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내일은 슈퍼 스타 (3)
* * *
촬영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찾아온 스태프들이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녔다.
PD와 감독들이 익숙하게 지시를 내린다. 처음에는 녹화용 카메라만 설치하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탁자고 TV고 집안 살림살이들을 몽땅 빼내고 있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다가 어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맞다. 협찬받았다고 했지.
“잠깐 지나갈게요!”
TV를 나눠 든 스태프들이 쓱 지나간다. 뭔 극장 스크린처럼 거대하다. 저거 한창 광고하던 상품인데.
해외에 막 발을 디딘 사람처럼 멀뚱멀뚱 서서 구경하는데, 작가가 허겁지겁 다가온다.
그녀가 핼쑥한 안색으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지아 씨는 어디 계세요? 몇 가지 알려드릴 게 있어서요.”
“지금 메이크업… 아, 저기 오네요.”
이지아가 내 옆으로 와서 섰다.
메이크업은 정말 간단하게 톤만 정리했다. 촬영 전부터 간곡히 부탁한 요청사항이었다. 관찰 예능 특성상 너무 꾸미면 자연스러움이 안 나온다나.
작가가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당부했다.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조금 곤란해질 만한 통화는 꼭 주의해주세요.”
“네?”
“저희 방송 특성상 24시간을 마이크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데, 오디오 감독님이 실시간으로 전부 듣고 있거든요. 한 번은 불륜 상대방하고 통화해놓고 감독님한테 개판 진상부렸어요.”
“누구요? 영화 배우예요?”
“그건 말씀드리기가 좀….”
이지아가 머리를 기울이자 작가가 내 눈치를 힐끔, 살핀다.
“이거 어디 가서 말씀 나오면 안 돼요.”
“당연하죠. 저만 알고 있을게요.”
작가의 속닥임에 이지아가 눈이 커다래진다. ‘진짜요? 진짜?’, 작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까 의외의 인물인가보다.
조금 이따가 물어봐야지.
작가는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더 말하고 떠났다. 관찰 예능이라길래 스태프들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듯했다.
괜히 안에 있으면 걸리적거리고 방해만 될 거 같아 이지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잔디밭에 쪼그려 앉은 이지아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낸다. 그녀가 인터넷에 들어가더니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입력한다.
“지아 씨.”
“네?”
“어제 댓글 반응 같이 봤잖아요. 그걸 또 봐요?”
이지아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러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오늘 아침부터 상태가 조금 이상한데.
턱을 긁적이다가 이지아의 옆에 나도 쪼그려 앉았다.
“방송 찍는다고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네? 제가요? 아까 작가분하고 웃고 떠드는 거 못 봤어요? 괜찮아요. 저 카메라 익숙해요.”
나름 여유 있어 보이길 바랐겠지만, 글쎄.
내 눈에는 긴장감을 숨기려고 과한 행동을 하는 거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과 장난치면서 떠드는 게 이지아의 평소 모습은 아니니까.
그냥 말없이 쳐다봤다. 이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 사실 조금 긴장했어요. 방송 나간다니까 갑자기 매스컴에 관심받고 댓글도 많이 달려서….”
“조금이요?”
가벼운 추궁에 그제야 울먹이며 솔직히 말한다.
“아뇨, 많이요. 지금 심장 떨려 죽을 거 같아요. 마음의 평화 켜진 거 맞죠?”
“당연하죠. 제가 뭐 지아 씨 엿 먹으라고 껐겠어요, 그걸?”
“근데 왜 이렇게 떨리지? 현우 씨 능력 고장 난 거 아니에요?”
능력이 고장 난다는 건 처음 듣는데. 그게 가능하면 한유정의 천살성부터 어떻게든 해줬을걸.
“왜 그렇게 긴장해요? 청문회 때는 말도 잘하던 사람이.”
“이거 보세요.”
이지아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SNS에 달린 댓글들을 쭉 훑었다.
별 내용 없었다. 아니, 여태까지 이지아의 SNS에 달린 댓글들을 떠올려보면 이만큼 깨끗할 때가 있나 싶었다.
“이게 왜요? 다들 응원해주잖아요. 지아 씨 힘내라고.”
“그쵸? 그런데 여기 ‘지아 언니 힘내세요!’라고 쓴 사람이요. 예전에 악플달던 사람인 거 아세요?”
“네?”
“협회 보복 행정 건으로 하루아침에 돌아섰잖아요. 이번에 제가 실수하면 또 돌아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긴장돼 죽겠어요.”
그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10년간을 악플에 시달렸는데, 불신에 시달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게 아니었다.
이지아의 말처럼 방송에 어떻게 보이냐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게 대중의 인식이고, 유명인의 숙명이니까.
이지아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그녀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현우 씨?”
“아까 작가님이 말했잖아요. 너무 꾸민 티 내지 말라고. 스타일링하면 어떡해요? 웨이브도 넣었네.”
“메이크업해 주시는 분이 해줬어요.”
이지아의 변명을 무시하고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트렸다. 됐다. 이제 좀 자다 일어난 사람 같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해요.”
“네?”
“여기서 지아 씨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면, 다들 생각을 고쳐먹을 거예요.”
범죄 저지른 연예인들도 자기 이미지 세탁하려고 예능 방송에 출연한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었어, 뭐를 했어?
이지아의 죄라고 하면 마음이 여린 것 하나뿐이다.
그건 잘못된 게 아니다.
이지아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다가 더 욕먹으면요?”
“지아 씨가 하던 대로 하면 사람들도 좋아해 줄 걸요? 분명.”
옆에서 이지아를 바라보던 입장에서는 뭐랄까,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던 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의 착각과 오해도 많이 풀릴 거다.
“방송이라고 굳이 꾸미려고 할 필요 없어요.”
“평소대로… 그걸로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이번에야말로 지아 씨 매력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오세요.”
이지아의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에서 투지가 활활 타올랐다.
*
이지아의 저택 별관.
제작진들은 창고를 모니터 룸으로 개조했다. 오디오 감독이 헤드셋을 끼고 자리에 앉았다.
관찰 예능은 프로그램 특성상 촬영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디오 감독은 느슨하게 팔짱을 꼈다.
역시나, 이지아의 목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그는 혼자 살아남기 팀에 초창기부터 합류했다. 그래서 관찰 예능을 찍다 보면 나오는 상황들은 대부분 마주했다.
오디오가 비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방송 출연에 익숙한 연예인들도 힘들어 하는 게 관찰 예능이다.
요즘은 특히나 리얼리티를 강조하다 보니 집안에 카메라만 설치해놓고 스태프들은 모두 자리를 비운다.
그럼 한동안은 아무런 말도 오디오에 들리지 않는다.
제 혼자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게 워낙 어색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지아는 연예인도 아니고 헌터다.
어색한 첫마디가 나오기까지 시간은 더 걸릴 터.
그는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기다렸다.
처음이 힘들다.
입이 한 번 뚫리면 슬금슬금 오디오가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오디오 감독은 생각했다.
‘말수가 되게 적네.’
한마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도. 보통은 방송 분량을 생각해서라도 이것저것 건들며 혼잣말을 하게 되는데….
살짝 냉소적으로 보이던 이지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지간히도 과묵한 편인듯했다.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오디오 감독이 팔짱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카메라 감독의 질문에 오디오 감독이 헤드폰을 벗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마이크가 고장 난 거 같아. 있어 봐.”
그가 막내 작가를 불러 마이크 교체를 부탁했다. 잠시 뒤, 돌아온 작가가 고개를 갸웃하며 마이크를 건넸다.
“마이크 멀쩡한 거 같은데요?”
“멀쩡하다고?”
작가가 마이크에 대고 바람을 후후 불었다.
“아아. 들리시죠?”
“엉? 들리네?”
오디오 감독이 눈을 크게 뜨며 마이크를 받았다.
이상함을 느낀 건 네 시간이 지날 때쯤이었다.
“아니, 왜 대체 아무런 말도 안 들리는 거야? 장비가 고장 난 건가?”
오디오 감독이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날 때, 턱을 괴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감독님.”
“응?”
“오디오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그럼 뭔데?”
카메라 감독이 턱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지아가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디오 감독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게 왜?”
“촬영 시작하고부터 제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어. 그런데?”
“소파에 누운 채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뭐?”
오디오 감독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오디오 장비가 이상한 게 아니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아니, 한 마디가 아니라… 아무것도?”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뒤, 모니터 룸.
지난 영상 기록들을 배속으로 쭉 훑은 박 피디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좆됐다.”
처음 감독들이 얘기할 때는 으레 하는 ‘투정’인 줄 알았다.
이번 방송 분량 어떡하냐, 재미없을 거 같다, 시청률 큰일 났다 등.
매주 촬영할 때마다 항상 나온다. 관찰 예능은 특히나 현장이 재미있을 수가 없으니까.
예능은 편집이 전부 한다는 말이 있다. 박 피디는 자신 있었다.
혼자 살아남기는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관찰 예능들 중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원조 격 프로그램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할법한 조금 뜬금없는 행동을 엉뚱한 캐릭터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방송을 의식한 허세들도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최소한 편집할 방향이라도 나오게 촬영 분량은 뽑아야 하는데….
“촬영 시작하고부터 하루종일 소파에서 안 떠난 거예요?”
박 피디의 물음에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 작가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쾅 내려쳤다.
“제가 뭐랬어요? 인터뷰 때부터 이상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다들 이지아 이름에 정신 팔려서 귓등으로만 듣더니!”
그녀가 외쳤다.
“망했어, 이번 방송 망했다고! 작가진 싹 다 교체될 거야!”
“최 작가, 여기서 울면 뭐가 달라져? 이런 출연자가 한두 번은 아니잖아. 일단 다른 헌터나 연예인 불러서 캐미 살리는 쪽으로…….”
“제가 이미 물어봤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대요!”
박 피디가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한 명도? 과장이 아니라 진짜?”
“네, 한 명도요!”
“그게 말이 돼? S급 헌터인데. 업계에서 10년을 넘게 구른 사람이 어떻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일하다 보면 필요해서아는 사람 연락처 몇 개는 저장해놓기 마련이다.
그게 업계 탑급 인물이라면 더더욱이.
“청문회 때 동료들이 싹 다 뒤통수 쳐서 연락 끊고 지낸대요!”
“허.”
이러면 조금 심각해진다.
박 피디가 턱을 괴며 생각했다.
이미 촬영 소식은 기사로 나갔고, 국장과 CP는 시청률 상승만 기대 중이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이태원 근처 요리 교실이나 꽃꽂이 학원 뒤져봐. 안되면 그림도 상관없어.”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뭘 어째?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 학원이라도 보내야지. 이지아한테는 내가 말해볼게.”
최 작가가 기겁하며 일어났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피디님, 전에 그랬다가 작위적이라고 욕먹은 거 기억 안 나세요? 이지아 씨도 좋은 말 안 나와요!”
“이대로 가면 우리만 욕 처먹어! 조혜진, 뭐 하고 있어? 빨리 학원 알아봐!”
“어, 네! 알겠습니다!”
조연출이 문을 잡고 열었다. 때마침 들어오려던 김현우가 발을 휘청이며 충돌을 피했다. 조연출이 허리를 꾸벅 숙이고 황급히 달려갔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 다들 이거 좀 드시면서 하세요.”
김현우가 양손에 한가득 든 짐을 책상에 내려놨다. 봉투에서 도넛과 커피를 차례대로 꺼내던 그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물었다.
“그,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