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나의 아저씨 (5)
* * *
“개, 개소리하지 마!”
삼촌이 버럭 소리 질렀다.
“미친놈이! 갑자기 집에 찾아와서 후견인 포기 각서를 쓰라고 하더니, 이젠 뭐?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지랄이야! 그것도 내가 내 형을?!”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흥분으로 떨리는 손가락. 와락 구겨진 콧잔등.
마치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고,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너 깡패지? 씨이발, 요즘 같은 세상에 권총으로 사람을 협박해? 여기 동네 치안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CCTV 싹 다 깔려있어, 새끼야! 차 타고 들어오는 거 다 찍혔다고!”
화난 척, 흥분해서 현재 상황을 모르는 척, 눈 돌아가서 들이박으려는 척.
전부 연기하는 거다.
겁먹은 쥐새끼가 찍찍 소리를 지르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그를 무시하며 커튼들을 쳤다.
하나씩, 하나씩.
방안이 어두컴컴해졌다.
현재는 삼촌이 살고 있으나 원래 한유정의 집이었다. 조 기자가 뒷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혼 남성이었고, 주위 사람들한테 현재 사는 곳에 대해 알리는 걸 상당히 꺼리는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웃들과의 교류는 일절 없었고,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지도 않았다.
집에 얹혀살게 된 경위를 생각하면 당연했다. 사람을 죽이고 들어선 집이다. 도박 빚을 탕감하기 위해 한유정의 재산을 빼갔다.
그런 상황에서 집에 누구를 초대하면 그것도 여러모로 대단한 새끼다.
물론 삼촌의 말대로 동네 근처에 CCTV가 사각지대 없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그게 쓰이는 건 누군가 신고했을 때의 일이다.
그래서 그냥 놔뒀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협박이고, 허세였다.
삼촌의 주머니를 뒤져서 핸드폰을 꺼냈다. 녹음기나 통화는 안 켜져 있었다. 통화기록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박살 냈다. 침착한 어조로 경고했다.
“물어볼 게 있으니까 주둥이 그만 나불대고 닥쳐. 어차피 주변에 안 들리니까.”
아까 창문 밖으로 차량이 지나가는 걸 확인했다. 몇 대가 지나갔는데 엔진소리가 집까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고급 주택답게 방음이 썩 훌륭했다. 거기에 집들도 띄엄띄엄 위치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삼촌을 쳐다봤다.
개소리를 지껄여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초조해진 모양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깍지낀 손에 턱을 걸치며 생각에 빠졌다.
삼촌은 왜 부모를 죽였을까.
당연히 돈이다. 한유정의 부모가 죽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인 그가 후견인으로 나설 수 있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어느 정도 운용 가능하다. 군식구 늘어나는데 제 돈으로 키워야 하면 아무도 안 데려간다. 필요한 법이었다.
한유정은 똑똑하지만 정이 많은 아이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16살짜리 소녀 하나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었을 거다. 그럴 일도 없이 사라져버린 모양이지만.
그렇게 시작됐다.
상속 과정에서 오가는 추악한 싸움.
돈 때문에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비극.
결국 찾아온 권선징악.
하지만 내가 지금 궁금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재산을 노린 단독 소행?”
짧게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살폈다.
“아니면 누군가가 시킨 건가?”
삼촌의 눈가가 꿈틀거린다. 그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 시간을 벌려는 듯, 머리를 굴린다.
권총으로 그의 발치를 쐈다. 삼촌이 기겁하며 발을 들어 올렸다.
“미, 미친 새끼! 지금 뭐 하는…!”
“누가 시켰군. 맞지?”
“내가 죽인 게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
시킨 게 맞았다.
표정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독심술 따위를 한 게 아니다. 모든 정황이 그랬다.
1년 전, 한유정은 천살성을 각성했다.
힘과 이성을 바꾸는 비극적인 능력이다. 천살성의 소유자는 반드시 누군가를 해친다. 본인이 싫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지아는 우울증 때문에 자살 직전까지 갔었다. 그 정도로 심한 우울증도 마음의 평화 능력 거리를 극적으로 깎아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유정은 달랐다.
일요일이 되면 몸을 붙이고 있어야 했다. 마음의 평화로도 천살성의 반작용은 전부 억제가 안 되는 거다. 그걸 16살 소녀에게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는 건, 말도 안 됐다.
각성하기 전의 나라도 불가능했다.
천살성의 한계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일주일이다. 그 이상을 넘기면 이성을 잃고 주변인들을 해치게 된다.
일요일에 비극이 일어날 거란 건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경찰은 ‘부모’가 죽은, 일가족의 비극적인 사고라며 보도를 냈다.
일요일까지는 적어도 부모 양측 모두 살아있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삼촌은 한유정이 천살성을 발작하기 전에 부모를 죽였는가.
삼촌은 한유정이 천살성을 발작하고 난 뒤에 부모를 죽였는가.
같은 집에 한유정과 부모, 3인 가정이 함께 살고 있었다. 다른 두 명 몰래 한 명을 죽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한유정이 죽이고 난 뒤가 맞았다.
한유정의 천살성이 발작하는 시간대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00 시. 신고를 받고 경찰이 찾아간 건 오전.
즉, 삼촌은 새벽 시간대에 한유정의 집을 찾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방문하는 시간대가 아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간 거다. 시간까지 정확하게 노려서.
여기서 단독 소행이라는 가정이 막힌다. 한유정이 천살성에 대해 삼촌에게 말했을 리 없을뿐더러, 일개 도박쟁이가 그걸 알아낼 정보력이 있을 리도 없었다.
한유정에 대한 기록은 전산상에서 지워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삼촌은 분명 그날 살인이 일어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한유정의 천살성에 대해 알고 있는 조력자가 필요했다.
일요일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부모 중 한쪽만 죽을 거라는걸 알고 있었다.
당황한 열여섯 소녀가 집을 뛰쳐나갈 것이며, 그녀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가고 있었다는 걸 파악 가능한 인간.
소거법으로 지우고 나면 남는 건 한 명뿐이다.
협회장.
그 새끼였다.
한유정의 부모가 죽는 거로 이득을 보는 건 협회장이었다. 한유정에게 보호자가 없다면 수족으로서 다루기 훨씬 편해진다.
삼촌과 협회장의 이득이 맞물렸다.
그림이 그려졌다.
눈앞의 남자는 도구다. 본인이 누구에게 청탁을 받은 건지도 모를 거다.
내 눈빛이 많이 살벌했던 모양이다.
삼촌이 기겁하며 무릎을 꿇었다.
“내, 내가 죽인 거 아니야! 경찰 불러서 조사해봐!”
애새끼도 속지 않을 수작질이었다.
삼촌은 철창의 보호를 받겠지. 모든 정황이 눈앞의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굳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황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본인 입으로 자백했다.
“친형을 죽였지?”
“…뭐?”
당황한 삼촌이 입을 벌린다.
“당신이 어느 쪽을 죽인 건지, 한 번도 말한 적 없었거든. 나는.”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지랄이야! 그것도 내가 내 형을?!
“그런데 알아서 자백하데.”
한유정이 어느 쪽을 해친 건지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 어쩌면 본인마저도.
당연히 그 뒤를 이은 살인자가 누굴 죽였는지는, 살인자 본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른다.
삼촌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씨발.”
권총을 손에 쥐고 일어났다.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 구상한 하나의 추리일 뿐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결과가 우연으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삼촌은 일요일 새벽에 우연히 한유정의 집을 찾아갔고,
우연히 한유정이 집을 비웠을 때 형수가 죽은 걸 확인했고,
때마침 생각난 빚 때문에 눈이 멀어 친형을 죽였고,
협회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독 소행이다.
전부 우연히.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내 추리가 맞는지, 틀린 지.
그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해봐야 한다.
* * *
“어서 오세요.”
편의점 알바가 밝은 미소로 인사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담배 하나 주세요.”
“어떤 담배요?”
“아무거나요.”
알바의 얼굴이 썩는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니까 그랬다.
나도 카페 알바할 때 아무 커피나 달라고 하면 좀 곤란했지.
“크흠, 말보로 주세요. 빨간 거.”
독한 거로 피고 싶어졌다.
물이랑 사탕, 뭐 간단히 입에 물것들을 이것저것 골라서 편의점을 나섰다. 바람이 차가웠다. 알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터벅터벅 걸었다.
한적한 공원에 도착했다. 빈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마른 입술에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 휠을 돌리는데, 불꽃만 조금 튀다가 만다. 보니까 가스가 떨어져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운도 지지리 없지, 그 많던 라이터 중에 고른 게 하필 불량품이었다. 옆자리에 누워있던 노숙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손에 쥔 라이터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가 물었다.
“불 필요하슈?”
“써도 괜찮겠습니까?”
“자판기 앞에서 주운 건데 뭐… 쓰려면 쓰쇼.”
고개를 꾸벅 숙이며 라이터를 받았다. 잠깐 노숙자를 쳐다보다가 지갑에서 지폐를 두어 장 꺼내 건넸다.
그가 히죽 웃으며 받았다.
“겨울 양복도 깔끔한 게, 멋쟁이 신사시구만.”
신사라.
헛웃음을 지으며 라이터 불을 켰다.
치익!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였다. 메케한 연기 때문에 기침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왔다. 속이 따갑고 쓰리다. 눈꼬리에 눈물도 살짝 맺혔다.
가방을 뒤적이며 서류를 찾았다.
구겨진 종이를 손에 쥐고 펼쳤다.
후견인 포기 신청서.
맨 밑에 적힌 한승현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시뻘건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미처 마르지 않은 인주가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인주 잘 찍혔네.”
그대로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라이터 불로 태웠다. 재로 변하는 걸 끝까지 지켜보다가 구둣발로 밟아 흩트렸다. 불어온 바람에 재가 흩날렸다.
이거 있으면 나중에 성가셔진다. 삼촌과 나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긴다.
나는 이대로 법원을 찾아가 후견인 변경을 요청할 것이다. 법원에서는 후견인에게 출석을 요구하겠지만 삼촌은 전화를 받지 않고 잠수 탈 거다.
분명히.
법원에서 통지했음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잘잘못 따질 필요 없이 끝이다. 후견인 문제는 그걸로 깔끔하게 해결된다.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된 삼촌의 문제가 남는다.
미혼인 그를 찾는 가족과 친척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 피붙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삼촌 관계인 한유정뿐이었으니까.
1년 전에 일도 그만뒀다.
한유정에게 상속된 돈만 믿고 직장을 때려치웠었다. 빚더미에 앉은 도박쟁이가 사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핸드폰부터 뒤져봤었던 거다. 수신기록을 조회한 결과, 가장 최근 전화 온 게 한 달을 넘긴 상태였다. 저장된 이름을 보니까 그마저도 똑같은 도박쟁이였다.
실종 신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1년. 2년.
기억 속에서 차츰, 차츰, 잊힐 거다.
사람 한 명이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진다.
후견인 포기 각서.
이젠 이거 필요 없다.
*
주차장에 차를 대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계단 밑에서 나예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날 발견한 그녀가 눈에 이채를 띠며 다가왔다.
쿵쿵, 발 도장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귀에 울렸다.
“저기요! 그쪽 저랑 잠깐만 이야기해요. 전에는 도중에 도망쳤었죠? 치사하게 맨날 한유정 뒤에 숨어서…….”
“혹시 할 말 있습니까? 일 얘기에요?”
눈을 마주친 나예정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맨날 숨어서… 어… 그….”
“지금은 조금 피곤한데,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급한 일이면 송 팀장님한테 말씀드려보세요.”
“그, 그래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뭐야, 진짜!’,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뒤늦게 들린다. 짜증스레 머리를 긁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복도를 따라 쭉 걸었다. 맨 끝에 훈련장 문이 보였다. 들끓는 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옮겼다.
표정이 많이 험악했다. 이대로 만나면 걱정하겠지.
스쳐 지나가는 창문을 곁눈질로 살피며 하나씩 바꿨다.
틀어진 눈썹을 완만하게 휘고,
사납게 올라간 눈꼬리를 둥글게 말고,
석상처럼 굳은 뺨에 보조개를 집어넣고,
일자로 닫힌 입술을 슬며시 끌어올렸다.
문고리를 잡고 문에 달린 창문으로 마지막 확인을 끝마쳤다.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이다.
사람들에게 항상 듣던, 사근사근한 표정.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한유정은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
빙긋 미소를 지으며 그녈 향해 걸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