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내일은 슈퍼 스타 (2)
* * *
예상은 했다. 피할 수 없는 관문이라고. 어차피 맞을 매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놨지만, 그렇다고 해서 맞는 매가 덜 아프진 않는 법이다.
문제는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처음 들은 말은 그거였다.
“현우 씨, 일어나셨어요?”
한유정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침잠이 워낙 많아서 나보다 일찍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앤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보다.
서쪽에 뜰 해, 평소에나 좀 뜨지. 맨날 동쪽에서 뜨다가 왜 하필 오늘이야? 한유정이 늦잠 자면 자는 대로 놔뒀다가 시간이나 까먹으려고 했는데.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정아, 거기 물 좀 줄래?”
혹시나 찔러봤는데 역시 안 준다. 칼칼한 목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유정 씨, 거기 물 좀 줄래요?”
한유정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손이 물병을 꺼내더니,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물컵 한 잔을 대령했다.
“고마워, 잘 마실게.”
가만히 날 노려보던 한유정이 이마로 내 어깨를 툭툭 때린다.
“야야, 그만해. 이불 젖는다.”
“제대로 해주세요. 필요할 때만 유정 씨라고 하지 말구요. 소원 들어주기로 현우 씨가 약속해주신 거잖아요.”
“차라리 야자를 하던가. 어떻게 너한테 존댓말을…….”
“그럼 현우──”
손으로 한유정의 입가를 틀어막았다.
“그냥 말 높일게.”
사흘만 더 참자. 사흘만.
젠장, 그래도 너무 긴데? 내일 또 회사로 출근해야겠다.
머리를 긁적이며 주방으로 향했다.
헌터 시험이 끝나고 나서 한유정도 입맛의 자유를 찾았다.
아직 처음의 각오가 헤진 건 아닌지, 나름 선은 지키는 거 같지만 얼마나 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식사 후에 디저트까지 싹 비우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IPTV를 뒤적이다가 문득 한유정에게 생각이 미쳤다.
“아, 유정 씨.”
내 혓바닥으로 말하는 거지만 진짜 낯간지럽고 닭살 돋는다. 으스스한 팔뚝을 문지르며 물었다.
“혹시 뭐 보고 싶은 거 있어요?”
“아뇨, 저는 괜찮아요. 현우 씨 보고 싶은 거 보세요.”
사양하지 않고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원래 같았으면 같이 드라마나 하나 골라서 쭉 정주행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IPTV에서 예능을 찾았다.
‘혼자 살아남기’, 이지아가 출연하기로 한 관찰 예능이다.
포맷은 소개 글이나 짤막짤막한 씬들로 대충 어떤지 알 거 같지만, 그래도 최신화 몇 개 정도는 챙겨봐야지.
광고가 끝나고 방송이 시작됐다.
내가 예능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스튜디오만 보더라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거 같았다.
그리고 역시는 역시였다. 다른 관찰 예능하고 그다지 달라 보이는 건 없었다. 유별나다 싶은 거는 카메라 워킹이 굉장히 드라마틱하다는 거?
잠깐잠깐 힘 빡 주는 연출 장면에서는 드라마 뺨치는 영상미를 보여줬다. 예능에 대체 왜 저런 낭비를 하는 거야?
관심 없는 연예인 이야기를 지루하게 시청하기를 한참, 옆에 있던 한유정이 의아하게 묻는다.
“갑자기 예능은 왜 보시는 거예요?”
“응? 아니, 네?”
“원래 예능 잘 안 보시잖아요.”
“아, 이거.”
심드렁히 다음 화를 누르며 대답했다.
“지아 씨 때문에. 다음 주에 관찰 예능 촬영 잡혔는데, 내가 담당하기로 해서 미리 체크해놓는 거예요.”
맞닿아 있는 어깨가 움찔 굳는다. 나도 모르게 한유정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평소 같은 표정이다.
“아저씨가 왜요?”
그런데, 당황하고 있는 거는 방금의 단어 선택으로 충분히 알 거 같았다.
한유정이 작게 씨근덕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베개를 꽉 껴안는 모습이 꼭 분을 삼키는 아이처럼 보였다.
이 눈치 빠르고 능구렁이 같은 소녀도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 되는데.”
한유정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불편할까봐 팔을 펼쳐주니까 꼬물거리며 품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뺏기기 싫다는 듯 와락 나를 껴안는다.
꼭 아기들 애착 인형이 된 기분이다. 입안에서 혀를 굴리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예림이는 바쁜데, 지아 씨 맡을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집에서 쉬고 있어. 다시 바빠질 거야.”
타이르는 말에 한유정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고개를 끄덕인 거 같기도 하고, 저은 거 같기도 하고.
근데 하나는 알겠다.
얘가 나한테 뭔가 소유욕, 의존, 집착… 그런 비슷하고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걸.
“걱정 안 해도 어디 안 떠나. 너 천살성 비밀로 해야 해서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어도 못 맡겨.”
흠칫 놀란 한유정이 고갤 든다. 마주친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알아.”
“진짠데.”
“누가 뭐래? 알겠다니까.”
차분한 말투에 조금 진정됐는지, 내 옷자락을 움켜잡고 있던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
혼자 살아남기 작가와 약속이 잡혔다. 방송 전의 사전 인터뷰였다. 집 근처 카페까지 찾아온 작가가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제 통화 드렸던 혼자 살아남기 팀 작가 최수정입니다!”
“이지아입니다.”
“바스타드 소드 매니지먼트 팀장 김현웁니다.”
마주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니까 최 작가가 눈을 크게 뜬다. 그녀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젊어 보이시는데 벌써 팀장이세요? 일을 굉장히 빨리 시작하셨나 봐요? 능력도 좋으신가 보다.”
헌터 업계 쪽 사람들은 내 이름하고 회사를 들으면 금방 알아보던데, 방송국 작가라 그런지 반응이 신선하다.
보통은 ‘아, 네가 소문으로만 듣던 그 새끼야?’ 같은 눈빛인데.
마주 웃으며 겸양을 떨었다.
“능력보다는 운이 좋았죠.”
회사 대표가 친구다. 능력으로 얻은 자린 아니지.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사전 인터뷰도 인터뷰인데, 이지아 씨가 예능에 나오는 건 처음이라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드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 굳이 대면 인터뷰하시는 게….”
“정말 죄송해요.”
최 작가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지아의 방송 캐릭터 때문에 골머리를 썩나보다.
그녀는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꼭 찾아내겠다는 듯 투지를 불태웠다.
“이지아 씨는 평소에 어떤 걸 하고 지내세요?”
“평소에요?”
“네, 취미라던가 사적인 모임 같은 거. 아무거나요.”
관찰 예능 특성상 제일 많이 했을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저 질문이 나올 때부터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벌써 알 거 같아서.
역시나, 이지아가 멋쩍게 머리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그, 핸드폰….”
“네?”
최 작가가 눈을 깜빡인다. 이지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쉴 때 핸드폰 해요. SNS 하거나, 드라마 보고.”
최 작가가 웃는다.
“아뇨, 그런 거 말구요. 제가 잘못 말씀드렸나 봐요.”
아니야, 제대로 말했어.
“활동적인 취미 생활 있잖아요? 뭐, 이지아 씨가 그럴 리는 없지만 밴드를 한다거나, 아니면 어디 콘서트를 간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아.”
“취미 생활 말씀해주시면 돼요.”
“SNS나 드라마 봐요.”
최 작가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가 어색하게 굳은 미소를 지우며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 노트와 펜을 이지아에게 건네며 조심스레 말했다.
“음, 이렇게 할까요? 평소 일상을 시간별로 나눠서 적어보죠. 아마 떠오르는 게 많을 거예요.”
이지아가 고민하며 펜을 끄적인다. 고민할 게 있나? 옆자리에 앉아 종이를 힐끔 훔쳐보다가 귓속말을 했다.
“지아 씨, 회사도 들려야 해요.”
“아, 맞다. 고마워요.”
굳이 회사를 써넣으라는 건 별거 없었다.
보잘것없는 이력서에 헌혈 횟수, 운전 면허증 하나라도 적어 넣으라는 의미지. 이지아가 노트를 슬그머니 건넸다. 가볍게 쭉 훑어본 최 작가의 눈매가 쩌적, 갈라진다.
“어, 이지아 씨?”
“네?”
“지, 진짜 이게 전부인가요? 일하는 거 빼면 SNS하고 드라마밖에 안 보이는데요.”
이지아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카락을 베베 꼰다.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지아 씨가 혼자 하는 걸 좋아해서요.”
“아, 혼자 하는 거요. 하하, 맞아요. ‘혼자 살아남기’ 컨셉에 제일 잘 어울리죠. 혼자 하는 거…….”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게 속마음을 안 들여다봐도 알 거만 같다.
아마 비방용이겠지?
“괜찮아요! 방송 출연하시는 분들이 다들 외향적이지는 않거든요!”
다시 기운을 차린 최 작가가 씩씩하게 고개를 쳐든다.
“혹시 친분 있는 헌터나 연예인들 계세요? 집에 불러서 간단히 음식하고 어디 놀러만 나가도 분량 뽑혀요. 개인적인 친분으로 화제 돼서 상대분도 이름 알리기 좋구요.”
이지아 인터뷰에 매니저가 이래도 되나 싶은데, 아무래도 대답하길 꺼림직해 할 거 같아서 다시 끼어들었다.
“지아 씨가 어비스 던전 때문에 청문회 한 거 아시죠?”
“아, 네. 당연히 알죠. 그때 생중계로 봤어요.”
“그러면 지아 씨 측에 증인 한 명도 안 나온 거 보셨겠네요. 옛날 동료들이 증언 거부하고 다 뒤통수 때렸어요. 업계 사람들은 연락 끊겨서 못 불러요.”
이지아가 내 소매를 잡아당긴다.
“네? 현우 씨, 그건 아니죠. 제가 연락 안 하는 거잖아요.”
“그게 그거죠.”
“다르죠, 그건. 둘이 어떻게 같아요?”
“솔직히 말할까요? 지아 씨가 연락 안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지아와 투닥거리는데 최 작가가 울상을 지으며 묻는다.
“혹시 알고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이지아와 눈을 마주치다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
박 피디가 머리를 긁적이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제작진들끼리 돈을 걸고 내기를 하고 있었다. 조연출이 종이에 이름을 끄적이며 외쳤다.
“판돈 3만 원부터. 종목은 평균 시청률로. 걸어요.”
“11프로 업.”
“10프로 다운.”
“장난해? 이지아가 나오는데 어떻게 10프로 다운이 나와? 13프로 업.”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2프로.”
종이 위로 돈이 수북이 쌓인다. 박 피디가 혀를 차며 물었다.
“너희 뭐하냐?”
“오셨어요? 피디님도 거실래요?”
박 피디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피디는 높은 숫자를 불러야만 한다. 괜히 낮게 불렀다가 부정 탈 수도 있으니까.
고민하던 그가 종이 뭉치들 위로 3만 원을 던졌다.
“18프로 업, 적당히 하고 치워. 회의 시작해야 하니까.”
“넵! 막내야, 판돈 캐비넷에 넣고 잠가놔라. 열쇠는 도둑놈이 훔쳐 가니까 목구멍에 삼키고!”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정리됐다. 박 피디가 의자에 앉으며 제작진들을 둘러봤다.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최 작가 어디 갔어?”
그의 물음에 조연출이 대답했다.
“수정 씨 사전 인터뷰 갔어요. 이지아 쪽이요.”
박 피디가 시계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벌써 네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안 돌아왔어?”
“네. 전화할까요?”
“됐어, 어디 가서 놀 사람도 아니고. 볼일 보고 때 되면 알아서 들어오겠지.”
회의는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지아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만에 시청률의 압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분량만 되면 3, 4주씩 뽑아먹고 싶은데.”
“시청률도 시청률인데, 인터넷 반응도 장난 아니겠죠? 벌써 댓글 난리에요.”
“뭐라는데?”
“잠깐만요. ‘이지아가 나온다고? 꼭 챙겨본다’, ‘살면서 이지아가 예능 출연하는 것도 보네. 곧 죽을 듯’, ‘또 악플 받고 잠수타려는 거냐?’, 더 읽어드려요?”
“아니. 화제는 제대로 됐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관심이 쏠린 건 분명했다. 뭐가 됐든 간에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된다. 예능 방송은 시청률이 전부고 최고니까.
한 시간 뒤, 박 피디가 회의를 마무리했다.
“뭐, 바스타드 대표하고 이야기 된 게 있어서 홍보 분량은 빼줘야 하니까 작가들이 그 부분은 유의해주시고. 여자 혼자 사는 집이니까 카메라 문제 되지 않게 잘 설치하고. 연예인이 아니라 헌터, 그것도 이지아야. 알아서들 조심해. 머리 날아가기 싫으면.”
박 피디의 농담에 다들 작게 웃었다.
문득 그의 눈길이 빈자리로 향했다. 최 작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5시간째인데, 이 정도면 조금 이상했다.
“성진아, 최 작가한테 전화 한 번…….”
박 피디의 말이 끊기기도 전에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제작진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최 작가가 비척이며 걸어왔다.
“뭐야, 왜 이제 와? 최 작가님 어디 놀다 온 거 아니에요?”
누군가의 농담에 다들 짓궂은 한 마디를 보태다가, 최 작가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구석에 있던 후배 작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언니, 설마 울어요?”
“사전 인터뷰 가서 왜 그래? 이지아 진짜 한 성격하는거야?”
웅성거리는 소란이 커진다. 최 작가는 전부 무시하고 박 피디에게 걸어갔다. 박 피디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왜, 왜 그래, 최 작가? 뭔 일 있었어?”
최 작가가 무릎을 꿇고 박 피디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피디님….”
그녀가 울먹이며 외쳤다.
“저희 망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