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How I Met Your Mother (1)
* * *
사무실에 들른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인터넷에 들어갔다.
게이트가 마무리되고 사흘이 지났다.
생존자 집계 2,377명.
추정 사망자 1,032명.
수치는 계속 변동 중이었다.
레드 게이트 때보다 사망자가 많았다.
다만 강원도에서 벌어진 사건임을 고려하면 기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원래는 3,500명이 전부 떼죽임당했을 사건이었으니까.
매스컴에서는 연일 보도를 때렸다.
그만큼 비극적인 사고였고, 그 안에는 또 다른 드라마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게이트에서 피해가 적은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
신원미상의 신고자.
외부와의 통신이 끊겨있는 강원도에서 게이트가 발생한 걸 인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5분도 안 됐다.
게이트 비상 대응 본부가 설치되고 협회와 군의 주요 인사가 본부에 모이기까지 30분.
전부 신원 미상의 시민이 빠르게 신고한 덕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두 번째.
정부의 외교력이었다.
UN의 파견지역은 대부분 제3세계나 교전국이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국가들한테는 어지간해서 파견해주지 않는다.
이 ‘어지간해서’라는 기준이 깨지는 것 또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은 작은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수가 많았다.
던전과 게이트 관리에 유리한 입장이었고, 치안이 이만큼 안정적인 나라도 없었다.
즉, UN에서 한국에게 파병을 하는 건 원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게 다른 부대도 아닌 피스 메이커라면 더더욱이.
하지만 그걸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S급 헌터 이지아가 우연히 게이트 내부에 있었다.
덕분에 게이트 내부의 피해자가 적었다.
뉴스 기사들을 하나씩 뒤지며 읽는 중이었다.
“여긴 웬일이냐?”
송 팀장이 피곤한 얼굴로 말을 건다.
“게이트 때문에 대표님이 쉬라고 했다면서? 회사는 뭐하러 나왔어?”
“할 거 있어서요.”
“나 같으면 좋다고 쉬겠구만. 주식 넣어놨냐? 무슨 일인데?”
이 사람은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직장인의 귀감이다. 컴퓨터를 끄며 정장 외투를 챙겼다.
“혼자 살아남기 스튜디오 촬영 있어서요.”
관찰 촬영은 끝났다.
이제 스튜디오 촬영만 찍으면 마무리 된다.
“송 팀장님은요?”
“회사에 새로 들어오는 유망주들한테 회사 소개해주고 있었는데.”
“어? 사람 구했어요?”
송 팀장도 놀고 있던 건 아닌지 회사도 구색을 갖춰가고 있었다.
홍보팀, 운영팀, 분석팀 등 제법 유능한 팀장들이 이직해왔고, 조만간 회사 전체 회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래도 헌터들까지 이렇게 빨리 구해올지는 몰랐는데.
“그 사람들 어딨는데요?”
“저기.”
시선을 송 팀장의 손가락 방향으로 따라갔다.
파티션 너머로 여자 두 명이 보였다.
그리고 당황해서 다리를 삐끗했다.
“이, 이지혜? 나예정?”
헌터 1차 시험에서 만났던 한유정의 친구, 이지혜.
헌터 2차 시험에서 만났던 머저리, 나예정.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왜 여깄어요?”
“왜긴? 사람 부족하니까 데려왔지.”
“아니, 헌터 시험 불합격자들이잖아요?”
송 팀장이 어깨를 으쓱인다.
“가진 실력보다 평가가 안 좋아서 데려올 수 있던 거지, 원래 우리 회사에서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녀석들이야.”
“떨어진 거면 그게 자기 실력인 거지 무슨….”
“한유… 아니, 됐다. 네 허락 받으려고 소개해주는 거 아니니까 신경 꺼. 어차피 우리 팀에서 관리할 거니까.”
그럼 나도 할 말 없다.
어차피 내 담당은 한유정 한 명뿐이니까.
띠리링.
송 팀장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아무튼, 회사에서 오가며 자주 마주칠 얼굴들이니까 인사라도 하고 있어.”
“아, 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송 팀장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뻣뻣하게 앉아있던 둘의 자세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나예정은 아예 다리까지 꼬고 띠껍게 날 쳐다봤다.
“참나, 그쪽도 매니지먼트 팀장이라면서요? 아무리 구멍가게라도 그렇지, 스물여섯에 팀장이 말이 돼?”
말투 뾰족한 거 봐라.
가위가 있었으면 가슴에 찔렸을 거 같다.
나까지 어리게 굴진 말아야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됐는데, 얼굴 붉히지 말고 친하….”
친하게는 안될 거 같고.
“데면데면하게라도 지냅시다. 아는 척하지 말고 공적으로만. 나이가 어려도 팀장인데 제대로 존칭 써주시고.”
나예정이 고갤 홱 돌려버린다.
미친년.
뻘쭘한 손을 이지혜에게 내밀었다.
얘는 그래도 낫겠지,
싶었는데 무시하고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다.
“……두 분 다 저한테 억하심정 있습니까?”
“억하심정? 억하심정은 그쪽이죠!”
“제가 누구한테 시비 걸고 다니는 성격은 아닌데, 대체 뭐가 문젠데요?”
“당신 때문에……!!”
나예정과 이지혜가 뭐라뭐라 소리 지르려던 때였다.
“아저씨, 언제 오셨어요?”
한유정이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30분도 안 됐어. 훈련하고 있었어?”
“냄새나요?”
또 뒤로 주춤 물러나길래 손을 내저었다.
“머리카락 젖어있어서 알았어, 머리카락 젖어있어서. 너한테 냄새 하나도 안 난다니까. 근데 사무실에는 웬일이야?”
“송 팀장님하고 만났는데 아저씨 오셨다고 들어서요. 훈련하다가 올라왔어요.”
“그래? 어떡하냐. 나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하는데.”
“어디 가세요?”
“지아하고 혼자 살아남기 촬영하러. 오늘 스튜디오 촬영있어.”
살짝 떨어져 있던 한유정이 조심스레 묻는다.
“아저씨, 혼자 살아남기 촬영 언제 끝나요?”
“오늘로 끝.”
“그러면 인제 저한테 다시 돌아오시는 거죠?”
어감이 좀 이상한데.
“어, 그치? 원래 내 전담은 너니까.”
“그때 동안 훈련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의욕 봐라. 열기 때문에 몸 익겠네.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가야 할 시간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잠깐 같이 나가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런데 한유정이 머뭇거리며 따라오질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냉큼 따라붙어서 어떤 거 먹을지 신나게 얘기해야 하는데.
뭐지?
괜히 섭섭해지네.
한유정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먼저 가세요.”
“왜?”
“잠깐 인사 좀 나누려고요.”
한유정의 말에 앉아있는 이지혜와 나예정을 쳐다봤다.
얼씨구.
둘 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각진 자세로 앉아있었다. 얼굴도 잔뜩 굳어있고, 무슨 식은땀을 그렇게 흘리는 건지 목이 번들번들거렸다.
왜 저래?
팀은 달라도 오가며 자주 만날 테니까, 한유정의 말대로 인사가 우선이긴 한데….
나예정은 완전 싸이코고, 이지혜도 전에 부딪혔던 거 생각하면 웬만큼 만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괜찮으려나?
나가는 길에 괜히 불안해져서 자꾸만 고개가 돌아갔다.
*
촬영 중인 이지아를 구경하는데 누가 다급히 날 불렀다.
“팀장님! 팀장님!”
반가운 얼굴이었다. 최 작가다. 그녀가 멀리서부터 뛰어왔다.
“숨넘어가겠어요. 무슨 일이에요?”
“잠깐 할 말 있어서요!”
최 작가가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날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꼭 음모를 꾸미는 첩보원처럼 작게 속삭인다.
“다큐멘터리 언제 작업하실 거예요?”
“벌써요?”
최 작가가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벌써가 아니죠, 벌써가! 일이 손에 안 잡힌단 말이에요. 제작하기로 했잖아요! 메인 작가 꽂아준다면서!”
콧김을 푹푹 뿜는 게 이거 진짜 눈깔 제대로 돌아가 있다. 목숨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제 꿈 한 번 이루겠다고 카메라 들고 따라나선 인간이다.
아마 다큐멘터리 제작 안 한다고 하면 칼 들고 쫓아올지도 몰랐다.
다급히 변명했다.
“촤, 촬영하고 사건 뒷정리한다고 바빴어요. 아직 대표님한테 이야기도 못 꺼내서… 돌아가는 대로 기획안 작성할 테니까 일단 교양국 CP하고 미팅 잡아보죠. 투자처는 걱정 마시고요.”
최 작가가 가슴을 텅텅 치며 호언장담했다.
“이거 테이프 보여주면 다들 환장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예요. 그리고 매니저님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죠!”
게이트를 해결한 건 전부 이지아의 공적으로 돼 있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내 이름도 나왔지만, 다들 S급 헌터 이지아 외 1인 정도로 여겼다.
내가 적극적으로 안 나서기는 했다.
유명세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이지아였다.
매니저가 헌터 몫의 평판을 가져가서 뭐하려고?
나는 이지아 옆에서 조언 좀 한 일반인으로 남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게 맞았다.
이지아가 당시 전력의 10분의 9... 아니, 그 이상을 담당했었으니까.
일부러 정문에바리케이드를 설치하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이지아 쪽으로 몰아넣으려고.
백화점 위치도 외곽지라 후문이 담당한 범위는 고작 1km였다.
이지아 혼자서 12km밖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담당했다.
내가 한 일이 적은 건 아니지만, 전부 했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여러 증언이 겹치다 보니까 나라에서 상 하나는 받을 예정이었다.
용감한 시민상.
받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저는 됐어요. 매니저가 유명해져서 뭐 하게요? 지아한테 포커싱해서 잘 연출해 주세요.”
최 작가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다큐멘터리도 스토리가 있어서 전부 감추는 건 불가능하죠. 어떻게 생존자들이 구출됐는지 알려주려면 그 과정에서 얼굴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데… 팀장님, 혹시 낭중지추 아세요?”
사람을 뭐로 보고?
“그 정도는 알죠. 고졸이라고 무시하시나.”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제가 보기엔 팀장님이 딱 그랬거든요.”
“네?”
그녀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송곳이 어디 주머니에 숨긴다고 숨겨지겠어요?”
*
노크를 하고 대표실의 문을 열었다.
한예림이 퀭한 눈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저거 언제 한 번 쓰러져서 링거 맞고 올 거 같다. 그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혼자 살아남기 촬영은 끝났어?”
“어. 방송은 토요일에 있대.”
“그래? 근데 무슨 일이야?”
“회사 일로 잠깐 회의할 게 있어서. 투자가 필요한 사업 건인데…….”
한예림이 힐끔 내 손을 쳐다봤다.
빈손이다.
“기획안은?”
그녀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내 입을 가리켰다.
한예림의 인상이 팍 찌푸려진다.
“야이씨… 투자 필요한 건이라며? 아무리 구멍가게라고 해도 그렇지 대표한테 기획안도 없이 찾아오는 게 어딨어? 리스크 분석이랑 구체적인 사업안은…….”
그녀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내가 너 중학교 때 맨날 매점 데려가고, 오락실 동전 대신 넣어주고. 어? 또 뭐 있어. 학원비 삥땅 쳤던 거, 내가 대신 채워줬었지?”
과거 한예림이 나한테 빌붙었던 과거를 나열하자면 삼십 분도 넘게 떠들 자신 있었다.
식겁한 그녀가 소파를 가리켰다.
“아, 알겠으니까 앉아봐, 일단. 들어나 보게.”
역시 사회는 학연, 지연, 혈연이다.
일단 학연,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지연, 당연히 같은 동네에 살았다.
혈연, 불검 먹을 때 제갈량 양보해줬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어도 어릴 때 받은 것까지 무시 못하는 법.
옛날에 그렇게 퍼주던 것들이 이제 와서 보상받는 거다. 소파에 앉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맞은편에 앉은 한예림이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뭔 일인데?”
“이번에 방송국이랑 다큐멘터리 제작하려고.”
“다큐멘터리?”
한예림이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긴다.
“다큐 제작을 대체 우리가 왜 해? 우리가 무슨 제작사인 줄 알아? 이걸로 뭔 이득을 보겠다고…….”
동영상을 재생했다.
몬스터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영상 속의 내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몬스터 게이트 당시 최 작가가 찍었던 영상들이다.
패드를 눌러 동영상을 휙휙 건너뛰었다.
“몬스터 게이트 열렸을 때 찍은 영상인데, 전문 스태프들이 전부 따라붙은 게 아니라 누락된 건 좀 있어. 그래도 당시 상황 대부분 카메라에 담아냈거든.”
“잠깐 핸드폰 줘봐.”
한예림이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가져간다. 그러더니 동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세밀하게 살핀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봤다.
굳이 기획안을 가져오지 않은 건 다른 게 없었다.
소재가 미치도록 좋았기 때문이다.
리스크 분석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실패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현재 뉴스에서는 연일 게이트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한예림의 말처럼 바스타드가 제작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 화제성이라면 홍보용으로도 투자가치가 충분했다.
“김현우, 이거 제작비는 얼마나 예상 해놨어?”
“글쎄, 영상은 이미 준비해놨고 인터뷰랑 편집작업만 한다 치면 2, 3천만 원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편성 시간은?”
“그건 방송국 쪽이랑 이야기해 봐야지. 이 정도 영상이면 심야로 미루진 않을 거야.”
한참 동안 턱을 괴고 고민에 빠져있던 한예림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아까운데?”
“응?”
“고작 그 정도로 끝내기에는 소재가 너무 아깝다고, 이거.”
* * *
한예림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