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오늘은 슈퍼 스타 (1)
* * *
다음 날, 법원에서 후견인 변경 신청을 넣었다. 이것저것 복잡한 게 많아 보였지만 나는 뒤에서 팔짱 끼고 빠졌다.
돈이란 게 참 좋다. 없을 때는 대체 어떻게 생활했었나 싶을 정도로.
박 변호사가 구시렁댔다.
“아니, 난 가정법이 아니라 헌터법 전문인데 왜 이런걸…….”
“주위에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변호사님밖에 없어서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그런 말 하면 또 마음이 약해 지긴하는데. 어후. 한유정 씨 위임장 줘보세요.”
금방 끝났다. 우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법원을 나섰다. 박 변호사가 물었다.
“원래 후견인이던 삼촌은 재판 날에 출석하지 않을 거라고 했죠?”
“네, 따로 재판 준비하실 필요 없어요. 형식적인 겁니다.”
우린 삼촌이 안 나올 줄 모르고 열심히 준비한 거다. 아무튼 그런 거다.
“어이구, 그림 그려진다. 그려져.”
박 변호사가 예전에 내게 해준 말이 있었다. 헌터 업계만큼 정글판인 곳이 없다고. 그리고 그 말은, 헌터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박 변호사 또한 포함됐다.
이쪽 분야에서 오래도록 해먹은 인간이다. 척하면 척이다. 이런 광경 봐온 게 한두 번은 아닐 거다. 박 변호사가 짧게 혀를 차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런 방법 너무 자주 쓰면 안 돼요.”
“네?”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만 하다가는 나중에 맛이 회까닥 가버리거든. 그런 인간 한둘 봐온 게 아니라.”
박 변호사가 지긋지긋한 눈빛으로 법원을 올려보다가 물었다.
“근처에 국밥집 맛있는 곳 있는데. 가실래요?”
* * *
박 변호사가 쭉 들이킨 뚝배기를 탁, 내려놨다.
“크으, 이그 마 꼬소하이 디지뿌네.”
가래 끓는 소리 한 번 시원하다.
“……부산분이셨어요?”
“대구요.”
“다른 건가?”
“전혀 다릅니다. 수도권이라고 서울이랑 인천이랑 같아요?”
모르겠다.
그게 그거 아닌가.
법원에서부터 얼마나 맛있다고 설레발 치던지. 수습 변호사 딱지 떼고 여기서 먹은 국밥이 안 잊힌단다. 그래서 법원 올 때마다 들린다고.
수저를 드는데 박 변호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국밥을 입에 넣었다.
“어때요? 맛 쥑이죠?”
“으음.”
이리 씹고 저리 씹어봐도 평범한 국밥이다. 국밥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박 변호사 입맛에는 아닌가 보다.
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깍두기 통을 기울였다.
“이게, 씁, 이걸 넣어야 진짜 국물 맛이….”
소매를 붙잡았다.
“에헤이, 어디 상놈의 짓거리를.”
“깍두기 국물은 싫어하시나?”
“순정 좋아합니다.”
다데기 푼 순대국밥에 대충 밥 비비고 후추 뿌려서 입에 넣었다. 역시 평범한 순대국밥이었다.
위이잉!
국밥을 먹는 와중에 문자가 왔다.
[매수했습니다.]
문자를 껐다.
물을 마시며 박 변호사에게 물었다.
“전에 박 변호사님이 소개해주신 분 있잖아요.”
그가 눈을 위로 굴리며 기억을 반추한다.
“제가 한둘 소개해준 게 아닌데, 누구 말씀하는 거예요?”
“귀신이요.”
지금 내 돈이랑 회사를 관리 중인 사람이었다. 박 변호사가 귀신이라 부르길래 나도 본명 놔두고 귀신이라 부르고 있었다.
“아아, 귀신? 그 양반이 왜요.”
“변호사 하시는 분이 주식판에서 놀던 사람은 어쩌다 알게 되신 거에요?”
박 변호사가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가 팔짱을 끼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이런 일 하다 보면 그 뭐냐, 의뢰인으로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요. 헌터 업계 쪽이야 워낙 사람들이 폭력적이다 보니까 바닥에 지린 똥 닦아줄 사람이… 아잇, 밥 먹는데 죄송.”
인상을 팍 찌푸리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박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런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로 만나기도 하고, 협업도 하고, 개인 필요로 심부름꾼을 부리기도 하는데, 예전에 같이 일하다가 만난 양반이에요. 필요할 때 서로의 편의를 봐주는 그런 사이?”
악어와 악어새 관계인가 보다.
“페이퍼 컴패니도 그 사람이 만진 건이고요. 이쪽에서 귀신이라고 하면 나름 유명해요.”
“그렇게 유명한 분이셨어요?”
“그런 건 아니고, 귀신이란 게 매니저나 변호사 같은 거에요. 직업이죠, 뭐. 하는 일은 남 똥 닦아주는 거. 근데 그게 휴지 대신 돈인 거고.”
변호사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
“옆에서 보면 귀신 홀린 듯, 돈이 귀신이라도 된 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거든요.
다음에 나타났을 때는 합법적인 돈으로 변장해있고. 신분증으로 사람 여러 명 만드는 건 일도 아니고.
그렇게 돈과 사람을 홀린다고 해서 이쪽 용어로 귀신이라고 불러요. 돈 귀신.”
세상 참, 뭐 한 가지 할 줄 알면 밥 벌어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니까.
박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류 가방을 챙겼다.
“일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만 나갑시다.”
계산은 내가 했다. 팩스 놔두고 굳이 법원까지 데리고 온 마당에 밥까지 얻어먹기에는 좀 그랬다.
칙칙한 중년 남자와 파릇파릇한 청년이 나란히 길을 걸었다.
“현우 씨 나이가 몇이었죠?”
“이제… 곧 스물일곱이죠.”
12월 중순. 해가 넘어가는 시기다. 나도, 한유정도, 이지아도, 한예림도 한 살씩 먹는다.
“좋을 때네. 제가 사법 고시 패스하고 수습으로 일 시작한 게 스물일곱이거든요.”
“엄청 빨리 붙으셨네요?”
박 변호사가 머리를 검지로 두들기며 능청스레 웃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거죠. 아무튼 현우 씨랑 비슷한 나이에 일 시작해서 여러 사람 봤어요. 그리고 말씀드린 거처럼 헌터들 상대하는 일이라 사건들이 대부분 거칠었고요.”
근처에 푸드 트럭이 있길래 핫도그를 두 개 사 왔다. 박 변호사가 핫도그를 뜯으며 말을 이었다.
“변호사 찾아온 거면 사실상 끝장을 보려고 하는 건데, 헌터랑 길드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겠어요? 난장판이면 다행이지 이건 뭐 하드보일드 영화 한 편씩은 찍어요들. 씨팔, 밀가루밖에 없네. 이거.”
“케첩 맛에 먹는 거죠, 뭐.”
박 변호사가 핫도그의 껍질을 떼더니 햄만 입에 쏙 넣었다.
“아무튼, 그래서 협박, 회유, 공갈, 납치, 살해 등 목적을 위해서 개짓거리 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그거 뒤처리도 제가 다 도와줬거든요. 그래서 사람 하나 죽은 거 가지고는 눈도 깜짝 안 해요. 마음씨 착한 청년이 사람 하나 묻은 것도 뭐, 사정이 있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언덕길.
내가 발걸음을 멈췄다. 앞서 걸어가던 박 변호사도 멈췄다.
운전자들에게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블랙박스가 보급된 이래로, 주차장만큼 비밀이 없는 곳도 없다.
우리는 언덕길에 어정쩡하게 선 채로 시선을 마주쳤다.
“선을 몇 번 넘잖아요? 그러다가요, 어느 순간 발목을 탁! 붙잡혀요. 완벽하게 일을 끝낸 거 같지만 항상 완벽하게 끝날 수는 없거든.”
박 변호사가 내 코트 깃을 여며줬다.
“그러니까 벌써부터 업계에 물들지 말고, 힘 빼고 다녀요. 아직 나이도 어린데 안타까워서 그래.”
업계에 물든다라.
십수 년을 넘게 이 판에서 굴렀고, 이미 물들대로 물든 사람이기에 해주는 충고였다.
아닌 척하지만 정 많은 사람이다.
박 변호사가 코트에 손을 찔러넣고 먼저 걸어갔다. 말하고 나니까 쑥스러운가보다. 그가 손을 휘적이며 외쳤다.
“먼저 들어갑니다.”
띠리링.
전화를 받았다.
“네, 조 기자님.”
어어, 현우 씨, 그, 박건욱 변호사라는 양반 말씀하신 대로 뒷조사해 봤는데요. 아주 깔끔하고 더럽던데요?
“말씀하세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더러운 일은 많이 한 게 분명한데 안 걸리게 잘 처리해놨더라고요. 적도 없고. 업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에요.
“협회랑은요?”
악연이 깊어요. 청문회 때 이지아 씨 변호 담당한 거 보면 말 다 했죠. 원래 인권 변호사였는데…….
“나중에 서류로 보내주세요.”
빠앙─!
그랜저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박 변호사의 차였다.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더러운 일은 많이 했는데 안 걸렸다. 그런데 적이 없다.
둘 중 하나다.
마주한 적들을 모조리 박살 내버렸던가, 모든 일을 업무의 일환으로만 처리했던가. 뭐가 됐든 짜잘한 걸로 원수 짓고 사는 인간은 아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내 차로 걸어갔다.
나도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일단 닥친 상황부터 해결했다.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일 거다.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분명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두 번의 뒷조사로 박건욱이라는 변호사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됐고, 한승현이라는 불안 요소를 치웠다.
계약서로 장난질 치던 협회 직원, 한유정과 이지아를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협회장, 트래픽을 위해 한유정의 기사를 교묘히 조작하려 한 기자, 2차 시험을 자기 입맛대로 주무르던 대형 길드들.
온통 속고 속이는 판이었다.
누굴 믿고, 누굴 의심해야 할지 전부 꼬여있었다.정글판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걸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박 변호사는 업계에 물들지 말라고 했지만 글쎄.
그의 충고는 이미 때늦은 잔소리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가랑비에 바짓가랑이 젖듯 나도 이 판에 물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씩, 조금씩.
*
루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귀신이 누구야? 몬스터 워치 말하는 거야?”
“이해할 필요 없어.”
“응?”
“그냥 가장의 넋을 들어줘. 그게 너 일이야.”
“넉?”
“넋.”
요즘 루리를 앉혀놓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풀고 있었다. 공짜는 아니다. 요구르트 몇 병이 바닥에 굴러다녔다. 전부 루리가 마신 거다.
콜라를 쭉 들이켜고 일어났다.
오늘 할 말은 전부 끝났다. 소파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어갔다. 핸드폰을 하던 이지아가 아는 체를 한다.
“현우야, 이거 봤어?”
“어떤 거?”
“SNS랑 기사 댓글들.”
“전에 같이 봤잖아. 그걸 아직도 봐?”
“봐도 봐도 신기해서.”
이지아가 발을 허공에다가 휘적이며 좋아했다. 보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지.
이지아에 대한 여론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몇 가지가 함께 작용했다.
첫 번째, 몬스터 게이트에서의 구조행위.
S급 헌터인 만큼 사람들을 구한 건 선택이 아닌 사회적 의무에 가까웠다.
하지만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이지아는 국민적인 영웅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두 번째, 혼자 살아남기 예능.
요즘 악플이 달리지 않는 건 이미지 변신을 성공한 게 컸다. 기존에 오해받기 쉬웠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아마 몬스터 게이트에서의 일만 있었어도 이미지는 좋아졌을 거다.
초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겠지.
다만, 이지아에게 가는 부담감을 생각하면 그건 전혀 좋지 않았다. 촬영 시작 전부터 지금의 관심이 언제 악플로 돌아설지 몰라 전전긍긍했었는데, 항상 실수하지 않을까 봐 마음 졸이고 살았을 거다.
이지아라면 분명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전보다 괜찮아졌다.
한 번은 마음의 평화를 꺼봤는데 옛날처럼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란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자살 직전까지 몰렸었던 걸 생각하면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띠리링.
“어, 예림아. 무슨 일이야?”
한예림이 다급히 물었다.
지금 어디야?
“집.”
이지아랑 같이 있지? 당장 뉴스 틀어봐.
“무슨 일 있어?”
설명하는 것보다 보는 게 더 빨라.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 협회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어비스 던전 공략 실패 후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지 못해 몬스터 게이트가 철원군에 열렸습니다.]
[협회는 이에 다급히 비상 대응팀을 설립했고, 대책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2차 공략대를 편성할 것이며 상위권 헌터들에게 긴급 소집 명령을 내릴 계획입니다.]
[지금 바로 명단 불러드리겠습니다.]
[헌터 랭킹 1위 이지아…….]
당분간 회사랑 집 말고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기자들한테 전화 오는 거 전부 무시해.
TV를 끄고 곁눈질로 소파 옆을 살폈다.
이지아가 바짝 굳어서는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또 시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