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2)
* * *
게이트 발발 0시간째.
“아저씨.”
…….
“예림이 언니가 아저씨 전화 안 받는다고 연락해보래서…… 아저씨?”
…….
한유정이 수화기에 대고 김현우를 불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의아하게 핸드폰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전화가 뚝 끊겼다.
“…?”
“유정아, 현우가 뭐래?”
한예림의 질문에 한유정이 핸드폰을 보여줬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얘네 진짜 뭐 하는 거야? 이지아도 전화 안 받고, 최 작가도 전화 안 받고, 김현우도 전화 안 받고. 평창에는 무슨 기지국도 없어?”
“보니까 평창읍이었어요. 백화점 쪽.”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한유정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 문자 했었어요. 아까.”
“그래?”
한예림이 머리를 긁적이며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구글에 접속한 그녀가 키보드를 두들겼다.
[평창읍 백화점]
그리고 턱을 괸 채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강원도 시골이긴 했지만, 인구수 1만이면 있을 거 다 있는 동네였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 외딴섬이라도 가는 게 아니라면 기지국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의심이 쌓여만 간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움직였다.
한예림이 핸드폰을 들어 박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아, 피디님. 최 작가가 전화를 안 받아서 혹시 다른 제작진들 전화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네? 최 작가가 전화 안 받는다고요? 촬영 중에 뭔…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카메라 감독님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한예림이 전화를 끊으려는 박 피디를 불러세웠다.
“피디님, 죄송한데 촬영 나간 제작진들 전화번호 좀 전부 넘겨받을 수 있을까요? 헷갈리시면 기억나는 대로요.”
네?
“부탁드릴게요.”
허, 참… 일단, 네. 알겠습니다.
박 피디의 목소리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3분 뒤, 연락처 몇 개가 카톡으로 도착했다.
그녀가 차분히 연락 버튼을 눌렀다.
연결이 되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아…….
.
.
.
한예림이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그녀가 구글 어스를 키고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백화점 주변에 보이는 모든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아…….
.
.
.
의아함을 느낀 한유정이 다가와 물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응.”
한예림이 긴장으로 굳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좆됐어.”
“네?”
그녀가 시계를 확인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통화음이 몇 번 가고 나서 전화가 연결됐다.
어, 한예림? 네가 전화를 다 하고 무슨 일이냐?
“언니, 혹시 군 인공위성에 접촉할 수 있는 신분이에요?”
아니, 난 개발직이잖아. 왜?
개소리다.
벌써 냄새 맡고 확인해주기 싫어 변명하는 거였다.
미국의 한인 사회는 좁다.
에이스 길드의 매니지먼트 팀장인 한예림은 나름 엘리트층이었고, 그녀는 미국에서 제법 ‘잘 나가는’ 한인들과 어울렸다.
통화 중인 여자는 미 국방부에서 인공 위성을 개발을 하다가 한국군에 스카웃 됐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이 인공 위성 관리하고 만드는 거다.
“평창에 몬스터 게이트 터진 거 같아요. 그것도 아니면 테러.”
뭐? 야, 너 지금──
“방송차 나가 있던 제작진들 연락 전부 끊겼고, 평창읍에 있는 군청, 매장들 전화 싹 다 안 돼요. 언니, 이거 기회 드리는 거예요.”
…….
“인공위성 한 번만 확인해줘요. 공적은 언니가 갖고, 결과만 알려주면 돼요. 빚 하나 저한테 진 거로. 이 정도면 싸잖아요.”
아이씨, 있어 봐.
그녀가 초조하게 테이블을 두드리며 결과를 기다렸다. 한유정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방금 무슨 말씀이에요?”
“뭐가?”
“평창에 몬스터 게이트 나왔다는 거요.”
한예림이 한유정을 쳐다봤다.
대답을 확인하면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발꿈치를 계속 들썩이고 있었다.
“아직 의심 단계야. 그냥 통신 불량인걸 수도 있고, 진짜 터졌어도 이지아 있으니까 걱정 마.”
만약 몬스터 게이트가 터졌다면 인공위성으로 보기에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찍혀있을 터다.
이상 전파로 내부의 상황은 알지 못하더라도 게이트가 열린 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우웅. 우우웅.
문자가 왔다.
한예림이 핸드폰을 확인하고, 굳은 얼굴로 협회 번호를 눌렀다.
네, 협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
그녀가 직원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평창에 몬스터 게이트 터졌습니다.”
*
한 시민의 적극적인 신고로 협회와 군은 이상 사태를 빠르게 감지했다.
게이트 특징상 내부의 통신이 끊겨 외부 연락에만 수십 분이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협회는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대책 위원회가 설립되고, 군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연락이 갔다.
‘진짜 맞냐?’ 같은 시간 낭비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있던 군도 곧바로 협회에 합류 의사를 밝혔다.
협회는 서울을 거점으로 하는 S급 헌터들과 길드 대표들을 소환했다. 각 행정부와 군 인사들이 도착하자마자 부협회장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헬기 타고 오는 중이고, 협회장 자리는 공석인 관계로 제가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정식 명칭은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 게이트 재난 비상소집 위원회, 대충 이런 거로 가겠습니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결정합시다.”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그가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빠르게 설명에 들어갔다.
평창에 게이트가 열렸고, 해당 게이트 지역의 추정 인구수가 2, 3천가량 되며, 총인구수 10만도 안되는 평창군 근처에서 헌터들을 징집하기에는 전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게이트 내부의 생존은 6시간 안에 결정 납니다. 그 안에 부대를 편제하고 내부에 피랍된 시민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왭니까?”
양복쟁이의 질문에 부협회장이 찡그려진 이맛살을 꾹꾹 눌렀다.
“……대형 몬스터 때문입니다. 통계적으로 5, 6시간쯤부터 게이트 내부에 출현하는데, 건물에 숨어있던 시민들은 이때부터 대부분 사망했다고 판단합니다. 군 당국 방침은 어떻습니까?”
부협회장의 질문에 국방부 차관이 대답했다.
“대형 몬스터들 나올 때부터 내부 생존자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포격 개시합니다.”
“군법상으로는 그렇다 쳐도, 실제는요?”
단호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못합니다. 혹시 생존 중인 민간인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외부에서 보기에는 군인이 국민 안전 포기하고 되려 죽이는 꼴인데.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어디까지나 눈먼 폭탄에 죽을 사람들 때문에 생긴 법령이고, 군은 민간인들 구출하고 나서 움직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충 이런 상황입니다.”
신고 덕에 대책 위원회는 빠르게 설립됐지만, 결국 총체적 난국이었다.
군은 내부 시민들의 안전이 확보되면 움직인다.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건 헌터들의 역할이다.
문제는 수도권의 헌터들을 평창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 소속 헌터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수준이 처참했다.
당연했다.
실력이 된다면 길드에 들어가지, 푼돈 받아 가며 군에 임관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게이트 내부에서 활약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였다.
결국, 길드 소속 헌터들을 비상소집 해야 한다.
그런데 수송기에 태우기까지 중간 과정이 너무 많았다.
헌터들을 소집하고, 임시 편제를 하고, 평창으로 이동하고, 작전 지역에 투입하고, 민간인들을 구출해야 한다.
그 모든 걸, 4시간 안쪽으로 끝내야만 한다.
머릿속으로 주판을 굴린 사람들이 동시에 침음성을 내뱉었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됐다.
“……골리앗들은 투입 불가능합니까?”
군대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을 우선시한다.
자연히 군은 각성자보다 병사들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그 정점에 있는 게 워슈트였고, 골리앗은 워슈트를 운용하는 엘리트 부대였다.
누군가의 질문에 국방부 차관이 대답했다.
“한 개 중대 나옵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물었다.
“나머진 어디 갔습니까?”
“데이터 수집하고, 타국에 생색내려고 전부 파병 보냈죠. 후자는 외교부 요청입니다.”
“대체 생각이 있는 겁니까? 그렇게 전부 파견 보내니까 막상 중요한 시기에──”
“10년 만에 일어난 게이트인데 어쩌라는 겁니까? 막말로 이게 우리 잘못이에요? 어비스 던전 공략 실패하고 브레이크 해결 못 한 협회──”
사건에 대한 대응책은 미뤄지고 개판 5분 전이 됐다.
그들 모두 예상한 것이다.
이건 절대 해결 못 한다.
구조대 역할을 할 부대를 소집하고 보내면, 막상 그들이 쓸모없어진 이후다. 그런데 구조대가 없으면 군 작전은 시작하지도 못한다.
대부분 게이트의 실상이 이랬다.
손가락 빨다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적십자 연맹은요? 거기도 워슈트 부대 운영 중인 거로 아는데, 지원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수송기 타면 몇 시간 걸리죠?”
“동해 쪽 기지면 15분도 안 걸릴 겁니다.”
“헌터 소집하는 것보다 훨씬 낫네. 부협회장, 가능하겠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일동 부협회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지금 동해에 동북아시아 구조선이 떠 있긴 한데, 북한 쪽 게이트 문제 해결 중입니다.”
“UN은요? 평화군 있잖습니까. 거기도 워슈트 부대 운영 하는데.”
“북한 지원 중입니다.”
“대대 규모가 하나도 안 나온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미 연락해봤는데 소속 부대가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파병은 불가하답니다. 아프리카에서 반년 구르고 바로 복귀한 거라고… 부대장이 안전 문제로 거부했답니다.”
“군인이 무슨 명령 거부를 한답니까? 까라면 까는 거지.”
“평화군들은 어차피 다 파병 군인이잖습니까.”
“좆같은 빨갱이 새끼들. 국제기구에는 협력도 안 하는 놈들이 지원은 왜 혼자 다 처먹고 있어?”
“주한 미군은요?”
“주한 미군 중에 워슈트 부대 없습니다.”
“민간 군사 업체는요?”
“대한민국에 워슈트 쓰는 PMC가 대체 어딨습니까! 여기서 뭔 일을 하겠다고.”
“육군으로는 해결 못합니까?”
“보병들 도착할 때쯤이면 중형 뜰 시간대인데 걔네 총 안 먹어요. 수송 차량 싹 다 전복될 거고, 그거 지키려면 헌터나 워슈트 필요합니다.”
“폭탄은요? 폭탄 맞으면 죽는 거 아니에요?”
“미쳤습니까? 지금 전투기 못 쓰는 이유가 뭔데 폭탄이 여기서 왜 튀어나옵니까? 민간인들이 폭탄 맞아 죽나 괴물한테 물려 죽나 뭐 차이점이 있습니까?”
“유탄 같은 건 범위도 적으니까 괜찮을 거 아닙니까.”
“그딴 걸로 안 죽습니다.”
“아무튼 대한민국 사람들 안전불감증은… 이러니까 제가 평소에 민간 헌터들로 비상 대기조 짜놔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한 거 아닙니까?!”
“협회하고 인권위원회에서 지랄하는데 어떡하라는 겁니까! 아아, 댁들한테 한 말 아니요. 10년간 게이트 한 번 안 열렸다고 다 안일하게 생각하는 거지. 성동구에서 사람들 좀 더 죽었어야…… 아니, 뭘 입을 막고 있어?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난장판이던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정장 차림의 여자가 거침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옆에는 이제 갓 고등학생쯤 됐을까 싶은 소녀를 대동한 채.
한예림이 옆구리에 낀 서류 파일들을 뒤적이며 외쳤다.
“게이트 내부에 S급 헌터 이지아 있습니다. 구조대 인원 좀 줄여도 돼요.”
“당신 누굽니까?”
“바스타드 소드의 한예림입니다. 이지아 소속 길드의 대표고, 평창군 게이트 최초 신고자고, 미국 에이스 길드에서 게이트 여러 개 처리했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도 되겠습니까?”
S급들이 소속된 길드 대표들은 전부 불렀었다. 자격은 충분했다. 부협회장이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아무 데나 앉으세요. 다시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대충 눈치껏 주워들으시고.”
한예림이 무시하고 부협회장에게 걸어갔다.
“상황은 영상 통화로 들어서 전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생존자들 구출 때문에 애먹는 상황이죠? 구조대 인원 부족해서요.”
“네, 해결 방안 있습니까? 없으면 바쁘니까 일단 앉아있으세요.”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한예림이 서류를 건넸다. 부협회장이 의아한 얼굴로 서류 속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사진 속의 인물을 그가 모를 수 없었다.
벌써 협회에 몇 번이나 물 맥인 인물이었으니까.
그가 입가를 문지르며 사진들을 하나씩 살폈다.
“……이거 진짜인가?”
“네, 그리고 현재 게이트 내부에 갇혀있습니다.”
이거, 잘만하면 구조대를 데려올 수 있을듯싶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대한민국 국토 한복판에 미사일 수백 개를 때려 박아 넣어야 해. 사실 확인된 거 맞아?”
“저 포토샵 할 줄 모릅니다. 사진 인쇄하고 바로 달려온 거고요. 사람들 죽길 바라는 사이코패스도 아닙니다. 됐습니까?”
한참 동안 한예림을 노려보던 부협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회의 결과 정리해서 재난안전대책본부장한테 보고하고, 대통령 허가 떨어지면 바로 진압 작전 준비하죠.
구조대 문제는 제가 다시 확인할 테니까 차관님은 평창군 근방 부대에 연락해서 포격 준비 부탁드립니다.
전투기는 몇 대까지 투입할 수 있겠습니까?”
국방부 차관이 어깨를 으쓱였다.
“국군의 화력이 부족할 일은 절대 없습니다.”
*
“영점 조준이랑 탄약 불출은 전부 끝난 겁니까?”
김현우가 대물 저격총을 정비하며 물었다. 소령이 고갤 끄덕였다.
“네, 백화점 근처로 바리케이드 쳐놨고, 팀장님이 구해온 총기들 덕분에 전원 무장 끝났습니다.”
“다행이네요.”
엽총으로 싸울 각오를 했던 거에 비하면 상황은 썩 괜찮았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중형 몬스터까지의 이야기였다.
대형 몬스터가 등장하면 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다.
그래서 김현우는 빌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이상을 빠르게 파악하고, 최대한 지원을 빠르게 보내주기를.
사람들을 구조했고, 화약 무기로 무장시켰고, 백화점을 성벽처럼 개조했다.
게이트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이미 떠난 활시위였고, 그게 어디에 박힐지는 운명이 정할 따름이었다.
워슈트를 입은 김현우가 복도를 걸었다. 소령이 뒤따라오며 브리핑을 했다.
“바리케이드는 일부러 정면 쪽을 뚫어놨습니다. 이지아 씨가 혼자서 막고, 나머지 인원들은 전부 백화점 뒤편을 수성할 겁니다.”
“탈영하려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몇 명 있었는데… 다짐육 되는 꼴 보고는 다들 포기했습니다.”
“사기는요?”
“겁에 질려있습니다. 솔직히, 엽총 들고 싸웠으면 부대고 뭐고 통제 하나도 안됐을 겁니다.”
그럴 만도 했다.
정규군도 아니고 3시간 전까지 일상생활을 누리던 민간인들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총 하나 딸랑 쥐여주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싸우라는데, 용기를 내는 게 미친놈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햇병아리들이 보였다.
다 큰 남자들이 볼품없는 꼬락서니로 팔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김현우는 그 모습이 우습지 않았다.
소령이 뒤에서 귓속말로 물었다.
“연설하시겠습니까?”
“연설이요?”
“원래 그런 거 하잖습니까. 출병 전에 사기를 돋우는.”
“전 부대장 아닙니다. 하려면 소령님이 하셔야죠.”
소령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모두가 팀장님을 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워슈트 입어서 외관상으로도 그림 좋잖습니까. 뭐, 한마디 하시죠.”
김현우가 주위를 둘러봤다.
말주변이 있는 편도 아니고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한 심정을 꺼내기로 했다.
그가 마음의 평화를 넓게 퍼트리며 말했다.
“다들 살아남읍시다, 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