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7)
* * *
양측 쇄골, 왼쪽 다리뼈, 갈비뼈 등 온갖 뼈들이 조각조각 박살 났다.
거인들 내부에서 터트린 폭탄 때문에 몸 곳곳에는 화상 물집이 심했고, 귀는 고막이 터졌는지 먹먹했다.
내 몸 상태는 거의 반병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대형 몬스터와 싸울 때마다 목숨을 걸고 도박했다.
손끝에 조금만 비켜 맞아도 사망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했다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미친 짓이었다.
들것에 실린 채로 중환자실로 들어가길 한참.
앞에서 골골대던 게 무색하게 지금은 다 나았다.
야전 군 병원.
의사가 흰색 가운에 한 손을 찔러넣고 내 몸을 여기저기 확인했다. 내 등 뒤로 와서는 팔을 잡고 이리저리 빙빙 돌린다.
“아프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세요?”
“아뇨.”
“위쪽으로 팔에 힘줘보세요. 어잇, 힘 좋으시네. 각성자라고 하셨었나? 회복되긴 하셨는데, 정밀검사가 필요하니까 민간 병원으로 호송해드리겠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의사는 다급히 떠났다.
구조된 인원들이 워낙 많았다. 많이 바쁘겠지.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 많던 뼛조각들을 어떻게 다시 붙이나 걱정했는데, 치료 특성을 가진 각성자들이 집중적으로 케어해줬다.
한예림과 이지아의 체면 때문일 거다.
그래도 다쳤던 게 어디 간 건 아니라 탈력감이 진하게 느껴진다. 몸 상태만 호전된 거지 체력까지 완벽해진 건 아니다.
포도 한 알을 목구멍에 넘기며 TV를 켰다.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서 몬스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4시간이 지났습니다. 협회와 군의 빠른 조치로 게이트 발생 5시간 만에 구조대가 투입됐으며, 때마침 현장에는 S급 헌터 이지아가…….]
게이트 발발 14시간째.
게이트는 정리됐고 몬스터들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현장에 남은 군과 헌터들은 생존자들을 보호하고 구조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인간이 나왔을 리는 없다. 미처 백화점으로 대피하지 못했던 소수의 사람을 구조하고 나서 곧바로 포격을 개시했다.
저 잔해 속에서 살아남아 있으려면 어디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있거나 벙커에라도 들어가 있었어야 할 거다.
여러모로 현실적이지 못한 가정이다.
군이 잔해를 치우는 것도 그저 형식상의 구조 작업이었다. 온갖 매스컴이 찍고 있는 상황이고, 유해라도 건져서 유가족들 품에 돌려줘야 하니까.
국가는 국민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줘야 한다. 현장에서 많이 봤던 광경이다. 심드렁히 포도를 씹는데, 이불 끝에 뽈록 튀어나온 무언가가 사사삭 기어 온다.
덜 여문 손이 튀어나왔다. 루리였다.
“포도줄까?”
“아니.”
“그럼 뭐 줘?”
“리모컨! 몬스터 워치 할 시간이야. 뉴스 말고 몬스터 워치 봐야 해.”
루리가 재차 손을 흔든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뉴스라 리모컨을 순순히 건넸다.
삑, 삑.
게라게라게라포.
방금까지 몬스터들한테 그렇게 쫓겨놓고 잘도 저런 걸 보는구나, 싶다.
계속 보고 있으면 속에서 신물이 올라와 시선을 돌렸다. 루리가 두 손을 꼭 쥐고 흥미진진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발로 등을 툭툭 건드렸다.
“루리야.”
“응?”
“집에 들러서 챙겨갈 거 있어?”
“아니, 없어.”
루리의 거처 때문에 고민이 많다.
호적이 조금 문제가 된다.
입양까지는… 아무리 그래도 스물여섯에 애 딸리고 싶지는 않고. 혼자 사는 남자한테 입양을 보내주지도 않는다.
부모나 친척은 없는 거 같으니까, 후견인 신분으로 데리고 있으면 될 거 같다.
“임무다. 루리 요원.”
루리가 다급히 TV의 음량을 줄였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주위를 살핀다.
“뭔데? 뭔데?”
“네가 우리 비밀기지에 들어오려면, 서류상 절차가 필요해.”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고갤 끄덕인다.
웃으며 볼따구를 푹푹 찔렀다.
“앞으로는 내가 너 대리인이 될 거야. 그러니까 대부, 삼촌, 아저씨 뭐 기타 등등 아무렇게나 불러.”
루리가 고민에 빠진다.
아이가 내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제대로 위장하려면 아빠라고 부르는 게 나을 거 같아.”
“너 편한 대로 불러라.”
이제 진짜 신경 끄고 핸드폰이나 해야겠다.
이지아의 SNS도 관리하고, 외부 커뮤니티에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최 작가도 슬슬 불러야 하고.
문자를 치는 와중이었다.
타닥, 타닥!
가볍게 뜀박질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소음은 병실 문 앞에서 뚝 멈췄다.
그리고 작은 심호흡.
드르륵.
문이 열렸다.
한유정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어제 도착하자마자 구조작업에 끌려가더니, 걱정돼서 뛰어왔나보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애써 침착한 척 묻는데 마주친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있다.
팔을 마구 움직여줬다.
“괜찮아. 이것 봐, 뼈도 바로 붙었어.”
과장되게 포즈를 취했는데, 그닥 안심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유정이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앉았다.
“밖에는 정리됐어?”
구조 작업 이어간다고 한창 바쁠 텐데.
저게 고작 반나절도 안 돼서 마무리될 일도 없고.
“아직이요.”
“지금 많이 바쁘지 않아? 한창 일하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빠져나왔어?”
“식사 시간으로 삼십 분 주길래 달려왔어요.”
어이구.
“그래서, 아침은 먹고 온 거야?”
“아뇨, 안 먹었어요. 그냥 아저씨 얼굴 보고 가려구요. 저 아침 안 먹어도 돼요.”
안 먹어도 되기는.
아침잠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아침밥은 거르지 않는 애인데.
서랍장 위에 놔둔 과일들을 건넸다. 바나나, 포도, 사과 뭐 이것저것 다 있었다. 전부 한예림이 사놓은 거다. 지금 입고 있는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도.
“여기 있지 말고 가서 쉬어. 구조 작업하러 들어가 봐야 하잖아.”
“저는 이게 쉬는 거예요.”
한유정이 내 소매를 조심스레 잡아당겼다.
찡그려진 눈썹으로 날 가만히 노려보고, 숨을 작게 씨근덕거리며, 어떤 얘기를 꺼낼지 말을 고르는 기색이었다.
결국 선택한 건 침묵이었다. 한유정이 내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대어왔다.
“아저씨.”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루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포도 줘.”
깜짝이야.
우리의 고개가 이불로 돌아갔다.
루리가 턱에 손 받침을 하고는 똘망똘망 쳐다보고 있었다.
“아잇, 뭐 하고 있어? TV 보게 빨리 포도 주라니까.”
한유정이 충격받은 얼굴로 나와 루리를 번갈아 본다. 볼에 닿은 따뜻한 손바닥이 어느새 싸늘하게 식었다.
뭐 때문인지 알 거 같다.
한유정한테 애가 있다고 하면 나였어도 충격받았을 거다.
“야, 진짜 이상한 생각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아, 안 되는데…….”
“그런 거 아니라고!”
*
“미친놈.”
침대에 누워있는데 벌컥 들어온 한예림이 내 배에다가 핸드백을 집어 던졌다.
묵직하네, 안에 뭘 집어넣은 거지?
“지아 씨는?”
“잠깐 근처에서 볼일 보고 들어온대. 따로 할 말 있는 거 같으니까 조금 이따가 얘기 나누던가.”
쓰라린 배를 붙잡으니까 그녀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는다.
“이지아한테 들었어. 뭔 정신이야? 네가 무슨 슈퍼맨이라도 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잔소리다.
“네 걱정 하나도 안 한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내가 진짜 유정이 얼굴 보기 쪽팔려서…….”
“뭐라 했는데?”
“이지아 없었어도 죽지 않을 놈이라고 했다. 근데 이지아가 있었어도 죽을뻔했잖아, 등신아!”
“폼 잡은 너 잘못이지.”
한예림이 짧게 혀를 차며 냉장고를 뒤진다.
한유정한테는 묻지 못했던 걸 물었다.
“피해자는 얼마나 나왔어?”
“아직 추정 중이야.”
“대략적인 수치가 있잖아. 하루가 되도록 그거 하나를 파악 못할 정도로 다들 무능하진 않을 거 아니야.”
나름 대한민국의 머리라 할 수 있는 양반들은 싹 다 여기에 모여있는데.
언론에 뿌릴 모이 정도는 준비해놨을 거다.
“……총인구수는 3,5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백화점에서 파악한 생존자가 2,138명이고. 추가로 구조한 생존자가 186명.”
“죽은 사람들이 1,200명 정도 나오는 거네.”
한예림이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거기서 더 줄어들 수도 있지. 추가 생존자도 나올 수 있는 거고.”
그럴 리가 없다.
총인구수는 주소지에 등록된 기준으로 셀 거고, 구조자 수는 유동인구까지 전부 때려 박아 넣을 테니까.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서야 실종 처리된 사람들이 사망자 인구로 들어갈 거다.
그러니까, 숫자로 장난질 좀 쳤을 거라는 뜻이다. 거기서 나온 게 3,500과 1,200이라는 숫자다.
한예림도, 나도 뻔히 알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우, 2천 명 전부 네가 구한 거야.”
“지아 씨 없었으면 턱도 없었지.”
“그건 이지아 혼자 있었어도 마찬가지야. 네가 있던 자리에 다른 S급들이 왔다고 해도 절대 너만큼 못해.”
“야, 민망하니까 됐어. 이거나 마시고 가.”
한예림의 손에 억지로 주스를 쥐여주고 등을 떠밀었다.
“섭섭하게 말 본새가 그게 뭐냐? 나도 바쁜데 시간 내서 겨우 온 거야. 알아? 찌질대고 있을까 봐 격려해줬더니.”
그녀가 투덜거리며 주스 병을 기울였다.
이불에서 루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빠, 나도 음료수 줘.”
“푸흑!”
* * *
루리의 목덜미를 잡고 이지아에게 내밀었다.
“루리 알죠? 지아 씨네 집에 데리고 갈 건데 제가 편하게 아빠라고 부르라 했어요. 후견인 해줄 거예요.”
루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지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네?”
“얘가 저 아빠라고 불러도 착각하지 말라고요. 벌써 두 번째라.”
“뭔진 모르겠는데, 알겠어요.”
알겠다면 됐다.
“예림이 안 따라가도 돼요?”
“할 만큼 했으니까 쉬려고요. 몸은 좀 괜찮아요?”
한유정과 한예림에게 했던 거처럼 과장된 움직임을 보여줬다.
뼈 튼튼하고, 살 붙어있고, 피 잘 돌고 있다.
“아직 노곤노곤한데 멀쩡해요. 지아 씨는요?”
“저야 뭐, 피곤하긴 한데 멀쩡해요.”
“똑같네요.”
이지아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뭔가 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참고 있는 거 같다.
“뭐예요? 할 말 있어요?”
“네? 아뇨, 뭐….”
“사람 답답하게 왜 그래요? 속 시원하게 말해봐요.”
“현우 씨.”
“네?”
“저희 말 놓기로 했잖아요. 기억하죠?”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안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헛기침하며 붉어지는 얼굴을 숨겼다.
“아뇨, 언제요?”
모르는 척하자.
시치미를 떼니까 이지아가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묘한 웃음을 짓는다.
음… 갑자기 말 놓으면 이상하니까, 방송 끝나면 놓죠. 방송 끝나면. 혼자 살아남기 찍는 동안 계속 존칭 썼는데 방송에서 갑자기 반말로 바뀌면…….
“내가 바본 줄 알아? 다 녹음해놨어.”
저건 또 어디서 배웠지.
아, 나였구나.
이지아가 얼굴을 확 들이민다.
짓궂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현우야, 빨리 지아라고 불러봐.”
“어, 네?”
“게이트에서는 잘만 불렀잖아.”
“아뇨, 그건…….”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올 때 됐는데.
드르륵.
때마침 문을 열고 최 작가가 들어왔다.
그녀가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써클을 꾹꾹 누르며 칭얼댔다.
“팀장님, 스태프들 다 모았어요.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뭐가요?”
“게이트에서 다들 얼마나 고생했는데…….”
“고생은 우리 셋이 다 했죠. 다들 쉬었으면 인제 그만 일하라고 해요.”
옷장을 뒤져 정장 외투를 꺼내는데 거울로 이지아와 눈을 마주쳤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그녀가 물었다.
“뭐, 뭐에요?”
넥타이를 질끈 매며 이지아를 돌아봤다.
“뭐긴요? 일해야죠. 방송 안 찍을 거예요?”
“네, 넷…?”
“저희가 강원도까지 왜 왔는데요. 혼자 살아남기 찍으러 왔잖아요.”
우리는 게이트를 막기 위해 강원도까지 온 게 아니다.
관찰 예능을 찍으려고 했던 거지.
스태프들을 모아놓으라고 최 작가에게 미리 연락해놨었다.
바로 출발하면 된다.
“방송 끝나고 말 놓을 거라고 했었죠? 빨리 준비해요. 캠핑하러 가야 하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