를 편성할 수 있었고,
게이트, 크랙, 웨이브 등에 있어서 사령탑 역할을 할거며,
그 과정에서 약간의 초법적인 행위도 여론이 ‘어비스 던전의 공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동안은, 대부분 뭉개고 넘어갈 거다.
혹시라도 정부에서 이전처럼 협회를 겁박한다면 지금 국민들 죽이는 거냐고 지지율 박살 날게 뻔하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재난 대응 본부는 현재 정부고 협회고 아무도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는 폭주 기관차였다.
그걸, 부협회장 라인 사람한테 건넸다.
“보복 행정 건과 청문회 건으로 나락까지 갈뻔했지만, 철원군 게이트 이후로 협회에 힘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본, 영국, 캄보디아에서 공략을 실패했고, 철원군에서 게이트가 열리며 어비스 던전 공략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으니까요.
기획재정부에서는 협회에 매년 지원해주던 금액의 규모를 늘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원과 힘은 어비스 공략에 대한 여론과 지지에서 나온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실패하면 그만큼 역풍이 크겠죠. 늘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건 결국 꼭대기에 앉은 사람이고요.”
현재 부협회장이 협회의 임시 수장을 맡고 있었다.
그가 1차 공략 때의 협회장 역할이었다.
나열한 일련의 단서들로 협회의 목적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됐다.
공략이 실패하면 부협회장은 알아서 고꾸라지고,
던전 브레이크가 해결되지 않는 동안 협회는 막강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것이다.
즉,
“협회는 현재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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