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내일은 슈퍼 스타 (7)
* * *
“……네?”
당황한 최 작가가 어벙한 얼굴을 한다.
얼타는 거 받아줄 여유가 없다. 시계를 확인하며 지시했다.
“일단 제작진들부터 전부 모아주세요.”
“어어, 티, 팀장님?”
무시하고 이지아에게 걸어갔다.
쪼그려 앉은 그녀가 진열장의 고기를 진지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지아 씨.”
“현우… 무슨 일 있었어요?”
“네.”
“실수로 사람 죽인 건 아니죠?”
제 딴에는 농담한 거 같은데, 하나도 안 웃기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게이트가 열린 거 같아요.”
“어, 네?”
“스태프들하고 상황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 VJ 한 명하고 같이 비상구 계단 쪽으로 빠지세요. 주차장부터 꼭대기까지 쭉 올라가면서 몬스터들 정리하고, 곧바로 통제실로 합류하면 됩니다.”
다행히 능력의 개발은 꾸준히 해놨다. 현재 이지아와 떨어질수있는 거리는 70미터. 아무리 백화점이래도 강원도 지점이다. 주차장까지 포함한 높이래봤자 뻔할 뻔자다.
“뭘 어쩌시려고요?”
“그건….”
한가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일단 움직여요.”
이지아의 등을 떠밀고 최 작가에게 돌아갔다. 웅성거리던 제작진들의 고개가 미어캣처럼 돌아간다. 두 눈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갑자기 몬스터 게이트가 열렸다니까 웬 개소린가 싶겠지.
“팀장님, 게이트가 열렸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무슨 설정 잡으시는 거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앨범을 뒤져 아까 찍은 괴물의 사진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방금 비상구 계단에서 마주친 괴물입니다. 이제 믿음이 가시죠?”
제작진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다.
몬스터 게이트가 다시 등장한 건 10년 만이다.
서울 소재의 한 중학교에서 게이트가 열렸었다.
교직원을 포함한 전교생 총원 727명.
그중 사망자는 725명.
세간에서 ‘레드 게이트’라 불리는 비극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당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기억하고 있다.
교복을 입든, 군복을 입든, 방송국에서 한창 현직으로 뛰든, 머리 굵어지고 나서 봤을 인상 깊은 비극일 테니까.
최 작가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빠, 빨리 나가서 협회에 신고부터 해야…!”
“게이트가 열리면 이상 전자파로 외부 신호 전부 끊깁니다. 소용없어요.”
“이, 이지아 씨 있잖아요! 외부지역으로 빠져나가면요?”
최 작가의 말을 무시하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VJ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깨에는 여전히 카메라가 걸쳐져 있었다.
문득, 목 끝에 닿는 마이크의 감촉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졌다.
영상 녹화되고, 음성 녹음 중이다.
매체에 기록된 영상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잘 선택해야 한다.
입 밖으로 내뱉는 단어도, 이들의 목숨이 걸린 결정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증거물로 남는다.
생각에 빠졌다.
이지아와 이곳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백화점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수백 명이 넘는다. 그걸 버리고, 그 과정이 모두 영상으로 남고, 추후 진실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
이지아와 나는 후폭풍을 감당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이걸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제작진들’이라는 이름 뒤에서 욕먹을 이들과, ‘이지아와 매니저’는 전혀 다르다.
시민들을 지키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들의 안전을 위해 움직여야 했음을 카메라에 담아야만 한다.
그게 헌터고, 이지아의 의무다.
말문을 열기 전에 혀를 입안에서 데굴데굴 굴렸다.
여기서부터는 터프하게 가자.
“백화점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만 안전하자고 이 사람들을 버리고 나갈 수는 없어요.”
“게이트가 열렸는데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이런 때이니까 따져야 하는 거예요.”
“팀장님!”
뒤에서 땍땍거리는 제작진들을 무시하고 벽에 걸린 백화점의 약도를 눈에 담았다.
“이미 늦었어요. 지아 씨는 백화점 내부에 있는 몬스터들 정리하러 올라갔고, 저희는 저희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통제실이 어딨지?
찾았다.
카메라로 약도를 찍고 나서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저한테 명령 하달받으신 분들은 옆으로 빠지세요.”
체격 건장한 남자 스태프들을 가리켰다.
“외부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부터 멈춰야 합니다. 밖에 꼴 지랄 났을 거 뻔한데 아무것도 모르고 나가면 사람들 다 죽어요. 내부로 침입할 수도 있고요.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고, 층에 와서 멈추면 문 박살 내놓으세요. 그럼 고장 나서 안 움직일 겁니다.”
“네, 네? 어, 어떻게요?”
“소방도끼든, 야구방망이든, 골프채든, 아이스하키채든 전부 상관없습니다. 백화점에 널린 게 무기니까 스포츠 매장 들려서 아무거나 가져와요.”
남아있는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제일 연장자가 누구죠?”
“접니다.”
“최고참은요?”
나이가 제일 많다던 사람이 다시 손을 든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견장을 한 명한테만 주면 된다.
“감독님께서 약도 확인하시고 스태프들 출구에 배치해주세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통제해주시면 됩니다. 이후 백화점 문이 폐쇄되면, 1층부터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난리 통에 부모 잃은 애들 꼭 나올 겁니다. 질문 있습니까?”
“…….”
“없으면 바로 움직이세요.”
정적이 내렸다.
진열장을 발로 차 넘어트리며 외쳤다.
“뭣들하고 있어? 내가 지금 귀머거리 병신들한테 지껄인 거야?! 전부 뒤지게 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스태프들이 허겁지겁 뛰어간다. 흩어진 양 떼들 사이로 멀뚱멀뚱 서 있는 두 마리의 병든 개가 눈에 들어온다.
최 작가와 VJ였다.
그들이 오들오들 떨며 내게 묻는다.
“저, 저희는 뭐하죠?”
뭐하긴?
엄지손가락으로 내 등 뒤를 척 가리키며 대답했다.
“두 분은 저 따라오셔야죠.”
당신들은 촬영해야지.
이후 사망자가 나왔을 때 대중의 질타로부터 면피 가능한 증거물을.
나와 이지아가 열심히 막아보려고 노력했다는 진실을.
저 작은 카메라에 모두 담아야만 한다.
오늘 온종일 찍었던 관찰 예능처럼.
*
최 작가와 VJ를 대동하고 통제실로 향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무시하고 들어갔다.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의자에 늘어지게 누워있던 보안 직원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당신들 뭡니까?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어어, 방송 작가님 아니세요?”
최 작가가 어색하게 웃는다.
방송 협조차 미리 만났었나 보다.
잘 됐다.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셔터 전부 내려주시고, 고객들한테 6층으로 모이라고 방송하세요.”
“어, 음, 네?”
아까처럼 핸드폰 앨범을 뒤져 몬스터 사진을 보여줬다.
화들짝 놀란 직원이 묻는다.
“뭐야, 이거 진짜예요?”
“네.”
“혹시 방송국 몰카…?”
급해 죽겠는데 몰카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전부 진짜고, 지하 1층 식료품 매장 비상구에서 발견했습니다. 의심되시면 외부에 연락 돌려보세요. 통신 끊겼을 거예요.”
“에이씨, 있어 봐요. 농담이면 그냥 안 넘어갑니다. 영업 방해죄에요, 이거!”
직원이 두꺼운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구석으로 달려간다.
주섬주섬 방검복과 무기를 챙기고 있길래 물었다.
“확인됐으면 셔터부터 내리고 빨리 방송 켜야죠.”
“잠깐만요.”
“네? 무슨….”
“젠장, 한 번 확인하고 오게요!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봐요!”
내 참.
왜 저러는지 알겠다.
어이가 없어 허리에 손을 얹고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시발, 만약에 셔터 내리고 대피 방송까지 했다가 아니면? 당신들이 대신에 책임질 거야?”
“예, 책임질 테니까 당장 셔터 내리세요.”
“지랄 마! 당신이 어떻게 책임질 건데? 지휘실 실장은 난데.”
“늦게 닫으면 닫을수록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갈 거고, 그럼 더 많이 죽을 겁니다. 당신 때문에 수십 명이 죽을 텐데, 그건 걱정 안됩니까?”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일단 상황 파악하고 대처하겠다는데, 그게 어떻게 내 탓이 돼요? 빨리 가서 확인해야 하니까 이만 나오세요!”
보안 직원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어떤 미친놈은 백화점에다가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허위 제보를 하고, 누구는 소방서에 불났다고 장난 전화를 하는데.
10년 만에 열렸다는 게이트를 생판 남의 말만 믿고 움직이긴 난감하겠지.
결정을 내리는데 아마 많이 헷갈릴 거다.
책임 소재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확신과 이유를 줘야 할 듯 싶다.
보안 직원이 내 몸을 밀치고 지나간다.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힘에서 밀린 녀석이 당황하며 끌려왔다.
그대로 권총을 꺼내 허공에 발포했다.
탕!
최 작가, VJ, 보안 직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라목을 했다.
총구를 턱밑에다가 겨누자 직원이 양손을 번쩍 든다.
그 상태로 낮게 협박했다.
“지금 당장 문 닫고 마이크 켜. 아구창에 구멍 뚫리기 싫으면.”
“허, 허세 부리지 마! 카메라 돌아가는 거 안 보여?”
“총구가 대갈통에 겨눠졌는데 자기 목숨을 담보로 도박하는 건 또 처음 보네. 한국 치안이 좋긴 좋아. 아직 현실감이 안 느껴지지?”
총구로 목젖을 깊숙이 찍어눌렀다.
나하고 눈을 마주친 직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눈치 보지 말고 당장 움직여. 하나.”
“그, 그게.”
“둘.”
“하, 할게요!”
직원이 버튼을 탁탁탁 누른다.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셔터가 천천히 내려가는 게 보인다.
그사이에 벌써 두 명이 입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돌아온 그들이 닫힌 셔터를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나는 눈을 돌렸다.
때마침 직원이 외쳤다.
“마이크 켰습니다!”
“핸드폰 줘봐요.”
직원이 주섬주섬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녹음기를 켠 채 통제실 마이크에 숨을 불어넣었다.
“백화점 내부에서 몬스터가 발견됐습니다. 현재 몬스터 게이트가 열린 것으로 추정되며, 백화점을 찾은 고객분들께서는 지금 당장 6층 가전제품 매장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S급 헌터 이지아가 마침 백화점에 방문한 상태입니다. 고객분들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6층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백화점의 셔터가 몬스터들로부터 언제까지 안전할지 모른다. 만약 1층이 뚫리면 최소한의 시간 벌이는 될 거다.
녹음기를 저장하고 직원에게 건넸다.
“마이크 틀어놓고 녹음 파일 계속 재생시켜놔요. 어차피 방송 나가고 일 커졌으니까 뒤늦게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이름이…….”
보안 직원의 명함을 확인했다.
“최민식 씨. 이름 기억해놨으니까, 아셨죠?”
“……넵!”
머리에 총구를 겨눈 싸이코가 이름까지 기억해놨다는데, 섣불리 움직이진 않겠지.
방금 CCTV 영상도 나 혼자만 본 거 같지는 않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끝냈다.
이제는 이지아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
팔짱을 끼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멀찍이서 쭈뼛쭈뼛 서 있던 VJ와 최 작가가 다가온다.
둘이서 시선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말문을 튼다.
“그, 팀장님.”
“네?”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질문 하나 드려도 돼요?”
“하세요.”
“매니저 하기 전에 원래 뭐 하시는 분이었어요?”
VJ도 궁금한지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민다.
렌즈와 한참동안 시선을 마주치다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카페 알바요.”
아메리카노를 특히 잘 탄다.
간단해 보여도 그거 다 기술이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