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역대급 유망주 (3)
* * *
1차 시험은 헌터의 기본 능력치를 알아보는 게 목적이다.
필드에 몬스터들을 랜덤하게 배치해놓고 거기에 헌터들이 어떻게 대응하나 알아본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잡몹들을 여럿 잡으며 꾸준히 점수를 적립할 수도 있고, 강한 몬스터를 노려 고득점을 노릴 수도 있다.
몬스터를 찾아내는 추적 능력, 마주친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하는 전투력, 장기간 전투를 지속하는 체력, 어떤 전략으로 고득점을 노릴지 선택하는 판단력까지.
1차 시험으로 전체적인 작전 수행 능력을 채점했다. 사실상 협회에서 정해놓은, 헌터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치였다.
미달인 잔챙이들은 모두 나가떨어지고 솎아낸 알멩이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고르는 작업이 시작된다.
2차 시험은 헌터의 협동성을 알아보는 게 목적이다.
4명이 한 팀을 이뤄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를 막아야 한다. 중앙의 포인트로 몬스터를 적게 보낼수록 고득점인 디펜스류 게임이라 보면 된다.
이런 게임들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흔히들 아는 사실이지만, 혼자서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구멍이 하나 생기면 다른 곳에서 잘한다 해도 고득점을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형 길드들이 협회에 로비까지 찔러가며 팀원들을 조작하는 이유였다.
유망주가 어이없는 이유로 탈락하거나 낮은 순위로 데뷔하면 이후 활동에 지장이 가니까.
그래서 대형 길드들이 아무런 빽도 없던 한유정의 발에 족쇄를 채우려고 했던 거고, 내가 엎어버린 거다.
아무리 한유정이 뛰어나더라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전부 막아내지 못한다. 기존의 팀대로 시험을 진행했다면 저득점, 심하면 탈락까지도 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번 시험 룰인데, 확실히 알았지?”
강당에서 감독관의 설명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한유정은 4조였다. 아직 차례까지는 한참 남았다.
벤치에 앉은 한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번 엎어졌었고, 설명도 벌써 두세 번째인데 모를 리가 없지.
머리 회전이 빠른 애다.
신뢰가 팍 느껴지는 자신감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한유정이 받아온 팀 배정표를 확인했다.
[한유정(3107)]
[나예정(1935)]
[박지현(2199)]
[김은정(2040)]
나예정.
여행지에서 부딪혔던 태산 길드의 유망주.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녀가 한유정과 같은 팀에 속해있었다.
악연 한 번 참 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 나예정 있잖아요.”
한유정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예정? 왜?”
“전에 대진 신문사에서 한 번 마주쳤었는데 기억하세요?”
곰곰이 기억을 되짚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주치긴 했을 거다.
그때 태산 길드 매니저가 인터뷰 중에 쳐들어와서 지들 인터뷰해야 한다고 방 빼라 윽박질렀었으니까.
“기억 안 나는데. 왜?”
“그때 아저씨한테 길바닥 출신이라고 욕했어요. 비웃으면서요.”
“그랬어?”
“네.”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한유정과 나처럼 간단한 도시락을 먹고 있는 헌터들이 보인다.
다들 긴장해서 체할 거 같은 얼굴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꼭 수능 시험 같은 분위기다.
주위를 구경하는데 한유정이 조심스레 묻는다.
“화 안 나세요?”
뭐야, 방금 이야기 전부 끝난 거 아니었어?
입안의 샌드위치를 넘기고 말했다.
“사실인데 어때? 욕한다고 일일이 반응하면 피곤해서 막상 중요할 때는 화도 못내.”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토라진 한유정이 입을 다물어버린다.
설마 내가 욕먹었다고 화내주는 건가?
가슴이 간질거려서 웃으니까 한유정이 퉁명스레 대꾸한다.
“다들 왜 몰라주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아까 매니저들이요. 저번 2차 시험 때도 그랬고, 다들 아저씨가 꼭 운 좋게 저 담당하는 거처럼 말하잖아요.”
“맞잖아?”
한유정이 원했다면 훨씬 고득점을 얻는 것도 가능했을 거다.
유망주들처럼 각성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천살성이라는 특성과 암살자라는 환경 때문에 실제 실력은 이미 현직 헌터들보다 더 뛰어났다.
앞으로 바스타드 길드가 커지고 나면 내 자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거다. 시기와 질투는 덤이고.
한유정의 미래는 탄탄대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의 매니저 자리를 그저 마음의 평화라는 능력과 일찍 만났다는 이유로 선점하게 됐다.
이게 운 좋은 게 아니면 뭐겠어?
그런 생각을 하니까 옆에서 뾰로통한 말소리가 들린다.
“아닌데.”
한유정이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운은 내가 좋은 건데.”
*
점심이 끝나고 4조 차례가 다가왔다.
아까 한유정이 내게 했던 다짐이 떠오른다. 무시당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얼추 윤곽이 잡혔다.
화장실 앞에서 나하고 마주친 나예정이 시원하게 욕 한 사발 했겠지.
그래서 한유정이 아까부터 그런 이야기만 꺼내는 거고.
힐끔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유정의 두 눈에 투지가 활활 타오른다. 꼭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 같다. 그게 귀여우면서도 걱정부터 들었다.
목석처럼 굳은 한유정의 등을 팡 때렸다. 화들짝 놀란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됐어, 힘 풀어. 적장 목 따러 가냐?”
“네?”
“내가 항상 말했잖아. 헌터 시험 치기 전부터 뭐라고 했어?”
언제나 강조하던 말.
그걸 한유정이 읊조린다.
“저한테 실망하지 않으신다구요.”
“빈말로 했던 거 같아?”
“아뇨.”
한유정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레 쓸어넘겼다.
“2차 시험에서 고득점 안 받아도 충분해. 1차 시험에서 충분히 점수 확보해놨고, 3차 시험도 있으니까.”
막말로 바로 불합격인 낙제점만 아니면 된다. 협회 시험은 총점으로 계산한다. 한 개쯤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회 가능했다. 조금 등수는 떨어지겠지만은.
마이크를 잡은 감독관이 모이라고 크게 소리친다.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진다. 유망주들이 긴장된 어깨를 주무르며 캡슐로 향하고 있었다.
“유정아, 시간 됐다. 아무튼 내가 말했지? 너무 힘주고 하지 마.”
“네.”
한유정이 굳게 다짐했다.
“열심히 하고 올게요.”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뒤를 돌아보니 태산 길드 매니저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웬일로 아는 체를 해오지? 신기하네.
“김현우.”
“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매니저가 턱짓으로 건물 밖을 가리켰다.
*
“47번으로 가시면 됩니다.”
본인 확인을 마친 한유정이 캡슐에 들어갔다.
“한유정?”
나예정이 날카롭게 불렀다. 같은 조원이라 그런지 캡슐도 옆에 나란히였다.
눈을 마주친 한유정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예정이 코웃음 치며 인사를 받았다.
“우리 같은 팀이더라? 기왕 이리된 거 1등 버스 좀 부탁할게.”
빈정거리는 말투.
“네.”
한유정은 한 음절 대꾸로 나예정의 시비를 끊었다. 특유의 무심한 얼굴을 하면서.
꼭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태도처럼 보였다.
헌터 시험은 기본적으로 경쟁이 아닌 협력을 요구했다. 가상현실 기계를 사용하는 수험생들이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헌터란 혼자서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던전 공략대에 들어가서 다른 헌터들과 협력한다. 거기에 동료 헌터를 공격할 일 같은 건 전혀 없다.
헌터를 잡는 기술은 평가 외의 항목이란 의미다.
그렇기에 헌터 시험은 점수로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일절 해를 끼치지 못했다.
‘싸가지 없는 년.’
헌터 시험 공간은 완벽하게 통제돼있고, 본인의 커리어가 걱정돼서라도 나예정에게 무슨 짓을 하지 못한다.
팀 게임이란 게 그랬다.
이기고 싶으면 욕을 처먹더라도 참아야만 했다. 회까닥하는 순간 본인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니.
“너 말이야, 화장실 앞에서 김현우랑 대화하는 거 들었는데.”
한유정이 고갤 돌려 나예정을 쳐다봤다.
“매니저보고 아저씨라 부르더라? 둘이 열 살 차이는 나지 않아? 김현우 걔는 생긴 건 멀쩡하던데, 본인한테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미성년자한테 수작질을 부리고 있어?”
갑자기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예정이 목덜미를 긁적였다.
‘뭐지?’
이상했다. 닭살이 올라올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는데, 공기는 끈적끈적했다.
마치 한여름의 장마철처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턱을 타고 바닥에 뚝뚝 흘렀다. 그런데 괴상한 건 팔은 오들오들 떨리고 있단 거다.
대체 왜?
이유 모를 현상에 의문을 느끼기도 잠시.
시선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닫히는 캡슐의 뚜껑 틈새로, 한유정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를 응시하는 안광이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
2차 시험이 시작됐다.
가상 현실 공간에 모인 네 명은 일단 중앙의 포인트에 모였다.
“안녕하세요, 박지현입니다. 1차 시험에서 점수는 2199점이고요. 포지션은 전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망주 박지현이 먼저 나서서 자기소개를 주도했다. 2차 시험은 협동 전투였다. 각자 포지션과 전투 타입을 알아야만 했다.
전투를 앞두고 아군의 전력부터 조사하는 건 기본적인 선행과정이었다. 전략은 그다음이다.
“안녕하세요, 김은정입니다. 1차 시험에서는…….”
유망주 김은정의 소개가 끝나고 나예정의 차례가 됐다.
입을 열려는데, 한유정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딘가 생각에 잠긴 거만 같았다.
나예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 뭐였지?’
사람이 눈을 그렇게도 뜰 수가 있나?
상상하는 것만으로 손이 축축해졌다.
“…정 씨? 나예정 씨?”
“어, 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본인 소개하실 차례에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이러면 안 됐다. 나예정이 심호흡을 깊게 내쉬었다. 조금 진정이 된다.
“나예정입니다. 태산 길드 소속이고, 1차 시험에서는 1,935점을 기록했습니다. 포지션은 염동술사입니다.”
“아, 염동술사….”
듣고 있던 박지현이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화력이 강하고 범용성도 괜찮지만, 에너지 소모가 커서 2차 시험에는 맞지 않았다.
디펜스 특성상 전투가 길게 늘어지기 때문이다.
나예정의 소개가 끝나고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
세 쌍의 시선이 한유정한테 우르르 꽂혔다.
호기심, 적대감, 안도감.
여러 감정을 맞이한 소녀는 그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으음….”
박지현이 곤란한 얼굴로 짝짝 손뼉을 쳤다. 한유정을 제외한 두 명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무래도 한유정 씨는 컨디션 관리에 집중하는 거 같으니까, 이대로 전략을 짜겠습니다. 잠깐 임시 지휘를 맡으려는데 괜찮…….”
“한유정입니다.”
한유정이 불쑥 말했다.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한 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서늘하고, 위협적이고, 담담하고, 퇴폐적이고, 금방이라도 목에 비수를 콱 찔러 넣을 거 같은.
그런 목소리.
“1차 시험에서는 3,107점을 기록했습니다.”
유망주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유정이 대단한 거야 언론이 워낙 떠들어대서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대체 어떤 포지션으로 싸우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온통 수수께끼였다.
밖으로 드러난 기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말이 어울렸다.
그리고 그 해답이 바로 앞의 소녀에게서 나왔다.
고개를 든 한유정이 나예정과 시선을 마주쳤다. 붉은 안광에 살기가 넘실댔다.
그녀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포지션은… 트롤입니다.”
* * *