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80화 (80/112)

〈 80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4)

* * *

동요가 퍼진다.

아마 내가 대형 몬스터의 위험성에 대해 떠벌릴 때는 잘 안 와닿았을 거다. 키가 몇 미터가 넘고, 파괴력이 얼마나 강하다고 해봤자다. 결국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모를 수밖에 없다.

대형 몬스터가 빌딩들을 박살 내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해본 거리는 대략 1킬로미터.

2족 보행 거인이다.

저 큼지막한 다리라면 1분도 안 돼서 이쪽에 도착할 터다. 생존자들이 고갤 돌려 날 쳐다본다. 그들의 눈동자가 두려움에 잠식돼있었다.

소령의 말대로였다.

난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사이에 리더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이 눈으로 내게 물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

머리가 팽팽 돌았다.

대형 몬스터가 이쪽에 도착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머릿속으로 이후의 전황이 그려졌다.

이지아가 정문의 수성을 포기하고 대형 몬스터를 맡는다. 나와 생존자들이 대신 정문으로 가고, 바리케이드 없이 중소형 몬스터들을 상대한다.

사망자가 등장할 것이다. 바리케이드가 없기에 돌파력 높은 괴수들을 막지 못한다. 아마 백화점까지 뚫리겠지. 그다음에는 백화점 내부의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위한 소탕조와, 외부의 몬스터들을 막는 수성조로 나눠야 한다.

가뜩이나 모자란 전력이 분산된다.

거기다가 대형 몬스터와 이지아가 싸우면 후문 쪽 바리케이드는 전투의 여파로 박살 나 있을 거다.

그럼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문제다.

이지아와 위치를 바꿔 그녀가 정문을 막고 우리가 후문을 다시 막는다 가정하자.

바리케이드는 사라졌다.

다시 몬스터들이 내부로 들어올 거고, 우리는 전력을 분산해야 한다.

결국 아까의 반복이 된다.

지금 가진 전력들을 분석했다.

S급 헌터 이지아.

약 200정의 총기류로 무장한 자경대.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철거용 폭탄.

유탄 발사기 및 크레모아.

그리고, 워슈트를 착용한 전사 하나.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막아야만 한다.

나밖에 없었다.

주파수를 이지아의 개인 무전기에 맞췄다.

“지아 씨, 들려요?”

­네! 무슨 일이에요?

무전기 너머에서 파공음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위치상 몬스터들이 이곳보다 많이 몰려들었을 텐데, 목소리만 들으면 오히려 저쪽이 더 여유 있어 보였다.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문을 열었다.

“대형 몬스터가 등장했어요.”

­……네?

“백화점 때문에 지아 씨 쪽에는 가려져서 안 보일 겁니다. 1km밖에서 건물들 부수면서 이쪽으로 돌진 중이에요.”

­벌써요? 어, 아직 시간이…….

“일반적인 게이트하고 다른 모양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다른 대형 몬스터들이 바로 쏟아지진 않을 겁니다.”

중형 몬스터도 하나 등장하고 나서 쏟아지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최소한 저걸 잡으면, 다음 대형 몬스터가 쏟아지기까지 몇십분은 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지아 씨 할 말이 있는데.”

­네?

“제가 대형 몬스터를 맡아야 할 거 같습니다.”

이지아에게 굳이 보고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녀가 마음의 평화 범위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이다.

­왜요? 제가 죽이면 되잖아요.

이지아가 굳은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그녀에게 위치를 바꿨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설명했다.

“지아 씨가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백화점 내부에 몬스터들이 침입할 거에요. 안에 있는 사람들, 여기서 싸우는 사람들. 절반은 넘게 죽을 겁니다.”

­그래서, 현우 씨가 간다고 하면 저는 어떻게 하려고요?

“마음의 평화는 지아 씨한테 집중하고,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입구 밖으로 너무 나가지 말고 있…….”

­현우야, 가지 마.

이지아의 목소리가 초조해진다.

­여깄는 사람들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어차피 다 죽었어. 중형 몬스터들 때문에 트럭 박살 나는 꼴 보고 있으면, 아무도 우리 탓 안 할 거야.

“…….”

­절반 죽는 거는, 그 정도는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하라 해. 왜 거기까지 네가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건데?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불가능했으면 나도 안 나섰을 거야.”

나도 미친놈은 아니다. 내 목숨 아까운 줄 알고, 사람들을 구할 때부터 모두 가능성을 보고 움직였다.

지금의 상황은 내가 나서는 거로 충분히 타개 가능했다.

“그런데 할 수 있으면, 해야 해.”

­현우야.

“갔다 올 테니까 백화점 막고 있어. 나 따라오면, 음.”

뭐로 협박하지?

이게 낫겠다.

“일 그만둔다.”

­뭐?

통신을 끊고 소령을 찾았다.

그가 사색이 된 얼굴로 대형 몬스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다.

“지휘관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정신 차리세요. 저건 제가 처리하고 올 테니까, 지휘 부탁드립니다.”

“어, 네? 저, 저걸 팀장님이요? 어떻게요?”

그냥 말없이 몸을 돌려서 전투 준비를 했다. 공사장 폭탄들을 몽땅 수거해서 배낭이 빵빵해질 때까지 집어넣었다. 중형 몬스터들이 바리케이드를 넘어왔을 때 터트리려던 것들이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챈 소령이 입을 떡 벌렸다.

“당신 미쳤──!!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오르자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워슈트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마석은 차고 넘쳤다.

빌딩 벽을 발로 차며 대형 몬스터 쪽으로 달려갔다. 워슈트는 착용하고 있는 동안 근력뿐만 아니라 반사신경까지 발달시켜준다.

밤하늘을 달리는 와중에 주위의 풍경들이 두 눈에 느릿느릿 들어왔다.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린 채 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손을 내게 뻗으며 뭐라 뭐라 외쳤다.

눈을 돌렸다.

턱에 힘을 꽈악 주고 앞으로 달렸다.

“좆같은 괴물 새끼들.”

백화점으로부터 75m.

대형 몬스터의 지척까지 도착했다. 빌딩 꼭대기에 선 내가, 파일드라이버를 옆구리에 꽉 맨 채로 펄쩍 뛰었다.

괴물의 등에 파일 드라이버를 냅다 꽂아 넣었다. 살갗을 파고든 쇳덩이가 괴물의 몸속에 박혔다. 나는 파일 드라이버에 걸터앉은 채, 품속에서 대거 두 개를 꺼냈다.

그걸 양손에 쥐고 녀석의 몸을 등반했다. 대거로 등을 푹푹 찌르면서. 아무래도 조금 뒤늦게 이상을 눈치챈 건지, 몬스터가 등 뒤로 팔을 뻗고 휘적였다.

덩치가 커서 둔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키만 수십 미터라 절대 그렇지 않았다. 멀리 있던 손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다.

몬스터의 몸에 박아넣은 대거를 밟고, 하늘로 박차 올랐다.

콰아앙─!

뒤에서 거대한 풍압이 날 밀어낸다. 귀찮은 모기 새끼 쫓아내듯 가볍게 철썩 때린 게 이 정도다. 체급 차에서 오는 힘은 고작 싸구려 워슈트를 입은 거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

녀석이 주위 건물들에 등을 처박기 시작했다. 배낭 안의 폭탄이 혹시나 터질지도 모른다. 몸을 웅크리고 배낭을 앞으로 멨다.

그리고,

콰직!

등 뒤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주위에 시멘트 부스러기들이 튀는 걸 보면 어디 빌딩에 제대로 꼬라박은 거 같다.

내장이 터질듯한 기분이다.

숨이 턱 막히고, 목에서 왈칵 피 뭉치가 터져 나왔다.

“칵, 퉤!”

비릿한 혈량을 입안에서 느끼며, 나는 올라갔다.

파일 드라이버로 거인의 몸을 헤집고,

하나 남은 대거로 몸을 지탱하고,

가끔 시멘트벽에 부딪히는 통증을 묵묵히 감내하며,

나는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올라탔을 때.

내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걸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천만다행이었다.

형체가 불분명한 부정형 몬스터는 인간과 구조가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놈들의 약점까지 전부 파악하면서 싸울 수는 없었다. 강력한 화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2족 보행 거인은 달랐다.

녀석은 인간과 똑같았다.

머리에 뇌가 달려있고,

가슴에 심장이 달려있으며,

하부에 성기가 달려있었다.

파일 드라이버를 다시 옆구리에 맨 채로, 거인의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통증이 안 느껴지자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건지 녀석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걸으려고 왼발을 내딛는데 몸이 기우뚱 앞으로 쓰러진다. 아까 부딪힐 때 다리가 박살 난 모양이다. 왼쪽 다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나는 걸었다.

그리고 녀석의 귓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두근, 두근.

맥박 뛰는 소리가 들린다.

길 끝에 도착한 나는 기어가던 걸 멈추고 벽을 매만졌다.

여기가 고막이다.

망설임 없이 파일 드라이버를 냅다 꽂아 넣었다.

콰직!

피가 울컥 쏟아져나온다.

터져 나오는 혈액에 몸이 휩쓸리지 않도록 바닥에 대거를 박아넣고 꽉 붙잡았다. 그리고 옆구리에 낀 파일 드라이버에 체중을 실었다.

────────!!

내 귀에서도 피가 주륵 흐른다.

아무래도 거인의 괴성 때문인듯싶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소리가 먹먹하게 느껴졌다.

드그극, 드그극!

파일 드라이버로 녀석의 고막을 계속 헤집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외이, 중이, 내이, 와우신경을 지나쳐 목적지로 향한다.

그 끝에 도달한 건 커다란 신경다발들이었다.

배낭을 집어 던지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이미 뚫어놓은 길이라 탈출하는 건 빨랐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폭 버튼을 눌렀다.

쿠콰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연기는 나오지 않았다. 폭탄이래 봤자 고작 배낭에 집어넣은 크기였고, 거인의 몸속에서 터트린 거였으니까.

하지만, 녀석이 맥아리 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게 보였다. 어깨 위에서 뛰어내린 나는 낙하산을 펼쳤다.

펄럭!

가슴을 조이는 압박감과 함께 안정적인 부유감이 느껴졌다. 저 밑을 내려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지아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안심한 얼굴로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등 뒤가 화상으로 시큰거렸다.

폭탄을 너무 빨리 터트렸나 보다.

왼쪽 다리는 박살 났고, 귀는 맛이 가서 아까부터 이명이 멈추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을 벌었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고갤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게이트의 결계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