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내일은 슈퍼 스타 (8)
* * *
VJ와 최 작가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사담을 나눴다.
“국정원 요원 아닐까요?”
최 작가의 말에 VJ가 턱을 괬다. 그가 그럴듯하다며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국정원 요원이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훈련하나요? 정보직 요원들인데.”
“어, 글쎄요?”
뭔가 있어 보이는 단체의 이름을 대충 주워 담은 거다. 최 작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번엔 VJ가 가능성을 제시했다.
“육군특전사령부 예하 특수 부대 부사관?”
“그게 뭔 뜻이에요?”
“특전사요.”
“아.”
최 작가가 벽에 등을 기댄 김현우를 쳐다봤다. 박 피디의 말이 떠올랐다. 매니저보다는 유치원에서 애들이나 돌보고 있을 인상이라고.
“저 얼굴로요?”
“안 어울리긴 하죠? 피부도 뽀얗고, 사람이 사근사근하게 생겨서.”
그럼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매니저 하기 전에는 카페 알바를 했단다. 직접 타주는 아메리카노가 특히 일품이라고.
누가 봐도 개소리다.
VJ가 손가락을 튕겼다.
“협회 특수 에이전트. 어떻습니까?”
“협회에 특수 에이전트가 있어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최 작가의 물음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정도 규모인데 하나쯤은 있을 법 하지 않겠습니까?”
“이지아 씨는 협회하고 사이 안 좋잖아요. 그런데 그런 신분의 사람을 매니저로 둘까요?”
협회와 이지아가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 건, 아는 사람들은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최 작가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아씨, 뭘 대입해도 어색하네. 진짜 뭐 하는 사람이지? 방송 나가도 되는 신분 맞나? 감독님, 영상은 잘 찍혔어요?”
VJ가 가슴을 텅텅 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고 다 찍어놨습니다. 도현이 형님이 이지아 씨 쪽에 붙었으니까, 이거 편집해서 방송 나가면 대박이에요.”
“테이프는요? 여분 남죠?”
VJ가 가방을 보여줬다. 한가득이었다.
“……대박이긴 하네요.”
최 작가가 창문 밖을 쳐다봤다.
연기가 곳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녀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멀쩡히 나갔을 때 이야기지만.”
*
5분쯤 지났을까, 이지아가 다른 VJ와 함께 통제실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지아 씨, 백화점 내부 몬스터들은 정리…….”
얼굴에 살짝 튄 피가 보인다.
물어볼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엄지손가락으로 볼을 문질러 지워줬다.
이지아가 묘한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피가 묻어있길래. 봐요.”
“아.”
“다친 덴 없죠?”
“전부 소형 몬스터들이라 몸도 안 풀렸어요.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에요? 현우 씨는 게이트 열린 거 어떻게 알았고요?”
비상계단에서 마주친 괴물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설명이 끝날 때쯤, 이지아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내 옆구리를 찰싹 때렸다.
“쿨럭!”
누가 S급 헌터 아니랄까 봐, 설렁설렁 툭 건드린 건데 손바닥이 엄청 맵다. 힐난하는 목소리가 날 질책한다.
“거기서 네가 사진을 왜 찍고 있어!”
“이거 덕분에 설득하는 시간이 절반은 줄었어요.”
“사람이 착한 것도 정도가 있죠! 남들 살리겠다고 왜 위험을 감수해요?”
할만하니까 한 거지.
VJ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위질하는 흉내를 냈다. 저 발언은 좀 문제가 될 수 있다. 최 작가가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편집해드릴게요.”
고갤 꾸벅 숙이고 차가워진 머리를 다시 불태웠다. 이제 급박하게 움직일 시간이다. 최 작가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질문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할 거냐.
은은한 기대감이 서린 질문이었다.
게이트를 막을 것인가, 구조를 기다릴 것인가, 구조를 할 것인가.
그들이 원하는 게 어느 쪽인지는 뻔하다.
누구나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군인이라 할지라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에 질릴만했다. 전혀 상관없는 방송국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모두 아닌 척하지만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차라리 서울이면 상황이 나았을 거다.
길드들이 밀집해있다 보니까 헌터들도 인구밀도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이 상주하고 있었다.
레드 게이트 때도 한 군데를 제외하면 피해는 미미했다.
하지만 강원도는 다르다.
이상을 감지한 시민들이 뒤늦게 신고하고, 헌터 협회에서 인지하고,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가고, 비상 대책 위원회가 소집되고, 헌터들을 이곳까지 보내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장담컨대 바로 당장은 아닐 거다.
흩어진 헌터들에게 동원 명령을 내리고, 합류한 그들에게 임시 부대를 편제해야 하고, 강원도까지 수송해야 한다.
차 타고 이동만 세시간. 수송기에 소규모 선발대를 태워서 보내면 삼십 분.
지원까지는 반나절 넘게 걸린다.
전방 지역인만큼 근처에 군부대가 있지만, 글쎄.
건물은 둘째치고 사람들 때문에 폭탄을 떨구지는 못 할 텐데.
해봤자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가는 거나 견제하겠지.
그들이 나서는 건 대형 몬스터들이 등장하거나, 헌터들이 지나간 뒤다.
하지만 밖에는 당장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S급 헌터 이지아는 현장의 중심에 위치했다.
혼자서 게이트를 막으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은 이지아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송국이든, 이곳에서 이지아의 사인을 받아 간 사람들이든.
위에 언급한 모든 게, 이지아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위험 속에서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 될 것이냐, 도덕적 선택을 저버린 현실적인 인간이 될 것이냐.
모자란 내 머리에서 나오는 답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구해야만 한다.
못 구한다면, 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
“동행할 사람 있어요?”
VJ들과 최 작가가 서로에게 마구 눈짓한다. 서로 창과 칼을 겨누던 승부는 VJ들의 승리였다. 머릿수가 더 많아서 그런지 최 작가의 힘이 부족했었나 보다.
그녀가 헛기침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 팀장님.”
“네.”
“저희는 여기서 대기하고 이지아 씨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만약 이지아가 혼자 움직일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거다.
그런데 내가 동행해야 한다.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 패닉에 빠지니까.
어차피 내 속도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면, 한 두 명쯤은 더 데려가도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지아와 내 활약상을 멋지게 찍어줄 카메라맨이라든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이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 그럼….”
“하지만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게이트입니다. 현장에는 S급 헌터 이지아가 있고요. 그리고 생존자들을 구하려 하고 있죠.”
“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모두 담아냈을 때, 여러분들이 얼마만큼의 스포트라이트와 명예를 얻게 될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
결국 다들 안 간단다.
이해는 간다.
백화점 밖으로 치솟는 연기와 비명을 듣고 있으면 생존 욕구가 치밀어 오를 거다.
목숨이 걸린 일인데 명예 좀 얻겠다고 냉큼 가는 놈이 특이한 거지. 그런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밖에 안 되지 않을까. VJ들은 그 한 명이 아니었을 뿐이다.
임시방편으로 일단 내가 카메라를 들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CCTV를 향해 손을 휘휘 젓자 셔터가 드르륵 올라간다.
“어때요? 몬스터 있어요?”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빨리 차에 타죠.”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차키를 꽂고 시동을 거는데, 옆자리에 앉은 이지아가 머리카락을 배배 꼰다.
“현우 씨.”
“네?”
“우리가 꼭 가야 해요?”
“뭐를요?”
“사람들 구하러요. 현우 씨 예상으로는 헌터 부대 편제하고 여기까지 오는데 반나절밖에 안 걸린다면서요. 그냥 안에서 사람들 지키면 안 될까요?”
저 말은 날 생각해서겠지.
혹시나 내가 다치거나, 죽을까 봐.
하지만 움직일 때는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이지아가 아무런 행동도 안 하면…….
“아뇨, 가야 해요.”
“저 때문이죠?”
“네.”
이지아가 글러브 박스에 이마를 기대고 한숨을 푹 내쉰다. 그리고 손톱을 잘근잘근 깨문다.
요즘 안 보인다 싶더니, 또 습관 도졌네.
하지 말라고 손을 잡아줬다.
그녀가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저희 같이 일한 지 얼마나 됐죠?”
“9개월 정도 됐을걸요.”
“이제 우리도 슬슬 말 놓을 때 되지 않았어요?”
“……네?”
이지아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슬쩍 피했다.
보일러 틀었나? 덥네.
“음… 갑자기 말 놓으면 이상하니까, 방송 끝나면 놓죠. 방송 끝나면. 혼자 살아남기 찍는 동안 계속 존칭 썼는데 방송에서 갑자기 반말로 바뀌면…….”
“현우야, 너 지금 얼굴 붉어졌어.”
“에이씨, 방송 끝나면 놓으라니까요. 카메라 켜져 있어요. 나중에 자료로 다 쓸 거예요.”
덜컹!
당황해서 악셀을 너무 세게 밟았나 보다. 몸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야, 김현우. 지아라고 불러봐. 빨리.”
이지아가 옆에서 내 볼을 쿡쿡 찌르며 장난친다.
“저 운전하고 있잖아요. 그만…… 시발!”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방금 앞에 사람 있던 거 같은데? 뭐지?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니까 쾅쾅! 무언가 운전석을 두들긴다.
“최 작가님?”
최 작가가 무릎을 짚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VJ들이 쓰던 헤드폰까지 착용한 채로.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녀가 콧김을 내뿜었다.
“팀장님, 저 갈래요!”
“네?”
“따라간다고요! 뒷좌석 탈게요, 카메라 넘겨주세요!”
덜컹!
최 작가가 뒷문을 열고 몸을 구겨 넣었다. 그녀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테이프를 갈았다.
백미러로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요? 그보다 촬영할 줄 아세요?”
“방송국 짬밥 몇 년인데 얼추 조작은 할 줄 알아요. 말이 작가지 조연출들하고 막내 생활하면서 이것저것 시다바리는 다 하거든요.”
어휘가 좀 거칠어진 거 같은데?
그래, 아무렴 생판 처음 만져본 나보다 낫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손이 필요했는데 다행이다.
최 작가가 카메라 상태를 확인하더니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 없네요.”
“같이 가달라고 해놓고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생각은 잘 해보셨어요? 위험하고 안전 보장 못 해 드립니다.”
여자라 체력도 걱정되고.
최 작가가 알통을 만들어 보인다.
“각성자예요! 제 몸은 걱정 마세요.”
아, 그러세요.
“이래 봬도 다큐멘터리 작가가 꿈이었거든요. 어쩌다 보니까 예능 쪽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카메라 감독들한테 엄포놓고 왔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가서 찍는 영상은 제 거라고요.”
“네? 이걸로 뭐 하시려고요?”
“교양국 CP하고 견적 짜보고, 투자자들 구해서 다큐멘터리 제작할 거예요. 여기서 찍은 장면들, 예능에서는 어차피 송출 불가능하잖아요. 그 정도는 허락해주실 거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보다.
이거 장군감이다.
“최 작가님.”
“네?”
“지금 경력 몇 년 되셨어요?”
쥐 눈곱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 사 년…… 아직 서브 작간데요.”
4년.
길다면 길지만, 어느 업계에서든 지휘봉 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필름 있어도 메인 작가로 직접 들어가기에는 짬밥이 좀, 부족하시죠?”
“어, 그쵸….”
“혹시 게이트 끝나면 같이 일할 생각 있어요?”
“무슨 일이요?”
“다큐 제작이요.저희 쪽에서 제작비 전부 투자하는 조건으로 국장하고 이야기 나눠볼게요. 메인 작가 바로 꽂아드리는 거로. 콜?”
“어서 출발하시죠, 투자자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밴이 도로 위를 질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