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5)
* * *
게이트 발발 1시간 33분째.
대통령의 명령이 있은 지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게이트를 중심으로 포위진이 겹겹이 쌓였다.
산맥 위에는 수백 개의 견인포가 포구를 게이트 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중무장한 탱크들도 진입 준비를 끝냈다.
임시 야전 막사.
행정부와 군 인사들이 초조하게 회의를 진행했다.
사실 회의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군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휴전국이었다.
한 시간이면 국토 어디에든 전투기와 탱크를 밀어 넣을 수가 있었다.
단 하나.
구조대가 모자랐다.
게이트가 열리면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일단 열고 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몬스터들을 죽이고 내부의 생존자들을 구출해야 한다.
그리고 구조 작업을 위해서는 워슈트 부대와 헌터들이 필요했다.
사실 회의라고 해봤자 구조대가 언제 도착하나 기다리는 거뿐이다.
“부협회장, 아까 말한 구조대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원 요청 보냈고, 현재 답신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UN에서 피스 메이커 보내준다는 거, 확실합니까? 반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복귀했다고 부대장이 안전 문제로 거절했다면서요?”
UN 평화군 산하 워슈트 특수부대.
피스 메이커는 그중에서도 명성이 제일 높은 부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UN은 각국의 지원으로 분쟁과 게이트 해결에 가장 앞장섰다. 사실상 세계 규모의 PMC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워슈트 부대를 운용 중인 나라들은 데이터의 수집을 위해 워슈트와 파일럿들을 파병 보냈는데, 당연하지만 전부 각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군인들이었다.
즉,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워슈트 파일럿들이 전부 피스 메이커에 모여있었다.
투입되는 지역 대부분이 제3세계거나 국제 정세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국가들뿐.
그만큼 정세가 안정돼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힘들었고, 파병받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협회장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부협회장이 구석에 앉아있는 한예림을 힐끔 쳐다봤다. 그녀가 고갤 끄덕였다.
“……확실한 정보니까 구조대는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그와는 개별적으로 서울의 헌터들도 수송 중입니다.”
부협회장이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한예림 옆에 앉았다.
그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바스타드하고 협회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아.”
“한국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이지아와 협회의 대립은 유명했다.
한예림의 말처럼 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자네들한테 전혀 유감이 없어. 오히려 긍정적인 쪽이지. 협회 내부에서 대립 중인 협회장을 치워줬으니까. 자네들은 오히려 나한테 은인이나 마찬가지야.”
“알아요. 그래서 부협회장님한테 사진 드린 거잖아요. 좋은 관계 쌓으려고.”
“사진… 그래, 사진.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자네가 협회에 크게 한 방 먹이려는 건 아닌가 하고.”
만약 이번 게이트마저 막지 못한다면, 협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고 만다.
“스물여섯에 미국 대형 길드의 매니지먼트 팀장…… 그것도 경력 2년 차 동양인이? 말도 안 되지. 알 사람들은 전부 아네. 자네가 위험한 친구들과 사이좋고,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
“…….”
“아까 줬던 사진, 진짜 맞나? 수천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네.”
한예림이 피식 웃었다.
“제가 출세욕은 있는데, 미친년은 아니에요.”
부협회장이 뭐라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막사의 문이 젖히고 양복쟁이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이런 경우 대부분 둘 중 하나였다.
좋은 소식이 있거나, 나쁜 소식이 있거나.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남자의 입을 쳐다봤다.
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UN에서 평화군 보내준답니다!!”
*
게이트 내부.
백화점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격하게 반겼다.
“팀장님, 원래 뭐하시던 분이에요?”
“딱 보면 모르냐? 헌터 하셨었겠지!”
“내가, 어? 다 봤어! 괴물 새끼 갑자기 고꾸라지는 거, 어?”
다리를 절뚝이며 타이어 바퀴 위에 걸터앉았다. 대물 저격총에 몸을 기대며 의사에게 말했다.
“부목 댈 것 좀 부탁드립니다.”
의사가 내 상처를 힐끔 보고는 심각한 얼굴로 응급 치료 도구들을 가져왔다. 백화점이라 있을 건 다 있었다.
옆에 있던 소령이 내 종아리에 소독약을 뿌리고는 빨간약을 한 움큼 부었다.
시발, 육군 출신 아니랄까 봐.
이를 까득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
의사가 기다란 판자를 종아리에 붙이고 붕대로 돌돌 감았다. 끝나고 나서 바닥을 몇 번 찼는데 통증 때문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이 꼴로 절대 못 싸운다.
“모르핀 있습니까?”
당황한 의사가 눈을 깜빡인다.
“어, 네, 있긴 한데. 이제 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뼈 박살 났는데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결국 그가 내게 모르핀 주사를 건넸다. 허벅지에 꽂아 넣고 모르핀을 주입했다.
몸 안에 돌려면 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거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다리에 힘을 줬다. 대물 저격총에 기대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초콜릿을 입에 욱여넣으며 머리를 팽팽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주어진 조건에서 준비를 모두 끝마쳤고, 나머진 하늘에게 달려있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완벽하게 준비해놨다고 생각했는데 대형 몬스터가 고작 두 시간 일찍 등장한 거로 난장판이 됐다.
하다못해 여기에 한유정이라도 있었으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거다. 엉성하게나마 이지아와 합을 맞춰 양쪽을 막아냈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 있는 건 한유정이 아니라 나였다.
만약 워슈트의 성능이라도 좋았.
“……장님! 팀장님!”
정신을 차리니까 소령이 내 뺨을 짝짝 때리고 있었다.
“멍청하게 서서 뭐 하세요!”
모르핀 아직 안 돌았나?
얼얼하네.
벌겋게 익은 뺨을 붙잡으며 변명했다.
“잠깐 좀 찌질대고 있었습니다.”
없는 걸 생각하지 말자.
있는 걸 생각하자.
다리를 절뚝이며 구석으로 갔다.
공사장 폭탄이 아직 남아있었다. 소령이 당황해서 내게 묻는다.
“뭐, 뭐 하세요?”
“몇십분 있으면 대형 몬스터들이 등장할 거예요.”
순차적으로,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많이.
게이트 내부로 쏟아져 나올 거다.
배낭에 폭탄들을 담으며 말했다.
“현상 유지하겠습니다. 정문은 지아가 막을 거고, 후문은 그대로 싸우세요.”
“대형 몬스터는 어쩌시려고요?”
배낭을 메고 제 자리에서 몇 번 뛰었다.
이제야 모르핀이 조금 도나 보다.
“현상 유지한다니까요.”
결국,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들은 바뀌지 않았다.
국군이 게이트를 열고 들어올 때까지 버틴다.
하늘을 바라봤다.
게이트의 결계는 아직 그대로였다.
*
사람들이 물러나고, 최 작가가 조심스레 김현우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카메라를 끄며 말했다.
“팀장님, 방금 카메라 껐어요. 오디오 안 들어갈 거고요.”
장비를 점검하던 김현우가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에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대거의 날을 갈던 김현우의 손이 멈췄다.
최 작가는 김현우가 왜 사람들을 구조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나 방송 출연을 질색하던 사람이 이지아의 이미지가 변할 거라는 말에 바로 반응을 보였다.
게이트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현우와 이지아의 대화들에서 은연중에 그런 분위기가 풍겼다. 김현우는 이지아의 평판을 위해서 행동하고 있었다.
구출 과정에서 카메라 감독을 꼭 데려가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이해 갔다. 뒤늦게 쫓아온 그녀를 그렇게나 반겼던 것도.
S급 헌터인 이지아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그녀 본인이 게이트 내부에서 위험할 일은 절대 없었고, 자연스레 구조 행위가 강요됐다.
그래서 이지아가 도망가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카메라에남기려는 것이다.
대형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김현우도 이지아의 옆이라면 안전했고,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과정도 매끄럽게 진행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형 몬스터가 출몰하면서 더이상 김현우에게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나서서 위험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지아는 할 만큼 했다.
혼자서 대형 몬스터들로부터 시민들을 모두 지켜낼 수는 없다.
사망자들이 많이 나오더라도, 지금 찍은 영상들을 공개하면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못한다.
김현우는 이지아의 옆에 붙어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건 명백히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었다.
“팀장님이 생존자들 몇 무리만 버스에 태우고, 이지아 씨가 호위하면 되잖아요. 솔직히 할 만큼 했어요.”
김현우는 지금 편한 길을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그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팀장님이 움직여서 구한 시민들이 2천 명이에요. 팀장님 없었으면 어차피 죽었을 사람들이라고요. 여기서 절반 넘게 죽어도, 아무도 팀장님이랑 이지아 씨 탓 안 할 거예요.”
“…….”
“팀장님.”
* * *
게이트 발발 3시간 37분째.
김현우가 다리 부상으로 전장에서 빠지자 상황은 제법 급박하게 돌아갔다. 전방에서 시선을 끌어줬던 만큼,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다들 핏줄기를 한두 군데씩은 줄줄 뿜어내고 있었다. 아프다고 징징거릴 시간은 없었다.
당장 눈앞에서 발톱 휘두르는 괴물들에게 납탄 박아넣기도 바빴다.
총성이 빗발치는 와중이었다.
누군가 경악하며 외쳤다.
“대형 몬스터다! 대형 떴어!!”
한창 전투 중이던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 멀리 빌딩만 한 괴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매니저 불러!”
“안 보이는데? 매니저 어디 갔어?”
샷건으로 몬스터의 대가리를 쏜 남자가 외쳤다.
“도망간 거 아니야?”
“……뭐?”
“다리 분질러졌다며! 이길 각 안 나오니까 튄 거 아니냐고!”
“지랄 마.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던데.”
“니미, 대한민국은 이럴 나라로 보여서 지금 우리가 이 지랄 난 거냐?”
더 부정하고 싶었지만, 김현우가 보이지 않았다.
옆에 세트처럼 붙어 다니던 최 작가도.
남자들의 고개가 다시 대형 몬스터에게로 향했다. 그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거 어떡하지?”
“여기오면 다 뒤질 텐데. 지금 튀면 가능할까요?”
바리케이드 아래를 내려다본 남자가 침을 뱉었다.
“대형한테 압사당하거나, 소형한테 물어 뜯겨 뒤지거나. 둘 중 하나지.”
들끓던 사기가 가라앉았다.
모두 어딘가 허망한 얼굴로 총구를 바닥으로 향했다.
“그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얍삽하네. 튈 거면 말이나 하지.”
남자가 투덜거릴 때였다.
절뚝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백화점 안에서 김현우와 최 작가가 걸어 나왔다.
“안 튈 거니까 말 안 한 거죠. 모르핀하고 폭탄하고 뭐 이것저것 챙기고 왔습니다.”
김현우가 투덜거린 남자의 주둥이를 손등으로 툭 쳤다. 남자가 눈물을 머금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다섯 개 조로 나눕니다. 네 개조는 소령님 휘하에서 현재 상태 유지하고, 한 개조는 정문에 바리케이드 설치하세요. 아직 구조가 오지 않은걸 보면 제법 시간이 걸릴듯합니다.”
“……매니저님은요?”
김현우가 대형 몬스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죠.”
그가 발을 크게 내디뎠다.
신형이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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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 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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