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How I Met Your Mother (3)
* * *
이지아의 뒹굴거림이 끝나고, 스튜디오 컷이 등장한다.
연예인들의 얼굴이 한 번씩 클로즈업됐다.
모두 입을 벌린 채 눈동자를 사정없이 떨고 있었다.
우리야 지켜보는 입장이지, 연예인들은 저기서 방송 분량을 뽑아내야만 한다. 눈앞이 막막할 거다.
그나마 배경 음악도 깔아주고, 방청객 소리도 입히고, 나름 토크하는 장면만 내보니까 괜찮은 거지.
MC가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이, 이지아 씨가 되게 독특하시네!
출연자들이 떡밥을 재빨리 받아먹는다.
저도 저 기분 알아요. 가끔씩 집에서 저렇게 퍼질러 자고 싶죠. 그, 그쵸?
형님은 맨날 퍼질러 있잖아요.
아잇, 그 말을 왜 지금 꺼내고 있어? 오늘 이지아 씨도 출연했는데. 나 팬인 거 몰라?
MC와 고정 출연자들이 다급히 상황을 수습하려는 게 눈에 훤했다.
피디님, 이거 몰카죠?
수습이 실패했다. 결국 연예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피디에게 걸어간다.
몰카 맞죠? 이거 방송, 어? 이거 그대로 진행해요?
우리한테 이러지 마, 진짜. 관찰 예능에 몰카가 왜 나와? 요즘 유치해서 이런 거 하지도 않아. 언제 거야.
이지아 씨, 저희 눈치 백 단이라 이거 다 들켰어요.
난장판이었다.
한참 동안 몰카 맞다, 아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박 피디의 굳을 얼굴을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박 피디 얼굴 위에 ‘장난’이라는 자막이 달려있었지만,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바로 눈치챌 정도였다.
자막 떼고 배경 음악 떼면은 딱 봐도 분위기가 험악했다.
화면이 넘어갔다.
MC가 이지아에게 가벼운 신변잡기 질문을 건넸다.
어, 평소에는 활동적이지 않으신가 봐요? 시간 꽤 지난 거 같은데 하루종일 누워계시네. 명상 그런 거예요?
아뇨, SNS요. 가끔은 드라마도 봐요.
아아, SNS… 드라마… 이지아 씨, 이거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만 나오는 건 아니죠?
누워있는 것만 나온다.
벌써 방송 시작한 지 10분째였다.
댓글창은 또 난리다.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페이지가 두세 개씩 휙휙 건너뛴다.
대부분 아까처럼 긍정적인 반응들이 주를 이뤘고, 가끔이지만 악플도 보였다.
악플 내용은 대부분 소탈한척하려고 꾸미는 거다, 게을러 보여서 보기 안 좋다, 같은 의견이 주류였다.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몇 개 섞여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이 정도 반응이면 사실상 게임 끝난 거다.
시청률이야 죽을 쑬 거다.
소파에 누워있는 게 재밌는 것도 잠깐이지,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데 대체 어디서 재미를 느낄까.
사람들은 그저 이지아의 이미지가 깨지는 장면을 즐기는 것이다.
10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조금 거만하고 냉정하던 이미지를.
“…….”
“…….”
“…….”
한예림이고, 이지아고, 한유정이고 모두 말문이 턱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댓글 반응을 확인한 건 나뿐인가보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저거 대체 뭔가 싶을 거다.
십분 내내 소파에 누워있는 장면만 나왔으니까.
이미 이지아의 옆에서 볼 장 다 본 사이끼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망했구나.
줄줄줄.
한예림의 손에 쥐어진 콜라가 바닥에 질질 흘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박 피디 이 씹… 사정사정하길래 출연시켜줬더니 이렇게 엿을 먹여? 저게 지금 뭐 하자는 짓거리야?”
눈빛이 살벌하다.
“예림아.”
“왜!”
“진정하고 이거 봐.”
“이지아 또 욕 처먹을 거 뻔한데 뭘 진정해! 이미지 바꾸라고 내보냈더니 혹을 하나 더 달──”
“보라니까.”
한예림이 거칠게 핸드폰을 뺏어갔다. 댓글을 확인한 그녀의 날 선 눈썹이 흐느적 내려갔다.
“엥?”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이지아가 틈 사이로 끼어들었다.
“대체 뭔데 반응이 그래요? 저도 보여줘요.”
“아니, 이게, 엥? 저걸 보고 어떻게?”
한예림이 고장 난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인지 부조화가 온 모습이다. 결국 참다못한 이지아가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화면에 코를 박고 샅샅이 훔쳐보더니,
“꺄악!”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 * *
회의실에서 조마조마하게 TV를 보던 최 작가가 울먹였다. 이지아가 누워있는 장면만 나왔다.
“피디님, 방송 저렇게 내보내면 어떡해요?”
“뭐가?”
“이지아 씨요! 저거 뒹굴거리는 모습만 보여주면 어떡하려고요?”
박 피디가 심드렁히 대답했다.
“왜? 커뮤니티 여론 좋은데.”
“유입된 시청자들이나 좋다고 꺄르륵 거리지, 기존 시청자들은 재미없다고 난리 쳐요! 아무리 팀장님이 협조 안 해줬어도 이러시면 안 되죠.”
최 작가가 필사적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김현우가 그녀에게 메인 작가 자리를 약속했다.
박 피디 몰래 꿍쳐놓은 게이트 촬영 테이프도 김현우가 가지고 있었고, CP와 견적 짤 수 있는 자격도 그에게 있었다.
게이트에서 구두로 약속이 오갔다. 옆에서 보기로도 김현우는 신의를 지키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눈깔 돌아가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인간이기도 했다.
폭탄을 짊어지고 거인의 등을 기어 올라갔다. 한 마디 나눌 시간이 아까워서 사람 허벅지에 납탄부터 꽂았다.
일반인이 할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런 인간이, 카메라에 얼굴 나오기 싫다고 질색하던 인간이, 이지아 평판 괜찮아질 거라는 한 마디에 얼굴색 바뀌어서 곧바로 오케이부터 때렸다.
그러니까 김현우는 이지아의 이미지에 제법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런 이지아가 만약 나중에 욕을 먹는다면…….
“아, 안돼!”
다큐멘터리 작가로 꽂아 줄 수 있는 건 김현우뿐이었다.
철저한 갑과 을이었다.
그런 그녀의 심정도 모르고 박 피디가 코웃음 쳤다.
“안 되긴 뭐가 안돼?”
“이지아 씨 재미없다고 기존 시청자들한테 욕먹는 거요! 화제성 때문에 유입되는 시청자들이야 이미지 깨지는 거 하나만 보고 낄낄거리는 거잖아요!”
최 작가가 시청자 게시판을 확인했다.
슬슬 입질이 올라왔다.
박 피디가 팔짱을 꼈다.
처음에 김현우가 인터뷰 거절했을 때는, 잠깐 그런 생각도 해봤다.
어차피 뒤질 거 같이 죽자고.
시청률 다 포기하고 어디 한 번 같이 잠수함에 빠져보자고. 예능에서 편집 좀만 만져주면 어떻게 나오는지 보여주겠다고.
물론 생각뿐이었다.
“됐어. 내가 정말 시청률 걸고 헛짓거리 했을 거 같아서 그래?”
“네?”
“편집은 다 알아서 해놨어. 저거 화제 몰이용이야.”
* * *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지아가 핸드폰을 양손에 쥐고 폴짝폴짝 뛴다.
“나보고 나무늘보 같아서 귀엽대. 이미지하고 달라서 깜짝 놀랐대!”
한예림을 와락 껴안고, 나도 와락 껴안고, 웬일인지 한유정한테도 가서 볼을 부비고, 루리를 안아 들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한다.
기쁠 거다. 많이 벅차오르겠지.
인터넷에서 순수한 호의를 받아보는 건 처음일 테니까.
한예림이 허탈하게 웃는다.
“사람들 센스는 알다가도 모르겠네. 대체 방금 방송 어디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보인 거야?”
그러니까.
최 작가의 말대로였다.
십수년간 업계에 구른 사람들도 모르는 게 방송 결과물이었다. 기분 좋게 손을 비비며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
“유정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네?”
“방송도 좋게 끝난 거 같겠다, 맛있는 거나 시켜서 먹으려고.”
한유정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이지아를 쳐다본다. 평소에는 둘이 뭐랄까, 시선에서 가벼운 적개심이 느껴졌다.
한집에 살면서도 어째 좀처럼 친해지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지금 한유정의 눈동자에 깃든 건 측은이었다.
“아줌마가 좋아하는 거로 시키는 게 낫겠어요.”
“됐어. 지아는 지금 콩밥 줘도 좋다고 먹을걸? 흥분 가라앉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 그냥 우리끼리 고르자.”
“그럼… 어?”
머뭇거리던 한유정이 겨우 입술을 열던 때였다.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뜬다. 뭐지?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 말뜻은 당연히 평소 지아 씨의 성격을 보여주라는 거였죠. 밖에 나가서 산책하든, 영화를 보든, 친구를 만나든 간에요!
방송 나오는 사람들은 뭐 평소에 할 거 많아서 땅강아지처럼 뽈뽈 돌아다니는 줄 알아요? 당장 옷 입고 외출 준비해요.
오늘 회사 메인에 걸 프로필 사진 찍기로 했잖아요! 방송 분량이라도 뽑게 미리 현장 나가 있어요.
내 목소리였다.
* * *
소파에 앉은 한예림이 실실 웃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녀가 소리 내서 커뮤니티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줬다.
[매니저 뭐 하는 사람이냐?ㅋㅋㅋㅋㅋ]
[저 사람 김현우라고, 업계에서는 좀 유명함. 이지아랑 협회가 싸울 때마다 협회 물 먹인 거 다 저 사람 작품임.]
[엥? 되게 어려 보이는데.]
[와, 저 사람 진짜 매니저였네. 씨발 무슨 특수요원인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이지아 눈치 보면서 일어나는 거 봐라.]
[아무리 그래도 S급인데 꼼짝을 못하네ㅋㅋㅋㅋㅋ 평소에 대체 얼마나 갈구는 거임?]
“김현우, 이거 벌써 댓글 반응 장난 아닌데?”
“무슨 반응인데?”
“이지아랑 매니저랑 잘 어울린다고 난리야. 무슨 콩트 쇼 찍고 있냐고 웃음소리 남발 중.”
콩트 쇼….
그래, 저 꼴을 보면 콩트 쇼처럼 밖에 안 보이겠지.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던 S급 헌터를 드레스룸까지 질질 끌고 가는데. 그것도 윽박지르면서.
이게 어떻게 안 웃기겠어?
나 같아도 웃는다.
주인공이 나만 아니었으면.
한예림이 축 처진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야, 무슨 보모 같다.”
도대체 이게 예능인지 브이로그인지.
앞에 10분은 이지아가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장면만 나오다가, 지금은 나랑 이지아가 떠드는 시시콜콜한 잡담까지 전부 나가고 있었다.
루리는 아까부터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TV에 아는 사람 나오니까 신기한 모양이다.
아이가 내게 와서 작게 속삭였다.
“있잖아, 괜찮은 거야?”
아니.
“뭐가?”
“아빠는 스페셜 에이전트라 방송에 나가면 안 되잖아.”
“그… 치.”
화면 속의 내가 아몬드를 까득까득 씹고 있었다.
체한 게 아니라, 미래가 보여서 그래요.
미래요?
네, 이번 방송이 쫄딱 망하는 미래요.
루리가 충격받은 얼굴로 다시 묻는다.
“아빠도 미래가 보여…?”
“아니, 난 안 보여.”
“그렇구나.”
루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의자에 앉았다.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귀밑이 뜨근뜨근하다. 물론 촬영 전에 전부 허락받은 사안이다.
내가 동의했다.
이지아의 이미지를 위해 나선다고 했고, 마음속으로 결심을 굳혔지만, 그래도 사람 쪽팔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거기에 내가 생각했던 건 카메라 돌아갈 때 모습이 들어가는 거지, 저렇게 일상적인 대화들까지 시시콜콜하게 넣을지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아마 찍은 분량이 턱없이 부족해서일 거다.
우웅, 우우웅.
한예림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녀가 발신인을 확인하더니 히죽 웃었다.
“야, 김현우. 이거 봐.”
“뭔데?”
“서 피디한테 전화 왔어.”
서 피디? 서 피디가 누구지?
“전작시 메인 피디. 원래 혼자 살아남기 아니면 여기 내보내려고 했어.”
전작시.
매니저랑 연예인이랑 나와서 관찰 예능 찍는 방송이다. 그러니까, 혼자 살아남기의 연장선이다.
“야이씨… 그거 끊어.”
한예림이 무시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서 피디님. 무슨 일이세요? 저야 잘 지내죠. 네네, 아, 지금 방송 나오는 사람이요? 저희 쪽 매니저 맞아요.”
“현우야, 사람들이 매니저랑 헌터가 존댓말 쓰는 거 너무 보기 좋다는데, 우리 다시 말 높일까?”
집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이지아는 커뮤니티 반응보고 잔뜩 흥분했고, 한예림은 서 피디인지 하는 녀석하고 통화한다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용한 건 유정이와 루리뿐이었다. 둘은 소파에 앉아 서로를 꽉 끌어안고 TV를 시청 중이었다.
“와아, 와. 와아.”
루리가 양손을 불끈 쥐고 감탄사를 마구 터트렸다.
이지아고, 한예림이고, 서루리고, 그녀들의 기행은 계속됐다.
결국 방송이 끝났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끝난 걸 보면 다음 주는 회사 홍보 영상으로 가득 채울듯싶다.
한유정의 품에 안긴 채로 TV를 보던 루리가 후다닥 내게 달려왔다.
“아빠, 아빠, 방금 예고편 봤는데.”
“응.”
“지아 말고 예림이도 다음 주에 나온 데.”
“야,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되지.”
아직 호칭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이지아랑 한예림을 자꾸만 이름으로 부른다.
“이번 주는 아빠랑 지아나 왔고. 다음 주는 예림이도 다 나오잖아.”
“그치.”
“그러면 있잖아.”
루리가 한유정을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는 왜 안 나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